레진코믹스

한번쯤은 들어본 적 있을, 일본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본어인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

덴노에게 만세를 부른다는, 얼핏 듣기만 하면 아주 간단한 구호지만 의외로 이 구호의 역사는 그리 길진 않습니다.

'덴노헤이카 반자이' 는 엄밀히 말하면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만들어진 구호' 거든요.

그 이전에는 덴노가 민중들 앞에서 순행을 나가면 사람들은 그냥 침묵하고 있거나, 환호를 질러도 '와-' 나 '오-' 같은 즉흥적인 감탄사가 끝이었습니다.

'덴노헤이카 반자이' 가 처음 울려퍼진 때는 1889년 2월 11일, 일본제국의 근대적 헌법인 '대일본제국 헌법' 의 반포 기념식에서였습니다.

당시 메이지 덴노와 황후가 열병식에 참여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모습을 드러내자, 도로 양옆에서 도쿄제국대학생들이 처음으로 '덴노헤이카 반자이!' 를 외쳤고, 이를 본 시민들이 일제히 따라 외친 것이 시작입니다.

이 광경을 본 덴노도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고, 이렇게 덴노와 민중과의 첫 소통이 이뤄졌습니다.

물론 대학생들이 즉흥적으로 외친 건 아니고, 실제로는 당시 문부대신 모리 아리노리(森有)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메이지 덴노를 유럽식 '근대군주' 의 자리에 올리기 위해선 덴노와 민중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의 연출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중국에서 천자에게 '만세' 라고 하는 것에서 따와 '덴노헤이카 반자이' 를 만든 것입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만세(万歲)'의 발음도 조정되었습니다.

원래 일본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던 '만세' 의 발음은 '반제이' 였는데, 이 소리는 귀에 거슬릴 수 있다며 만엽집 등에서 쓰이던 옛날 발음인 '반자이' 를 부활시킨 겁니다.

이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후, 미리 섭외한 대학생들에게 구호를 연습시킨 후 메이지 덴노 앞에서 선보인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반대도 있었습니다.

어딜 감히 천황폐하 앞에서 크게 소리를 지를 수 있냐는 것이었죠.

그러나 이런 반대도 민중들이 다같이 '덴노헤이카 반자이' 를 외치는 순간 쏙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이 구호는 일본제국과 덴노 그 자체를 상징하는 구호로 자리잡게 됩니다.

'덴노헤이카 반자이' 는 단순한 '천황폐하 만세'를 넘어 일본인들이 덴노의 신민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구호였으며,

덴노도 여기에 손을 흔드는 등으로 화답함으로써 민중들과 함께하는 군주의 이미지를 연출했습니다.

봉건적 군신 관계에서, 군주 아래 사민이 평등한 근대군주의 이미지로 나아가게 된 것이죠.

물론 "반자이 돌격"의 이미지가 주는 것처럼 현대에는 제국주의, 군국주의, 전체주의의 상징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비록 근대군주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지만 군주는 여전히 군주였고, 의회와 왕과의 대립이 첨예하던 역사에서 발전한

유럽의 입헌군주제와 일본의 입헌군주제는 결이 달랐거든요.

개인의 발견보단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윤리로 정립된, 봉건과 근대과 뒤섞인 기묘한 사상은 일본제국을 군국주의로 내몰았고 결국 일본제국은 패망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