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25]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27회 작성일 24-05-26 12:41

본문

20200518_205812.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일찌기 도시국가였던 시절의 로마를 처참히 굴복시켜 "패자는 비참하도다!Vae victis" 란 로마사에 길이 남을 굴욕을 주고

머나먼 그리스까지 침공해 저 유명한 델포이 신전을 습격하며, 소아시아 한복판 갈라티아 지역을 정복해 나라를 세우기까지 했던

고대 유럽의 정복자들, 위대한 전사의 민족 켈트족.

홀딱 벗은 알몸에 푸르딩딩한 칠을 하고 적의 모가지를 따러 전쟁터에서 날뛰는 미친 우가우가 야만족들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그들은 아주 오랜 옛날 - 로마가 위대한 제국은커녕, 근처 라틴족 도시들에서 추방당한 범죄자들과 난민들의

한낱 짬통 부락이던 시절 - 부터, 농업을 발전시켜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벨기에+북이탈리아)의 기름진 땅을 일구고,

소금 광산과 구리 광산 등 광업을 고도로 발전시키고, 그리스풍의 대규모 성채도시를 지은 엄연한 문명인들이었다.

전쟁터에서 홀딱 벗은 알몸에 푸르딩딩한 칠을 하고 적의 모가지를 수집하던 건 분명 사실이지만








20200518_205501.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그리고 "문명인"인 켈트족들은, 오래 전부터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인들이나 그리스인들과(*고대 이탈리아 남부 일대에는

그리스인들이 이주해 건설한 식민도시들이, 마그나 그라이키아(大그리스)라 불릴 만큼 번영하고 있었다.)

대등한 거래 파트너로서 교역한 상인들이기도 했다.

물론 쿨타임이 돌 때마다 갈리아 키살피나(알프스 이남 갈리아 - 오늘날의 북이탈리아)에 정착한 켈트족들과

포 강 이남 이탈리아인들, 특히 로마가 시즌 139475호 팬티레슬링 혈투를 벌이는 건 연례행사였지만

전쟁은 전쟁이고, 심지어 수백 년 뒤 카이사르가 8년간에 걸친 갈리아 정복을 한창 진행중일 때조차도

양측 상인들 간의 실로 엄청난 규모의 교역이 행해지는 것은 아무도 막지 못했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이라고 하면, 가도 가도 울창한 숲뿐인 미지의 오지 속으로 진군하는 로마 군단의 이미지가

롬붕이들 머릿속에 흔히 떠오르겠지만, 당시 로마인들에게 그런 미지의 땅은 브리타니아(영국)나

게르마니아(라인 강 동쪽 독일)지, 갈리아에는 규모 좀 있는 도시다 하면 로마에서 온 상인들이 없는 도시가

오히려 드물 지경이었고, 와인이나 올리브 기름, 향신료 같은 로마산 인기 수입상품들은

서민들도 맘먹고 쌈짓돈을 턴다면 충분히 구할 수 있을 정도인 동네였다.







20200601_231423.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20200519_210413.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이런 교역을 통해, 오래 전부터 골족(알프스 이북 갈리아의 켈트족들)들은 자연스럽게 포도주를 접하게 되었다.

물론 골족들도 그들의 전통술 - 밀주(벌꿀)를 오래전부터 빚고 즐겨왔다.

'호흐도르프 군주묘'같은 중요한 켈트 고분에서 발견된 술동이 바닥의 밀주 찌꺼기를 현대 고고학자들이 분석해 본 결과,

술에 향을 더하기 위해 사향초, 야생 자스민, 파초, 달구지국화 등 다양한 지역 특산식물을 첨가했다는 것이 밝혀져

최고의 칵테일 레시피를 찾기 위한 골족 酒붕이들의 끝없는 탐구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얼마 가지 않아 골족들은 포도주에 대한 끝없는 사랑에 빠졌고, 이는 지중해 세계와 갈리아 사이에

상술한 대규모 교역이 이뤄지는 중요한 원동력이자, 갈리아의 사회와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200701_220559.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당시의 포도주는 아직 기술이 부족한 시대다보니, 몹시 진하게 농축된 원액 상태로 암포라(항아리)에 담겨 갈리아로 수출되었다.

이 수출품 항아리들은 인간이 끌어서 강 상류로 이동할 수 있는 바지선에 실려, 강줄기들을 통해 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주거 유적지들에서 많이 출토되는 이런 항아리들을 통해, 기원전 500년경 전후로 이미 전통적인 밀주보다는

수입산 포도주가 골족들의 향연에서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자기 항아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골족들은, 심지어 (물론 원시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오늘날 와인통의 먼 조상격인

포도주를 담는 나무통의 개념을 처음으로 고안해내기까지 했다.








1492803223d7fad84aaa9f4f3682fcaa3232fd9604__mn109625__w529__h294__f32880__Ym201704.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켈트인들은 포도주를 열렬히 받아들였지만, 지중해의 '개화'된 음주 문화까지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골족들이 그리스-로마 방식으로 와인을 물에 타 희석시켜 마시는 게 아니라

무식하게 원액을 그냥 퍼마셨다며, 와인을 제대로 마시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결국 야만인 수준 어디 안 간다고 경멸적으로 기록했다.

피-씨한 현대인의 문화상대주의 개념 거르고도, 멀쩡한 술에 물을 타 쳐마시는 놈들 쪽이 이상한거 아닌가?;;; 싶을 법한데

상술한 것처럼 저 포도주란 게 멀쩡한 술이 아니라 무지막지하게 진하게 농축된 "원액"이었다.

당시 기술력의 한계 때문에, 운반 중에 암포라가 포도주의 수분을 점점 흡수해 농축시켜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로마의 심포시온(연회)에서는, 주최자가 그날 밤에 마실 포도주의 양과 물을 탈 비율을 정했는데

물과 포도주의 비율은 3:1, 5:3, 아무리 심해도 3:2를 넘기지 않는 게 국룰이었고

(*국립중앙박물관 그리스-로마 문명 특별전 전시설명)

켈트식으로 원액을 들입다 퍼마셔대는 건, 위대한 두번째 오현제 - "지고의 황제" 트라야누스나, 로마 공화국의 혼, 小카토같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네임드 술꾼들이나 하는 그야말로 또라이짓이었다.








20210411_131816.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20210411_131854.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그런데, 막상 고고학자들의 발굴 결과로는 '빅스 여군주묘' 같은 중요한 켈트 고분들에서

수입품으로 보이는 크라테르(심포시온에서 물과 포도주를 섞을 때 쓰던, 여과기가 달린 커다란 항아리)가 출토된지라

고대 기록과는 달리 ? 켈트족 얘들도 포도주에 멀쩡하게 물 타서 마셨나본데?;;; 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붕이 뇌피셜로는, 골족들이 무식해서 포도주에 물을 타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게 아니라

그리스 게이새끼...밍밍하게 물이나 타다니 포도주 맛 떨어지게...하고 원액을 그냥 퍼마신 개씹상남자

(기열 그리스어로 개노답 알콜중독자)가 많았던 것뿐인게 아닐까 싶다.

트라야누스나 카토가 포도주 원액을 드링킹한 게, 원래 포도주는 물을 타서 마셔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무식쟁이라서 한 짓은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다.

금세공사들을 비롯한 켈트 장인들과 음유시인들 같은 예술가들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에서 수입한

포도주를 마시며 영감을 얻었고, 신처럼 용맹한 전사들을 기리는 위대한 예술작품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포도주 수입은 장기적으로 갈리아 사회에는 몹시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물론 그 독한 원액을 마셔대는데 건강에 좋았을 리가 절대 없지만, 골족 개개인의 건강 차원 이상의 문제였다.



[(켈트족의 연회에서) 부자에게 제공되는 음료는 이탈리아나 마실리아(오늘날의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수입된 포도주로,

그대로 마시거나 물을 조금 섞어 마신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들은 꿀을 섞어 양조한 밀맥주를 마신다.

평민들은 아무것도 섞지 않은 밀맥주를 마신다.


- 기원전 1세기경 그리스 역사가 포세이도니오스]







20200605_220927.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1589552904.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포도주는 점점 부와 지위, '개화'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상징물이 되어갔고

연회와 음주가 단순히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을 넘어, 봐라! 나는/우리 부족은 이 귀한 포도주도 이렇게 물처럼 퍼마신다!

나/우리 부족이 이렇게나 개쩐다! 는 과시성 돈지랄 레이스로 변질되어갔던 것이다.

갈리아의 골족 부족장들이나 귀족전사 같은 엘리트 계급들은, 로마산 사치품과 특히 엄청난 양의 포도주를 수입하고

그 대가로 각종 미가공 원자재들 - 철, 곡식, 모피, 그리고 노예 - 를 수출했다.

(골족들에게는 분명 나중에 대머리 난봉꾼이 다 털어가는막대한 양의 황금 또한 있었지만, "금 그 자체를

지나칠 정도로 사랑하는" 골족들의 성향상, 각종 장신구를 만들거나 호수의 정령들께 제물로 바치는 데 써도

로마 상인들에게 수입대금으로 금을 지불하는 건 영 내켜하지 않았다.)

역시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의 기록에 의하면(과장은 있을 수 있겠지만) 갈리아에서 포도주는 너무나 귀한 상품인 반면

그에 비하면 주변에 널린 게 노예였기에, 심할 때는 양측 상인들 사이에

와인 한 암포라와 노예 한 명을 교환하는 딜이 성사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1593777436.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갈리아 골족들은 분명 문명사회를 이룩하긴 했어도, 결국 부족사회(라곤 해도 각 부족들의 규모가

웬만한 삼국시대 소국들보다도 크지만) 그 다음 단계의

본격적인 왕국 또는 공화국이나 통일 갈리아 제국까지는 끝내 나아가지 못했기에

남쪽 로마나 동쪽 게르만족과의 싸움 외에도, 갈리아 안에서도 부족 간의 대립과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하지만 본디 대부분의 갈리아 부족들에서는 이웃 부족을 습격한다는 것은, 전사가 부와 영광을 얻고

우리 부족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었기에, 승리한 뒤에도 패배시킨 부족을 예속 부족으로 삼고 조공을 바치게 했지

'차라리' 인신공양 제물로 몇 명을 잡아갈망정, 패배한 부족민들을 대규모로 노예로 잡아가는 일은 드물었다.

생각해보면 그럴만한게, 노예라고 해도 결국 그게 다 부실하게나마 먹이긴 해야 할 입이다.

골족 부족장들이 로마 원로원 의원들마냥 라티푼디움(대농장)을 굴린 것도 아닌데, 사서 군식구를 늘리는 쓸데없는 짓을 왜 하겠나.







1591430569.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그런데 이제는, 굳이 패배시킨 부족민들 중에 노예를 잡아 끌고갈 이유가 생겨버렸다.

포도주 수입을 위한 노예 수출과, 이 때문에 벌어지는 노예 사냥은

갈리아 골족들이 로마나 게르만 부족들을 상대로 거의 정기적으로 벌이던, 전쟁에 필요한 인적 자원을

갈리아 내부에서 점점 소모시키고, 자연스럽게 골족 전체의 역량을 갈수록 약하게 만들었다.

(*에이드리언 골즈워디 외 저 "로마 전쟁")

마치 아편이 청나라를 안에서 갉아먹었듯, 포도주도 갈리아를 안에서 갉아먹은 것이다.







4.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카이사르가 갈리아 원정기에서 벨기에 부족들을 갈리아 골족들 중 가장 용맹한 부족들로 평가하며

"그들이 (로마령 갈리아 키살피나) 속주의 문화와 문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고,

타락의 원인이 되는 사치품을 수입하는 상인들과도 거의 왕래가 없었다." 고 서술한 것도 괜한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물론 "멀쩡하던" 청나라가 아편 원툴로 망했던 것이 아니듯, 독립 갈리아도 아오 포도주시치 하나땜에 망한 것이야 아니며

노예사냥 이전에 부족들간의 패권다툼으로 인한 끝없는 내전과, 점점 통합되고 강대해지는 게르만족의 위협 등

다른 여러 중요한 원인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포도주 같은 사치품 수입이 미친 악영향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1605356672.jpg "과도한 음주, 골족의 건강과 독립을 망칩니다." - 포도주와 갈리아의 몰락


아이러니하게도, 카이사르에 의해 결국 갈리아 전역이 정복된 뒤, 로마의 속주로 전락한 갈리아에는

오늘날의 리옹 지역을 시작으로 론 강을 따라 포도농장들이 줄줄이 세워졌고, 곧 포도주는 로마령 갈리아의 주요 산업이 되었다.

그리고 골족 - 아니, 이제는 엄연히 "켈트계 로마인"들은 오히려 로마 본국, 지중해 세계 각지로 갈리아산 포도주를 역수출했으며

심지어 라인 강을 끼고 대치중인 게르만족과도 교역하여, 마치 카이사르 시대 로마인들과 그들의 선조들이 그랬듯이

포도주나 향신료를 수출하고, 그 댓가로 노예나 모피를 받아왔다.

독립 갈리아를 망하게 한 포도주가, 로마령 갈리아를 다시금 흥하게 했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한 일일까.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켈트족 : 고대 로마의 정복자",

에이드리언 골즈워디 외 저 "로마 전쟁",

오사다 류타 저 "고대 로마 군단의 장비와 전술",

알베르토 안젤라 저 "고대 로마 제국, 15000km을 가다",

그 외 미갤 "메텔루스스키피오" 님 글들도 참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688,036건 8 페이지
커뮤니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94943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0 11:45
33361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2 11:44
80279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0 11:43
75461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0 11:42
65056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1 11:41
43978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1 11:22
80446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3 11:21
75728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1 11:19
80588 연예인
쿠로
0 11:18
28986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0 11:17
32831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0 11:02
51971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1 11:01
10415 연예인
쿠로
0 11:00
12720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1 10:58
30431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0 10:58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