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히타이트 문헌으로 보는 역사 속 트로이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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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4-06-17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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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jpg 히타이트 문헌으로 보는 역사 속 트로이 (1)
아킬레우스의 분노 - 샤를 앙투안 코페르作


Mνινειδεθε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서양 문학의 근원이자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일리아드》《오디세이》



두 이야기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핵심적인 키워드를 공유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일리아드 덕후였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시아 원정 당시


일리온(트로이)에서 영웅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기원전 1세기경의 역사가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와


'스트라본'은 각각 자신들의 저서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기 전에 트로이를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했는지


보여주는 구절을 남겼습니다.




  •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승리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일리온을 방문하여 신전을 장식하고, 건축물을 개선하도록 명하였고 도시에 부과된 조공을 면제하도록 하였다. 페르시아를 무너뜨린 후, 대왕은 일리온을 대도시로 만들어 웅장한 신전을건립하고 성대한 제전을 선포하겠다며 약조했다.

- 스트라본, 지리지 中



  • 다음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비망록 중 굵직한 목록들이다...<중략> 일리온에는 다른 어떠한 곳도 넘볼 수 없는 신전을 세울 것이다. 선왕 필리포스 2세의 묘는 인간의 7대 걸작(7대 불가사의)으로 꼽히는 이집트의 가장 위대한 피라미드에 견줄 수 있도록 지어질 것이다.

- 시켈로스, 비블리오테카 히스토리아 中






이렇듯,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트로이 전쟁은


단순히 신화가 아닌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고


여러 고대의 역사가들은 트로이 함락의 시점이


제 1회 올림피아드 1년(약 기원전 776년) 보다


대략 400년 전(1180년경)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




이런 추정에 합리적인 근거가 있던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청동기 붕괴와 맞닿아 있죠.

청동기 붕괴에 관련된 책 소개:https://www.fmkorea.com/7018003632







Walls_of_Troy_(2).jpg 히타이트 문헌으로 보는 역사 속 트로이 (1)




이후 긴 세월 속에 자취를 감췄던


대서사시《일리아드》 속 트로이는


1870년대에 접어들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됩니다.





당대의 저명한 학자들이 트로이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으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은


어릴 적 감명 깊게 읽은 일리아드를 마음 속에 품으며


혼자서 끝까지 트로이의 존재를 의심치 않았고,




결국에는 트로이를 발굴해 내면서


일리아드가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낭만적인 "트로이 발굴 신화"가 널리 퍼져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15.jpg 히타이트 문헌으로 보는 역사 속 트로이 (1)



먼저, 고고학이 현대적인 체계를 갖춘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슐리만 또한 이제 막 과학적인 방법론이 도입되려는


현대 고고학 태동기의 인물이었고


당시 활동하던 고고학자의 상당수는 아마추어였습니다.




전문가는 부족하고 기술의 한계는 명확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트로이의 존재를 확신할 수


없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죠.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트로이를 찾고 있었으며


슐리만의 발굴 보다 훨씬 이전에


트로이의 위치를 상당히 정확하게 추측한


학자들도 존재했습니다.




광물학자 에드워드 클라크는


그의 조수 존 크립스와 함께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연구한 것들을 토대로


여행기라는 저서를 남겼고


그중에는 '트로이 평야'라는 트로이에 대한


긴 추측이 담긴 챕터가 있는데





10.jpg 히타이트 문헌으로 보는 역사 속 트로이 (1)

에드워드 클라크, 여행기 2권 속 삽화(최초 발행 1812년)



빨간 원- 클라크가 스트라본 시대의 일리온으로 비정한 일대





스트라본은 당시의 일리온과 고대 트로이의 위치를 비교하여, 일리온이 트로이 바로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이다와 다르다니아 쪽으로 약 30 스타디아(약 5~6km) 동쪽에 세워졌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메트로폴리스는 전쟁 중 피난처로 사용되는 성채와 평화로운 시기에 농업의 원천인 평야를 가지고 있었다. 델포이와 같은 예외적인 도시도 있었지만, 이는 드문 경우다.


오늘날 그리스 지역에서는 바다 표면처럼 평평한 평야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거나 중앙이나 측면에 높은 바위가 있는 지형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지형은 수도 격의 고대 도시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지표였다. 다수의 평야는 바다와 인접해 있으며, 해안선의 변화로 인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고스, 시키온, 코린토스와 같은 아주 오래된 도시들은 위와 같은 평야에 있었다.


비옥한 평야가 해안과 가까워 초기 식민지 정착지로 적합했으며, 이후 인구가 증가하거나 새로운 침입자들에 의해 선주민들이 내륙으로 밀려나면서 더 내륙에 있는 도시들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각자의 평야를 가지고 있었다.



- 에드워드 클라크, 여행기 2권 中




에드워드 클라크는 트로이가


상당히 후대에도 언급된다는 점,


지리지나 역사 등에 기록된


묘사가 매우 구체적이라는 점 등을


근거로 트로이는 실존했다고 믿었으며


위와 같은 이유로 해당 위치 근방에


트로이가 있었다고 추정했습니다.


* 물론, 이게 다는 아니고 원문은 엄청나게 깁니다.




1820년대 찰스 맥라렌은 클라크의 관찰에 기반해


그림 속 평야에 있는 언덕, 히사를륵에


트로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비정하였습니다.




이후 시도 자체는 있었지만


대대적인 발굴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1860년대에 이르러서야


프랭크 캘버트에 의해 히사를륵의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캘버트는 트로이가바로 이곳에


잠들어 있다고 확신을 가집니다.




11.jpg 히타이트 문헌으로 보는 역사 속 트로이 (1)
클라크의 삽화 속 언덕이자 실제 트로이의 유적지가 발견된 히사를륵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유적을


찾아내는 것에 성공했으나,


자본이라는 커다란 벽에 가로막힌 캘버트가


더 깊게 일리아드 속 트로이로 가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12.jpg 히타이트 문헌으로 보는 역사 속 트로이 (1)



이때 캘버트의 발굴 작업에 합류한 인물이


캘버트와 마찬가지로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던


하인리히 슐리만입니다.




장사로 큰돈을 벌어 성공한 슐리만은


어린 시절 매료되었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고대 세계를 찾기 위해 아마추어 고고학에


사실상 독학으로 입문하였습니다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후 캘버트의 쩐주가 된 슐리만은


넘치는 자본을 바탕으로


트로이를 발굴하는 것에 성공하는데


사실 이 과정은 탈도 많고 오류도 많고


학자보다는 장사꾼의 모습에 가까운 행보였습니다.





photo2.jpg 히타이트 문헌으로 보는 역사 속 트로이 (1)
트로이 유적지



고고학자로서 슐리만은


도저히 훌륭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공로들이 고고학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업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학자들은 슐리만의 트로이가


일리아드의 트로이와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 엄밀히 따지면 슐리만은 유적의 다른 층을 일리아드의 트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트로이 전쟁 또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었을까요?








13.jpg 히타이트 문헌으로 보는 역사 속 트로이 (1)

청동기 후기 미케네 그리스와 서부 아나톨리아, 트레버 브라이스




여기에 관해서 확고한 정론은 없고


정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나


가장 지배적인 가설은




청동기 후기~청동기 말


미케네 문명과 아나톨리아 서부의 충돌이


일리아드의 모티브를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트로이가 속해 있던 아나톨리아 서부를 보면


바다 건너에는 미케네 그리스


동쪽으로는 히타이트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신화 속의 트로이가 아닌


역사 속의 트로이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히타이트 문헌에 기록된


'윌루사' 그리고 '아히야와'히타이트 신왕국


충돌에 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



짧게 짧게 가는 게 읽기 편하실 것 같아서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나중에 또 오겠습니다!


항상 재미난 이야기 해주시는 모든 분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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