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정치인 야쿠자 기업인 도쿄 지검 특수부와 검사들 2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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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히헤헤햏ㅎ 댓글 0건 조회 43회 작성일 24-07-09 23:03본문
1. 정계 재계 야쿠자의 콜라보 황민당 사건
나카소네 야스히로71~73대 일본 총리를 역임총리 재임 기간 역대TOP5에 드는인물이며뛰어난 정치력과 여러 국가 제도를 시행한80년대 일본 정계를 대표하는 정치인
당시 총리였던 나카소네는 퇴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자민당에선 차기 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있었고
일본 자민당에서는 당 총재 자릴 두고 여러 인물이 경쟁했습니다
일본 자민당 총재 자리는단순히 당 총재가 아니라사실상 일본 차기 총리임
- 다케시타 노보루 -
이 3명의 후보가 경쟁 중이었고 가장 유력한 쪽은 다케시타 였습니다
이 때 자민당과 다케시타를 난감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합니다
일본의 우익 정치 단체로서 다카마츠 시에본부를 두었으며대표적 야쿠자 조직인 이나가와회와연관이 있으며각종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단체
일본의 우익 정치 단체인 황민당이
유력 후보였던 다케시타에
대한 인신공격과 방해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다나카 가쿠에이를 지지하던
황민당은 다나카와 불편한 관계였던
다케시타에 대한 호메고로시를 시작합니다.
호메고로시(譽め殺し) 칭찬하다+죽이다의 합성어로칭찬하는 척 하며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일본에서도 이 황민당 사건으로 유명해진 단어예 - 총재는 다케시타 처럼 돈이 많은 분이 되어야 합니다(당시 다케시타와 금권 정치를 비꼬며 비난하는 식)
황민당은 차량을 이동시켜 이곳저곳에서 다케시타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고
후보였던 다케시타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게 됩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자민당은 수를 쓰게 됩니다.
자민당 간사장, 부총리, 중의원 역임하며한창 때 막후 실세 소릴 들었던 정치인북한에 방북해 김일성과 회담한 인물
자민당의 가네마루 신과 오자와 이치로가
폭력단과 안면이 있던 와타나베 히로야스란
인물과 접촉합니다
- 물류 기업 사가와 익스프레스의 사장 -
자민당의 요청을 받은 기업인 와타나베는
야쿠자 조직 이나가와회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나가와카이1949년을 기점으로 결성된 야쿠자 조직야마구치구미, 스미요시카이 등의 조직과 함께 꼽히는 대형 조직으로도쿄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일본 공안 부서의 요주의 감시 대상
와타나베 사장의 요청으로 이나가와회는 황민당과
두 차례 협상을 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 됩니다.
단순한 협력이 아니라 자민당과 다케시타 측에서이나가와회 쪽으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원했다는 것이 정설
정식으로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 됩니다.
이후 다케시타는 당 총재 자리에 올랐고
총리 자리까지 오르는 것으로
황민당 사건은 일단 마무리됩니다.
2. 상부상조 사가와 급편 사건
1957년 설립한 일본의 대형 물류업체 일본의 3대 택배회사 중 하나
황민당 사건 당시 자민당을 도운 와타나베 사장은
다케시타가 총리에 취임하고 정계 배경이 생기게 됩니다.
당시 자민당 뿐 아니라 여러 정당에도 정치 헌금 개념으로 돈을 뿌림
자신의 부탁을 받고 황민당과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이나가와회에 대한 보은을 실행합니다
이시이 타카마사 (본명 이시이 스스무)
이나가와회 2대 회장
당시 이나가와회의 2대 회장이었던 이시이 타카마사는
황민당과의 협상을 마무리 다케시타를 구원해 줍니다
정계와 야쿠자의 협조에서 계산이 빠질 수 없었고
거래의 중심을 담당한 와타나베 사장은 이시이 타카마사와
거래의 중심을 담당한 와타나베 사장은 이시이 타카마사와
이나가와회가 운영하던 사업체와 컨트리 클럽에 대한
채무 보증과 융자를 돕게 됩니다
그 채무 보증, 융자 등에 연관된이나가와회와연관된 회사가 수십개연관 자금만 4000억엔이 넘습니다
자민당의 인맥과 사가와 익스프레스, 야쿠자의 사업체들이 잘 나가는 듯 했으나
문제가 발생합니다
80년대 후반 절정이던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됩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무너지고 위기는 사가와 익스프레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품경제 붕괴 후 이나가와회와
연관된 기업들도 문제가 발생하면서
사가와 익스프레스 임원진들은 비상이 걸립니다
이 때 이시이 타카마사는 밑에 부하들을 보내
사가와 익스프레스에
자금 융통과 채무 보증에 대한 더 강한 지원을 요구했고
그건 사가와 익스프레스의 경영 위기로 이어집니다
결국 도쿄 사가와 익스프레스는 모회사로 흡수되고
이후 사태는 더 악화되어
도쿄 지검 특수부가 수사에 착수합니다
- 와타나베 사장의 자택 압수수색 -
수사를 시작한 도쿄 지검 특수부는
사장 와타나베 히로야스와 관계자 4명을
도쿄 사가와 익스프레스에 952억엔의
손해를 입힌 것으로 판단
특별 배임혐의로 체포합니다.
특수부는 여기서 그치치 않고 사건에 관련된 자금이
정계로 유입됐을 것으로 판단 추가 수사를 이어나갑니다
수사의 방향은 자민당 부총재 가네마루 신으로 향하고
가네마루 신은 사가와 익스프레스로부터
정치 헌금 명목으로 5억엔을 받은 것이 드러납니다.
5억엔을 받은 사실을 밝혀냈지만
문제가 생깁니다
당시 도쿄 지검 특수부는 5억엔을 받은
가네마루 신에게
출두 요청을 전했으나 가네마루는 출두 하지 않고
정치자금법을 위반했다는 서류를 제출하는 것으로 퉁쳤습니다.
검찰은 가네마루에 대한 사정 청취 및
추가 수사를 하지 않고
가네마루 신은 벌금 20만엔 약식 기소로 1차 종결됩니다.
- 가네마루 신의 20만엔 약식명령서 -
5억엔의 돈을 받고 나온 20만엔 벌금형은
뉴스를 타고 일본 국민들은 격분합니다
당시 검찰청으로 3만 통이 넘는 항의 전화가 들어왔다고 함상대가 거물 정치인이라 특별히 봐줘서특수부냐는 비아냥도 당했음
그럼 가네마루는 50억을 받았는데
어째서 200만원 벌금형이 나온 것일까?
당시 일본 정치자금규정법에서5억엔을 받은 가네마루가 위반한 것은정치 헌금 기부 총액의 양적 제한을위반했다는 것쉽게 말해 기준보다 더 받았는 정도그리고 92년 당시 정치인 특정 개인에 대한정치 헌금이 불법이 아니었음.가네마루는 회계 담당도 아니었고장부 상의 직접 엮인 문제도 없다는 것이고당시 검찰은 가네마루를 정치 자금 불기재,즉 허위 기입으로 기소하려 했으나당시 법률은 '회계담당자' 로 한정되었고적용 불가직관적으로 말해 당시그 5억엔의 출처는분명 의심이 가지만당시 정치자금 현행법으로 검찰이 뭔가강하게 엮어서 적용할 게 없었다는 것그래서 할 수 없이 형법대로 20만엔 벌금형 약식기소를 했다가 일본 검찰의 설명일본 검찰 입장에서는 비난 여론에 대해이해는 하지만20만엔 약식기소는 본인들도 좀 억울하단 반응
비난 여론은 국민들 뿐 아니라 일본 검찰 내부에서도 터져나옵니다
당시 삿포로 고검의 사토 미치오는 아사히 신문 컬럼에
이 상황을 비판하는 컬럼을 투고해 큰 반향이 일어났습니다.
거물급 정치인의 정치자금 수수와 벌금형에 대한 국민들의 허탈감과 분노의 감정VS심증은 있으나 당시 형법으로 강력하게 조질 수 없었던 검찰과 법률의 한계가주는 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이 50억 받아먹고 200만원 벌금이 말이 되냐? 이런 좇같은 게 어디있냐!VS우리도 조지고 싶지만 현행 법률에선 답이 없다 우리도 난감하다
이 사건에 참가했던 특수부 출신 관계자는
최근 인터뷰에서 국민들의 분노와 감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미안하면서도
한 편으로 많은 비난이 상당히 난감했고 씁쓸했다고 말함.
이렇게 가네마루에 대한 1차 수사는 20만엔 약식기소로 종료됩니다
하지만 도쿄 지검 특수부는 여기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정치자금법으로 안되는 상황이고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반드시 뭔가 해야 되는 상황
추가 조사를 이어나간 특수부는 다시 상황을 반전시킵니다
가네마루를 개인 부정축재
소득세법 위반 탈세혐의로 반격합니다.
- 가네마루 탈세혐의 체포 아사히 신문 -
1차 사건의 종결로 방심하고 있던
가네마루 측은 특수부의
끈질긴 추적에 자택에 숨겼던
대량의 현찰과 금고를 걸렸고
결국 체포 기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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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세 혐의로 체포된 가네마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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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택수색 과정에서 1천만엔 상당의금괴가 하나 나왔는데순도 99.99% 금괴였고 이 금괴는과거 가네마루가 북한에 방북했을 때- 일본 대표단 방북 연합뉴스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라는설이 일본에선 유명합니다친분이 있던 의원도 북한에서 받았다고말한 걸 들었다고 증언가네마루 부총재 쪽에선 부인인 가네마루 에츠코 여사가재테크 용도로 구입한 것이다라고 반박
이후 가네마루는 자민당 부총재 직 사임
사실상 공직에서 은퇴하게 됩니다
그리고 탈세 혐의로 체포 후
가네마루는 본인 죄를 인정했으나
보석 석방 후 해당 자금은
정계 개편을 위한 자금이라며 변호하다
지병인 당뇨병과 뇌경색으로 사망 공소 기각으로 종결됩니다.
사가와 급편 사건과 가네마루 부총재의 탈세는
그 당시 국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피로감을 증가시켰고
개혁을 외치던 자민당 의원 중 일부가 탈당해 신당을 창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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