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낙랑군사] 위나라 동방을 짓밟다.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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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28회 작성일 24-06-04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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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제가 네이버 카페 '부흥'에 연재한 [낙랑군사]의 일부를 발췌 및 수정한 것입니다.

*이 글 하나만 봐도 무방하도록 서술하였습니다. 이전 글을 안보셔도 상관 없습니다.

*너무 길면 제일 아래 3줄 요약!




1. 들어가며..


공손씨의 지배하에 있던 낙랑군, 대방군은

서기 238년 공손씨가 멸망하면서 위나라의 영토가 됩니다.

위나라는 오나라, 촉나라와 경쟁을 해야했는데

그 와중에도 동방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오히려 핵폭탄급의 공격을 퍼붓는데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2. 위나라의 낙랑군(樂浪郡), 대방군(帶方郡)


낙랑군과 대방군을 접수한 위나라는 의외로 공손씨가 구축한 체계를 그대로 이용하였습니다.

대방군은 공손씨의 입김이 굉장히 강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체하지 않고

기존처럼 대방군을 주도적으로 활용하여 한(韓), 왜(倭)와 외교를 펼쳤습니다.

이때 위나라는 공손씨와는 달리 한(韓)에 대해서 강경한 정책을 쓰지 않고

유화책을 사용하였는데 그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삼국지> 한전


여러 한국(韓國)의 신지(臣智)에게는 읍군(邑君)의 인수(印綬)를 더해 주고,

그 다음 사람에게는 읍장(邑長)[의 벼슬]을 주었다.

(그곳의) 풍속은 의책(衣)을 입기를 좋아하여, 하호(下戶)들도 군(郡)에 가서

조알(朝謁)할 적에는 모두 의책(衣)을 빌려 입으며,

(대방군에서 준) 자신의 인수(印綬)를 차고 의책(衣)을 착용하는 사람이 천여명이나 된다.


이 기록은 꽤나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韓)은 대략 70여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위나라는 여러 소국에 읍군의 신수와 읍장의 벼슬을 주어 중화의 권위를 높이려고 하였고

실제로 한(韓) 사람들은 대방군에서 준 인수를 차고 의책을 착용하며 대방군에 조알하러 가는 등

중화 문물의 맛을 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재미있는건 경상도 상주 지역에서 魏率善韓佰長(위솔선한백장) 이라고 세겨진

동인(銅印)이 발견이 되어 이 기록의 진실성을 담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대방군으로부터 인수를 받은 사람이 천 여명이나 된다는 점을 보면

위나라가 굉장히 많은 노력을 들여 중화의 권위를 높이려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70여개의 소국간 세력의 강약이 있을텐데 이것을 중국이 공식화해주는 역할을 하여

한(韓)에서도 대방군의 인수를 자발적으로 받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보면서

위나라도 인수 수여를 역이용하여 한(韓)의 소국끼리 갈등을 유발하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위나라는 한(韓) 지역에 있어서는 중화의 권위를 높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래 기록은 당시 위나라 사람들이 한(韓)을 바라보는 시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삼국지> 한전


그 나라 북방(北方)의 군(郡)에 가까운 제국(諸國)은 그런대로 약간의 예속(禮俗)이 있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은 흡사 죄수와 노비(奴婢)가 모여 사는 곳과 같다.


한(韓)의 소국 중에서도 대방군과 가까운 소국들은 약간의 예속이 있지만

멀리 떨어진 지역은 죄수와 노비가 모여사는 곳으로 표현한 것은

위나라 사람들이 한을 바라보며 스스로 우월감을 느끼는 시각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한편, 위나라는 공손씨와 마찬가지로 왜(倭)에 대해서는 계속하여 유화책을 사용하는데

이는 <삼국지> 동이전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역시 왜의 관계는 대방군이 주도를 하게 되는데 이는 문헌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삼국지> 왜전


위나라 명제 경초 2년(238년) 6월 왜 여왕이 대부 난승미 등을

대방군(郡)으로 보내 천자에게로 와서 조공하기를 청하니

대방태수 유하가 사자를 보내 그들을 데리고 경도까지 호송하게 했다.


<삼국지> 왜전


위나라 제왕 조방 정시(正始) 원년(240년) 대방태수 궁준이 건중교위 제준 등을 보내

조서와 인수를 받들고 왜국으로 가게 하여 비미호를 왜왕으로 임명하고

아울러 조령으로 하사한 금, 비단, 금계(錦), 도(刀), 거울, 채색된 깃발, 의복 들을 지니고 갔다.

그러자 왜왕이 사자를 보내 표문을 올리며 은혜로운 조서에 보답하여 사례했다


<삼국지> 왜전


정시 6년(245년), 조령으로 왜의 난승미에게 노란색의 의장용 깃발을 하사하고

대방군(郡)에 맡겨 대신해서 수여하도록 했다.


<삼국지> 왜전


정시 8년(247년), 대방태수 왕기가 임지인 대방군의 관부에 도착했다.

왜 여왕 비미호가 구노국의 남왕 비미궁호와 평소 불화하였으니,

왜의 재사, 오월 등을 대방군으로 보내 서로 공격하는 상황에 관해 진술했다.

그리하여 대방군에서 새조연사 장정 등을 보내 조서와 황당(黃幢)을 받들고 가서

난승미에게 벼슬을 주고 격문을 반포해 그들을 타일렀다.


이렇듯 위나라는 한과 왜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유화책을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위나라는 일거에 동방을 짓밟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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