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24]

페이지 정보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4-06-10 20:06

본문

6세기에 들어가면서 가야는 신라와 백제의 확장으로 고통 받기에 한 가지 묘수를 꺼내게 된다.

그건 바로 일본을 부르는 것. 그래서 일본이 응해 파견 된 장군 이름은 오미노 게나노 오미다. 편의상 오미라고 칭하겠다.


정보 탐색으로 혹시 몰라 펨코에 이 인물을 검색해봤는데 아무런 게시물도 안떴음. 최초인듯


오미노 게나노 오미가 왜 왔는 지 학계에서 의견이 갈리지만 중요한 것은 트롤이었다는 거임.

그림과 글 형식의 글이라 어느 정도 각색 들어갔고 시간대 약간 애매할 수 있음.


신하.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오미(왜국 사진으로 대체) : 내가 신라한테 위협 받는 가야를 구원하고자 대군을 이끌고 왔으니 가야는 안심하거라

신하.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오미 : 아 근데 신라랑 작당모의한 사악한 이와이 세력들이 우리를 방해하네. 나중에 올게


신라와 이와이의 협조로 무산됐고 가야의 부탁으로 도해가 실현된 것은 529년이었다.

529년에 회의가 열리는데 여기서 참가하게 된다.


신하.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오미 : 흠흠.. 회의에 참가했으니 명한다. 남가라, 탁기탄 등의 부흥을 위해 신라 백제가 힘을 써라


오미는 대단히 무례했는데 안라고당회의에서도 뭐 좆도 한 거 없고 또 가야 내부에서도 민폐만 끼쳤다. 이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탁순 왕 아리사등이 나가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음.


오미의 실적이 회의에서 깝치기만 하고 아무런 성과 없음. 불러줄 이유가 하나도 없음. 신라한테 까불 때 신라가 바로 참교육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가야가 요청하자 바로 신라군 참교육 들어감.


그나마 군사 들고 와서 오미 본인 군재가 좋으면 뭔가 반전이 있을 거 같은데 당시 일본도 군대 쥐좆만하게 보내줌. 일본서기에서는 6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고 하나 3천명한테 겁 먹어버린 벌레 같은 군재. 오미 본인도 가야에서는 여포인데 신라 앞에서는 초선 되는 이중성을 보였다.


가야.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가야 : 우리가 큰 실수를 했다. 오미 너 가야에서 나가라

신하.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오미 : 싫다

가야.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가야 : ?????


가야의 요구에 오미가 거절하면서 결국 가야는 신라 백제한테 오미 쫓아내달라는 부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왕.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성왕 : ㅇㅋ 바로 들어와서 혼내준다

신하.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오미 : 아니 백제 대형 이러기 있습니까?


백제와 신라군은 오미를 쫓으려고 병사를 투입했으나 오미가 이리저리 잘 도망친다. 대신 들어온 백제 신라가 구례모라성을 쌓고 아부라 구지파다지 포나모라 등리지모라 모자지모라 5개 성을 격파함.


그 와중에 오미의 승전은 찾아볼 수가 없음.


백제 신라 역시도 가야 구해준다는 명분 가지고 거점 만들고 갔으니 가야 입장에서는 손해인 것이다.

법흥왕.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법흥왕(펨코에서 들고옴) : 이사부는 3000명을 이끌고 가서 적을 격퇴해라


자칭 6만 군대를 이끌었다는 오미 장군은 개털린다. 그런데 문제는 오미는 어그로는 다 끌면서 가야쪽으로 들어가 농성 벌이니 가야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


신하.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오미 : ㅎㅎ ㅈㅅ 지금까지 봐준 거고 회의도 끝났으니 이제 진짜 한다.


오미는 웅천으로 진격하였다

신하.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오미 : 신라군 참교육하려고 했는데 군세가 생각보다 강하네;;; 나중에 교육 시켜줄게


이렇게하여 오미는 기질기리성으로 이동했다. 웅천에서 기질기리성으로 간 거에 대해 다나카 도시아키 교수는 완전히 후퇴, 다시 말해 퇴각했다고 언급한다. 웅천은 최전선임

가야.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가야 : 아니 도와주기는 커녕 허구한 날 개쳐발리고 오면 어떡하냐?


오미의 개트롤 때문에 금관 배벌 안다 위타 4개 촌이 신라군의 노략질을 당했고 심지어 일본측에 유리하게 적어주는 일본서기조차도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이것은 오미의 탓이라면서 비판함.


신하.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오미 : 아 더 싸울 수 있었는데 천황이 돌아오라고 하네. 어쩔 수 없다,. 후퇴한다


이렇게 하여 오미의 기묘한 모험은 막을 내렸다.


※ 에필로그

'

오미의 의미는 한국사에서 의미가 있다. 가야 측은 이 난국을 타계하려고 일본의 힘을 빌었으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실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 측의 개입은 갈수록 약해진다. 백제 멸망 때 백강전투 3만 동원 제외하고는 말이다. 백강 전투도 파병 규모만 좀 크다 싶지 .사실 규모에 비해 전공이 좀...


또 릉비의 성격이나 순라군, 고고학 증거의 부재 등으로 광개토 시기 왜군의 침략을 소규모로 보는 견해가 제기되었으며 실제로 대방전투는 반드시 백제의 도움이 필요한 전투임에도 마치 일본 주도인 것처럼 적혀있음.


그리고 오미의 출병 역시도 왜국이 광개토 시기보다 발전한 사례였는데 3천 이사부한테 가볍게 막히는 것을 보아 아무리 많아도 5000은 안되지 않나 싶다. 또 관산성 전투 때도 제라동맹 망하고 성왕이 그렇게 똥꾜쇼했는데 일본이 지원해준 병력은 고작 1000명임. 다만 후대로 갈수록 왜국의 파병 규모가 소규모라는 견해에 대해 왜국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딱히 모험을 떠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기록을 토대로 발전이 덜 된 광개토 시기에 왜군의 병력이 많아봤자 몇 만 단위로 상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백제가 주도한 것인데 릉비의 성격 때문에 고구려 천하관에 속하지 않는 왜국이 지나치게 상향을 먹은 것.


6세기까지 갈 필요 없이 5세기 중반만 되어도 일본 측에서 중국한테 우리가 반도 먹었네하면서 뭐라하는 수준에 그쳤고 한반도에 대한 군사 투입은 사라진다. 또 백제 역시도 제라동맹 파탄 이전까지는 왜군보다는 신라군에 의지하며 제라동맹이 동성왕~무령 시기에 오락가락하긴 하는데 적어도 왜국의 도움을 크게 빌리려고 하지는 않음. 관산성 전투 때 똥꼬쇼 벌인 것도 제라동맹이 파탄나서 신라 치려고 접근한 것이다.


개로왕 대 대왜관계가 곤지의 파견으로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긴 하는데 한성함락 시절에 왜군은 출병 자체를 한 시늉조차도 없는 반면 신라는 적극적으로 구원해준다. 이렇기에 개로왕 책에서도 이를 한계라고 지적할 정도


결과적으로 오미 덕분에 4개의 촌이 신라의 공격을 받으면서 안그래도 뒤지고 있던 금관가야는 그냥 신라한테 순순히 먹혔고 회의도 파탄났고 오히려 백제 신라가 가야로 들어올 빌미만 마련하고 본인은 일본으로 도주했으니 그냥 민폐였음. 531년에 다시 주도되나 백제 입장에서 고구려 잡을 때 신라가 반드시 필요하였기에 눈치를 살피게 되면서 크게 진전된 건 없었다.


※ 학술자료

안라3.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이희진 가야왕조 실록임. 왕조실록은 한국 고대사 입문으로 내가 항상 추천하는 좋은 책임. 여기 보면 알겠지만 오미가 나올 때마다 백제 신라가 잡으려고 했음.


그런데 이 왕조실록 내용을 전문서적과 교차검증해보니 이 책은 사실을 말하고 있기는 한데 문제는 약간 섞어서. 그니깐 디테일이 좀 아쉬움.

안라2.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이건 안라고당회의 내용이며 위 표를 보면 한자로 풀어쓰면 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 소속국 왜(倭), 왜사신(倭使臣)임. 여기서 근강모야신이 오미임.


위 본문은 "가야사 연구의 흐름과 안라국사"의 내용인데 모야신에 대해 일본서기 편찬 시 필요에 의해 가상으로 설정된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가 제기되었으나 위 표를 보면 우선 안라 고당회의 참가자 목록에 근강모야신을 넣어주고 있다.

안라1.jpg 가야한테 폐만 존나게 끼친 일본의 무능한 장군

"일본서기를 통해 본 안라와 왜의 관계"를 살펴보면 오미가 도해한 이유나 행적을 설명하고 있다. 가야왕조실록과 유사하게 고당회의 후 오미는 웅천을 향했으나 신라의 군세를 보고 빤스런하고 4촌 뺏긴 건 오미의 잘못이라고 까는 내용이 적혀있음.


이상의 내용을 참고한 결과 오미에 대해 그나마 섬세하게 가장 잘 알려준 서적은 가야왕조실록인데 시간대가 애매하고 아무래도 대중서라 고당회의 내용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해서 쓰는 거 꽤 빡셌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695,758건 393 페이지
커뮤니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55754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16 08:41
55376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15 08:40
11130 연예인
쿠로
13 08:39
41592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14 08:39
98564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10 08:38
48973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16 08:21
88424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8 08:21
94451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12 08:20
33421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9 08:18
33259 연예인
쿠로
12 08:17
80771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12 08:16
13222 연예인
쿠로
9 07:59
55609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12 07:58
46582 연예인
쿠로
17 07:57
67895 연예인
쿠로
10 07:56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