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낙랑군사] 거의 다 무너진 낙랑군, 대방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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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2,762,389회 작성일 24-06-0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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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제가 네이버 카페 '부흥'에 연재한 [낙랑군사]의 일부를 발췌 및 수정한 것입니다.

*이 글 하나만 봐도 무방하도록 서술하였습니다. 이전 글을 안보셔도 상관 없습니다.

*너무 길면 제일 아래 3줄 요약!



1. 들어가며..

위나라는 군사력을 동방에 투입하였고,

고구려, 예(濊), 한(韓)은 그들의 말발굽에 짓밟혔습니다.

만일 위나라가 이 기세를 몰았다면

동방의 각 국은 성장세가 더 늦춰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조가 바뀌었습니다.

2. 진나라의 등장과 동이교위(東夷校尉)

서기 265년 사마염은 선양의 방식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진나라를 세웠습니다.

이로써 새로운 시대가 오게 되었고 위나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진나라는 오나라를 압박해가며 중원을 통일하려고 노력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동방에 대한 통제 방식에 변화를 가합니다.

동방은 위나라 시대에 이미 심하게 짓밟혔기 때문에 큰 걸림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을 하였던 것인지

적극적인 군사 개입보다는 현상 유지와 유화책에치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위나라 때부터 있던 동이교위(東夷校尉)를 본격적으로 활성화시켰는데

서기 274년엔 유주를 분할하여 평주를 설치하고 동이교위의 권환을 증대시켰는데

이로써 낙랑군, 대방군의 임무인한(韓), 예(濊)의 견제를 동이교위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즉, 과거의 '유주-낙랑,대방 체제'에서 동이교위가 직접 중앙정부를 대표하여

동방의 여러 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동이교위의 권한이 커지게 됨에 따라 낙랑군, 대방군의 권한이 작아지게 됨은 물론입니다.

낙랑군, 대방군은 과거처럼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동이교위의 충실한 손발로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3. 동이교위(東夷校尉)의 동방정책

이 시기의 진나라 동방 상황을 간략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먼저 고구려는 관구검에게 수도가 함락을 당하여 전쟁의 피해를 극복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부체제로 이루어진 정치체제를 보다

중앙집권화하여 나라의 단계를 진화시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한편 한(韓) 지역에서는 전통적인 강국 목지국의 쇠퇴와

신흥 강국 백제의 성장이 눈부십니다.

이때 동이교위는 고구려와 큰 접촉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진서> 동이전은 고구려조가 기재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여와 아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이는 훗날 [부여사]에서 연재하겠습니다.

그리고 동이교위는 한(韓)에 대해서 굉장한 유화책을 사용하였는데

위나라 때와 마찬가지로 한(韓)의 각 지역 소국의 유지들에게 인수를 나눠주었습니다.

이때 나눠준 인수 중에서 辰率善濊佰長 (진솔선예백장) 이라고 적힌 것이

경북 영일군 신광면에서 1936년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진나라는 동이교위를 통해 한에 대해서 유화책을 사용하였는데

한(韓)과의 교류에 대해서는 특이할만한 사항이 있으므로 이를 다음항에서 설명합니다.

4.동이교위(東夷校尉)와 한(韓) 교류

<진서> 동이전을 보면 마한 조와 진한 조로 나누어 기재가 되어있습니다.

이들 기록을 보면 마한과 진한은 진나라와 사신을 교환하며 교류한 흔적이 있는데

물론 이 역할은 동이교위(東夷校尉)가 담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진서> 동이전은 <삼국지> 동이전과는 달리

한(韓)을 하나로 묶어서 기재하지 않고 마한과 진한을 별도로 나누어서 서술하였습니다.

이는 목지국(目支國)의 몰락으로 진한 지역이 목지국의 통제를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특히 마한과 진한이 진나라에 사신을 보낸 시기가 차이남을 보면

각자 별도로 사신을 보낸 것을 알 수 있어 더욱 그러합니다(사견).

<진서> 마한전

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元年)(서기 280년)과 2년(서기281년)에

그들의 임금이 자주 사신을 파견하여 토산물을 조공하였고,

7년(서기286년8년(서기287년10년(서기289년)에도 자주 왔다.

태희(太熙) 원년(元年)(서기290년)에는 동이교위(東夷校尉) 하감(何龕)에게 와서 조공을 바쳤다.

함녕(咸寧) 3년(서기277년)에 다시왔으며, 이듬해에 또 내부(內附)하기를 청하였다.

<진서> 진한전

무제(武帝) 태강(太康) 원년(元年)(서기280년)에왕이 사신을보내어 방물(方物)을 바쳤다.

2년(서기281년)에 다시 와서 조공하였으며7년(A.D.286년)에도 또 왔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마한전을 주목해야 합니다.

<진서> 마한전에 의하면 마한의 임금이 자주 사신을 파견하여 토산물을 조공하였다고 하는데

이 '마한 임금'의 주체가 아주 기가 막힙니다.

왜냐하면 이 마한 임금은 목지국 임금이 아니라 백제 임금이기 때문입니다.

<진서> 마한전을 통해 진나라와 마한이 서로 교류한 것을 알 수가 있는데

그렇다면 마한이라고 지칭된 세력은 진나라로부터 문물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진나라 계통의 유물들이 모두 한강 유역에서만 발견이 됩니다.

서울 몽촌토성에서 전문도기, 시유도도기편이 출토가 되고

서울 풍납토성에서도 시유도기편이 출토되는 등

<진서>의 마한이 바로 '백제'임을 추론케 하는 유적들이 발견이 됩니다.

이것으로 당시 백제가 목지국을 대신하여 스스로 '마한'의 대표임을 칭하면서

마한의 각 소국들을 이끌어간 흔적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진한도 마찬가지인데 진한의 12개국 중 하나였던 사로국(신라)은

주변이 소국들을 병합해가며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동이교위를 통하여 진나라와 교류할 정도로 성장해가는 흔적이 보입니다

(다만, 이때 교류한 진한이 신라인지 여부는 학설 대립이 있기는 합니다).

이렇게 훗날 우리 역사의 '삼국시대'를 열어갈 주역들이점차 성장하고 있습니다.

5.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낙랑군과 대방군

진나라는 고구려에 대하여 무관심으로 일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나라를 공격하여 중원을 통일하는 것에 신경이 몰두되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고구려는 긴 시간동안 전쟁의 상흔을 회복할 수 있었고

오히려 정치체제를 보다 중앙집권화시켜 더욱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기 3세기 후반이 되면 고구려는 다시 조금씩 확장할 움직을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고구려가 당장 요동을 정벌하는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고

일단 남쪽의 낙랑군과 대방군을 공격하고

그리고 예전에 잃었던 예(濊) 지역을 되찾아오는 것에 주력을 하였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고구려의 작전에 대하여

구체적인 기록이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고구려의 군사 작전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있어 소개합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책계왕(責稽王)[혹은 청계(靑稽)라고도 한다.]은 고이왕(古王)의 아들이다.

키가 크고 뜻과 기개가 웅대했다. 고이왕이 돌아가시자 왕위에 올랐다.
임금이 장정을 징발하여 위례성을 수리하였다.

고구려가 대방(帶方)을 쳐서 대방이 우리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앞서 임금이 대방왕의 딸 보과(寶菓)를 부인으로 삼았기에,

임금이 이르기를 “대방은 장인의 나라이니 그 청에 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고

드디어 병사를 내어 구원하니 고구려가 원망하였다.

임금은 고구려의 침략을 두려워하여 아차성(阿旦城)과 사성(蛇城)을 수리하여 대비하였다.


이 기사는 책계왕의 즉위년조인 서기 286년의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우선 백제와 진나라가 우호적인 관계였다는 것을 한국측 기록인 <삼국사기>로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백제의 책계왕이 대방태수의 딸과 혼인을 할 정도로 우호를 맺었고

심지어 백제가 대방과 힘을 합쳐 고구려의 병사를 물리쳤다니

이는 동이교위의 한(韓)에 대한 유화책이 잘 작동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또한 이 기사는 백제의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하는데

과거 후한의 낙랑군 시절에는 백제는 중국의 공세에 못 이겨

수도를 남쪽으로 옮기기 까지 하였는데

이제는 대방군을 도와 고구려의 군사를 격퇴할 정도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사는 고구려의 부활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관구검에게 무너진지 40년만에 고구려는 대방군을 공격할 정도로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낙랑군사] 연재에서 수차례 말한 것이지만

중국은 고구려를 잡지 못하여 요동군, 현도군, 낙랑군, 대방군을 잃게 된 것입니다.

위나라가 고구려를 초토화시키긴 하였지만 '멸망'시키지 못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6. 낙랑군과 대방군의 쇠퇴..

위 <삼국사기> 기사는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한때 낙랑군, 대방군은 한(韓)보다 한참이나 우월한 세력이었는데

이제는 고구려의 공격을 백제의 도움을 받아야만 격퇴시킬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낙랑군, 대방군이 약해졌는지를 생각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낙랑군은 후한 정부 시절엔 독자적인 역량으로 한(韓)을 통제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한(韓)을 완벽히 억제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후한 중앙 조정의 혼란으로 낙랑군의 역량도 같이 약해졌습니다.

반면 한(韓)은 내재적으로 역량을 강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공손씨 정권이 낙랑군을 대방군과 분할하여

요동의 역량을 투입하여 한(韓)을 통제하기 시작하였고

위나라는 유주의 힘까지 투입하여 한(韓)을 짓밟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공손씨와 위나라의 행적을 가만히 보면

분명 이들이 한(韓)에 대해서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기는 하였지만

이는 낙랑군(樂浪郡), 대방군(帶方郡)의 자체적인 역량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낙랑군, 대방군은 이미 자체적인 역량으로 한(韓)을 통제할 힘을 잃어버린지 오래였고,

타 지역의 힘을 수혈받아야만 국경 너머의 적들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위나라가 멸망하고 진나라가 등장하면서 외부의 지원이 끊기니까

장막이 걷힌듯 자연스럽게 낙랑군, 대방군의 부끄러운 역량이 공개가 된 것입니다.

반면 한(韓)은 공손씨, 위나라의 공격으로 신분고국이 몰락하였지만

같은 시간 힘을 기르던 백제가 부상하여 이젠 더 이상

낙랑군, 대방군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것입니다.

오히려 백제는 대방군을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위나라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부활하여

이제는 낙랑군, 대방군을 넘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낙랑군과 대방군의 쇠퇴는 <진서> 지리지에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진서> 지리지에 의하면 낙랑군은 3700여호에

6개현(조선현, 둔유현, 혼미현, 수성현, 누방현, 사망현)을 다스리고

대방군은 4900여호에 7개현(대방현,열구현,남신현,장잠현,제혜현,함자현,해명현)을 다스린다고 하는데

이는 후한 시대의 18개 현보다 5개현이 줄어든 숫자입니다.

<진서> 지리지는 서기 280년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서기 280년 낙랑군, 대방군은 <후한서>에 나온 서기 140년의 상황보다

인구와 영토가 상당히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이제는 통제가 불가능해진 고구려와 백제의 성장이라 보입니다.

7. 나오며..

한때 한반도에서 가장 큰 세력이었던 낙랑군은한(韓) 지역의 통제에 실패하였고

요동군, 현도군은 고구려의 통제에 실패하여결국 이들로부터 위협을 받게 됩니다.

다음화에서는 낙랑군, 대방군의 축출을 그리며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한울리카 올림.

[3줄 요약]

1. 위나라에서 진나라로 바뀌면서 중앙정부의 낙랑군, 대방군 지원이 약해졌다.

2. 그 틈을 타서 고구려와 백제가 성장했다.

3. 낙랑군, 대방군은 인구와 영토가 굉장히 줄어들었다.






[고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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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사]

1화한나라는 왜 고조선 땅에 낙랑군을 설치한 것일까?(https://www.fmkorea.com/6860051072)

2화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볼만한 근거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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