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역사속으로 사라진 90년대 아이콘 가이낙스에 대하여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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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8회 작성일 24-06-08 23:37본문
![[크기변환]gaina.jpg 역사속으로 사라진 90년대 아이콘 가이낙스에 대하여](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4/20240608/7117964476_486263_979c5c38ebbad1543a5bf1f8d08f4b42.jpg)
![[크기변환]gainax 3.jpg 역사속으로 사라진 90년대 아이콘 가이낙스에 대하여](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4/20240607/7117964476_486263_ea4c74c0a79dbd06004c595b9720ca4e.jpg)
![[크기변환]newtype.jpg.ren.png 역사속으로 사라진 90년대 아이콘 가이낙스에 대하여](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4/20240607/7117964476_486263_4aeacab344467fb67ae2d10133604bd2.png)
일본 SF대회는 미국의 SF행사를 모티브로 1962년부터 정기적으로 열리는 SF 덕후들의 행사입니다
'다이콘3' 는 오사카에 3번째로 열린 SF대회라는 뜻입니다, 다음 62회 대회는 올해 7월 예정
아카이 타카미를 중심으로 실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지금도 인기있는 작품입니다아카이는 창립 멤버이기도 하고 게임 쪽에서 더 큰 활약을 한 사람입니다프린세스 메이커 전에 전뇌학원이란 게임도 꽤 평이 좋았음현재 프린세스 메이커의 권리를 가지고 있고 프린세스 메이커 신작도 한국 업체와 개발 중입니다.
이렇게 애니메이션 제작/게임 개발 투 트랙으로 돌리며
종종 나디아 얘기를 하면 저작권이왜가이낙스나 안노에 없냐고 말씀하시는경우가 있습니다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는 가이낙스가 하청을 받아 제작한겁니다본래 NHK가 총괄 -> 종합비전이란 기업에 하청-> 토호에 하청->제작사 TAC에 하청->거기서 가이낙스로 하청이 내려간 케이스입니다.
1. 제작비 문제나디아를 제작할 때 제작비 쪽 문제가 생깁니다
제작 때 NHK는 편당 1200만엔 정도의 제작비를 지원한 걸로 나옵니다제대로 된 장편 작품을 처음 맡았던 지라 노하우도 부족했고 제작비 분배에서문제가 생깁니다거기다 원화 장당 단가/매수 문제에서 밸런스를 못잡아 문제가 생겼고(매수를 줄이면 퀄리티가 아쉽고, 단가를 올리자니 예산이 아쉬운 상황)거기에 담당이었던 안노 히데아키가 NHK 각본을 무시하고 본인 의사대로 제작을 진행각본 문제로 NHK와 마찰이 생기고 제작비는 그거대로 구멍이 납니다.(영화 잡지와의 대담에서 본인 의도대로 수정한 것을 인정,하지만 작품 진행 중이라NHK도 마지못해 인정하는 걸로 진행)이 후 히구치 신지 감독의 지원, NHK에 추가 지원 등으로 어찌어찌 해결되서 방송을 잘 끝냈지만수준 이하의 재무 관리와 제작비 이슈는 가이낙스의 문제점으로 팬들에게 회자됩니다.
2. 한국 업체 쪽 작화 외주 이슈이 부분은 거의 90년대부터 팬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온 이슈입니다당시 한국에 외주를 준 작화의 퀄리티에 대한 이야기인데이 문제가 커져서 일부 제작자의 혐한 감정으로 발전했다라는 설입니다.지금도 일본에선 당시 작화 문제를 한국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이 부분은 내용이 너무 길어지므로 링크로 대신 올리겠습니다.
본론으로 돌아와 가이낙스는 어찌어찌 하여 나디아의 하청을 완료합니다.
나디아의 하청이 끝난 후 '오타쿠의 비디오' 같은 자신들의
자전적 묘사를 담은 작품을 만드는 등 소소하게 시간을 보냅니다.
이후 가이낙스는 차기작으로 과거에 실패했던 왕립우주군의
후속작을 만들려고 했으나 제작비와 여건 문제로 보류합니다.
이 때 그 대체제로 나온 아이디어가 가이낙스 주도의 오리지널 로봇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자였고 그것이 바로 프로젝트 에바 입니다
.
이후 프로젝트 에바라는 명칭으로 기획이 진행되고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도입 된 '제작위원회' 시스템으로 제작이 확정됩니다.
(당시 참가했던 메인 스폰서는킹 레코드, 세가, 카도카와 쇼텐, TV 도쿄)
이후 이타코 시에 있는이타코 호텔에서 개최된 '가이나 마츠리 95' 에서
작품의 1,2편이 선행 공개되었고기립 박수가 나올 정도로 반응은 열광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95년 10월 4일 TV도쿄를 통해 첫 방영되고 작품은 히트를 칩니다
방송 당시 평균 시청률 7.1% 최고 시청률 최고 시청률 10.3%로 성공합니다.
이후 전개 된 각종 미디어믹스와 상품들, 연계된 만화책도 성공적인 판매량을 보여주며
3차 애니메이션 붐의 중심으로 자리잡습니다.
가이낙스는 에반게리온 성공으로 가지고 있던 채무를 모두 해결했다고 합니다
제작위원회 시스템으로 가이낙스가 받은 액수는 전체의 5% 정도였다고 합니다.
에반게리온은 당시 가이낙스와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역사에서 최고 성공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등장 이후 많은 작품과 캐릭터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문화 개방 전, 후 가장 인기있던
일본 애니메이션 중 하나였습니다, 과거 인터넷 초창기 시절 관련 홈페이지 숫자가 상위권에 들던 작품입니다.
에반게리온 성공 이후 가이낙스는 츠다 마사미원작의 '그 남자 그 여자' 를 애니메이션 화 합니다.
이 작품은 KBS와 투니버스에서도 방영해 국내에도 팬이 많은 작품입니다
당시 신선한 연출과 실험적인 기법들 깔끔한 작화로 많은 인기를 얻었으나
당시 안노 히데아키의 감독과 방송국의 마찰과 하차설로 잡음이 있었고
애니메이션 판의 엔딩은 엄청나게 욕을 먹었습니다
초~중반의 이미지가 엔딩 때문에 많이 아쉬워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그 남자 그 여자 이후 가이낙스는 2000년 FLCL란 작품을 발표합니다
(6부작 OVA로 발매)
당시 부감독으로 활약했고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애니메이터츠루마키 카즈야의 데뷔작입니다
뛰어난 영상미와 OST로 유명하며 일본 이상으로 서양권에서 인기가 더 많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판권은 당시 공동 제작했던 프로덕션 IG가 갖고 있는 데 당시 가이낙스의 사장
이었던 야마가 히로유키가 제작작인 츠루마키와 안노를 무시하고 팔아먹은 경우입니다
현재도 프로덕션 IG 명의로 후속작이 나오고 있음
FLCL 이후 가이낙스는 과거 성공했던 '톱을 노려라'의 후속작인 톱을 노려라 2 다이버스터를 발표합니다.
후속작 다이버스터는 츠루마키 카즈야가 감독을 맡고
당시 가이낙스의 주요 멤버들이 거의 다 참가한 작품입니다.
전작의 후속작이다 보니 전작과 비교되며 당시 호불호가 많이 갈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1편의 후속작으로 손색없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건버스터2 이후 2007년 가이낙스의 타이틀을 달고 나온 마지막 명작이라 할만한
천원돌파 그렌라간이 나옵니다.
2006년 쯤 가이낙스의 원년 멤버인 안노 히데아키 등이 빠져나가고
후배인 이마이시 히로유키가 감독을 맡은 작품입니다.
당시 이마이시 감독이 인맥으로 다양한 인물들을 불러 만든 작품으로
열혈물에 가까우면서도 현실적인 연출과 스케일 빠른 전개로 명작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그렌라간을 만든 제작진이 가이낙스를 퇴사해 만든 제작사가 트리거 입니다
현재 그렌라간의 저작권은 트리거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 가이낙스의사건 사고들 -
위에 적은 내용들만 보면 애니메이션 제작에 능력 있는 오타쿠들이 모여
회사를 크게 성공시키며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은 제작사 같지만
가이낙스는 이런저런 잡음이 많은 회사입니다.
1. 가이낙스 내부의 분열사태
1992년 가이낙스 주요 멤버인 무라하마 쇼지와, 마에다 마사히로,
야마구치 히로시, 히구치 마사츠구가 퇴사합니다
(이 사태로 당시 경영을 담당하던 오카다 토시오가 가이낙스를 퇴사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퇴사해서 1992년 설립한 것이 제작사 곤조 입니다.
전성기 시절 청의 6호, 풀 메탈 패닉, 최종병기 그녀, 반드레드 등 유명 작품을 다수 제작했으며
현재는 곤조에서 쪼개져 설립된 것이 스튜디오 5조,데이비드 프로덕션, 산지겐, 훗즈 엔터테인먼트 임.
두 번째는 2006년 안노 히데아키, 히구치 신지 같은 원년 멤버가 나와
창립한 스튜디오 카라 입니다.
2006년 설립 후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과 여러 TV 작품들을 제작
신 울트라맨 같은 특촬물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기존 가이낙스를 거쳐간 멤버가 많음.
(현재 에반게리온의 판권은 스튜디오 카라가 소유하고 있음)
카라의 경우 직원들의 인센티브와 복지에 꽤 신경을 쓰는 스튜디오임.
스튜디오 카라를 설립한 안노 히데아키 등이 나간 후 그렌라간을 제작했던
이마이시 히로유키, 오오츠카 마사히코 등이 가이낙스를 퇴사해 2011년 설립한 스튜디오
킬라킬, 리틀 위치 아카데미아, 그리드맨 시리즈로 유명한 제작사.
가이낙스에 있던 원년 멤버부터 후기 멤버들이
나가서 만든 스튜디오만 3개 입니다.
(이외에도 프린세스 메이커 판권을 가진 아카이 타카미의 요나고 가이낙스도 있음)
사실상 가이낙스의 핵심 인력은 다 나가버렸고 제작능력을 상실.
2. 불투명한 회계와 방만 경영
1999년 가이낙스는 당시 대표였던 사와무라 다케시가 대규모 탈세 사건을 벌입니다
5억 8천만엔을 탈세한 혐의로 수사 기관에 체포됐고 퇴사 후 수감됩니다
이 때 사건으로 가이낙스는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고 휘청하게 됩니다.
탈세 혐의로 퇴사한 사와무라의 후임으로 야마가 히로유키가 사장에 취임합니다.
야마가 히로유키는 가이낙스의 창립 멤버고 연출력이나 제작 능력도 업계에서
꽤 인정받던 애니메이터였으나 이 사람도 문제를 일으킵니다
2019년 안노 히데아키가 폭로글을 하나 올립니다.
1. 야마가 히로유키가 사장 취임 후 에반게리온으로
번 회사 이익이제대로 분배 되지 않고 특정인들에게만 쏠림
(제작에 고생한 인력보다 큰 역할이 없던 이들에게 이익이 편중됨)
2. 2006년 본인은 퇴사해 카라를 설립했으나 에바의 저작권자임을 인정받는 대신
에반게리온 상품화화 저작권을 가이낙스, 관리 수익도 가이낙스 계좌로 들어감
(카라는 로열티 지급 개념으로 수익을 분배 받음)
그러다 2012년쯤부터 로열티 지급이 지연되고 급기야 할부 요청까지 받게됨.
3. 경영악화를 이유로 본인에게 1억엔을 빌려갔으나 제대로 갚지 않음
(에반게리온의 상품화 창구 및 로열티 분배 업무 이양을 1년 앞당기는 것을 조건으로)
4. 유명작품인 톱을 노려라, 프리크리 등의 저작권 판매 가격을 6배 이상 뻥튀기며 버티다
다른 회사에 팔아버림, 제작자인 안노와 츠루마키 카즈야가 특히 분노했던 사건
(현재 프리크리의 저작권은 프로덕션 IG가 소유하고 있고 톱을 노려라도 카라에 저작권이 없음)
5. 빌려간 돈을 제대로 상환하지 않고 이곳저곳에 가이낙스 이름을 딴 업체를 만들고
주요 자료를 후쿠시마 가이낙스로 당사자들 협의 없이 모두 이전.
(후쿠시마 가이낙스가 현재 '가이나 스튜디오'로 사실상 소송 채무 문제 및 자료 이전을 위해 설립한 창구로 여겨짐)
6. 이후 듣도 보도 못한 인물을 경영진에 취임시켰다 당사자는 성범죄로 체포됨.
이후 정황을 보면 안노 히데아키가 폭로했던 부분은 사실상 정설로 인정됩니다.
야마가 히로유키 뿐 아니라 가이낙스 초기 사장 역할을 했던
오카다 토시오 때도 방만한 경영을 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오카다의 경우 가이낙스 창립 멤버기도 하면서 다이콘 필름 때부터 쩐주 역할을 하던
사람입니다, 애니메이터라기 보단 영업 쪽에 더 능력이 좋았던 사람입니다.
(나디아 제작 때 반다이에 가서 설명하면서 투자유치에 공을 세운 사람)
다만 이 사람도 이런저런 구설수가 정말 많고 이미지가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가이낙스 전 부터 '제너럴 프로덕츠' 라는 일종의 굿즈샵을 운영하며 돈을 벌던 장사 수완이 있던 사람이고
다이어트 책을 50만부 이상 팔아본 경험도 있고, 욕은 많이 먹지만 평론과 유튜브로 제법 잘 나가는 양반입니다
하지만 특유의 궤변같은 화술과 비상식적 행동으로 욕을 참 많이 먹습니다
오히려 애니 업계보다 정치를 했으면 잘했을 거다라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오카다 토시오를 거쳐 가이낙스의 대표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대형 탈세, 채무 문제, 수익 배분, 사내 정치, 직원 관리, 저작권 관리 문제, 기업 신뢰성, 성범죄 등
총체적 난국에 가까운 수준이고 가이낙스가 이렇게 된 게 별로 놀랍지 않다는 반응입니다
결국 가이낙스는 1984년 창립 이후 40년만에 완전히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 요약 -
1. 1984년 동인 서클 '다이콘 필름' 멤버들이 도쿄로 와 가이낙스 창립 이후
왕립우주군 제작으로 첫 도전했으나 폭망.
2. 이후 건버스터, 나디아, 프린세스 메이커의 성공으로 숨을 돌림.
3. 1995년 에반게리온이 대성공 하면서 운영에 여유가 생김.
4. 에바 성공 이후 그 남자 그여자, 프리크리, 그렌라간 등의 다양한 작품을 내며 나름 건재.
5. 하지만 사내 문제로 92년 곤조 설립, 스튜디오 카라, 트리거가 설립되면 인력 유출.
6. 인력 유출, 자본 문제, 제작 능력 상실, 경영진의 방만 경영과 각종 문제로
사실상 스튜디오로서의 이미지와 기능이 망가짐.
7 이후 자회사 설립 후 자료 탈취, 저작권 장사, 채무 문제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다
2024년 5월 29일 최종적으로 파산 처리.
* 글을 작성할 때 길이가 너무 길어져 중간에 생략된 부분도 있고
가이낙스가 제작한 모든 작품을 소개하지 못했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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