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훌쩍훌쩍 사라진 시티팝의 기원을 찾아서... -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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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71회 작성일 24-04-14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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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없었던 시티팝의 근본


( ※ 뉴 뮤직/시티팝, 시부야 케이가 장르라고 부르기 애매하고 명쾌하게 말 못하는 것은 나도 알지만 설명을 위해 다소 축약 혹은 돌려말하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


사실 시티팝이라는 장르는 처음부터 근본이라는 것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생기기도 전에 망해버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시티팝의 근본이 되는 뉴 뮤직 자체도 사실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데 단순히 70년대부터 유행한 서구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대중음악이라는 참으로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설명밖에 할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에엥? 앞선 글에서는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았냐?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영미권의 영향을 받아 프로그레시브를 락을 하며 영어가사로 노래하던 밴드들이 졸작만을 내며 초라하게 퇴장했던게 아닌 것이 문제다.


플라워 트래블린 밸드, 사디스틱 미카밴드와 같은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들이 60년대후반부터 70년대까지 프로그레시브 록을 기반으로 해외에서도 협연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후대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기에 이들을 역사의 흐름에서 제외하는 것이 도리여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로 뉴 뮤직의 정체성은 음악적 특징보다는 엔카와같은 기성음악에 탈피하고자하는 시대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 일본 특유의 시대중심적인 장르구분으로 남게되었다.


이러한 뉴뮤직의 움직임 속에서 야마시타 타츠로, 오오타키 에이이치로 인해 AOR, Yacht Rock의 영향을 받아 뻣어져 나간 것이 현시대에 시티팝이라고 불리게 되는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원로, 오오누키 타에코도 1,2집의 연달은 실패 이후 자존심을 꺾고 프로듀서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3집조차 실패하자 큰 충격을 받고 3년간 음악계에서 떠났을 정도로 당시에는 AOR이 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시티팝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오오타키 에이이치의 나이아가라 레코드 조차 경영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1976년 컬럼비아 레코드에 레이블 전체가 이적. 1978년에는 아예 휴식에 들어갔을 정도로 장르적인 주목도 자체가 낮았기에 이에 대한 담론 자체도 없다시피했던 것이다.


image.png 훌쩍훌쩍 사라진 시티팝의 기원을 찾아서... - 2


물론 이렇게 실패만이 이어진 것은 아니다. 1980년 CM송 타이업 전략을 취한 야마시타 타츠로의 <RIDE ON TIME>의 성공 이후 동명의 드라마의 OST로 쓰인 오오타키 에이이치의 <A LONG VACATION>의 성공으로 이런 AOR 기반의 음악에도 약간이나마 활기가 돌기 시작하며 이에 대한 담론도 이뤄지기 시작한다.


특히 이 시기가 1980년대 초이기에 흔히 시티팝을 1980년대 흥행하여 버블시기와 겹쳐서 설명하려는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https://www.fmkorea.com/6158950237 버블경제랑 시티팝이 큰 관련이 없는 이유는 EAGLE을 참조하기 바란다. )


하지만 90년대 초부터 일렉트로니카 기반의 시부야케이가 득세하면서 오오누키 타에코같은 아티스트들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아티스트들이 많아지면서 시티팝은 한때의 작은 흐름정도로 치부되며 이러한 담론들도 끊어지게 된다.


토대가 되는 장르인 뉴 뮤직 역시도 음악적 특성보다는 시대적인 특성 분리되어있어 음악적인 특징에 대한 담론 자체가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시티팝이라는 장르를 규정하려는 시도 혹은 담론 자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이러한 모호함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채 방치된 것이다.



이러한 상태로 묻혀있던 이 장르가 2~30년만에 재조명을 받으니 경계선 자체가 서정적인 분위기로만 묶여있는 느슨한 연결고리만이 이어져있었는데


서구권에 시티팝을 알리는데 지대한 영향을 한 카나자와 토시카즈의 상표 라이트 멜로우가 서구권에서 시티팝을 포함한 이러한 분위기의 음악을 총칭하는 단어로 혼용되면서 이러한 연결고리가 더더욱 느슨해진다.


애초에 장르로써 제대로 형성되지도 틀이 잡히지도 않았기에 이를 규정하는 연결고리들도 작은 영향만으로 변하고 더더욱 모호해지는 것이다.


image.png 훌쩍훌쩍 사라진 시티팝의 기원을 찾아서... - 2

시티팝이라는 단어의 출처

또한 사실 시티팝에 대한 논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음악적 모호함 외에도 이 시티팝이라는 단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논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티팝이라는 단어는 그 당시에 널리 쓰이지는 않았지만 존재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다만 그 당시에는 시티팝이라는 단어가 아닌 뉴 뮤직이라는 단어로 이때의 흐름을 설명하였고 오히려 그 시대를 살아간 일본인들은 시티팝이라는 단어 자체를 생소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티팝이라는 단어가 대중화된건 2010년대 들어 레트로 제이팝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당시에 존재했던 그럴듯한 이름을 가져다 붙이면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고 보는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MBTI가 30년여전부터 존재했지만 학교에서 유형검사용으로나 쓰이다가 최근들어서 필요에 의해서 스몰토크용 유행으로 번진 것처럼 시티팝이라는 단어 자체도 존재했으나 잘 쓰이지 않다가 필요해 의해서 널리기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장르를 총칭하는 단어 조차도 언제 형성됐는지에 논쟁이 붙은 것은 시티팝이라는 장르가 굉장히 모호하고 태생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준다.



신스웨이브 대침공


시티팝이라는 단어 자체의 출처까지 파헤치는 이런 혼란속에서 시티팝의 경계선을 더더욱 혼란스럽게 맏드는 일이 일어나게된다.


다 죽어가던 신스팝을 위캔드가 차력쇼를 방불케 하는 행적으로 혼자 일으켜세우며 신스웨이브 열풍이 분 것이다.


더욱이 <Out of Time>의 원곡이라고도 할 수 있는 <Midnight Pretender>가 시티팝과 동시대에 발매됐던 곡으로 7~80년대 신스팝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이러한 곡들이 시티팝의 바운더리 안으로 슬금슬금 들어가기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신스팝은 동시대에 이미 포스트 디스코, 부기라는 이름의 별개의 장르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시티팝이라 불리는 음악의 대다수도 디스코에 적지않은 영향을 받았기에 점점 융화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특히 오오누키 타에코같은 시티팝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아티스트들이 90년대에 들어서 전자음악도 활용한 모습이 적지 않았기에 다른 장르임에도 신스팝은 거부감이 덜한 모습으로 슬며시 흘러들어와 어느순간 완전히 시티팝의 구성요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영향을 받은 장르가 역으로 그 장르를 흡수해버린 모양새가 되어버리면서 시티팝은 장르가 혼란스러운 수준이 아닌 아예 한 장르 내에서도 계열이 갈리는 투 트랙에 가까운 모양새가 되어버리는데 이것이 시티팝이 장르로써 음악적은 특징으로 명쾌하게 설명하기 힘들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아예 분리를 하는 것도 이미 시티팝이라는 라벨을 달고 대흥행해버린 트랙들로 인해 마니아들끼리만 통하는 무의미한 분류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에 AOR과 신스팝은 시티팝이라는 이름 아래에 기묘한 동거를 하게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형성된 현재의 시티팝이라는 장르는 시작부터 모호했는데 중간에 다른 장르가 편입되면서 마침내 완전히 개판이 되어버린것이다.


image.png 훌쩍훌쩍 사라진 시티팝의 기원을 찾아서... - 2


모호함이 오히려 매력


시티팝은 뒤늦게 재조명된 것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일본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친척이라 할 수 있는 뉴 뮤직, 시부야케이처럼 깊게 들어가면 갈 수록 제대로 특정할 수 없는 모호함을 가지고 있는게 매력적인 장르이기도 하다.


모호하기에 신스팝과 같은 다른 장르들도 포용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더 많은 명곡들이 시티팝의 이름을 달고 우리 앞에 나와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이어지기도 한다.


Westcoast AOR, Yacht Rock, Acid Jazz, Soft Jazz/Rock, Funk이거나 Synth Pop, Disco 전혀 연관성 없어보이는 이 장르들이 뒤섞이고 하나의 이름 아래 모여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한채로 수면 아래에 묻혀있던 나만의 명작을 찾아내는 쾌감


모호하기에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했기에 그러면서도 이대로 묻히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곡들이 뭉쳐서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닌 파고들어가고 싶게 만드는 이 매력이 이미 1990년도 초반에 끝나버린 이 장르를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붙잡고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당탕탕 뉴뮤직/시티팝의 기원을 찾아서... - 1



훌쩍훌쩍 사라진 시티팝의 기원을 찾아서... - 2


https://www.fmkorea.com/692012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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