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한나라 사신이 묘사한 로마 제국[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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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히헤헤햏ㅎ 댓글 0건 조회 107회 작성일 24-04-20 14:36본문
(명나라때 상상한 대진국인)
대진국(大秦國). 일명 이건()이라고도 한다. 바다 서쪽에 있기 때문에 해서국(海西國)이라고도 부른다. 그 땅의 둘레는 수천 리이며 400여 개의 성들이 있고 복속하고 있는 소국(小國)들도 수십이다.
돌로 성곽을 짓고 우정(郵亭)을 줄지어 설치했으며, 모두 석회[堊]로 그것을 칠한다. 소나무와 동백나무와 여러 나무들 및 갖가지 풀들이 있다. 사람들의 풍속은 힘써 농사를 짓는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뽕나무를 심는다.
모두 머리를 깎고[頭] 무늬가 수놓여진 의복을 입으며, 가벼운 수레[輜]나 흰 덮개가 달린 조그만 수레를 타고, 출입할 때에는 북을 치며 각종 깃발을 내건다.
거처하는 성읍은 둘레가 100여 리이고, 성 가운데에는 5개의 궁이 있는데, 서로 떨어진 거리가 각각 10리이다. 궁실에는 모두 수정으로 기둥을 세웠고 식기도 역시 그러하다. 그 왕은 하루에 하나의 궁에서 지내기 때문에, 사무를 보는 것이 닷새가 지나면 [다섯 궁 전체를] 돌아다니게 된다. 항상 사신 1명에게 주머니를 지참하고 왕의 수레를 따라다니게 하는데,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사항이 있으면 곧 글을 써서 그 주머니 안에 던져 넣고, 왕이 궁에 도착하게 되면 [주머니를] 열어서[發省] 그 옳고 그름을 심리한다.
각각의 문서를 관리하는 관아가 있다. 36장(將)을 설치하고 모두 모여서 국사를 논의한다. 그 왕은 고정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모여서] 현명한 사람을 뽑아서 세운다. 나라 안에 재난이나 풍우가 갑자기 생겨나면 그를 곧 폐위하고 [다른 사람을] 바꾸어 세우며, 축출되는 사람은 즐겨 물러나지 원망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人民]은 모두 [신체가] 장대하고 [마음은] 평정하여 중원의 나라와 닮은 바가 있으므로 그런 연유로 ‘대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땅에서는 금과 은과 진기한 보석들이 많이 산출되며, 야광벽(夜光璧)·명월주(明月珠)·해계서(駭鷄犀)·산호·호백·유리(琉璃)·낭간(琅)·주단(朱丹)·청벽(碧) 등이 있다. 금실로 수를 놓아 직조해서 금루계(金縷)·잡색릉(雜色綾)을 만든다. 황금도(黃金塗)와 화완포(火浣布)도 제작한다. 또한 세포(細布)가 있는데, 수양취(水羊)라고도 부르며 야생 누에고치(野蠶繭)로 자아낸 것이다. 여러 향료를 조합하여 그 즙을 끓여서 소합(蘇合)을 만든다. 대저, 바깥 나라의 여러 진기한 물품들이 모두 나온다. 금은으로 화폐를 만들고 은전 10닢이 금전 1닢에 해당된다.
안식·천축(天竺)과 바다 가운데에서 교역하며 이익은 10배가 남는다. 그 사람들은 소박하고 정직하며 시장에는 두 가지 가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곡식은 항상 값이 싸며 나라의 경비는 풍부하다. 이웃 나라가 사신을 보내 그 경계에 도착하여 신고하면 역마에 태워서 왕도(王都)로 보내며, 도착하면 즉시 금전을 지급한다. 그 왕은 항상 한나라와 사신으로 소통하기를 원하지만 안식이 한나라의 채색 비단(繒綵)을 그들에게 건네주며 장사를 하기 때문에, [중간에서] 차단하고 막아서 그들 스스로가 [한나라에] 도달하지 못한다.
(안식=페르시아, 천축=인도)
환제 연희 9년(166) 대진왕 안돈(安敦)이 일남(日南)의 변경 밖에서 사신을 보내 상아(象牙)·서각(犀角)·대모(瑁)를 헌상했는데, 이것이 처음으로 한 번 교통한 것이다. 그들이 상표를 올려 공물을 바친 것은 모두 진기한 것이 없었으니, [대진에 관한 내용을] 전하는 사람들이 과장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안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혹은 선대 안토니누스 피우스)
혹자는 이르기를, 그 나라의 서쪽에 약수(弱水)와 유사(流沙)가 있고, 서왕모(西王母)가 거주하는 곳이 가까우며, 태양이 들어가는 곳과 가깝다고 한다. 『한서(漢書)』에 기록된 바 “조지에서 서쪽으로 200여 일을 가면 태양이 들어가는 곳과 가깝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오늘날의 책[今書]주 022과는 다른 것이다. 과거에 한나라 사신들이 모두 오익산리까지 [갔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조지에 도달한 자가 없었다. 또한 이르기를, “안식에서 육로로 바다를 돌아서 북쪽으로 가면 바다의 서쪽으로 나와 대진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은 서로 연이어 [살고] 있고, 10리마다 1정(亭)이 있고 30리마다 1치(置)주 023가 있으며, 도적의 약탈을 알리는 경보는 [도로에] 시종일관 없다. 길에는 사나운 호랑이와 사자가 많아 여행자들을 막고 해를 끼치는데, 100여 명이 안 되면 무기를 갖고 가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잡아먹히는 바가 된다.”라고도 한다. 또한 이르기를, “비교(飛橋)가 수백 리나 뻗쳐 있어 가히 바다 북쪽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한다. 여러 나라에서 나오는 기이한 옥석과 여러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는 거짓과 괴이함으로 가득차 대부분 황당한 내용이므로 [여기에] 기록하지 않겠다.
(본인도 로마 본토까지 가본건 아니고, 본인도 신빙성은 보장 못한다고 서술하긴 했지만 당시 로마인들의 중국에 대한 기록보다 정확함)
출처: 동북아역사넷
http://contents.nahf.or.kr/item/level.do?levelId=jo.k_0003_0118_0110_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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