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주인의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여종[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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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121회 작성일 24-05-08 22:32본문
그러나 생모의 건강상태, 출산 중 사망 등으로 인해
아기가 생모의 젖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존재하는데,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종종 유모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고,
생모가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더라도
하나의 문화로서 유모를 구해 육아를 위임하곤 했다.
조선에도 생모 대신 유모를 구해 젖을 먹이고
대신 육아하도록 하는 문화가 존재했는데,
보통은 양반가의 사노비 중 젖이 나오고
신체가 튼튼한 사람을 유모로 택한 것 같다,
노비라고 하니 뭔가 저렇게 개무시했을 것 같지만,
유교맨들은 젖을 주는 여성의 성품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여겼기에
나름(?) 노비치고는 잘 대해주려 노력했다.
시호이출탕이라는 약을 아기를 넣은 며느리와
젖을 먹이는 유모에게 동시에 먹였는데,
젖을 통해 약의 효능이 손자에게 들어가리라 여겨서였다.
약을 갓 태어난 아이에게 먹이기엔 부작용이 우려되니,
양반들은 아기가 아프면 유모에게 대신 약을 먹였다.
그리고 현실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유모를 애써 안 좋게 대해봤자
건강이 약화되면 아기를 먹일 젖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보통은 노비치고 굉장히 대우를 받았을 것이다.
물론 성품이 올바르지 못하면 유모가 될 수 없으므로
유모는 개인적인 성생활도 통제한다
이런 썅
물론 그렇다고 한들 이들은 어디까지나 노비였기에,
상전 가문의 아이가 잘 자라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겨야만 했다.
정작 자신의 아이에게 먹일 젖이 없어
유모의 친자식이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것도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있는 일이었다.
양반가의 자녀를 적절히 훈육하는 것 역시
유모의 역할 중 하나였다.
아기가 다 자라면 유모를 어떻게 여겼을까?
정을 느꼈을까, 천한 것이라고 무시했을까?
역시 그것은 진리의 사바사였던 것 같다.
이익은 자신의 유모가 사망한지 40년이 지나서도
'내가 살아가는 데 공과 정은 유모가 가장 크다'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유모에 대한 싸가지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유모에 대한 예를 지키는 의복이 규정되어 있고
실제로도 종종 예에 따라 장례를 치뤄주기도 했으니,
성리학의 나라였던 조선에서는
인격적인 대우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노비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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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유모 문화는 근대까지 유지되었지만,
성품보다는 젖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우선시하여
유모를 '광고'로 찾았을 뿐 아니라
유모가 친자식에게 젖을 주면 '계약 위반'이라며 따졌다니,
자본주의적인 계약관계로 그 정이 사라진 것이 아쉽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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