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코믹스

조선 7대 임금 이유가 사망했다. 신하들은 선대왕인 그에게 묘호를 올려야 했고 엄선 끝에 여러 개의 묘호들을 제시했다.

신하들: 묘호 후보를 여러개 뽑아 봤는데 신종, 예종, 성종 중에 한 개를 고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종: 잠깐 스톱! 신종이라고? 그건 너무 없어 보이잖아요..

대행대왕의 공로는 마치 이 조선을 다시 건국한 것과 같습니다. 그 분의 위대하신 업적을 표현하기 위해선 "세조" 묘호가 적합합니다! 세조로 하죠.

신하들: 세.. 세조요??

-세조는 수많은 묘호들 중에서도 특히나 격이 높은 묘호다. 보통 조, 종 중에서 조를 더 높게 쳐주는데 세종이라는 묘호도 위대한 군주들에게 올리는 묘호임을 감안하면 세조는 세종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최고의 레어닉임.

신하들: 세조는 세종께서 계시기에 겹쳐서 감히 논하지 못했습니다.

해석: 겹친다는 건 핑계고 니 애비가 세종대왕보다 더 좋은 묘호를 받는 건 말이 안된다고. 설마 세종이 엄연히 계신데 세조 묘호 바칠 생각임? 양심 있냐?

예종(=양심 없음): 뭐 어때? 한나라에도 세조도 있고 세종도 있는데 안될거 없잔씀 ㅋㅋㅋㅋ 몰라 무조건 세조로 간다!!

신하들: 하.. 이건 진짜 아닌거 같은데;;

그렇게 수양대군의 묘호는 세조로 확정됐다. 예종은 왜 이런 선택을 한 걸까? 여기엔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

사실 세조 치세 때는 마치 왕권이 강했던 것 같지만, 오히려 계유정난 때 반란을 도운 공신들이 성장하면서 왕권이 약화되는 계기가 마련됐다. 세조는 부족한 정통성을 지녔기 때문에 측근들의 지지가 절실했고 공신이 사람을 폭행하고, 군량미를 횡령하거나 연쇄살인을 저질러도 눈감아줬다.

이제 막 왕위에 오른 젊은 예종에겐 이런 공신들의 비대화는 좋지 못한 현상이었다. 따라서 예종은 세조라는 엄청난 위상을 지닌 묘호를 올림으로써 그의 후계자인 자신의 정통성을 강화하려 한 것이었다.

신하들: 아무리 그래도 세종이 계신데 세조는 아니잖아 ㅅㅂ

이렇게 조선왕조의 묘호 인플레이션이 스타트를 찍어버리고 말았다.

예종: 그래도 내 권력을 강화할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어쨌든 신하들과의 기싸움에서 승리했잖아? 자, 이제 시작이다! 나도 아버지처럼 강력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겠지?

는 1년 뒤에 죽음.

예종은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다. 때문에 19세의 젊은 나이로 단명하고 말았다. 이 때 예종은 사람들에게 자기 묘호에 대해 당부의 말을 남기는데..

예종: 야 내가 가만히 보니까... "예(睿)"라는 단어가.. 뜻이 무척 좋은거 같더라고.. 나 죽거든 묘호에 예를 붙여서 올려줘라.. (꼴깍)

보통 묘호는 신하들이 그 왕의 생전의 업적을 평가하고 칭송하며 올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예종은 자기가 예 자가 좋다는 이유로 예종이 됨;;

신하들: 그래.. 마지막 바람이시잖아. 예 자 붙여서 예종으로 묘호 올려 드리자 ㅠㅠ

아무튼 신하들 입장에선 선왕의 마지막 부탁을 무시할 수 없었고 예종의 셀프묘호 시도는 성공으로 끝났다. 그는 신하들로부터 "예종"이라는 묘호와 "흠문성무의인소효대왕" 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결국 예종은 묘호를 올릴 때도, 묘호를 받을 때도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 어째 1년만 있다간 왕 치곤 나쁜 선례를 참 많이 남기고 간듯

그래도 예종은 왕의 자질이 있었기 때문에 오래 살면 제법 치적을 남겼을 것 같지만 즉위 1년 만에 사망했기 때문에 묘호에 집착한 왕 정도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