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칼럼/장문) 디자이너의 눈으로 보는 클리퍼스의 새 브랜딩 리뷰[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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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9,721,824회 작성일 24-02-29 23:44본문
0. 서론
LA 클리퍼스는 얼마 전 새로운 브랜딩을 발표했다. 네이비와 코랄빛의 레드, 화이트가 합쳐진 트렌디한 컬러 스킴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해 사람들은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다. 왜 클리퍼스의 새로운 브랜딩은 대중들의 긍정적인 만장일치를 얻어내지 못하는 걸까? 이번 글에서는 클리퍼스가 왜 이런 브랜딩을 택했는지, 또 왜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는지에 대해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분석해보자.
* 아래에 이어질 글의 내용은 농알못이자 디자이너인 필자가 본 관점일 뿐이며 단순히 클리퍼스라는 팀을 비하하려는 목적이 아닌 왜 사람들이 클리퍼스의 새 로고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지에 대한 디자인적 근거를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만약 글을 읽으신 후 언짢은 클리퍼스 팬이 있다면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1. 클리퍼스의 뜻과 역사
우선 클리퍼스라는 팀의 이름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단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는 로스 엔젤레스를 연고지로 하는 클리퍼스는 1970년 버팔로 브레이브스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 이후 1978년 버팔로에서 샌디에이고로, 샌디에이고에서 1984년 로스 엔젤레스로 이사해 현재의 LA 클리퍼스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클리퍼스가 버팔로에서 샌디에이고로 연고를 옮길 당시 샌디에이고는 7년 전 로켓츠를 휴스턴에 뺏긴 것 때문에 버팔로 브레이브스의 입성을 환영하는 입장이었지만, 브레이브스라는 이름은 샌디에이고랑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공모전을 통해 클리퍼스(Clippers)라는 이름을 제안하였다.
그럼 샌디에이고는 왜 클리퍼스라는 이름을 제안했을까? (영어권 문화에 익숙한 독자라면 손톱깎이 등의 무언가를 깎거나 잘라내는 물건을 먼저 떠올렸을 수도 있다.) 우리는 클리퍼스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샌디에이고가 어떤 도시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샌디에이고에는 천연 항구인 샌디에이고 만(San Diego Bay)이 있는데, 덕분에 샌디에이고는 항만 및 어업 사업을 통해 번성을 누렸다. 현재에도 어업, 항만 사업과 더불어 태평양함대 최대 규모의 후방지원기지와 제3함대 사령부가 있는 군항으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다.
클리퍼(Clipper)는 19세기 중반 태평양을 가로질러 샌디에이고 만을 자주 오가던 상업용 쾌속정이다. 미국의 백과사전 미리엄 웹스터에는 "길고 늘씬한 옆면과 돌출된 선두, 길쭉한 돛대, 넓은 갑판을 가진 배"로 정의되어있다. 우리 시대의 자동차에 빗대어보면 쿠페의 느낌일 것이다.
이제 클리퍼스가 공개한 새 브랜딩을 분석할 시간이다. 아래의 이미지는 LA 클리퍼스가 발표한 새로운 브랜딩의 에셋들이다.
우선 기본적인 로고의 형식은 원형 뱃지 형태이며, 글로벌, 프라이머리, 파셜, 세컨더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적으로는 글로벌 로고를 이용하되 미디어, 디지털 환경, 머천다이즈 등의 다양한 환경 속에서 배경 색상이나 가시성, 시인성같은 여러 요인들로 인해 글로벌 로고의 훼손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프라이머리, 파셜, 세컨더리 등의 로고를 사용할 수 있다.
아래 이미지를 보면 글로벌 심볼의 구성 요소에 대한 디자인 구현 의도가 설명되어 있다.
발표된 로고를 처음 본 순간, 왜 사람들이 새 로고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이유는 아래의 세가지다.
나쁜 첫인상
이유 없는 등장
모집단의 분위기와 미스매치
이제부터는 다른 구단의 로고와 클리퍼스의 새 로고를 비교해보며 왜 위와 같이 생각했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2-1. 너무 많은 시각적 요소로 인해 나빠진 첫인상
첫 번째 이유는 시각적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시각적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첫 인상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왜 디자인에서 첫인상이 중요한걸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인간에게는 어떤 사물을 본 순간 사물의 정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자동적인 인지 과정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능력을 갖고 있는 이유는 생존과 직결된 위험을 미리 알아채기 위함이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생존 그 자체보다는 심미적인 판별을 위해 많이 사용된다.
위에 얘기한 내용의 예시로, 아래의 토론토 랩터스의 로고를 보자. 무엇을 얘기하는지 정말 간단명료하다. 농구라는 기본 키워드에 랩터스라는 팀의 아이덴티티를 농구공의 접합면을 랩터의 발톱자국으로 치환함으로써 가장 단순화된 형태로 녹여냈다. 농구를 모르는 사람도 이 로고를 보면 농구 구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마이애미 히트의 로고를 보자. 위에 얘기한 것처럼, 농구라는 기본 키워드와 히트라는 팀의 아이덴티티를 조합해 불타는 농구공이 림을 지나 떨어지는 모습을 통해 정체성과 로고의 속도감까지 함께 잡아낸 똑똑한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두 팀 모두 시각적으로 불필요한 요소는 전부 배제하고 최대한 간단한 형태와 레이어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프라인 환경뿐만 아니라 온라인 환경에서도 강력한 이점을 갖는다.
다른 프로 스포츠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위의 로고는 내셔널 하키 리그(NHL)의 미네소타 와일드의 로고인데, 와일드라는 키워드에서 가져올 수 있는 우거진 숲과 별, 태양, 오솔길 등의 자연적인 요소를 맹수의 외형안에 표현하였는데 별은 맹수의 눈을, 오솔길은 맹수의 입을, 태양의 아웃라인은 맹수의 귀를 상징하고 있다는 점에서 디자인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브랜딩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미네소타 와일드의 로고에선 하키라는 스포츠에 대한 직관적인 힌트는 찾아볼 수 없는데, 내 생각에 그 이유는 하키 스틱과 퍽이 갖는 형태상의 특징이 단순하게 표현하기에는 너무 어렵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농구는 다르다. 농구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가 되는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3개로 이루어진 안쪽의 선 역시 디자인적으로 활용하기 좋다.
자, 위의 사례를 봤으니 다시 클리퍼스의 새 로고로 돌아가보자. 기존의 로고와 비교했을 때 농구 구단이라는 첫인상을 받을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 공개된 클리퍼스의 로고를 보고 시애틀 마리너스를 떠올렸을 것이다. 필자 역시 시애틀 마리너스의 느낌을 받아 야구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처음 했다. 시애틀에 위치한 두 프로스포츠 구단인 시애틀 마리너스(MLB)와 시애틀 크라켄(NHL)의 로고를 보면 항구 도시로써의 헤리티지는 오히려 시애틀이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클리퍼스의 새 로고가 주는 첫 인상이 불친절한 이유는 너무 많은 시각적 요소가 한 점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로고의 중앙 지점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시각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
Clippers의 C와 나침반의 4방위를 합한 C 형상
범선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범선의 하부 선체에 새겨진 농구공의 심(Seam) 모양
이 세가지가 모두 같은 색상으로 뭉쳐져 있어 구별도 잘 되지 않을 뿐더러, 최우선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마저 희석되 버린 것 같다.
필자의 생각에 클리퍼스가 오히려 클리퍼라는 범선의 형상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그것은 차라리 옆모습이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클리퍼라는 쾌속선 자체가 옆선이 날카로운 형태로 외형에서 배의 속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샌 디에고 클리퍼스 시절의 로고는 범선의 옆모습과 태양의 형상을 최소 단위로 단순화한 모습이다. 어떤 모습인지 지금 우리의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놀랍게도 이 로고는 당시 시대상을 생각했을 때 꽤 괜찮은 로고였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거대하고 느린 화물선의 느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또한 나침반의 방위를 디자인으로 표현한 것 역시 대중적인 스테레오타입을 전혀 이용하지 못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나침반을 생각했을 때 시애틀 마리너스의 로고처럼 가운데서 8방위로 뻗는 모양을 기대하지, 반대의 형태는 기대하지 않는다.
2-2. 역사에 없었던, 이해하기 힘든 등장
클리퍼스가 샌디에이고에서 로스 엔젤레스로 넘어온 이후의 로고 변화를 보면 단 한번도 범선이나 해양과 관련된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국가별 스포츠 구단의 로고가 풍기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당신은 눈썰미가 좋은 편일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클리퍼스의 첫 인상이 농구팀과는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최대한 간결한 아웃라인 (최대한 원형 심볼을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
최대한 복잡하지 않은 컬러 시스템 (1개의 메인 컬러와 2-3개의 서브 컬러)
온라인/오프라인/머천다이즈 등 다양한 환경에 모두 적용 가능한 단순한 레이어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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