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발해 멸망전 고찰 (4) 918~924년까지 발해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 -상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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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히헤헤햏ㅎ 댓글 0건 조회 53회 작성일 24-03-2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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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파트는, 저번 파트의 공백의 5년동안 발해가 무엇을 했는지를 추정하고, 그리고 그 공백의 5년 동안,

아이신기오로 울히춘 교수와 류병재 교수가 제시한 금석문으로 인해 거란이 913년경에 발해의 요동과 압록강

하구를 공격하여 발해로부터 그 지역을 빼앗아서 발해가 육로,해로가 모두 거란에게 막혀서 924년까지 중국에 사신을 보내지 못했던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의 파트는 그 이후의 일로서, 913~918년동안 아무 사서에도 보이지 않던 발해의 기록이 다시 사서에 등장하는 이후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우선 저번 파트에서 설명했듯이 918년까지 발해의 기록이 나오지 않지만, 918년에 드디어 발해의 기록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역시 발해사를 연구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우리의 거란 기록인 요사입니다.



『요사』 2권 태조본기 中


-태조 신책 3년(918) 2월에 발해가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사료에서 발해가 보이지 않던 중인 918년에 오랜만에 나온 발해 관련 기사는 이게 전부입니다.

혹자들은 이렇게 평합니다.


발해가 멸망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주적으로 떠오른 거란에 대해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거란과 외교를 해 볼 생각도 없었으며, 국제정세를 살피는 데에 무기력해서 당한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그 의견을연구서에 써 놓은 연구원 분도 계시고, 비슷한 의견을 검토하시는 교수님도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의견에 회의적입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잠시 역사의 앞부분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발해와 거란은 건국 이후로 『책부원구』와 『통전』에 나온 바로 살펴보면 문왕~강왕대에 요동 쟁탈전을 벌여 발해가 승리한 이후, 그리고 최소 선왕대와 대이진~대건황 대에 충돌이 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이 패배한 거란의 원망과원한이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와도 연관이 된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발해가 이 이후로 거란을 계속 괴롭히고 거란 내부에서 계속 혼란을 야기하고 부족간의 분쟁을 획책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습니다.



야율아보기가 어렸을 때 불우하게 살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숱한 죽을 위기를 넘긴 것 역시 발해와의 전쟁, 그리고 발해가

거란을 이간시켰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는만큼 지금 살펴본 것들로만 발해와 거란이 서로 반목한 역사는 많습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요사』 태조본기와 『거란국지』에 나오는, 야율아보기가 직접 한 말로 알려진


'발해와는 대대로 원수를 졌다'


라는 말이 야율아보기 개인사와 거란사 통틀어서 가리키고 있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또한 918년에서 비교적 최근인 913년에 거란이 발해에게서 요동을 빼앗아간 사건도 발해와 거란의 충돌이라 할 수 있으며, 정황상 대위해 시기와 대인선 초기인 909년에도 거란과 발해의 대립과 전쟁이 추측되고 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내려오는 발해의 전설들을 보면, 발해 자국 내부에 관한 전설을 제외한 '외침'의 전설은 거의 100퍼센트가

거란과 관련된 전설입니다. 그리고 그 시점은 발해가 이미 전성기일 때, 동북아 최강국이었을때에도 야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란을 적대시하는 이 전설들 중 절대다수는 거란과 발해의 전쟁을 그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자라산전설처럼 900년이라고 대놓고 년도가 나온 전설도 존재하며, 용문전설처럼 920년대가 그 배경으로 추측되는 전설도 존재하는만큼, 현재 역사서가 없지만 발해와 거란의 대립은 우리의 생각보다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그리고 발해가 거란을 적대하는 전설 중 그 연대가 제일 오래된 것으로 확인되는 홍라녀-녹라녀 전설의 버전 중 하나는 최하 선왕 시기까지 연도가 내려갑니다. 그 이전연도로 내려가는 거란을 적대하는 전설이 존재하지 않으며,


강왕대인 802년에 발해가 강왕 당시에 요동을 차지했다고 되어 있는 통전의 기사를 보면,



『통전』 中


-발해 대숭린 정력 8년에 (요동이)다 동이의 땅으로 되었다.




문왕 사후 강왕대에 거란과 발해가 요동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였으며 발해가 최종승리를 거두어 거란을 몰아내고 802년에 요동을 차지했다고 나옵니다. 따라서 거란과 발해의 적대관계는 이 802년에 거란과 발해의 요동쟁탈전이 끝나기 이전에도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그 낌새가 보이지 않는 문왕 사후, 즉 강왕의 즉위시기 이후부터 생겨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강왕은 혼란스러운 와중에 폐왕을 제거하고 즉위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발해가 큰 혼란에 빠져 있었기 문에 자연스레 국력의 약화도 있었을테며, 강왕대 이후에도 말갈제부들이 일부 독립되어 날뛰고 있는 것을 보면, 강왕 즉위 당시의 발해는 중앙통제력이 약화되고 국력이 저하되어 있는 위급한 상황에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참고로 강왕은 즉위 직후에 할아버지인 문왕이 받았던 은청광록대부 검교사공 발해국왕을 당에게 제수받지 못하고,

은청광록대부 검교사공 '발해군왕' 을 받습니다. 저는, 왜 강왕이 발해군왕을 받았는지에 대한 의문에, 문왕 사후에 일어난

발해의 내분과 국력약화가 그 원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이 발해를 견제하고 얕보는 심정에서 다시 발해군왕으로 발해왕의 작위를 낮춘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하지만 798년, 갑자기 당은 강왕을 발해국왕으로 다시 올려줍니다.


이는 3년간 강왕이 무언가를 통해 발해의 국력을 다시 회복하고, 발해를 복구시킨 이후, 당에 항의를 하던지 선례를 들어 따졌기 때문이라 봅니다. 하지만 따져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려면 무언가 성과가 있어야 하는 법.



따라서 저는 795년에서 798년 사이에 강왕이 발해의 국력을 신장시킬 무언가의 행동을 했고, 성공을 거두었다 생각합니다.

이때 이미 발해는 문왕 사후 내전이 끝나고 다시 국력을 회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802년까지 국력을 회복한 발해가,마침 요동에 군침 흘리던 거란과 전쟁을 벌여 거란을 밀어내 버리고 요동을 확실하게 차지해 버렸다고 하면 개연성이 맞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당은 798년에는 강왕에게 검교사공 직을 제수하고, 805년에 강왕의 작위를 은청광록대부에서 금자광록대부로 업그레이드 시켜줍니다. 그뿐 아니라 806년에는 검교사공을 검교태위로 업그레이드 시켜줍니다.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대우로서, 발해왕들 중 이 금자광록대부를 받은 왕은 강왕과 선왕 뿐입니다.


그리고 검교사공에서 검교태위까지 올려받은 왕은 문왕, 강왕, 선왕 셋 뿐입니다.

문왕은 은청광록대부 검교태위, 선왕은 금자광록대부 검교사공인데, 강왕은 이 둘을 모두 합친,

금자광록대부 검교태위입니다.



이렇듯 당 정부에서 교류국의 국왕의 작위를 올려주는 일은, 그 국왕이 나라에 큰 공을

세웠던가, 당을 위해 큰 공을 세웠던가 하는 경우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언급한 세 왕 중 문왕과 선왕은 발해에 엄청난 공헌과 역할을 한 왕들입니다. 둘 다 영토를 넓히고 나라를 강국으로 만드는 데에 큰 역할을 한 왕이기에 당에서 치하하고 작위를 올린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세 왕 중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한지 전혀 알려져 있지가 않은 강왕 역시 이 두 왕과 거의 동일한, 혹은 이 두 왕을 넘어서는 업적을 남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업적으로는 발해의 안정화, 요동의 차지, 영토의 확장이라고 봅니다. 마지막 작위인 검교태위는 강왕이 사망하기 3년 전인 806년에 주어집니다. 따라서 강왕은 요동을 차지한 이후에도

외국들이 보고 인식할 수 있는 규모의 여러 치적을 남겼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발해가 강왕대에 요동을 차지했으며, 이 전후과정에서 거란에게 상당한 타격을 입혔고, 그것이 이후 거란의

일시적인 몰락과 쇠퇴로 이어져서 야율아보기의 어린 시절까지 거란의 혼란과 환란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보고 있습니다.


이게 아니면 발해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원수라고 지칭하는것이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야율아보기가 흥기하여 거란을 통일하기 이전에도 발해와 거란의 대립, 전투가 있던 것으로 추정되며,

야율아보기의 거란 통일 이후에는 909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상호 전쟁관계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한마디로, 발해는 거란과 그 이전에도 대립이 꽤 있었으며, 거란과 발해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생소한 사이가

절대 아니었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918년 당시, 발해는 이미 거란과 과거에 많이 투닥여 본 경험이 있었으며, 일부의 주장대로 이 때서야 거란에 처음 사신을 보낸 것이 아닐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리고 거란을 모르고 있다가 이제서야 시급하게 알아보러 사신을 파견한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요사의 엄청난 기록 누수현상과 태조 야율아보기의 1인칭 시점에서만 진행되는 요사 태조본기의 시선상 빠져있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요사의 태조본기는 상당한 기록이 누락되어 있으며,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태조 야율아보기가 직접 보거나 직접 관장한 기록 위주, 즉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저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918년에 거란으로 사신을 보낸 이후, 발해는 멸망할 때까지 거란과 교류를 일절 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발해가 이후 8년동안 거란에 사신을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거란과 굳이 외교를 시도할 필요가 없다. 라는 답이

나올수도 있지만, 거란이 명백하게 발해를 적국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되돌릴 수 없음을 알아서 이후에 굳이 거란에

사신을 파견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거란에 사신을 보내보고, 거란의 목적이 단순히 요동을 빼앗아서 경영하는 것인가, 혹은 발해를 아예 멸망시키고 복속시키는 것인가를 재러, 사신을 빙자하여 염탐하러 간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럼 이후 919년에서 발해의 역습이 화려하게 시작되는 924년까지 발해는 무엇을 하였는가? 이것이 본 주제입니다.






발해 멸망전 글 목록



발해멸망전 고찰 1편. 멸망의 전조

-https://www.fmkorea.com/6837781243


발해멸망전 고찰 2편. 925년 이전의 발해 정치상황

-https://www.fmkorea.com/6840383814


발해멸망전 고찰 3편. 공백의 5년(913~918)

-https://www.fmkorea.com/6841829328






발해멸망전을 제외한 다른 글들



5경 15부 62주에 대한 오류 가능성 검토

-https://www.fmkorea.com/6797762364


발해 국호는 발해가 맞습니다

-https://www.fmkorea.com/6801049872


무왕과 대문예의 형제싸움으로 인한 나비효과

-https://www.fmkorea.com/6804185836


발해사 최대의 미스터리, 882년 정변설

-https://www.fmkorea.com/6807940225


'886년 사건'의 진실에 대하여

-https://www.fmkorea.com/6809313438


'쟁장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https://www.fmkorea.com/6810052709


'등재서열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https://www.fmkorea.com/6812375697


전설과 설화로 살펴본, 발해 문왕 시기의 어두운 면

-https://www.fmkorea.com/6814511926


발해 멸망의 시발점, 폐왕 대원의의 정변 (1)

-https://www.fmkorea.com/index.php?mid=mystery&category=15037454&document_srl=6817289827


대원의 정변 2편

-https://www.fmkorea.com/index.php?document_srl=6817562512&s_comment_srl=6817568874#comment_6817568874


문왕과 강왕의 관계에 대한 미스터리

-https://www.fmkorea.com/6817851720


폐왕이 문왕의 가족을 몰살시켰을 가능성에 대해.

-https://www.fmkorea.com/6817911871


대원의 정변 3편

-https://www.fmkorea.com/6819337509


대원의 정변 4편

-https://www.fmkorea.com/6820973328


대원의 정변 5편

-https://www.fmkorea.com/6821034193


발해의 군제

-https://www.fmkorea.com/6822795205


발해 선왕(상편)

-https://www.fmkorea.com/6824049857


발해 선왕(하편)

-https://www.fmkorea.com/6824625532


대이진의 찬탈 가능성에 대한 글

-https://www.fmkorea.com/6826837680


선왕과 대건황의 공통점

-https://www.fmkorea.com/6832473378


경박호와 모란강 전설로 본 대건황-대현석 시기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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