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사극 속 전투와 실제 옛날 전투의 차이?[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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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61회 작성일 24-03-24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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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나라 사극에서는 칼 들고 서로 뒤섞여서 난전을 펼치는 그런 전투씬을 많이 내보내곤 하는데


이걸 소위 '주몽식 전투씬' 이라고 하면서 극혐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음.


당장 이번에 나왔던 고거전에서도 이런 전투씬 나오면 욕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고 ㅇㅇ


그러면서 항상 나오는 말이 '사극에서도 제대로 방진 짜고 싸우는 것 좀 보고싶다!' 임.










그러면서 예시로 드는 것들이 대체로 외국 사극의 이런 장면들인데


결국 큰 틀에서 보자면 사극 속 전투씬은 흔히 '칼 들고 개싸움' vs '빽빽하게 방진 짜고 체계적으로 전투' 라는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뉜다는 걸 알 수 있음.


나도 예전에는 아무래도 후자가 더 체계적으로 착착 뭐가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니까 더 고증에 맞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다시 생각해보니까 정작 내가 옛날 전쟁 관련해서 세세한 기록을 찾아본 것도 아닌데 막연히 이게 더 그럴듯해 보인다는 이유로 고증을 따지고 있었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음.


게다가 저 밀집방진 짜는 사극들은 서양 사극인데 동양은 다를 수도 있는거 아니냐? 그런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한번 옛날 전쟁 관련 내용들을 한번 찾아봤음.


읽기 귀찮으면 맨 밑으로 가셈 3줄요약 있음






20144854140405985210.jpg 사극 속 전투와 실제 옛날 전투의 차이?


일단 정도전의진법』 부터 찾아봤는데


정도전이 쓴 진법은 조선 초기 군사훈련의 기본 바탕이었음.


이 양반이 딱히 군사 쪽에서 두각을 드러낸 적은 없는 사람이다 보니 진법의 실전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꽤 있고


심하게는 책상물림이 쓴 책 가지고 훈련을 하니까 조선군이 못 싸우지~ 같은 이야기까지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작 전쟁터에서 날라다녔던 이성계도 진법을 고평가했으면 고평가했지 까지는 않았고, 정도전을 죽인 태종도 진법을 토대로 훈련을 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도전의 이력과 별개로 내용은 상당히 괜찮았던 것으로 보임.


그렇다면 진법에서는 군인과 군인 간의 간격이 어느 정도나 될까?



정도전은 진법에서 오(伍)와 십(什)을 통해 소패, 중패, 총패의 기본대형을 확립하였다. 이는 소규모 대형을 군사훈련의 기본으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병력구성을 위한 기초 단위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결진을 위한 최소 단위는 오(伍)이다. 오는 5인으로 구성된 대형으로 두 사람사이의 간격을 3보로 두어 오의 거리는 최소 12보가 된다. 두 사람 간의 간격을3보로 규정한 이유는 나타나고 있지 않으나 당시의 가장 긴 무기인 창을 고려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2오(伍)는 십(什)이 되고, 십의 명칭은 소패(小牌)이다.


정도전은 십의 대형에서 두 오 사이의 간격을 오의간격이라 하여 최소 12보가 되며, 이경우 십의 기하학적 구조는 12보×12보의사각형이 된다.중패(中牌)는 5십(什)에 대한 명칭으로50명으로 구성된 대형이다. 5개의 소패로이루어져 있고, 각 소패간의 간격 또한 소패의 거리라 규정하여 가로로 약 108보가되고, 세로로는 오의 길이인 12보가 된다. 총패(總牌)는 10십(什)에 대한 명칭으로 100명으로 구성된다. 총패는 2개의 중패로 이루어지고, 중패의 길이 108보와 중패 간의 간격 108보를 이루는 사각형 모양의 구조를 갖는다.


-김동경(2011),정도전의 『진법(陣法)』과 태조대 군사력 재건



조선시대에 1보 거리가 대충 1.2m쯤 되니까...


정도전의 진법에 따르면 병사와 병사 사이의 거리는 3.6m, 5명끼리 1개 오를 결성하고 오와 오 사이의 간격은 최소 14.4m라는 말임.



그리고 이어서 본 것은 국립진주박물관에서 만든 조선 후기 조선군 진법 영상이었는데


이거 보면... 마우리츠 선형진마냥 포수들끼리만 조를 나눠서 서로 위치 바꿔가며 싸우는 것도 아니고


아예 후방에 있던 화차까지 전투 도중에 앞으로 나아가서 사격하는 모습을 보여줌.




[화력조선Ⅱ 특별전] 조선 후기 조선군의 진법 1-13 screenshot.png 사극 속 전투와 실제 옛날 전투의 차이?

이 영상에서는 딱히 병사와 병사 사이의 간격 이야기는 없지만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사람만 교대하는게 아니라 아예 화차라는 꽤 부피가 큰 장비를,


그것도 1열과 2열이 교대하는 수준도 아니고 앞의 여러 열이 교대로 전투를 수행하고 나서 후방에 배치되어 있던 장비를 끌고 오는거 보면


이게 절대 서양 전열보병마냥 어깨와 어깨를 맞댄 빽빽한 밀집방진은 아니었다는 점 정도는 추측이 가능함.





image.png 사극 속 전투와 실제 옛날 전투의 차이?

즉 영화 남한산성에서 나온 이 방진도


실제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진법보다 훠어어얼씬 밀착시켜 놓은 형태라는 것 ㅇㅇ


역덕들 사이에서는 보병이 기병이랑 싸우는 법 = 장창 들고 밀집방진이라는 게 거의 상식처럼 박혀 있지만


최소한 조선시대에는 그런 개념이 전기에나 후기에나 없었다는 결론이 나옴.


뭔가 머릿속으로 뇌내망상 토탈워를 굴려보면아무리 생각해도 아예 방진을 짤 수가 없는 산악전이 아닌 이상 밀집방진이 훨씬 유리할 것 같은데 왜 조선시대에는 그게 없었을까?


이는 우리나라의 주적과 관련이 있음.



여진족이_세운_나라들02.jpg 사극 속 전투와 실제 옛날 전투의 차이?

우리나라의 주적은 거의 항상 북방의 유목민족이었음.


현대에는 유목민족 국가들이 사라지거나 중국에 흡수되거나, 혹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스탄 자 붙은 나라들이 대체로 유목민족 국가들임)


현대인인 우리로서는 아직까지도 나라가 멀쩡하게 남아 있는 중국이나 일본이 뭔가 '주적' 이라고 했을때 더 와닿는 건 맞지만


한반도 역사 전체를 따져보자면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유목민족이 주적이었던 기간이 훨씬 길었음.


근데 그 유목민족의 장기는 뭐다? 궁기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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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fmkorea.com/best/6844021074 )


이딴 식으로 말 위에서 활 쏘고 날라댕기는 놈들이랑 싸워야 하는데


얘네랑 보병 가지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일단 보병 가지고 추격은 안 된다. 애초에 속도부터가 기병이 보병보다 월등히 빠르기도 하고,


보병이 말 타고 추격한다쳐도 유목민족은 어릴 때부터 말 타고 사는 놈들이라 농경민족이 말 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마술이 뛰어났기 때문에 잡기도 힘듬.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추격 못하는 것보다는 나아서 조선 전기에는 싸울 때는 보병으로 싸우다가 추격할 때만 말을 타는 하마기병도 꽤 있었던 건 맞지만.


게다가 궁기병들은 충격력보다는 기동력에 몰빵하기 위해 갑옷도 가볍게 입거나 아예 안 입는 놈들이 많아서, 같은 기병끼리 비교해도 수종이햄이 그토록 찾던 '중갑기병' 같은 친구들보다 훠어어얼씬 빠름.


어쨌든 보병이 유목기병을 상대로 추격하는 건 힘들고, 그렇다면 얘네들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는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얘네는 보병의 창칼이 닿는 거리 밖에서 화살 짤짤이 하는 궁기병이 훨씬 더 많았음.


직접 돌격하는 애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서유럽마냥 그 비중이 높은 건 아니었고, 특히 조선 전기에 싸운 여진족들은 훗날의 후금, 청과는 달리 제대로 된 정규군 편제를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소수 기병이 약탈하러 오는 거라서 더더욱 돌격할 일이 없고, 화살 짤짤이 비중이 높았다는 것임.


이런 상황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다?




[#고려거란전쟁] 고려인 모여라 감동의 귀주대첩 다시보기  _ KBS 방송 13-18 screenshot.png 사극 속 전투와 실제 옛날 전투의 차이?

진짜 딱 이 꼴이다. 일방적으로 쳐맞는 거다.


이건 단순히 나의 뇌내망상 토탈워의 결과가 그런 게 아니라, 당대에도 그렇게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는데




세종실록 68권, 세종 17년 6월 16일 병진 5번째기사


함길도 도절제사가 접전할 때의 진법을 아뢰다


처음에 함길도 절제사에게 전지(傳旨)하기를,


"지금 아뢴 진도(陣圖)가 지세(地勢)와 저들 적(敵)의 장기(長技)를 생각하여 포치(布置)하고 제작한 것이나, 그러나 오오(五伍)의 법은 고금의 병법(兵法)에서 중하게 여기는 것이니, 싸울 때를 당하여 한 사람이 급하게 되면 네 사람이 구원하고, 두 사람이 급하게 되면 세 사람이 구원하는 것이다. 조운진(鳥雲陣)은 산천이 험하고 좁아서 열(列)을 이룰 수 없는 곳에서 쓰는 것이므로, 그 항오(行伍)를 성기게 하여 흩어져서 적을 막게 되어, 사람들이 각자가 싸움을 하되 거의 그 항오를 잃지 아니하고 각각 그 맡은 바 임무를 되풀이하여, 조금도 파진(破陣)되거나 군사를 잃을 근심이 없다. 지금 만일 세 사람으로 항오를 삼는다면 결진(結陣)하고 행진(行陳)할 때에도 세 사람으로 항오를 짓는가. 결진(結陣)과 행진(行陣) 때에는 다섯 사람으로 항오를 짓고, 접전할 때에는 세 사람으로 항오를 지으면, 항오를 잃고 제자리를 이탈하게 되어 통제(統制)가 없을 것 같다. 또 이것은 접전할 때의 진법이니 결진하는 법과 접전할 때의 진법(陣法)을 도순검사(都巡檢使)와 함께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아뢰기를,


"대개 전투하는 군사는 각각 장기(長技)가 있사오니, 저쪽이 장처(長處)로 하거든 우리는 마땅히 저쪽의 단처(短處)를 써서 공격하여야 제어해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궁시는 야인의 장기이온데 궁시(弓矢)만을 가지고 응전(應戰)하기 때문에, 야인과 싸우면 크게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야인이 진(陣)을 배치하는 것이 새가 흩어지고 구름이 가듯이 하여 항오를 이루지 않으므로, 저쪽이 많고 우리쪽이 적으면 에워싸기를 힘쓰고, 저쪽이 적고 우리쪽이 많으면 형상을 감추어 퇴각하여 나무에 의지하고 돌에 붙어서 강한 활을 다투어 쏘는데, 우리 군사는 벌처럼 뭉치고 개미처럼 모이어 적의 화살을 맞게 되어 사람과 말이 많이 상하니, 이것은 병법에서 꺼리는 바입니다. 결진과 행진을 모두 진설(陣說)에 의하고, 적을 만났을 때에는 중익(中翼)이 각(角)을 한 번 불고 청·백의 두 휘(麾)가 앞을 가리키고 북이 울리면 좌·우익이 옆에서 나와 그 대오를 성기게 하여 구름이 피어오르고, 새가 흩어지듯이 하고, 서기를 기러기가 가는 듯이 하여 좌우로 벌리어 형세가 포위하는 것 같이 하고, 다섯 사람이 항오가 되어 한 사람은 방패를 가지고 칼을 차며, 한 사람은 궁시를 차고 창을 가지며, 세 사람은 궁시를 차고 칼을 가지고, 만일 걸으면서 전투하게 되면 한 사람이 네 사람의 말을 지키는데, 주장(主將)이 말 지키는 사람을 적당히 더합니다. 매양 3대(隊)마다의 사이에 화통(火) 부대를 두되, 역시 다섯 사람으로 항오를 만들어서 방패를 가진 한 사람은 칼을 차고, 화통을 가진 네 사람은 칼을 차며, 말을 지키는 사람은 위에서와 같이 합니다. 적이 만일 흩어져 서서 나무와 돌에 의지하여 싸우거든, 각(角)을 한 번 불고, 휘(麾)를 잠깐 눕혔다가 잠깐 일으키고, 북이 울리면, 방패를 가진 사람이 말에서 내리고, 활과 창을 가진 네 사람이 또한 말에서 내려 방패 뒤에 있습니다. 북이 급히 울리면 방패를 가진 사람이 빨리 달려 앞으로 나아가고, 뒤에 있는 세 사람도 역시 빨리 달려 앞으로 나아갑니다. 말을 지키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만 세 사람이 활과 창을 번갈아 쓰면 나무 와 돌에 의지하여 굳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적이 패하여 달아나거든 좌우가 일제히 앞으로 나아가서 급히 치되, 적이 만일 말을 타고 달아나거든 우리도 또한 말을 타고 쫓으며, 쇠[金]소리를 들으면 그치고, 북과 각이 다시 울리면 앞으로 나아가서 다시 싸우되, 무릇 중익(中翼)의 고각(鼓角) 소리와 기휘(旗麾)의 움직임에 따라 좌·우익이 응하며, 싸울 때마다 반드시 기병이 있어 뜻하지 않은 때에 나와서, 혹은 앞에서 요격하고, 혹은 뒤를 끊고, 혹은 좌우를 공격하여, 기정(奇正)이 상생(相生)하고 기각(角)이 상제(相濟)하여 항상 병졸은 장수의 뜻을 알고, 장수는 병졸의 뜻을 알아서 투입하는 대로 가기를 손이 손가락을 부리듯 하면, 사람들이 각자가 싸움을 할 것이되, 요(要)는 주장이 상시(常時)에 훈련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 대에 여진족과 싸우는 거에 관해서 함길도 도절제사와 이야기를 나눈 실록의 기사인데,


함길도 도절제사 왈 '벌처럼 뭉치고 개미처럼 모이어' 적의 화살을 많이 맞게 되니 이것이 병법에서 꺼리는 일이라고 하고 있음.


즉 병사들이 가까이 모여서 붙어다니면 여진족 궁기병 입장에서는 표적이 한데 모이는 거라 쏘아 맞추기 쉬워지기만 하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임.


그냥 으레 하는 이야기도 아닌 것이 이 함길도 도절제사라는 사람, 그 유명한 김종서임. 정말로 군사 실무에서 자기 능력을 증명한 사람이 하는 이야기라는 거.





unnamed (1).jpg 사극 속 전투와 실제 옛날 전투의 차이?

물론 병사들 사이 간격이 의외로 많이 널럴했다는 거지, 어쨌든 널찍한 간격을 두고 진형을 갖추고 싸운 건 맞고


다양한 무기를 가진 병종들끼리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진형을 유지하며 싸운 것도 맞으니까 오로지 칼+어쩌다가 한번씩 활 정도만 가지고 개싸움 난전만 하는 한국 사극 특유의 전투씬이 맞다는 건 아님.


다만 저 전투씬이 맞지 않다고 해서 병사들이 어깨와 어깨를 맞대고 빽빽하게 늘어서서 싸우는 전투씬이 고증에 맞느냐고 하면 그것 역시 아니라는 거지 ㅇㅇ


실제로 과거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전쟁의 진행 과정은 어쩌면 한국 사극식 전투와 외국 사극에서 주로 등장하는 밀집방진 전투의 중간 단계쯤이 아니었을까 싶음












사족을 좀 달자면


내가 조선시대, 우리나라 기록만 찾아봐서 다른 나라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조선 후기 진법은 기본적으로 임진왜란 때 유입된 척계광의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개량한 것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아마 동시대 중국도 밀집방진은 없었던 거 같음.


일본도 기록 안 찾아봐서 잘 모르겠지만 만약 일본이 밀집방진을 썼고 그게 효과적이었다면 항왜 꽤 많이 받아들였던 조선에서 그걸 안 써봤을 리가 없는데(실제로 항왜가 일본식 진법을 선조 앞에서 시연한 기록도 있음),


딱히 그런 내용 안 나오는거 보면 일본 역시 밀집방진을 안 썼거나, 혹은 썼더라도 동아시아 전장에서는 별 효과가 없었거나 그랬던 거 아닐까 싶음.


서양이야 뭐 팔랑크스니 테르시오니 밀집방진 있었고










3줄요약

1. 우리나라 사극에서는 전투씬만 했다 하면 칼싸움 난전만 하는데, 그거 보고 제발 방진 좀 짜서 싸우라고 이야기하는 역덕들이 많다.


2. 근데 조선시대 기록 보면 방진을 안 짜는건 아닌데 막 병사와 병사 사이의 간격이 3.6m에 앞줄과 뒷줄의 거리는 최소 14.4m나 떨어져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빽빽한 밀집방진은 전혀 아니었다는 거.


3. 어쩌면 옛날 실제 전투 과정은 한국 사극식 주몽전투와 흔히 생각하는 '방진 짜서 싸우는 전투' 의 중간쯤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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