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사커 풋볼 오어 왓에버] 대한민국 역대 올 타임 베스트 XI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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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4-06-3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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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

한국(조선)은 19세기 후반까지 축구라는 스포츠를 접하지 못했다. 한국의 축구는 1882년 HMS 플라잉 피시 호의 영국 해군 수병들이 인천항에 기항하는 동안 경기를 치른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한국은 1905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1910년에 완전히 합병되었다.

1921년에는 제1회 전조선축구대회가 개최되었고, 1928년에는 조선축구협회가 조직되어 조선에 축구를 보급하고 발전시키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조선 팀은 1926년경부터 일본 팀과의 대회에 참가하였고 조선 축구단은 사실상 한국인들을 위한 팀이 되었으며 1935년 황제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한국인들은 또한 일본 대표팀을 위해서 뛰기도 하였는데, 특히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 일본을 위해 뛰었던 김용식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1950년대부터 아시아의 강국이었다. 그들은 1956년과 1960년에 두 번의 아시안 컵에서 우승했다. 그들은 1954년 스위스로 향하였고 월드컵에 참가한 두 번째 아시아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1986년이 되기까지 또 다른 월드컵에 진출하진 못했다. 아시아 최고의 선수 차범근이 이끄는 한국은 1986년에 불가리아와 비기는 데 그쳤다. 하지만 그들은 8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했다. 2002년에 그들은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이기고 홈에서 열린 월드컵 때 준결승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것은 1930년 미국 이후 남미와 유럽 외 국가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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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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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재는 4차례 월드컵에 출전했다. 그에게 있어 최고의 대회는 2002년 한국이 준결승에 진출한 대회였으며,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페널티킥을 막아내며 감동을 안겼다. 그는 4번의 월드컵에 출전한 아시아 출신 선수 7명 중 한 명이다. 그는 주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 김천 상무FC, 전남 드래곤즈에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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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연은 20세기 최고의 한국 골키퍼들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2002년 MBC와 갤럽 코리아가 1,500명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 축구 역대 베스트 11의 골키퍼로 선정되기도 한 그였다. 구단 커리어에서 그는 양지와 서울신탁은행 축구단에서 뛰었다. 1966년부터 1973년까지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81경기를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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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영

홍덕영은 1948년 하계올림픽, 1954 FIFA 월드컵, 1954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대한민국 대표팀의 골키퍼였다. 올림픽에서 한국은 멕시코를 이기기도 했다. 은퇴 후, 그는 1957년부터 1967년까지 국제 축구 심판을 역임했다. 그는 1948년부터 1954년까지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17경기를 출전했다. 감독직으로는 고려대학교에서 출발을 하였다. 2005년 대한민국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CB/RB: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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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는 1969년 한국 올해의 선수였다. 그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을 대표했다. 그는 1970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는 또한 1972년 아시안 컵에서 뛰었다. 그는 김정남과의 파트너십으로 유명했다. 그는 제일모직 축구단의 아마추어 선수였고 한국 상업은행 축구단의 창립 멤버였다. 그는 감독으로서 1994년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 때 한국 국가대표를 이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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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홍명보는 한국의 역대 최다 출전 기록 보유자이다. 그는 월드컵에 4번이나 출전했다. 2002년에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주장으로서 월드컵 준결승에 진출해 브론즈볼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는 아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일 것이다. 구단 소속으로는 주로 K리그 포항 스틸러스, 일본 벨마레 히라츠카, 가시와 레이솔,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LA 갤럭시에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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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은 1962년부터 1971년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뛰었다. 그는 1971년 올해의 한국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는 1964년 하계 올림픽에서도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뛰기도 했다. 그는 한국이 1970년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하도록 도왔다.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김호와의 수비 파트너십으로 유명했다. 구단 소속으로는 양지 축구단과 한국외환은행 축구단에서 뛰었다. 그의 두 형제 김성남과 김강남도 한국을 대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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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재는 유럽으로 향하기 전에 경주 한국수력원자력, 전북 현대 모터스, 베이징 궈안에서 시작했다. 그는 나폴리에서 이름을 알리기 전에 페네르바흐체에서 뛰었다. 그는 2023년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로 지명되었다. 2023년에 그는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그는 60경기 이상의 국가대표팀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22 월드컵에도 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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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은 1984년부터 1994년까지 대한민국의 대우 로얄즈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1986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였고 그 후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국가대항전에서는 1986 월드컵, 1990 월드컵, 1984 아시안컵, 1988 아시안컵에서 한국을 대표했다. 그는 1983년부터 1993년까지 총 85경기에 출전했다.





LB/CB: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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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은 1998년과 2002 월드컵 본선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2002년 한국과 일본이 공동 주최한 2002 월드컵 본선에서 그는 4위를 차지한 팀의 멤버였다. 그는 1992년부터 2004년까지 105경기에 출전했다. 구단 커리어에서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전남 드래곤즈에서 선수 커리어를 모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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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구단 소속으로 이영표는 유럽에서 뛴 아시아인들 속에서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 중 하나를 누렸다. 그는 PSV 에인트호번과 토트넘 핫스퍼에서 선발 선수였다. 이영표는 2000년 한국 K 리그 1의 안양 LG 치타스로 알려진 FC 서울에서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는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와 MLS에서도 시간을 보냈다. 그는 1999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을 위해 127경기를 뛰었다. 그는 월드컵에 세 번이나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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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24경기에 출장했다. 그는 1998년과 2002년 월드컵에 진출했다. 그는 2002 월드컵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그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한국의 울산 현대에서 뛰었다. 1998년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의 요코하마 F. 마리노스로 이적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가시와 레이솔에서도 잠시 뛰었다. 이후 그는 울산 현대와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두 번째 선수 커리어를 보냈다.






CM/AM: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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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대부"로 알려진 김용식 감독은 1936년 하계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에 선발된 유일한 한국인이 되었고, 대회에서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스웨덴을 물리치는 데 기여했다.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그는 1948년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을 대표하여 선수 겸 감독으로 참여하였다.





LW/AM/FW/CM:김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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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김주성은 1988년부터 1990년까지 3년 연속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는 선수 커리어 동안 긴 머리로 유명했고, 1990년대 초반에는 아시아 축구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그는 1986년, 1990년, 1994년에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다. 구단 선수 커리어 동안, 그는 자국의 조선대학교와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뛰었다. 나중에 그는 독일의 Vfl 보훔에서도 두 시즌을 보냈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여 76경기나 출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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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는 역대 최고의 한국 중앙 미드필더들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 그는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조광래는 연세대학교, 포항제철, 상무 축구단, 대우 로얄즈에서 구단 커리어를 보냈다. 그는 1976년 세계대학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우승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1977년부터 1986년까지 그는 한국을 위해 100경기를 뛰었다. 그는 멕시코에서 열린 1986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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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허정무는 유럽에서 뛰는 최초의 한국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980년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하여 1983년까지 머물렀다. 국내에서 그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울산 현대에서 뛰었다. 그는 1974년부터 1986년까지 101경기나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그는 멕시코에서 열린 1986 월드컵에 출전했다. 그는 해당 대회 1라운드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와 각축전을 벌이는 사진으로 영원히 기억되었다. 그는 1978년과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두 개를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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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은 FC 서울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셀틱, 스완지, 뉴캐슬 유나이티드, 마요르카에서 뛰었다. 2008년부터 2019년까지 기성용은 100경기 이상 출전하며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그는 세 번의 월드컵 선수단에 선발되어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주장을 맡았고, 세 번의 아시안컵에 참가해 2015년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또한 두 차례 올림픽에 출전해 2012년 동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RW/LW: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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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박지성은 역사상 가장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린 아시아 축구선수로,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차지한 최초의 아시아 축구선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출전한 최초의 아시아 축구선수, 클럽 월드컵에서 우승한 최초의 아시아 축구선수이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시즌을 보냈다. 그는 또한 교토 퍼플 상가, PSV, QPR에서도 뛰었다. 국가대표팀에서 그는 100경기를 출전했고 3번의 월드컵에 진출했다: 2002, 2006, 2010. 그는 월드컵에서 AFC 역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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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민은 평양에서 자랐으나 한국전쟁 중에 남쪽으로 이주했다. 그는 특무부대 축구단에 입단했다. 그는 KACIC 축구 구단에서 뛴 것이다. 국가대표로서 최정민은 47경기에 출전해 22골을 넣었다. 그는 소속팀에서 두 번의 AFC 아시안컵 우승과 두 번의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1954년 그 유명한 월드컵 예선의 영웅이었다. 그는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도록 3골을 넣었다.





LWF/FW:손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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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은 함부르크 SV에서 성장기를 보냈으며, 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에 데뷔했다. 2013년에는 구단 최고 이적료인 €10m에 바이엘 레버쿠젠으로 이적했고, 유로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뛰기도 하였다. 2년 후, 그는 £22m에 토트넘과 계약해 역사상 가장 비싼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토트넘에서 뛰는 동안, 그는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아시아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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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택은 1966년부터 1977년까지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81경기에 출전해 21골을 넣었고, 1970년 아시안 게임을 포함해 8개의 아시아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는 한국 축구의 가장 위대한 공격수들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단 소속으로 그는 양지에서 커리어를 출발했다. 이후 포항제철에 이적하였고 1977년 홍콩에서 하이펑과 함께 시간을 보낸 뒤 포항제철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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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은 1988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4번의 WC에 출전했다. 구단 무대에서, 그는 1992-93 시즌 동안 2. 분데스리가 팀 부퍼탈 SV 보루시아에서 커리어를 출발했다. 그는 포항 스틸러스에서 6시즌 동안 뛰며 구단 레전드가 되었다. 1998년에 그는 스틸러스와 함께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1999년 세레소 오사카와 함께 J리그에서 25경기 24골을 기록하며 J1 리그 득점왕에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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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오늘날 차범근은 역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일 것이다. 그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각각 한 번씩 UEFA 컵을 두 번 우승했다. 그는 또한 대한민국 공군과 SV 다름슈타트 98에서도 뛰었다. 그는 커리어 전반에 걸쳐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들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분데스리가 시절 동안, 그는 독일에서 세 번째로 높은 연봉을 받는 축구선수가 되기도 했었다. 그는 국가대표로 135경기에 출전했고 1986 멕시코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그 외명단에 들지 못한 훌륭한 선수들

조병득
최인영
김병지
조현우
함흥철
김영권
최진철
차두리
송종국
하석주
최강희
김판근
조영증
노정윤
구자철
이재성
박이천
김재한
변호영
김남일
최용수
안정환
설기현
서정원
이청용
이정수
김정우
박성화
우상권
정남식
민병대
이영무
박창선
주영광
이동국
이태호
최순호



스쿼드 설명

-- 차범근은 역대 최고의 한국 선수이며 아마도 최고의 아시아 선수일 것이다. 그는 UEFA 컵을 두 번이나 우승했다. 그는 일빠따로 선정되었다. 그의 아들 차두리는 기타 언급에 있다. 홍명보, 박지성, 이운재, 손흥민도 고정이다. 김용식은 한국 축구의 선구자였다.

-- 태극전사들은 2002 월드컵 준결승에 진출했다. 여기 명단 중에는 이운재, 박지성, 김태영, 유상철, 황선홍, 이영표, 홍명보가 올랐다.

-- 한국은 30년 만에 1986 월드컵에 진출한 것이었다. 박경훈, 차범근, 정용환, 조광래, 허정무가 팀을 형성했다. 공격수 최순호와 미드필더 박창선은 아래 언급에만 있다.

-- 한국 최초의 월드컵은 1954년에 있었다. 1954년에 일본과 한국은 1954 월드컵을 위한 중대한 예선전에서 만났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한 이후 두 나라가 처음으로 만나는 만남이었다. 그 경기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경기였다. 그러나,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은 이전의 침략자들이 한국 땅에서 뛰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1, 2차전 두 경기 모두 일본에서 플레이하게 됐다. 그는 또한 한국 국가대표팀에게 패하면 귀국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팀은 일본을 꺾고 1954 월드컵에 진출했다. 최정민은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이자 월드컵 예선의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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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한국

-- 2022년 IFFHS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11명을 선정했다. 이운재, 송종국, 홍명보, 김태영, 이영표, 유상철, 박지성, 김주성, 차범근, 황선홍이 그 뒤를 이었다.

-- 한국 최고의 축구 월간지 "Best Eleven"은 설문조사를 실시해 대한민국 역대 베스트 11을 선정했었다. 라인업은 이운재, 홍명보, 김호, 김정남, 박지성, 김주성, 허정무, 조광래, 이영표, 차범근, 이회택이었다.

-- "Sport Brief"는 가장 위대한 한국 선수 Top 10을 선정했었다. 순위: 1) 차범근, 2) 박지성, 3) 홍명보, 4) 손흥민, 5) 황선홍, 6) 안정환, 7) 김주성, 8) 이회택, 9) 허정무, 10) 조광래.

골키퍼


-- 전 세계 축구팬들은 2002 월드컵에서 골키퍼 이운재의 활약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8강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2002년에, 이세연은 대한민국 최고의 골키퍼로 선정되기도 했다.

-- 원래는 최인영을 골키퍼로 택했다. 그는 'IFFHS'에서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들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지만 1994 월드컵에서 그의 퍼포먼스는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기타 언급에만 넣었다.

-- 조병득은 한국을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라이벌인 오연교에 의해 벤치로 밀려났다. 반면 김병지는 전성기 이운재와 맞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2002 월드컵에서 이운재에게 패했고, 이후 이운재는 월드컵 영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 대신 세 번째 골키퍼로는 함흥철을 기용했다. 그는 한국이 두 번의 아시안컵 우승을 차지하도록 도왔고, 이는 한국의 아시안 컵 유일한 우승으로 남았다. 그는 또한 1948년 하계 올림픽, 1954 FIFA 월드컵, 1954년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골키퍼이기도 했다.

-- 김승규는 2022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거두었다. 조현우는 2018 월드컵에서 독일을 상대로 맨 오브 더 매치 상을 수상했다. 이 승리는 2002 월드컵을 제외하고 한국이 거둔 가장 위대한 성과였다.



수비수

-- 홍명보는 한국의 역대 최다 출전 기록 보유자이다. 그는 아마도 아시아 최고의 센터백일 것이다. 홍명보가 등장하기 전, 정용환은 한국 역대 최고의 중앙 수비수로 꼽혔다. 그는 한국 올해의 선수로 두 번이나 선정됐다. 김정남과 김호는 센터백 호흡으로 유명했다. 김정남은 리베로 선수였다. 두 사람 모두 한국 역대 '베스트 11'에 들어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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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

-- 김민재를 추가시켰다. 그는 2022-2023 시즌 동안 AFC 올해의 국제 선수, IFFHS 올해의 팀, 이탈리아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로 선정되었다. 한국 수비수 중 어느 누구도 그런 성과를 낸 적이 없다.

-- CB 조영증은 1980년대 NASL에서 포틀랜드 팀버스와 함께 뛰었다. 그는 1982년 NASL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1977년에는 한국 올해의 선수로도 선정되었다. 물론 당시에 그는 최고 수준의 커리어를 쌓았지만 다른 한국 센터백들과 어떻게 순위를 매겨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를 김영권, 최진철과 함께 기타 언급으로만 꼽았다.

-- 박경훈은 K리그 역대 최고의 라이트백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또한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한국 최고의 라이트백으로도 여겨졌다. 또한 차두리, 김판근, 송종국, 최강희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김호곤은 1998년 AFC 세기의 라이트백으로 선정되었지만 그는 주로 스위퍼였다. 전반적으로 그는 라이트백보다 더 잘 알려진 센터백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한국 자료에 따르면, 그는 여기서 언급된 모든 센터백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했었다. 그래서 김호를 비상 백업 라이트백으로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라이트백으로도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센터백에서 훨씬 더 뛰어났었다.

-- 왼쪽의 이영표는 토트넘 핫스퍼에서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그는 한국 최고의 풀백이었다. 백업 위치에는 적합한 후보자가 없었다. 1998 월드컵에서 한국이 탈락한 것에 대해 하석주가 큰 비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만약 그가 월드컵에서 더 나은 성과를 거두었다면 올 타임 팀에서 그의 입지는 더했을 것이다. 그래서 센터백으로 활약했던 김태영을 선택하기로 했다. 전반적으로, 그는 하석주보다 더 뛰어나고 유명한 수비수였다.

-- 미드필더로서는 센터 하프의 김용식이 플레이메이커로도 기용됐다. 그는 1936년 올림픽 동안 일본의 왼쪽 측면에서 뛰었다. 그는 한국 축구의 대부로 알려졌다. 그의 역사적 역할을 위해 그를 선택했다. 조광래는 한국 최고의 미드필더들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 허정무는 1980년대 네덜란드에서 활약하며 한국 축구의 선구자가 됐다. 그들을 재빨리 선택했다.

-- 그다음에 두 명의 미드필더 유상철과 기성용을 추가했다. 유상철은 120경기 이상을 출장했다. 그는 2002 월드컵 올스타 팀에도 선정되었다. 한국선수들 중에 이를 달성한 선수가 얼마나 또 있었을까?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기성용은 100경기 이상 출장했고 3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다. 그는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들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김주성도 미드필더로 뛸 수 있다. 이 올 타임 팀은 미드필더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선수가 6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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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

-- 그로 인해 이영무, 구자철, 이재성, 박창선을 위한 자리는 없다. 이영무는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유명했다. 구자철은 분데스리가에서 좋은 커리어를 쌓았다. 박창선은 1986 월드컵 팀의 주장이었다. 그는 또한 월드컵에서 한국 최초의 득점을 넣었다. SW/RB의 김호곤을 박창선으로 교체하는 아이디어도 가지고 있었지만, 마땅한 백업 라이트백 없이는 팀의 균형이 맞지 않을 것이다.

-- 1988년부터 1990년까지 김주성은 3년 연속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다. 1990 월드컵에서 잠재적인 스타로 주목받았지만, 본선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올 타임 팀에 들었다. 그는 매우 다재다능한 축구선수였다. 주로 왼쪽 윙으로 뛰었지만 중앙 미드필더, 리베로, 윙 등 멀티 포지션을 소화했다. 노정윤도 비슷한 시기에 뛰었다. 김주성에 비해선 너무 과소평가됐다. 그는 J리그에서 뛰었다. 그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 한국에는 강력한 윙어들이 있다. 오른쪽의 박지성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의 아시아 선수들 중 하나이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시즌을 보냈으며 종종 중요 선수로 활약했었다. 그러나 손흥민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박지성을 제치고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 왼쪽은 재능이 넘쳐났다. 이미 김주성과 손흥민을 언급했다.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 스트라이커로 뛰었지만, 그는 원래 한국에서 윙어로 뛰었다. 그의 베스트는 아마도 왼쪽이었을 것이다. 김용식도 왼쪽 미드필더로 뛰었다. 그래서 LW/CM에는 고정운을 위한 공간이 없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프리킥 능력 중 하나를 지녔었다. 그는 기타 언급만 되었다. 또한 그의 1990 월드컵 팀 동료인 서정원도 제외했다.

-- 윙어 이청용은 볼튼 원더러스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는 2009-10 시즌 구단 올해의 선수였다. 그 역시 기타 언급만 되었다.



공격수

-- 차범근은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된다. 그는 유럽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아시아 선수가 많지 않았던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최고의 스타였다. 또, 이회택도 등장시켰다. 그는 차범근 이전 한국 최고의 선수로 알려졌다.

1000030541.jpg [사커 풋볼 오어 왓에버] 대한민국 역대 올 타임 베스트 XI
이회택

-- 황선홍과 최순호가 마지막 자리에 고려되었다. 결국 황선홍을 선택했다. 그는 4번의 월드컵에 출전했고 그는 차범근에 이어 태극전사 역대 2위 득점자이기도 하다. 최순호는 올 타임 팀에 들어가지 못한 최고의 선수일 수도 있다. 그는 1986 월드컵에 한국이 진출하는 데 일조한 영웅이었다. 그의 자리는 1954 월드컵에 한국이 진출하는 데 도움을 준 최정민에게 주었다. 최정민은 또한 아시안컵에서 두 번 우승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역사적 역할은 한국 축구에 매우 중요했다.

-- 안정환은 2002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활약하고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지만, 나이 많은 앞 세대 선수들을 택했다. 그 앞에는 차범근, 최용수, 황선홍도 있다. 안정환은 올 타임 팀에 선발되지 않은 가장 저명한 선수였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2002 월드컵 동료인 최용수와 설기현의 자리도 찾지 못했다.

-- 이회택, 박이천, 김재한, 변호영은 당시 거대한 움직임으로 여겨졌던 홍콩 프로 리그에서 뛰었다. 네 선수 모두 올해의 한국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었다. 박이천은 여전히 국가대표팀에서 세 번째로 많은 골을 넣은 선수이다. 이동국은 다른 기록들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2002년과 2006 월드컵에 모두 출전하지 못하면서 순위가 떨어졌다. 그의 유럽 구단 커리어도 꽤 약했다.

-- 이정수, 김정우, 박성화는 기타 언급에 들었습니다.



포메이션

김주성은 다재다능한 축구선수였다. 그래서 그를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하였다.

1000030542.jpg [사커 풋볼 오어 왓에버] 대한민국 역대 올 타임 베스트 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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