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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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86회 작성일 24-05-1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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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연재 시리즈를 보시면 내용 이해가 빨라요, 읽어주셔서 땡큐!! 감사!!




웨스트민스터의 베트남 전쟁 기념관.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CCB-47-nam-mat-nuoc-1-1536x1152.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미국 캘리포니아주 웨스트민스터 시티(Westminster, California)의
베트남전 참전 기념관 한 쪽 옆에는
패망 당시 자결한 남베트남 장교들의 이미지와 이름이 새겨진 '검은 돌담'이 있다.


워낙 경치가 좋고 (염장질하는 커플들이 많고)
늘 꽃향기가 나는 곳이라
베트남계 여학생 마이(Mai)와 함께 둘이 데이트 할 때면 가끔 가서 산책하곤 했다.

(마이는 아버지가 한국계로 백인 + 베트남인 + 한국인 혼혈이다.
이전 글을 읽어보신 펨붕이께서는 잘 아실 것.)

KakaoTalk_Photo_2020-09-14-17-57-16-4.jpe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다시 강조한다. 마이는 오마이걸 아린이랑 참 닮았는데 항상 얼굴만 한 안경을 썼다.
안경 쓴 아린이다. 예쁘다.예쁘다.예쁘다.)

3c2ca098-4e9a-43a9-9d88-a532d323f0c8.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마이는 항상 잘 웃고 발랄하다가도, 그 곳에 있을 때면 아무 말없이 생각에 잠길 때가 많았다.
등짝 맞고 싶어서 나만의 애칭인마이쮸!!!!!! 라고 놀려도 그곳에서 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근데 데이트하러 여기를 오자고 한 남학생은 나밖에 없어서
한국인 유학생이 여기를 어떻게 안 건지
놀랐다고도 했었다.

마이야
여기는 나 혼자서라도 꼭 와 볼 수밖에 없었단다.
마이의 큰엄마인 트란(Tran,쩐) 할머니의 인생사를 알게 된 이후에는 말이다.

근데 그런 마이를 자세히 지켜보면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The Last Night Of The World" (세상의 마지막 밤)
가사를 조용히 흥얼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밤새도록 들려오는.
꿈같은 솔로 섹소폰.
날 꼭 안고 춤을춰요.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마이한테 끌려가서 "미스 사이공"을 한 다섯 번은 봤다. 뮤지컬 좋아용 흑흑ㅠㅠㅠ
images (1).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그 검은 돌담에는
나라를 잃은 순간 전장에서 싸우다가 자살한 베트남인 군인들이 너무 많아서
통계도 없고, 신원도 알 수 없는 '숨겨진 영웅들'이 더 있다고 써져 있다.

언젠가 인생에 기회가 된다면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베트남전 기념관도 꼭 가보고 싶어졌다.
그 곳은 홍익대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가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은 곳으로 극찬한 곳이기도 하다.

SAM_4563.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67237921-베트남-참전-용사-기념관-배경에-워싱턴-기념비와-워싱턴-dc에서.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워싱턴 D.C.의 베트남전 기념관)








책 제목
25세기 남베트남 장군이 인도차이나 전쟁부터 사이공 함락까지 기억하다.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25년
(부제 : 인도차이나 전쟁부터 사이공 함락까지)

책의 저자
람 쿠앙 티 (Lam Quang Thi) 장군 (1932~2021)
General_Lm_Quang_Thi.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티 장군은 1950년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군 사병으로 군 경력을 시작했다.
1955년 남베트남 건국 후 남베트남 국군 대위가 되었고,
1972년 북베트남이 부활절 대공세를 시작했을 때
그는 제9보병사단 사단장으로 이 공세를 막아냈고 결국 4군단 참모장으로 승진했다.
상관인 4군단 군단장은 "응우옌 코아 남 Nguyen Khoa Nam" 소장이었다.(나중에 자결함.)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자 티 장군은 베트남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다.

평생 동안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를 잃은 비통함을 잃지 않았고,
마침내는 베트남 전쟁 동안 목숨을 바친
자유진영(미국, 한국, 호주, 태국 등) 장병들을 추모하는 책을 펴냈다.



(책은 현재 미 육군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현대 아시아 전쟁사 강의 교재 중 하나로 쓰인다.)

이 책이 한국어판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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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70d25ce-9800-4966-be75-4013448297a4_w1200_r1.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미 육군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책에는 "응우옌 코아 남 Nguyen Khoa Nam 소장"과 "레 반 흥 L Vn Hng 준장"의 일화가 실려있는데
그동안 세상에 한번도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가 나온다.

4군단의 '레 반 흥 장군' 의 직속 부관이었던
'레 반 단(Le Van Danh) 대위'가
오랜 세월 후에 미국에서 '람 쿠앙 티 장군'을 뒤늦게 만난 후
바로 이 책을 통해 증언했다.

너무 기억에 남는 부분이어서
일부 내용을 번역해서 옮겨 본다.


thumb_660_47-BithamSP-304-1.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응우옌 코아 남 Nguyn Khoa Nam (23 September 1927 30 April 1975)



Chien-thang-An-Loc-l1.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레 반 흥 L Vn Hng (March 27, 1933 April 30, 1975)
(왼쪽이 레 반 홍, 가운데는 응우옌 반 티우 남베트남 대통령)







images.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1975년 4월 30일 아침 사이공에서 130km 먼 남쪽
칸토(Can Tho) 시내.
4군단 사령부.
부군단장 '레 반 흥 장군'은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다.

식사 자리에 함께 한 '레 반 단(Le Van Danh) 대위'는 레반흥 장군의 직속부관이었다.


thumb_660_47-BithamSP-304-2.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4군단 사령부 건물)




참모총장 '까오 반 비엔(Cao Vn Vin) 대장' 은 연락이 안 된다.
3군단장 '응우옌 반 토안 중장'도 행방불명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각 모두 미해군 항공모함 갑판 위에 있기 때문이다.


image.daidoanket.vn-images-upload-2020-5-22-_dai-tuong-cao-van-vien-cua-che-do-sai-gon-tru-lau-vi-khong-tham-vong.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까오 반 비엔(Cao Vn Vin) 참모총장), (옆은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 (Westmoreland) 주월미군 총사령관))

tek431.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응우옌 반 토안3군단장)




지배자가 바뀐 사이공의 명령에 따라
우리들은 모두 항복하고 총기를 분해해 두고서
모두 연병장에 도열해서 사이공의 지시를 기다려야 했다.

월맹군은 아직 이 곳 "칸토(Can Tho)" 까지는 오지 않았다.

병력 중 많은 수가 탈영했다.
어떤 군인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흐느껴 울기도 하고,
어떤 군인들은 도시를 약탈하다가
치안을 유지하려는 사이공 경찰들과 패싸움을 벌였다.



4군단 사령부에는 남 장군 흥 장군과 소수의 참모들만이 원대복귀 해 있었다.
부대는 정글의 은밀한 숨겨진 장소로 철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부대 이동 위치를 알고 있는 연대장들이 월맹군이 점령한 사이공으로 지프를 타고 도망해 버렸다.
모든 기밀 사항이 넘어간 것이다.
흥 장군은 분노와 절망, 실망으로 가득 찼다. 앞으로의 계획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는 배반 소식을 듣고 가장 깊은 곳에서 마음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었다.


장군이 나(레 반 단(Le Van Danh) 대위)를 돌아보며
"남은 것은 무기도 없는 4군단 뿐인데, 실패하면 어떡하지?"라고 했다.


나(단 대위)는 "그러면 우리는 다 죽는다. 장군님의 아이들은 그렇게 되면 안된다."고 답했다.
군대는 나라가 망하면 그 뒤로는 교전단체로 인정도 안되니,
게릴라전을 벌였다간 즉결 처형된다. 포로 대접도 못 받는 것이다.

unnamed(48).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나는 장군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총살형의 순간이 오더라도 당신과 함께 남자답게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오후 4시 45분, 장군은 휘하 4군단 부대들을 떠돌다가 집무실로 돌아왔다.
부하들이 흥 장군을 붙잡아 항복 서명을 요구할거란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흥 장군은 부하 장교들의 요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그는 이 사건을 의논하기 위해 사령부로 긴급하게 돌아왔다.


unnamed(50).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오후 5시 30분, 군단장, 부군단장을 보호하기 위해
아직 명령하달이 가능한 "M48 패튼 탱크" 두 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사령부 정문을 탱크가 시동을 걸어놓고 으르렁거리며 떡하니 막고 있으니
아무도 얼씬거리지 못할 것이다.

(부하 장교들의 배반에 대비한 조치였다. 이 전차 승무원들 참 존경스럽다.)

us-m48-tank-at-the-war-remnants-museum-ho-chi-minh-city-vietnam-KFFXK4.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현 호치민 시에 전시된 당시 남베트남군 M48 전차)



칸토(Can Tho)와 미토(My Tho) 도시 외곽 4번 국도 길 옆에서
충성스러운 몇 개 중대 병력이 힘겨운 전투를 하고 있었다. 전투는 5월 2일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오후 6시 30분 고위 군사소식통을 이용한
월맹군이 보낸 항복 사절단이 찾아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시장, 도지사, 국회의원이었던 사람들 이었다.
월맹군 측은 "무의미한 저항은 부하들만 죽이니, 시간을 줄 동안
항복을 결정하십시오" 라고 했다.
흥 장군은 "나는 반대합니다. 나는 죽는다면 한 맺힌 베트남 유령이 될 것입니다."라고 응답했다.


이 사절단 일행이 실망해서 떠나자
장군은 부인과 손을 잡고 기도를 시작했다.
부인이 이 자리에서 독약을 마시자는 제안을 했으나 거부했다.

단 대위의 말 - "나는 치욕스럽게도 두 손을 놓고 차렷 자세로 베트콩 사절단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불교도인 나(레 반 단 대위)와 달리
레 반 흥 장군 부부는 가톨릭 신자였고
그리고 가톨릭은 자살을 포함해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것을 절대 금한다.

또한 가톨릭 주교단으로 이어지는 프랑스 정부 고위층과 연줄이 있었기 때문에
직속부관으로서 레 반 흥 장군의 안전은 끝까지 중요했다.

장군은 부인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실 처음에는 온 가족이 함께 죽겠다고 유서도 쓴 상태였다.
부인이 아이들에게 수면제를 주사하고, 스스로에게도 같은 약을 주사하고, 장군은 권총으로 자결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흥 장군은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는 자신만의 고독한 죽음을 계획하고 있었다.




시간이 급박했다.
프랑스 대사관에서'지스카르 데스탱(Valry Giscard d'Estaing)' 프랑스 대통령의 친필로
장군의 신변을 엄중하게 보호하겠다는 공식 연락이 온 상태였다.


1003473_14668_5334.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당시 사이공 프랑스 대사관 - 프랑스는 100년 동안 식민 지배국이었고, 외교 관계를 통일 후에도 지속.)




"존경하는 레 반 흥 장군,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명예롭게 항복하십시요.
장군의 안전을 프랑스 대통령으로서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h_PAP20201203084801055.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지스카르 데스탱(d'Estaing) 당시 프랑스 대통령)



'명예'와 '항복'이란 단어가 같이 쓰이다니???


죽음을 결심한 흥 장군에게는 소용없는 짓이었다.
저녁 8시까지 장군과 부인 단 둘만이 집무실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집무실에서 문열고 나와서 나(단 대위)를 껴안고 울었다.
나(단 대위)는 가슴이 미어졌다.
마침내 그는 "어서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나를 보러 오라고 해라." 라고 말했다.

장군의 모친과 아이들이 집무실로 오자 그는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아이들에게 키스를 했다.
그는 모친에게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와 공산당 치하에서 살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어머니, 나같이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는 자들이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봅니다.
조국을 지키지 못하는 장수는 죽어야만 합니다."

"못난 나를 따라줘서 고마웠어. 부탁하나만 하지.
미국에 가거든 내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옆에서 도와주게. "
라고 나(단 대위)에게 말했다.


나(단 대위)는 부하가 아닌 남자 대 남자로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간청했다.
"장군, 부족한 제 생각엔 살아서 치욕을 겪더라도
그게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우리는 전쟁 동안 죽은 부하와 동료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1975년 4월 30일자정 쯤 레 반 흥 장군은 자결했다.
42세 나이였다.


근처의 다른 지역 지휘본부에 검열을 갔던 '코아 남' 장군은 급히 달려와
흥 장군의 시신을 보았고, 현장을 수습한 뒤에
거의 밤을 새우며 계속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5월 1일 오전 7시쯤 '코아 남' 장군도 장군 예복으로 갈아입고 자결했다.
48세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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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들이 자신이 지켜야 할 군인과 동포들을 버리고 도망가는 모습에
크게 좌절해 있었던 데다가,
심지어 '코아 남' 장군은 독실한 불교도이기도 하고
미남 장군으로 국민들에게 널리 인기가 있었고
미군과 한국군에게도 유명했고,평생 독신으로서 가족도 없는 몸이었다.

가매장되었던 '코아 남' 소장은 1994년에 이르러서
베트남 공산당에서도 그의 순수한 민족애와 애국심을 인정하여
구 월남군 장성 중에는유일하게 옛 사이공 - 호치민 시티현지에서 추모식을 여는 것이 허락되었다.






(레 반 흥 장군의 일가족은 프랑스의 보호 아래
사이공의 프랑스 치외법권 안가(안전가옥)에 있다가
일년 뒤 미국으로 이주했다.)



(레 반 단(Le Van Danh) 대위는 미국에 생존해 있다.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Orange County)에서 택시 운전사로 일한다고 한다.)




tet-festival-2015-kelley-park-san-jose-miss-viet-nam-northern-california-114.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maxresdefault (1).jpg (스압) 한 장군의 유언(遺言) : 우리는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군인 주제에 겁쟁이였어!
(베트남계 미국인들의 매년 이어지고 있는 추모 행사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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