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명 F4의 첫번째 무종 정덕제에 대한 고찰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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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77회 작성일 24-05-3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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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설명하기 쉽게 음슴체로 작성되었습니다


맨 밑에 세줄 요약 있음


오랜만에 쓰는 정상적인 글


정덕제.jpg 명 F4의 첫번째 무종 정덕제에 대한 고찰

진짜 존나 말 안듣게 생겼다


1. 정덕제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명의 10대 천자로서 홍치제의 장남으로 홍치제 자체가 황제로 즉위 이후로도 후사가 없어서 골몰하던차에 출생한 아주 귀한 아들로 태어났음


이 글을 읽는 몇몇 사람들이 아는 것과 달리 정덕제 주후조는 8세때부터 최고의 학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미 어릴때부터 제자백가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능력을 보여서 스승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하고 이로 인해 천자인 홍치제와 신료들은 귀한 아들로 온 태자가 하늘에서 낸 사람이라 여기고 기뻐하며 주후조가 홍치제를 이어 황위를 계승한다면 대명천하는 계속 해서 쭉 이어질거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음


하지만, 이 학문을 좋아하고 불교를 덕질하며 성군의 자질을 보이던 태자는 성장하면서 책 읽는것을 게을리하고 놀자판을 벌이기를 좋아하게 바뀌게 되는데 천자의 하나밖에 없던 아들이던 정덕제 주후조가 훗날 천자 홍치제가 사망하면 그 제위를 계승할 사람인걸 아는 동궁의 환관들이 어린 태자에게 아부한답시고 진귀한 애완동물이나 온갖 장난감들을 구해와서 그를 즐겁게 했고 또한 흥미로운 놀이를 통해 사실상 놀자판에만 관심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림파티광


특히 주후조는 아예 말을 몰고 교외로 나가서 전쟁놀이 하는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냥 놀자판따위가 아니라 아예 본인이 지휘관이 되어 주변의 인물들로 편성된 군사를 거느리고 작전을 수립해 적진을 돌파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놀이를 즐겨하였으나 그 모습조차 맘에든 아들바보 홍치제는 태자인 주후조가 명의 시조였던 홍무제 주원장처럼 문무를 겸비한 훌륭한 천자가 되길 바랬는지 전쟁놀이를 좋아하는 그를 크게 질책하거나 제동을 거는 일은 없엇던걸로 보임


하지만 문제는 주후조가 공부는 뒷전에 두고 밖에 나가 놀기만 하는 모습을 보고 우려가 커지기 시작하였으나 하나밖에 없던 아들이었기에 홍치제는 임종하기 직전 중신들을 불러다 놓고 아직 철없고 놀기 좋아하는 아들을 훌륭한 천자가 되게 잘 보좌해달라 간곡히 부탁하고 사망하게 되고 같은 해 주후조는 15세의 나이로 대명의 천자로 등극하게 됨


하지만 놀기 좋아하는 태자에겐 천자로 즉위하는 시점이 바로 시작에 불과했으니...


어릴적부터 가까이 두던 환관 유근은 일찍이부터 정덕제의 놀기 좋아하는 천성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었고 1507년 유근은 황제에게 황궁의 서안문 밖에 놀이용 별궁을 신설하라 건의하여 그에 혹한 정덕제는 은자 24만냥(..)을 들여서 200여채의 전각을 가진 별궁을 건설하였는데 그 즐비하게 늘어선 건물의 모습이 마치 표범무늬와 비슷하여 별궁의 이름을 표방(豹房)이라고 붙인 뒤 아예 이듬해에는 거처를 표방으로 이동하고 사망하기 직전까지 자금성으로 환궁하지 않고 표방에서 살았는데 아마 그에게 있어서 표방은 사실상 맘대로 살기 위한 궁궐로서 정덕제 본인은 자금성보다는 표방을 본인의 집이라 여기고 애착을 보인걸로 보임


정덕제는 이곳에 머물면서부터 속칭 팔호라고 불리우는 8명의 환관에게 정사를 맡겨버리고 놀기 바쁘게 되엇는데 이 팔호의 대표적인 환관이던 유근은 정덕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조정을 맘대로 주무르기 시작하였는데 오죽하면 그때 사람들은 유근을 입지황제라고 부를 정도로 그의 권세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있었음


한편 조정대신들은 유근의 전횡을 두고 볼 수 없었기에 황제인 정덕제에게 유근의 악행을 고발하고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정덕제는 대놓고 씹었으나(..) 천문과 역법을 관장하던 오관감후였던 양원이 별자리를 관찰한 뒤 유근을 당장 처단하지 않으면 궁에 큰 변란이 일어날것이라 아뢰자 정덕제는 그건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나 유근이 없으면 노는게 쉽지 않아지는 정덕제는 유근을 면피용으로 남경으로 귀양보낸 뒤 잠잠해지면 다시 부를 생각이었으나 유근이 황제에게 눈물로 호소하자 그에 넘어간 황제는 유근에게 단영이라는 경군 10만을 보유한 수도방위사령관직으로 임명함으로서 군권까지 부여하게되고 유근을 탄핵한 신하들은 귀양가는 엔딩을 맞이하였음


하지만 이 유근은 누구 덕분에 권력을 휘두르는지 망각한 채로 명의 황위를 찬탈하려 시도하다 실패하여 체포되었고 반역죄라는 명목으로 저자에서 도합 6000번 가량의 칼질이 가해지는 능지형을 3일에 걸쳐 받으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음


한편, 이렇게 저렇게 놀다보니 어지간한 놀이에 싫증이 나버린 정덕제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아는 '부캐놀이'(...) 를 시작하게 되는데 본인에게 주수(朱壽)라는 이름을 붙인 부캐를 만들어서 스스로에게 대장군의 직위를 내리고 본인이 군대를 이끌고 외정을 나갈때는 주수의 이름으로 출정을 하며 대장군인 본인이 황제인 본인에게 글을 올리고 반대로 상찬을 하는 등 본인의 부캐놀이에 크게 심취하게 되고 본인의 부캐를 태사에 임명할 때는 이를 반대하는 신하들을 무조건 투옥시키는 모습을 보였고


정덕제는 이전부터 문보다는 무에 관심을 보인 황제답게 군사를 일으킬 일이 있으면 직접 달려가는 일이 잦았는데 이는 정덕제의 희한한 성적 취향과 맞아떨어져서 시너지를 보였는데 그는 미소년들을 양아들로 삼는 취향이 있었고 그중 강빈이라는 외방의 장수도 있었는데 이 강빈은 외방의 선부에 미녀들이 많고 군사적인 움직임을 관장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왜 궁궐에 있으면서 대신들의 잔소리나 듣고있냐며 정덕제를 꼬셨고


이에 헤까닥 넘어간 정덕제는 아예 강빈을 포함한 몇명만 데리고 집이라 생각하는 표방까지 버린 채 선부로 향했고 황제 일행이 만리장성의 주요 관문인 거용관에 이르렀을때 그곳의 어사에게 신분이 노출되었는데그동안은 노출되지 않은게 용하다이 어사가 눈물로 만류하자 결국 정덕제는 환궁하였으나 며칠 뒤 다시 프리즌브레이크를 찍으며 표방에서 탈주하였고(..)


이번엔 이를 알게 된 대신들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환궁을 간하자 근위병들에게 관리들을 태형 30대씩 때리고 내치라 명하고 갈 길을 가서 선부에 진국부를 설치하고 표방의 미녀와 시설들을 그곳으로 옮긴 뒤 더한 향락에 빠지는 전형적인 암군의 모습을 보였음


하지만, 이후 일전에 일어난 친척인 영왕의 반란을 직접 자신이 잡았다고 선전하기 위해 '맹획' 하는 짓을 벌이곤 떡 본김에 제사를 지낸답시고 난징까지 내려왔으니 놀자판을 벌이지 않을수 없던 황제는 중간중간 머무르는 곳에서 낚시+뱃놀이를 벌였는데 그 와중 올라오다 호수에서 뱃놀이 중 어떠한 일로 물에 빠지게 되었고 신하들이 건져내었으나 늦게 건져내었는지 후유증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30살에 사망하게 됨


2. 암군이었을까?


사실 위에 일어난 썰들만 보자면 뭐 이런 암군이 있나.. 싶은데 본인이https://www.fmkorea.com/6005676039이렇게 적었듯이 숭정제가 시간이 지날수록 암군의 면모가 드러나며 평가가 하락하는것에 비해 속칭 명 F4라 불리우며 명을 멸망으로 이끈 4명의 황제중 필두로 꼽히는 이 정덕제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평가가 올라가고 있음


그 평가들을 살펴보자면 위에 보인 모습들과 이후 3명의 병신암군들과 달리 그는 그래도 어리석은 황제는 아니었다는 것인데 그는 좋은 군주의 조건중의 하나인 훌륭한 신료들을 거느린 천자였는데 정덕제 시기 명의 재상을 지내던 이동양, 양정화 같은 신료들은 모두 명 역사에서 명재상으로 꼽히는 인물들로서 정덕제는 이 신하들이 수없이 간언하는것을 대부분 받아들이고 자신과 대립각을 세우는 신하들을 생각보다 건드리는 일이 없던 황제였음놀지말라고 하는건 가차없이 건드렸지만


또한 생각보다 위에 보인 모습과 달리 정덕제는 놀자판을 자주 벌였을지 언정 다른 암군들처럼 황제로서의 업무를 유기한 채로 놀자판을 벌이진 않았는데 신하들의 보고는 꼬박꼬박 본인이 처리하고 국가 정책이나 중대사는 어떻게든 본인이 직접 결정하는 황제로서의 기본적인 모습은 일상적으로 보여준 황제였음황제가 주관하는 의례 행사는 자주 빠지고 친척이나 본인의 부캐를 보냈지만


심지어는 위에 언급한 영왕을 '맹획' 하러간 남순 시기에도 명의 재상 직위인 수보(首輔)를 데리고 내려가서 꾸준히 정사에 대한 논의는 계속 할 정도였으며 선부로 탈주하였을때도 신하들이 선부로 접근하는것만 엄금하였을뿐 상주문 자체는 크건 작건 본인이 전부 보고 처리 할 정도였던 모습으로 볼때 이후 F4중에 나랏일을 안해서 국가를 망가지게 한 암군 그 자체 만력제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주던 천자임


그리고 죽은뒤 무()종이라는 묘호를 받은것도 보이고 어릴때의 모습을 보면 알수 있듯이 군사적인 부분에서 관심이 상당하였는데 그가 주로 좋아하는게 변방을 순찰 하는 일이었고 이 순찰 과정에서 변방 병사들을 위무하며 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본인이 직접 군사훈련을 관장하는가 하며 실제로 군대를 지휘하여 승리를 벌인적도 많았음 그만큼 관심을 많이 보였고 지휘력을 보인적이 있다는점에서 생각보다 지휘관으로서의 지휘력도 상당했다는것인데 이는 그만큼 당시 명의 국방력이 상당하였다는 반증임


그리고 오히려 이전의 수양제나 영락제 같이 황제들이 보인 대규모 원정에 꽂혀 나라에 부담을 주지 않고 적절히 오는 군사활동만 벌이는 모습을 보였다는점에서 취미를 즐기면서 국가재정에 부담조차 주지 않았다는 것을 볼때 그의 취미는 긍정적인 요소로 볼만한 점들이 꽤 많다는것임


실제로 그의 통치기간 명은 상업이 크게 발전하고 양명학이 본격적으로 태동하여 사상과 문화에 발전을 이룩하였는데 정덕제 역시도 본인이 어릴때 불교를 덕질하던 황제였어서 그런지는 모르나 티베트 불교를 꽤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황제 본인부터가 몽골어를 구사 할 수 있는 만큼 익히고 서역 인물들을 본인이 직접 접견하여 교류를 추진하는 모습을 보일때 국제적인 감각조차도 갖춘 황제로도 평가가 가능할 정도의 모습을 보인적이 많음


이로 볼때 나라를 박살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다른 F4들과 달리 정덕제는 내세울수 있는 업적이 상당하며 신료들과 척지지도 않았던 점을 볼때 물론 놀기를 좋아하고 친위세력들 제어를 하지 않았단 점에서 성군이라고 부를 천자는 결코 아니겠지만 무작정 다른 F4들과 엮어서 나라를 결단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황제로 묶기엔 상당히 억울한 평가라고 생각을 함


결론적으로 위에 보듯이 그냥 놀기를 좋아하는 황제일뿐 나랏일은 꼬박꼬박 할 정도의 열의를 보였는데 놀기와 업무의 비율을 조절하지 않기만 한 사람을 암군이라 부를순 없다고 봄


세 줄 요약


1. 알려진 F4의 필두 정덕제는 놀기만 좋아하는 전형적인 암군임

2. 하지만 이후 평가들을 보자면 꽤 긍정적인 면들이 많았고 자체 한계로 성군이라 할 순 없지만 암군이라 할 수도 없음

3. 이로 볼때 속칭 명 F4엔 정덕제가 아니라 오히려 밝혀질수록 나라를 말아먹은 숭정제가 들어가는게 맞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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