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조선 어기에 관한 오해[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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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172회 작성일 24-02-2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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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갤에 조선 어기를 다루는 글이 몇 개 올라왔길래,

평소 관심을 가지던 주제인지라 제가 아는 바를 써보고자 합니다.

틀린 내용이 있다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규장각 어기.jpg 조선 어기에 관한 오해


위 사진은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연대 미상의 조선 어기 회화입니다.

보시다시피 상단에 "어기(御旗)"라고 쓰여 있습니다.


조선 어기는 나무위키를 비롯한 여러 위키 사이트에서 조선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소개되고 있고,

역사를 다룬 여러 게임(유로파 유니버설리스 등)에서도 조선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기에,

조선 어기가 조선 시대 500년 내내 쓰였겠거니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조선 어기가 태극기의 저본이 되었다든지, 태극기의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다든지 하는 설명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 어기가 조선시대 500년 동안 사용되었다는 증거는 딱히 없으며,

여러 기록을 검토해볼 때 조선 어기는 오히려 태극기보다 늦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선 어기가 태극기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다기보다는, 태극기가 조선 어기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을 공산이 큰 것이죠.


조선 어기가 태극기의 저본이 되었다는 주장을 처음 한 것은 (제가 아는 바로는)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입니다.

이태진 교수는 98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조선 어기가 조선 영·정조 시기로부터 유래한 것이며, 이후 (최초의 태극기로 여겨지는) 이응준 태극기와 박영효 태극기로 발전한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위 이미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조선 어기는 8괘 태극기고, 이응준 태극기도 8괘 태극기일 것으로 추정되므로, 조선 어기의 디자인이 이응준 태극기에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것이 이태진 교수의 논지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2004년에 발견되어 세상에 드러난 이응준 태극기는 누가 보더라도 4괘 태극기였죠.


따라서 이응준 태극기를 8괘 태극기로 상정한 이태진 교수의 주장은 지금에 와서는 설득력을 잃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한편 조선 어기가 영·정조 시대로부터 유래하였다고 추측한 것도 지금 보면 지나치게 억지스러운데, 실제로 그 시기에 8괘 태극기가 어기로 쓰였다는 직접 증거(회화, 기록)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1998년은 아직 이응준 태극기와 박영효 태극기가 발견되기 이전인지라, 태극기의 역사와 변천 과정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못했고, 태극기 중국 기원설이 횡행하던 때입니다.

이태진 교수는 이런 중국 기원설에 맞서기 위해 영·정조 유래설을 주장한 것이죠.

따라서 태극기의 변천 과정이 뚜렷하게 밝혀진 오늘날까지 억지스러운 영·정조 유래설을 고수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선 어기가 만들어진 것은 언제일까요?

그걸 알기 위해서는 잠시 태극기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응준.jpg 조선 어기에 관한 오해

위 태극기는 1882년 5월 14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기 위해 역관 이응준이 제작한 태극기입니다.

다만 이 태극기가 조선의 국기로 곧바로 채택된 것은 아닙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부터 며칠 뒤,

청나라의 외교관이었던 마젠중은 이응준의 태극기가 "일장기와 비슷해 구별이 안 된다"라며,

청나라 황룡기와 비슷한 '홍룡기'를 조선의 국기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이는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임을 분명히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들어간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 측이 이를 완곡히 거절하자,

얼마 뒤 마젠중은 "4괘 대신 (조선 8도를 의미하는) 8괘를 배치한" 태극기를 사용할 것을 재차 권하게 됩니다.

마젠중의 이러한 두 번째 제안은 여러가지로 해석되는데,

'홍룡기' 제안이 실패하자 그 이후로는 정말 선의로 국기 제작을 도우려 했다는 설과

'홍룡기'는 물건너갔지만, 조선의 국기 선정 과정에 어떻게든 개입함으로써 청나라의 체면을 세우려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마젠중의 두번째 제안을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한 조선 측은,

"조정에서 논의해보겠다"라는 애매한 말로 우선 상황을 넘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넉 달 뒤, 3차 수신사로서 일본에 가게 된 조선의 관료 박영효는,

일본행 선박 〈메이지마루호〉의 선장이었던 영국인 제임스에게 '팔괘 태극기'를 보여주며, 이것을 조선의 국기로 삼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의견을 묻게 됩니다.

제임스는 "제법 인상적이기는 한데 8괘는 너무 조잡스럽다. 외국인들이 따라 그리기도 힘들 것이다. 그냥 4괘로 하는 게 더 아름다울 듯하다."라며 의견을 피력합니다.

또한 제임스는 "서양 국가들은 국기 말고도 군주의 깃발을 따로 둔다. (*왕실 문장을 의미하는 듯) 군주의 깃발은 국기와 비슷하되 좀 더 화려하다. 그러니까 그 8괘 태극기는 바탕을 붉게 색칠한 뒤 너희 나라 군주의 깃발로 쓰면 어떨까?"라고 새로운 아이디어까지 제안합니다.


제임스 선장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박영효는 4괘 태극기를 만들게 되고, 일본에 도착한 뒤 숙소에 게양합니다.

이로써 조선의 국기는 4괘 태극기로 확정되었죠.


박영효 태극기.webp.ren.jpg 조선 어기에 관한 오해



그런데 제임스 선장의 의견 가운데 "서양 국가들은 국기 말고도 군주의 깃발을 따로 둔다. 군주의 깃발은 국기와 비슷하되 좀 더 화려하다. 그러니까 그 8괘 태극기는 바탕을 붉게 색칠한 뒤 너희 나라 군주의 깃발로 쓰면 어떨까?"라는 부분을 주의 깊게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8괘에 붉은 바탕이라.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요?



규장각 어기.jpg 조선 어기에 관한 오해

그렇습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정체불명의 조선 어기입니다.

'8괘'에 '붉은 바탕'까지, 제임스 선장의 의견이 그대로 채택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제임스 선장이 '군주의 깃발'로 쓰라고 제안한 것을 따른듯, 위 깃발도 임금의 깃발을 뜻하는 어기(御旗)라 표기되어 있죠.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조선 어기로 알려진 위 깃발은 조선 시대 내내 쓰인 것이 아니라, 조선 말기인 1882년 9월 이후에나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최초의 태극기가 사용된 것이 1882년 5월이니, 오히려 태극기보다 늦게 만들어진 셈입니다.


게다가 조선의 국기를 태극기로 확정하는 과정에서 제임스 선장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국기이므로,

조선 어기가 태극기의 저본이 된 것이 아니라, 거꾸로 태극기 제작 과정의 부산물로써 조선 어기가 탄생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조선왕조실록 1902년 기사를 보면

"어기(御旗), 예기(睿旗), 친왕기(親王旗)를 지금 조성해야 하는데 일이 지극히 중대하니 따로 처소를 설치하고 궁내부(宮內府), 의정부(議政府), 원수부(元帥府)에서 이 일을 감동하게 하라."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기사에 언급된 어기가 규장각 어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조선 어기의 역사는 1882년에서 1902년으로 또다시 20년이나 미루어지게 됩니다.



즉, 조선 어기는 태극기의 원조나 원본인 게 아니라, 오히려 태극기보다 역사가 짧은 깃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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