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진코믹스

사실 위와 같은 투구는 어느 시기 뿅 만들어졌다기보단 켈트족의 뺨가리개형 투구가 로마 시장에 수입되면서 발전에 발전을 거친 최종진화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3세기 중엽까지 흔히 볼 수 있던 로마군의 모습입니다. 거의 중세 기사처럼 얼굴 전체를 가리는 후기형 임페리얼 투구가 3세기 로마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갈로-로마적 투구의 영향력은 3세기 중후반 들어 빠르게 사라지는데, 바로 로마군의 무장에서 '사산왕조'의 영향력이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사산왕조 페르시아와 북방 유목민들은 하나의 철판을 원형으로 주조하는 방식이 아닌 두개에서 네개의 철판을 이어붙여 원뿔형의 투구를 만드는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이러한 투구 제조방식은 근 백여년간 사산조와 전쟁을 벌여온 로마군에게 빠르게 흡수되었고, 이후 '원뿔형 투구(ridge helmet)'이라는 형태의 시초가 됩니다.

이 원뿔형 투구의 도입은 아주 빠르게 퍼진것으로 보입니다. 동방 속주에서 시작했음이 분명한 이 투구 양식이 이미 3세기 말이 되면 영국 노포크 주의 버르 성곽 유적에서 수십점이 발굴되기도 합니다. 위의 버르 성곽 투구의 예시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임페리움형 투구의 영향이 남은 유물은 두개 뿐입니다.

이 원통형 투구는 제조 방식에 따라 크게 '카스트룸 인테르키사형 투구'와 '베르카소보형 투구'로 나뉩니다. 이 이름은 당시에 불린 명칭은 아니고 훗날 발굴된 지역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거의 완벽한 고증의 인테르키사형 투구를 착용한 로마 군단병쨩)

인테르키사형 투구의 특징은 '대부분' 귀 부분이 열려있으며 크게 두개의 철판을 이어붙여 반원형으로 만든 뒤 가운데를 접합하는 식으로 제조했다는 점입니다.

옛 연구자들은 귀가 뚫려있기 때문에 조직적 수신호가 중요한 보병용이 아니었을까 하고 판단하기도 했지만, 이후 귀가 안뚫려있거나 틀림없이 기병이 주둔한 지역에서 다수 발굴되기도 한 점에 따라 최근에는 '형식상관없이 꼴리는데로 썼다' 쪽으로 여론이 모이고 있습니다.

투구 접합부를 고대 로마식 투구깃 혹은 금속 재질의 깃 모양으로 고정시킨 유물도 많은데, 단순 계급을 나타내는것 뿐 아니라 접합부를 직격해 쪼개지지 않도록 보강하는 역할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정석적인 형태의 베르카보소형 투구를 쓰거나 손에 든 모습. 옆의 바니걸은 무시하십시오)

베르카보소형 투구는 네 조각의 철판을 덧댄 형태입니다. 출토되는 유물 '대부분'에 귀가 뚫려있지 않고(뚫려있는것도 있음) 아무 장식이 없는 것도 나오지만 금,은,보석으로 치장한 유물도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인테르키사형과 다르게 코등이가 달려있습니다.

일부 황제들이 확실히 베르카보소형의 묘사로 추정되는 투구들을 썼다고 하며, 이후 7~8세기까지 영향을 받은 유물들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장교들만 쓴것은 아니고 하드리아누스 장성 인근서 엄청 나오기도 하거나, 값비싼 은 쟁반 부조에 베르카보소형 대신 인테르키사형 투구에 장식을 단 모습이 나오기도 하는점을 보았을 때 그냥 '장교 병사 할것없이 꼴리는 대로 썼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가 베르카보소형, 아래가 인테르키사형의 제작방식)

기억하세요. 아무리 행정력이 뛰어난 로마라도 군수 장비에 제식을 갖추진 못했습니다.

(제일 위가 인테르키사형, 둘째줄이 베르카보소형, 마지막이 흔히 게르만식이라고 하는 '스팡겔헬름')

많은 분들이 말기 로마 투구가 게르만의 영향을 받았다고 아시는데 실제로는 '말기 로마와 게르만 모두 따로 동방 투구의 영향을 받아 수렴진화했다' 에 가깝습니다.

로마와 게르만 모두 2~3세기까지는 켈트족, 갈리아 투구의 영향을 받은 갑주를 진화시켜나갔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사산조와의 오랜 전쟁에서 동방식 원통투구를 수입했고, 게르만은 게르만 대이주 중 스텝 지역에서 출발한 동남부의 고트족, 알란족, 사르마티아족의 영향으로 동방식 원통투구가 들어온 것이죠.

그렇기에 게르만식 원통투구인 '스팡겔헬름'은 로마의 투구와 다르게 여섯등분의 철을 덧대 투구를 제작했습니다.

(스팡겔헬름과 랑고바르드형 투구를 쓴 게르만족들. 귀는 무시하십시오)

스팡겔헬름 말고도 로마 투구를 어레인지하거나 스텝 유목민들의 찰갑투구를 받아들인 '랑고바르드계 투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저 멀리 브리튼 섬에는 빨개벗고 뛰어댕기는 고인물 나체전사들이 있기 마련이었지요..

오늘도 조야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최근에 그린것들)

네 가지 고증의 픽트족 드루이드

체크 '메이트'

조야한 그림도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