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노빠구 그자체, 영국 국서 필립공의 기구한 인생사(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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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260회 작성일 24-03-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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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P20170228104101034_P2.jpg 노빠구 그자체, 영국 국서 필립공의 기구한 인생사(1)
(노빠꾸 막말남 필립공 어록 모음집:

펨붕이들은 포텐에서 이 할아버지의 화려한 어록을 본적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암만 영국 국서(여왕의 남편)라지만 이렇게 막말해도 왜 아무도 안막음? 일반 민중이 못막는다면 집안에 다른 사람이라도 타이를수 있는거 아닌가? 같은 의문이 생길수도 있다.

하지만 이 할아버지의 기구한 인생사를 듣다보면 "저런 환경에서 저정도면 성인군자구나!" 하는 감탄사를 내지를 펨붕이가 대다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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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공의 인생을 이해하려면 우선, 그리스가 오스만 튀르크에서 독립했을때부터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유럽열강들의 지원에 의해 1832년 독립한 그리스, 하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나라의 국제를 어찌 정하냐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았다.

개중에서 왕을 두지 않고 국민의 대표가 직접 나라를 다스리는 공화제는, 현대의 인식과 달리 당대에는 유럽 별종 프랑스 정도 제외하면 저기 아메리카에서나 할만한 기묘한 체제였다.

그렇기에 그리스는 당연히 입헌이더라도 군주제여야 했고, 그리스의 왕을 누구로 삼느냐가 열강들의 주요 논점이었다.












George_I_of_Greece,_c.1912.jpg 노빠구 그자체, 영국 국서 필립공의 기구한 인생사(1)

하지만 그리스에는 왕위에 올릴만한 권위가 있는 집안이 남아있지 않았고, 주요 열강의 왕가에서 왕을 뽑기에는 특정 국가의 영향권에 그리스가 들어가기에 서로가 반대했다.

그런 복잡한 정치적 논의 결과, 초대 왕조는 바이에른의 오톤왕자였다. 하지만 그는 크림전쟁때 러시아편으로 줄을 잘못타는 큰 실수를 저질러 강제로 퇴위당했다

그 이후 2번째 왕가를 골라야했고 이를 가리는 투표가 열린다. 유력후보는 유럽의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아들이었으나 열강의 왕가가 그리스의 왕가가 된다면 그 영향력에 들어갈 것을 걱정한 다른 열강들의 반대에 포기하여야했다.

결국 유럽왕가와 두루 친하고 열강은 아닌 덴마크 왕가의 둘째 아들, 빌헬름 왕자가 1863년 그리스의 왕이 되었다. 그는 요르요스 1세라는 이름으로 그리스 왕으로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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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882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요르요스 1세의 넷째 아들 안드레아스는 혈연적으로는 하나도 섞이지 않은 나라였지만 자신이 나고 자란 그리스를 사랑하였고 자신을 그리스인으로 여겼다.

어느정도였냐면 왕실에서 다들 모어인 독일어나 외교언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하자, 가족끼리라도 우리는 그리스 인이니 그리스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애국심이 넘치던 왕자는 그 시대 귀족 젊은이들이 흔히 그렇듯, 자국 군에 입대하여 장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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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안드레아스 왕자는 영국 국왕의 대관식에 참여하기 위해 떠난 런던에서, 당시 영국 제1해군경(해군부 장관같은 지위)의 딸이었던 바텐베르크의 엘리스 공녀와 사랑에 빠진다.

유럽의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만큼 혈연이 널리 퍼진 덴마크 크리스티안 9세의 손자인 안드레아스와

유럽의 할머니인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인 엘리스 공녀의 사랑에 별다른 장애물은 없었다.

그 둘은 바로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State_Flag_of_Greece_(1863-1924_and_1935-1973).svg.png 노빠구 그자체, 영국 국서 필립공의 기구한 인생사(1)

문제는 여기까지만 들어서는 높으신 왕족분들의 평탄한 인생사 같으나 그리스의 정치적 상황이 개같이 억까를 걸어오기 시작한다.

우선 1909년, 한차례 쿠데타 소동이 있었고 정치적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안드레아스가 한차례 사임한다.

이후 1912년 발칸전쟁이 일어나자 장교가 부족해 어쩔수 없이 안드레아스를 복귀 시키지만, 1차 세계대전때 그리스 왕가가 연합국 측으로 참전을 거부하자 참전을 요구하던 정치권은 왕가를 퇴위시키고 전원 추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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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제1해군경)

그리고 1차대전때 단순히 그리스 왕가만 억까를 당한것이 아니었다. 앨리스 공녀의 아버지였던 루트비히 제1해군경은 적국인 독일계라는 이유로 보직에서 해임되었고, 영국에 남기 위해 자신의 성인 바텐베르크를 영어로 직역한 마운트배튼으로 바꿔야 했다.

거기에 더해, 러시아 혁명으로 목이 잘린 러시아의 황후 알렉산드리아는 앨리스 공녀의 이모였으니 부부의 입장에서는 시가고 처가고 풍비박산이 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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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개같은 나라였으나 부부는 왕족의 의무를 다했다. 앨리스 공녀는 발칸전쟁 당시 최전선에서 야전병원을 운영하며 그리스 군인들을 돌보았다.

안드레아스 왕자는 쿠데타로 한번, 세계대전후 퇴위로 한번 총 2번이나 쫓겨났으면서도 세계대전이 끝나고 다시한번 그리스에서 장교가 부족하다는 이야기에 기꺼이 군으로 달려갔다.













Map_of_Great_Greece_(Megali_Hellas)_Venizelos_c1920.jpg 노빠구 그자체, 영국 국서 필립공의 기구한 인생사(1)

안드레아스 왕자를 군으로 다시 군으로 부른 이유는 겨났던 왕이 복위했던 배경도 있지만, 그리스의 고토 회복 운동인 메갈리 이데아 때문이었다.

오스만이 1차대전으로 망했으니 그리스의 전통적 영토인 아나톨리아 반도 해안지역을 다시 차지해야한다는 민족주의적 주장이었다.

그렇기에 고위 장교로 대군을 움직일 교육을 받은 안드레아스는 중요한 인재였기에 이 전쟁의 핵심으로 군단을 이끌고 터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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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필 상대는 현대 튀르키예에서도 국부로 칭송받는 무스타파 케말이었다.

안드레아스의 군단은 순식간에 케말의 게릴라에 의해 모든 보급을 차단당했고, 굶주림을 호소하는 부하들을 본 그는 항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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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퇴위와 추방을 반복하던 인기 없는 외국인 왕가의 왕자가 대형 트롤을 해버렸으니 국민여론은 바닥을 찍었다.

결국 그는 군사재판에 끌려와 모욕 당했고, 그나마 그리스에서뿐 아니라 덴마크, 영국에서도 귀한 피를 이은 인물이었기에 추방형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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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앨리스 공녀와 어린 필립공)

그리고 그 개판의 한가운데인 1921년 그리스의 코르푸 섬 왕실 별장에서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필립공이 태어났다.

위로 딸만 4명에 막내 아들로 태어난 귀한 자식이었지만 집안이 문자 그대로 풍비박산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양육 과정을 바라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유럽의 수많은 왕가와 귀족들이 그들의 친척이었으므로 경제적 생활이 어렵진 않았다. 귀한 막내인만큼 부모는 물론이고 친척들의 사랑도 한몸에 받고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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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까지면 기구한 인생이라 하기 어려웠을것이다. 그렇게 그나마 망명지에서라도 나름의 평화를 보낸 가족들에게 새로운 재앙이 찾아왔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에서 자선과 봉사활동 그리고 종교에 몰두하던 앨리스 공녀는 어느 시점에서 그 종교적 열정이 과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나중에는 자신이 예수님의 사인이 담긴 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괴상한 주장을 하며 조현증 증상을 보이게 된다.

이를 본 친족들은 어쩔수 없이 그녀를 정신병원에 수감하였고, 이후에 어느정도 정신이 돌아온 후에도 그리스에서 수녀원 생활을 하며 은거하는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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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까지 정신이 나가버리자, 안드레아스 왕자도 버티지 못하고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그는 딸들의 결혼이 적당히 해결된후, 부모로의 역할을 끝냈다 생각했는지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내던져버리고 프랑스 남부로 떠나 술과 여자, 도박에 몰두하는 여생을 보내게 된다.

이것이 1930년. 필립공이 10살도 되기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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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때 필립공)


이렇게 한순간에 부모를 잃은 아이는 친가인 그리스 왕가는 워낙에 불안정 했으니 외가인 영국의 마운트배튼 가문에 의탁하게 된다.

당시에 외할아버지인 루트비히 해군경은 이미 사망한 후였고 외숙부인 조지와 루이 마운트배튼이 그의 후견인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외가에서 후견인으로 맡아줬을뿐, 자신의 집이라 할 장소가 없었기에 이 시기 필립공은 외삼촌 집, 외할머니 집, 시집간 누나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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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떠돌던 필립은 드디어 정착 비슷한것을 시도하는데, 둘째 매형 소유의 슐레 잘렘이라는 독일 기숙학교에 진학한 것이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1933년. 나치당의 광기는 이미 시작되었던 시기였고 잘렘에서도 그 광풍이 불고 있었다.

유대인에 대한 공격이나 나치의 전체주의적 모습을 이해할수 없었던 필립의 모습은 학교에서 이질적인 존재였고, 이대로 가다가는 필립이 위험할수도 있다 판단한 가족들은 필립을 스코틀랜드의 고든스턴 스쿨로 전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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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센 공가의 장례식)

이후에도 나름 정착해서 멘탈 잡고 잘 살아보나 했더니만, 세상은 필립에게 더 억까를 주고싶었나보다.

부모님의 공백만큼 누나들에게 의지했던 필립에게는 충격적이게도, 1937년 비행기 사고로 셋째누나 일가인 헤센 공작가문이 통째로 사망하였다. 누나는 물론이고 매형과 조카들까지 일가족이 몰살당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몇달 뒤에는 후견인 역할을 해주던 두 외삼촌중 조지가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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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의 필립공)

이런 씹억까 사이에서도 필립공은 크게 삐뚤어지지 않고, 사교적이며 쾌활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자신의 후견인인 마운트배튼 후작과 같이 영국 해군이 되는 것을 꿈으로 삼았다.

제1해군경을 지낸 외할아버지의 후광도 있고 그 또한 어려서부터 왕가, 군인집안의 자식으로 성장하였기에 그 능력 또한 모자란 부분이 없었다. 그는 어려움 없이 영국 해군사관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자 억까가 아직 남아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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