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설마 조선왕조실록이 구라를 적었겠냐고 ㅋㅋㅋ[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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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106회 작성일 24-05-0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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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야 '조선' 의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못하지만,


사실 조선은 전근대 국가 중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인 나라였다.


철저하고 효율적인 관료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행정력이 국가 전역에 미쳤고,


이 과정에서 쓰여진 기록의 분량과 세밀함은 광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 중 한 사례가 국경 밖에 있던 여진족에 대한 보고다.


조선의 영역 밖에 있던 이들임에도 호구조사를 했던 것마냥 세세한 정보까지 파악하고 있을 정도였다.



18b05eb3e2f515212.jpg 설마 조선왕조실록이 구라를 적었겠냐고 ㅋㅋㅋ
18b05ec6eab515212.jpg 설마 조선왕조실록이 구라를 적었겠냐고 ㅋㅋㅋ


이러다보니 조선왕조실록의 역사적 가치는 옛날 부터 인정 받았고


이미 20년도 전에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된 상태다.



7744dde91a1700ca0f373708d7821218.jpg 설마 조선왕조실록이 구라를 적었겠냐고 ㅋㅋㅋ



그렇기에 조선 시대를 연구하기 위해 제일 먼저 찾아보는 사료가 조선왕조실록이며,


국가에서 직접 실록을 편찬했기에 신뢰도가 굉장히 높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왕조실록에 적혀 있으면 그걸 그대로 믿어야 할까?



이 점에 대해 예전에 게시판을 떠들썩하게 했던 글을 한 번 가져와 보고자 한다.


d5a2cd9b32b75b69d8c0c41893213104.jpg 설마 조선왕조실록이 구라를 적었겠냐고 ㅋㅋㅋ

분명 이 내용은 광해군 일기에 기록된 내용이 맞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아무리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현의 군대가 자기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고 학살해놓고


이걸 도리어 반란군을 토벌한 것이라고 보고했고,


광해군 시기에 진상이 드러났는데 아무런 죄를 묻지 않고 지나갔다는 게 말이 될까?



애초에 조선에 있던 군대는 모두 왕의 명령을 따르는 군대였기에


저런 학살극을 반란군 토벌로 둔갑시킨 것은


빼도 박도 못하고 왕을 속이고 농락한 기군망상죄다.


47633.webp.ren.jpg 설마 조선왕조실록이 구라를 적었겠냐고 ㅋㅋㅋ


참고로 조선에서 기군망상죄의 처벌은 대개 사형이었다.


정말 저게 사실이었다면 광해군은 기군망상죄를 저지른 놈도 처벌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그 자체였다는 소리가 된다.



하지만 인조반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광해군의 폭주로 인한 반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러한 상황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조선은 논공행상이 철저한 나라였다.


설렁 당시에는 논공행상을 하지 못했을지라도


수십, 수백년이 지나서라도 이를 바로잡으려고 하였다.



이런 나라에서 정말 저런 짓을 벌였더라면


후대에 분명 이에 대해 단죄하였을텐데


광해군 일기의 저 기사 이외에는 이후 해당 내용을 이야기 하는 기사가 없다.



설렁 광해군이 당사자인 우복룡을 총애해서 이를 덮은게 아니냐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 시대에도 우복룡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는 점은


우복룡이 광해군과 정치적으로 엮여있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인조실록.jpg 설마 조선왕조실록이 구라를 적었겠냐고 ㅋㅋㅋ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 입장에서


광해군의 잘못을 부각하는 것 만큼이나 자신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일이 없는데



만일 우복룡이 다른 현의 병사들을 학살하고 거짓 보고를 했으며


나중에 진상이 드러났음에도 광해군이 이를 덮었다면



광해군이 얼마나 정치를 그릇되게 했는지 선전하기 딱 좋은 이야기인데


오히려 우복룡을 띄워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누군가는


'그래서 니 독자연구가 실록보다 더 정확하다는 거냐' 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명백히 거짓으로 판명난 실록 기사를 가져와 보겠다.



광해군 일기.jpg 설마 조선왕조실록이 구라를 적었겠냐고 ㅋㅋㅋ


광해군 시절 제주 목사가


류큐 왕국의 왕자 일행이 표류해오자


이들이 가진 보물을 탐내어 모조리 죽이고 몰수했다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는 이기빈이란 인물이 얼마나 탐욕스러운지 강조하며,


류큐 왕국의 왕자가 정절 있게 행동했음에도 살해 당해서 사람들이 애처롭게 여겼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에게 뇌물을 바친 덕분에 무사히 풀려났다는 결말까지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사실로 여기고 분통을 터뜨리고 류큐 왕자의 명복을 빌었다.



이러다보니 훗날 조선 후기 학자였던 정동유가


북경에서 류큐국 사신을 만나서 해당 이야기를 하면서 사과를 했는데,


정작 류큐국 사신들은 '무슨 소리냐' 고 황당해 했다고 한다.



1714643775.jpg 설마 조선왕조실록이 구라를 적었겠냐고 ㅋㅋㅋ



사실 생각해보면 실록의 해당 기사는


유난히 감성적을 자극하는 내용이 많았다.



우선 탐욕스러운 관리와


그리고 아무런 잘못 없이 정절을 지키는 고귀한 류큐 왕자


분명 조용히 처리했을 일인테도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 애처롭게 여기고


이런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뇌물을 받은 광해군이 덮었다는 결말까지



사실 조선의 경우 일찍부터 민족 개념이 형성되었음에도


인본주의적인 성향이 매우 강했기에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사람으로서 대우해주려고 했던 나라였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인 관료가 탐욕에 눈이 멀어


정절을 지키고 있던 외국인을 살해하고 물건을 빼앗는다면


조선인들 입장에서도 외국인을 동정하고 조선인 관료를 비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학살을 저질렀음에도 뇌물로 문제 없이 넘어갔더라면


해당 내용을 읽는 누구든지 분통을 터뜨렸을 것이다.



즉 이기빈과 광해군을 비판하기 위하여


오늘날로 치면 유아 성폭행 살인범 같은


도저히 옹호해 줄 수 없는 천인공노할 짓을 했다고 날조를 한 것이다.



분명, 조선왕조실록은 방대한 분량과 체계성


그리고 국가가 주도하여 편찬한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 신빙성이 높은 자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록을 쓴 것은 사관들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이해관계와 감정을 억누르고 쓴 사관들이 대부분이지만,


사관들도 사람인지라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이나 정치적으로 한 바탕 사건이 벌어진 이후라면


저런식으로 상대방을 음해하는 허위사실을 기재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1826a071da74aad8a.jpg 설마 조선왕조실록이 구라를 적었겠냐고 ㅋㅋㅋ



역사 연구에서 교차검증이 필수인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이런 일화들을 보면 옛 조상들이나 우리나 별 차이가 없는 거 같기도 하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정치적으로 싫어하는 이들이 정권을 잡기만 하면


외국에서 한국을 비판하면 오히려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고 좋아하지 않는가.



옛 조상님들도 욕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저런식으로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까지 끌고 와서 욕먹이는 데 쓴 거 보면


'태양 아래 새로운 것 없다니' 라는 코헬렛 구절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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