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오타니를 이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오타니의 후배, 사사키 린타로[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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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64회 작성일 24-03-2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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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a30d51600153932760947d70f86dd9fe122275.jpg 오타니를 이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오타니의 후배, 사사키 린타로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의 고교시절)


드래프트가 있는 리그에서 고교생, 대학생들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프로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특히, 고시엔이라는 전국민적인 대회가 남아있는 일본에는 '고시엔 스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원조 고시엔 아이돌이라고 불리며 '코지 피버'라는 열풍을 일으켰던 오타 코지를 시작으로 '밤비' 사카모토 요시카즈와 '다이스케 열풍'의 아라이 다이스케, '손수건 왕자님'이라고 불린 사이토 유키까지 많은 고시엔 스타가 아마추어시절부터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



스크린샷 2024-03-21 015632.png 오타니를 이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오타니의 후배, 사사키 린타로



하지만 동시에 이런 많은 관심은 유망주들에게 칼로 돌아오기도 한다. 최근 KBO에도 심준석과 장현석이라는 당해 최대어 투수들이 메이저리그 도전과 KBO 드래프트 참가라는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과정에서 간보기 논란으로 팬들의 입방아에 올랐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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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타로가 초청경기에서 보여준 4경기 연속 장외홈런)



이러한 일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며 2020년대 일본 고교야구 최고의 스타였던 사사키 린타로가 그 피해자였다. 사사키 린타로는 1학년 때부터 거포 유망주로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그가 1학년 때 기록한 홈런이 무려 50개였다. 이 50개라는 수치가 어느정도냐면 일반적으로 고교 3년 간 40개의 홈런 정도만 기록해도 드래프트에서 충분히 관심을 받는 장타력으로 평가받으며, 50개 정도가 넘으면 상위 지명도 노려볼만한 거포 유망주로 평가받는 게 일반적이다. 오타니 쇼헤이의 경우 고교 3년 간 통산 홈런이 56홈런이었으며, 사사키 린타로 이전에 고교 통산 홈런 최다 기록자였던 기요미야 코타로가 1,2학년 2년 간 78개를 기록했었다.




누군가는 3년 간 기록해도 상당한 관심을 받을 수의 홈런을 1학년 때에 이미 다 채운 사사키 린타로는 당연히 역대급 거포 유망주로 관심 받았으며 그의 경이로운 홈런 페이스에 많은 일본 야구팬이 주목했다. 사사키 린타로는 고교 3년 간 총 140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장타율 8할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으로 고교 생활을 마무리했다. 3년 간 엄청난 누적을 쌓은 사사키 린타로였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꾸준히 그를 따라다녔다.



'주루랑 수비에 하자있는 사실상 빠따 원툴아니냐?'
'기요미야 생각하면 쟤도 거품일 거 같은데'
'1학년 때가 커하잖아. 쟤는 백퍼 거품이다'



사실 이런 우려의 목소리가 마냥 억까인 것 만은 아니다. 실제로 주루와 수비에서 하자가 있다는 평가가 있기도 했고 184cm 113kg로 체형도 살집이 있는 거구형이다. 일본의 경우 고교생들은 학교 간 친선전들까지도 고교 통산에 들어가다보니 기록이 뻥튀기 되는 경향이 있는 게 맞긴하다. 그러다보니 몇몇 팬들 사이에서는 공식전 성적만 봐야한다는 의견도 나오곤 하는데 사사키 린타로의 경우 이 공식전에서의 성적이 상당히 아쉬운 편이었다.



사실 린타로가 1학년 때 많은 관심을 받은 이유가 단순히 50홈런을 기록해서 만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1학년 때 기록한 50개의 홈런 중 12개의 홈런이 공식전에서 기록한 홈런이었다. 하지만 그 해 12월 초에 양쪽 어깨 수술을 받은 후로 공식전에서의 활약이 상당히 아쉬웠다. 연습경기까지 포함한 경기에서는 1학년 때보다 좋은 성적을 기록하긴 했지만 공식전 성적으로 보면 1학년 때보다 절반 수준인 5개만을 기록했고, 3학년 때에는 단 1개에 그쳤다.





20231102-OHT1I51546-L.jpg 오타니를 이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오타니의 후배, 사사키 린타로



그러다보니 결국 '양학만 할 줄 아는 선수' '큰 대회에 나가면 버로우 타는 최대어 호소인'과 같이 고교생에겐 버티기 어려운 압박과 비난이 쏟아졌다. 또한 기요미야 코타로나 야스다 히사노리처럼 고교 시절 거포 유망주로 많은 관심을 받던 선수들이 프로에 와서는 나무 배트 적응에 애를 먹으며 성장이 더뎌 고교 거포 유망주에 대한 과대 평가라는 인식도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런 요소는 고려되어야 마땅하기에 그렇다고 치더라도 '하나마키히가시정도면 훈련량도 많을텐데 계속 살찌는 거 보면 스모 하는 게 맞을 듯?'과 같은 원색적 비난도 있었다.




vrwP1cu9cY2YL4Fg3aXpJtHyHIQWv4q0Pd5fNOzmBc_N1FzH6Nw5O-6uyBxRWdFh29PLhyYpX8dXi5Cs6iG7_dyueMBaveHAyZpbe7HcMPixWA6mpVPPAQSJ3tSFPFE5V21mL8fBok0zRhzro9YqaZ5KGXntRCX4uo_g4I6psZ3MrT8JCNM4TZp0VnnAkaE0.jpg 오타니를 이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오타니의 후배, 사사키 린타로
(타자와의 이적은 '타자와룰'을 만들만큼 임팩트가 있던 사건이었다.)


그리고 사사키 린타로는 결국 이런 비난을 견디지 못한 것인지 NPB 드래프트 참가가 아닌 미국 대학 진학을 선택하게 됐다. 사사키 린타로의 선배인 기쿠치 유세이나 오타니 쇼헤이, 둘 모두 졸업 직후에 드래프트 참가를 노렸지만 둘 모두 결국은 NPB를 프로 데뷔 무대로 삼았다. 최대어급 선수가 미국으로 진학하게 되는 건 타자와 준이치 이후 오랜만이었기에 충격을 받은 일본 야구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지하라 히데아키(氏原英明)라는 야구 기자는 이 사건에 대해 하나마키히가시 고등학교 다운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마키히가시를 대표하는 테마가 '도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HPC7LQKJ7JNOFICEME2KVKM6TQ.jpg 오타니를 이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오타니의 후배, 사사키 린타로
(하나마키히가시의 감독 사사키 히로시.佐木洋)


하나마키 히가시의 감독인 사사키 히로시는 2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때부터 고시엔 출전을 목표로 해온 지도자다. 그리고 사사키 히로시가 본인이 가르치는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의 실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다.'이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에게 가르침을 주면서 선수들이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게 해준다. 오타니의 만다르트 계획표 역시 이런 사사키 히로시 감독의 영향으로 탄생했다. 오타니 뿐만 아니라 기쿠치 유세이 역시 미국 진출을 희망했던 이유가 사사키 히로시 감독이 항상 말해오던 '항상 한 걸음 더 높은 목표를 계속 그리는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AS20210714002742_comm.jpg 오타니를 이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오타니의 후배, 사사키 린타로
(사사키 히로시가 키워낸 두 명의 메이저리거, 오타니와 기쿠치)



기쿠치 유세이와 오타니 쇼헤이, 둘 모두 고교 때부터 메이저리그라는 빅리그를 목표로 삼고, 그 목표를 위해 힘쓰게 만든 원동력인 셈이다. 사사키 히로시 감독이 강조하던 '목표 설정'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타니가 투타겸업이라는 전례에 구애받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우지하라 히데아키 기자는 말했다.





우지하라 히데아키는 일본의 고등학교를 나온 후 미국의 베네딕틴 대학에 진학했던 코바야시 코타(小林 巧汰)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과 미국의 차이를 말하기도 했다. 작년 고시엔에서 우승을 차지한 게이오 기주쿠 고교도 그렇고 몇몇 일본의 학교들은 스포츠에 올인하지 않는다는 말을 '문무양도'라는 말로 설명한다. 운동에만 신경쓰지 않고 공부도 신경쓴다는 취지에서 말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야구부 선수들에게 강조되는 건 스포츠적인 면모이다. 공부도 강조한다고 하지만 '문무양도'보다는 '오하아몽만 아니면 된다'에 가깝다.




이점에서 미국과 일본의 차이가 있다고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후 미국 대학에 진출한 코바야시 코타(小林 巧汰. 일본대학고교 - 베네딕틴 대학 출신)는 한 기사에서 말했다. 코바야시는 미국 유학 시절에 대해서 "중고등학교 때에는 언제 그만 둘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대학 때에는 야구가 이렇게 즐거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훈련시간이 짧고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였기에 그만큼 야구에 대한 의욕이 불탔다"고 말했다.



그 반면 학업에서는 하루 종일 공부를 해야했다고 말했는데 바로 이 부분이 그가 말한 차이다. 평균정도의 성적을 기록하지 못하면 훈련에도 참가할 수 없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러한 시스템에 대해서 그 누구도 '문무양도'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공부를 잘해야 스포츠를 할 수 있다'라는 학생이 그 후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느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한 가지 일에 목숨을 거는 걸 미학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런 불나방 같은 모습은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 선수에게 큰 리스크를 짊어지게 한다. 이번 사사키의 미국 도전은 단순히 야구의 측면에서 보면 성공이냐? 실패냐?로 결론날 수 있다.




기사.png 오타니를 이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오타니의 후배, 사사키 린타로



사사키 린타로의 선배인 오타니와 기쿠치 둘 모두 미국에 진출할 때 많은 우려의 목소리를 들어면서 진출했다. 오타니의 경우에는 이도류(투타겸업)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어느정도의 우려의 목소리가 따라올 수 밖에 없지만 기쿠치의 경우에는 약간 달랐다. 불안한 안정감 문제로 '기쿠치가 진출할 급이 되냐?'에 가까운 혹평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우려로 인해 기쿠치는 미국 진출을 결정했을 때 우지하라 히데아키 기자로부터 당시 이 질문을 들었다. "미국으로 건너가는 도전에 대해 두려움은 없으신가요?" 그리고 그 질문에 기쿠치는 살짝 미소를 띄우고 답했다고 한다.





"이번 도전에 앞서 성공은 약속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하지는 못해도 성장할 것은 약속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사키 린타로는 지난 몇년간 고교 야구계의 중심에 있었다. 여러 방면으로 화제에도 많이 올랐다. 드래프트 1순위의 재능이 맞는지, 타격의 재능이 확실해도 그 엄청난 타구에 비해 수비와 주루에서 마이너스 요소가 있었기에 괜찮을지까지 말이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사사키 린타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가 빠른 구속에 적응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우려의 목소리에도 사사키는 떠나는 걸 결정했다. 선배들처럼 '성공이 아니라 성장을 위해'



20240214-02193828-nnn-000-1-view.jpg 오타니를 이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오타니의 후배, 사사키 린타로



일본에 남는 건 린타로에겐 쉬운 선택지였을 것이다. 수비와 주루에서 불안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1순위 지명은 확실해보였고, 기요미야 코타로처럼 초반 몇 년 죽쑤더라도 고교시절의 인기만으로도 스타플레이어로서 많은 걸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린타로는 그런 편안하고 안락한 선수 커리어 대신 도전을 택했다. 그리고 이건 작성자 개인의 생각이지만 NPB가 아닌 MLB로의 도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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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햄은 미국에 갈 것임을 밝힌 고등학생 오타니를 붙잡기 위해 이런 말을 했다. '순차적으로 위를 향하는 NPB와는 달리 MLB는 도태되는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 약점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사사키 린타로에게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높은 벽에 도전하는 젊은 야구 소년의 결단에 실패할 거라고 비웃기보다는 성장을 위한 따스한 응원의 시선을 보내줘야하지 않을까. 누가 아는가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이도류라는 장르의 개척자가 됐듯이 사사키 린타로가 일본 야구 소년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될지.









여담 겸 TMI...


1. 겐다이 스포츠에서 칼럼을 기재하는 마쓰자키 키쿠야(松崎菊也. 게사쿠 작가)는 사사키 린타로에 대해 '지금은 배팅에만 특화되어서는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다. 나카무라 타케야(세이부의 거포)처럼 뚱뚱한 체형에도 수비나 주루에서 좋은 선수들이 있다. 체형 관리가 어려우면 스모로 종목을 바꾸는 게 낫다. 일반적인 비만체형보단 운동신경이 좋으니 50~60kg 증량해도 큰 문제 없을 거다. 이와테현의 첫 요코즈나(스모의 명예의 전당격인 경지)인 미야기야마(宮城山)처럼 하나린야마(花麟山)라는 시코나(선수로 나올 때 불리는 등록명)을 쓰면 본인을 홍보할 뿐더러 학교도 홍보할 수 있으니 오타니가 샅바 선물해줄 수도 있다.'라는 말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린타로의 페이스가 주춤하자 조롱하던 인터넷 워리어들 마저 '저건 좀...'이라는 반응을 보일 말을 언론이라는 곳에서 한 것이다. 원래 좀 이상한 거 많이 쓰는 곳이긴 하니 그러려니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반적인 반응은 '고등학생한테 말이 좀 심하다.'였다.





2. 코바야시 코타가 미국과 일본의 방식에서 가장 큰 차이를 느끼게 된 계기로 동급생 중 24라운드에 지명됐던 선수와의 대화를 일화로 소개했다. 실제로 지명 받은 선수는 올5(A/B/C/D/E 中 A에 해당하는 일반적으로 절평 90점 이상이라고 함. 아니면 지적 바람)의 학업 성적을 기록한 뛰어난 학생이었다. 코바야시는 그 선수에게 프로에 가는 것에 만약 프로에 가서 실패할 수도 있는데 두려움은 없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선수는 "실패해도 공부한 게 있으니 일자리는 충분히 있다. 프로에 가서 실패하면 의약계 학교에 들어가고 싶다"라고 답했다. 코바야시는 그 대답에서 이만큼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야구를 할 수 있으면 경기력도 좋아질 수 있겠다. 보험은 아니지만 실패해도 다른 길이 있다는 여유가 있어야 사람은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망치는 게 아니라 야구에서 실패해도 그 이외의 길로 자신의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야구를 마주할 수 있다라는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3. 하나마키히가시의 감독인 사사키 히로시와 이 글의 주인공이자 미국 대학 진출을 결정하게 된 사사키 린타로는 부자관계입니다.


b3d021309004dcec8b8ab9194ed11369b6f354df.jpg 오타니를 이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오타니의 후배, 사사키 린타로







* 틀린 부분 있을 수도 있는데 항상 많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코바야시 코타(1993년생)가 타카하시 슈헤이(1994년생)과 동급생이었다는데 현재의 일본의 운동부 문화가 아직도 저런 지는 모르겠네요. 자세히 아시는 분 계신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 쓰면서 제대로 찾아보면서 쓰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찾기가 어렵네요. 죄송합니다
* 다시한번 읽어주신 모든 유저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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