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낙랑군사]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볼만한 근거는 무엇일까?[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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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히헤헤햏ㅎ 댓글 0건 조회 79회 작성일 24-03-28 22:17

본문

* 이 글은 제가 네이버 카페 '부흥'에 연재한 [낙랑군사]의 일부를 발췌 및 수정한 것입니다.

*이 글 하나만 봐도 무방하도록 서술하였습니다. 이전 글을 안보셔도 상관 없습니다.


낙랑군의 위치에 대해서 제대로 소개해드리지 않는다면

[낙랑군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하여 낙랑군의 위치 논쟁이 벌어질 수 있으므로

(그러나 현재까지는 별다른 논쟁은 없었음),

연재 초기부터 학계에서 왜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다고 보는지를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문헌적 근거와 고고학적 근거가 있는데,

이번 글에서는 '고고학적 근거'만 소개하고자 합니다(문헌자료는 연재 완료 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읽기 귀찮으면 굵은 글씨만 읽으십쇼!



1. 중국의 주군현 제도부터 알아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전국을 크게 특별시, 광역시, 도 등으로 나누었습니다.

그중 하나인 서울특별시를 예로 들어볼까요.

서울특별시 안에는 다시 동대문구, 관악구, 은평구와 같은 '구'가 있지요.

그리고 그중 하나인 동대문구 안에는 청량리동, 제기동, 휘경동과 같은 '동'이 있습니다.


중국의 주군현 제도가 딱 이렇습니다.

전국을 여러 개의 '주'로 나누었고 주 안에는 여러 개의 '군'이 있구요.

군 안에는 여러 개의 '현'이 있습니다.


처음 중국이 한사군을 설치하였을 때 한사군은 모두 '유주'에 속해있었습니다.

그런데 유주는 한사군 뿐만이 아니라

요서군, 요동군, 발해군 등 여러 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단 여기에서부터 이미 한사군이 요서나 요동에 없었다는 게 밝혀집니다.

한사군이 요서나 요동에 있었다면 진짜 요서군, 요동군이 어디있는지 설명이 안되니까요.

그런데 이런 걸 떠나 오늘은 고고학 자료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2. 낙랑군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


처음 낙랑군이 설치되었을 때 낙랑군은총 11개의 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굵은 글씨와 밑줄이 그어진 곳은 관련 유적이 실제로 발견이 되어 위치비정이 된 곳입니다.

조선현(朝鮮),염한현, 패수현(浿水), 점제현(蟬), 수성현(遂成), 증지현(增地),

사망현(駟望), 둔유현(屯有), 누방현(鏤方), 혼미현(渾彌), 탄열현(呑列) 등 11개 현입니다.

그중에서 낙랑군의 치소가 있는 곳은 '조선현'입니다.


1) 평양 락랑구역 락랑동에는 '낙랑토성'이라고 이름붙여진 토성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주거지, 관청터, 병영터, 벽돌로 쌓은 우물 자리가 발견이 되고,

한 무제 당시부터 제조한 동전 '오수전'이 100여점 발견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낙랑예관(樂浪禮官)'이라 적힌 명문 와당이 발견이 되어

이곳이 바로 낙랑군치로 사용되었던 '조선현'으로 여겨집니다.


1.jpg [낙랑군사]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볼만한 근거는 무엇일까?

(낙랑예관이라고 적힌 와당이 평양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 낙랑토성에서 발견된 낙랑예관 와당을 놓고 '최리의 낙랑국' 유물이 아니냐고 반문하실 분이 분명 있을 겁니다.

별도의 글에서 최리의 낙랑국은 동해안가에 있던 정치체라는 것을 말씀드릴 예정인데,

그것보다도 더 확실한다른 고고학 자료를 소개합니다.


한나라 당시의 '군'의 최고 책임자는 '태수'였습니다.

아마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들은 '태수'라는 이름이 굉장히 낯익을 겁니다.

모든 군에는 '태수부'라는 조직이 있었는데요.

태수부 아래에는 호조, 법조, 병조, 창조, 의조 등 여러 조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속리(중하급 관리)의 규율을 담당하는 오관연(五官緣),

속현의 감찰을 담당하는 독우(督郵),

여러 조의 문서를 담당하는 주부(主簿)나 주기실(主記室)이 있었는데요.


여기서 우리는 '오관연'에 주목해야 합니다.

낙랑토성에 '낙랑대윤 오관연 고춘인'이라고 적힌 봉니가 발견되었고,

심지어 석암리 205호분에서는 '오관연 왕우인'이라고 적힌 나무 인장이 발견되었으며,

'오관연작(五官緣作)'이라고 적힌 명문전까지 발견이 되었습니다.

평양에서 낙랑군의 '오관연'이라는 직책이 적힌 유물들이 발견이 되었네요.


최리의 낙랑국 유물이 아니라

한나라의 낙랑군 유물이 발견이 되어서

학계에서는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고 봅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논의를 끝마쳐도 된다고 생각하나 더 소개해드립니다.



3) 낙랑토성에 발견된 걸 하나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중국의 왕망이란 사람은 서기 8년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왕망은 서기 9년에 '태수'라는 직책의 이름을 '대윤(大尹)'으로 바꿔 버립니다.

낙랑군 태수는 '낙랑군 대윤'으로 불리게 되었겠죠.

그리고 왕망은 서기 14년에는 낙랑군의 이름을 낙선군으로 바꿉니다.

그렇다면 낙랑군 대윤은 다시 낙선군 대윤으로 이름이 바뀌었겠네요.

그런데 '낙랑군 대윤'이라는 호칭이 사용된 5년이란 짧은 시기에 만들어진 '봉니'가 발견되었네요.


2.jpg [낙랑군사]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볼만한 근거는 무엇일까?

(평양 낙랑토성에서 발굴된 '낙랑대윤장' 봉니)

일제 시대에는 평양에서 봉니가 200개나 발견이 되어 중국 본토보다 더 많이 발견이 되었는데요.

대부분 일제가 봉니를 구입한다는 말을 듣고 주민들이 위조해서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낙랑대윤장 봉니는 딱히 다른 위조품들에서 보이는

위조의 증거가 없어서 학계에서 진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딱 5년만 사용된 '낙랑대윤'이라는 명칭을 주민들이 알고 위조할 거라 보이지도 않구요.

낙랑대윤장 봉니도 낙랑군의 위치 비정의 근거 중 하나가 됩니다.

계속해서 고고학 자료들을 더 보여드릴게요.



4) 이후 글에서 쓸 예정이지만 고조선의 재지세력들은

낙랑군의 속리(중하급 관리)로 임명이 되어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낙랑군의 묘제들은 중국과 구별이 되는 목곽묘, 귀틀묘 같은 것이 나오지만

막상 그 안을 파보면 고조선 계통의 세형동검과 중국 유적들이 섞여서 나옵니다.

고조선 멸망 후 재지세력들이 점점 중국화되어가는 현상이 무덤에서 드러나는 것이죠.


평양 낙랑구역 정백동 364호분 '목곽묘'에서는 '낙랑군초원사년현별다소ㅇ부'라는 목점에서

기원전 45년 낙랑군의 25개현(처음 11개에서 25개로 늘어남)의 인구가정확히 기재된 것이 발견이 되었습니다.

'목곽묘'라는 점에서 고조선의 재지세력의 무인데

낙랑군의 인구가 적힌 목점이 발견된 걸로 보아서

낙랑군의 속리였던 사람이 공무 수행상 작성한 문서,

혹은 그것을 별도로 베낀 문서를 무덤까지 가져간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보더라도 낙랑군이 평양을 중심으로 운영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평안남도 온천군 성현리에는 '성현리토성'이라고 이름 붙여진 토성이 있습니다.

내성, 외성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역시 관청터, 다수 건물지, 벽돌이나 돌로 깐 시설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유물로는 화분형 토기, 세형동검 검파두식이 출퇴되었는데

토성 동북쪽 150m 지점에서 '점제현 신사비'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3.jpg [낙랑군사]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볼만한 근거는 무엇일까?
(점제현 신사비)

점제현 신사비는 1914년 발견이 되었는데 '점제장'이란 글자가 보여

학계에서는 운성리토성을 낙랑군의 속현 중 하나인 '점제현'으로 비정합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발견한 것이라 믿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만일 저 비가 천 년 넘게 저 자리에 있었다면 왜 그 동안 발견을 하지 못했냐고 반문을 합니다.

하지만 저 비는 이미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비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1960년대에 발견이 된 중원고구려비도 가짜일 것인데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3. 진번군과 관련된 고고학 자료


진번군은 설치 당시에 15개의 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5개 현의 명칭이 모두 전해지지 않고'군치'가 잡현(縣)이라는 것과

기원전 82년 폐치가 되면서 소명현(昭明)·대방현(帶方)·함자현(含資)·열구현(列口)

·장잠현(長岑)·제혜현(提혜)·해명현(海冥)의 7현을 낙랑군에 이전한다는 것이 전해집니다(한서).

그리고 서기 3세기에 공손씨 세력은 이 지역에 '대방군'을 설치하는데요.

이 점을 염두해서 아래 자료를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굵은 글씨와 밑줄이 그어진 곳은 관련 유적이 실제로 발견이 되어 위치비정이 된 곳입니다.


1)대방현(帶方)부터 보실까요.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에서는 '지탑리토성'이라고 이름 붙여진 토성이 있습니다.

성벽 둘레는 2km이고 북쪽 170m 구간과 동쪽 150m 구간 정도만 현존합니다.

토성 내부에 대한 정식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중국식 명문전, 벽돌, 기와가 수습이 되었고

무엇보다 토성 서북쪽 5km되는 곳의 '전실묘' 무덤에서

'대방태수장무이(帶方太守張撫夷)'라는 명문전이 발굴이 되어

서기 대방태수를 지낸 장무이라는 사람의 무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탑리토성을 대방현으로 추정합니다.

참고로 낙랑 일대는 처음에는 목곽묘 -> 귀틀묘의 순서로

중국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고조선 계통의 무덤이 발견이 되나

(대신 그 안의 유물은 점점 중국화 됩니다),

서기 3세기가 되면 '전실묘'라고 하는 중국식 무덤들이 발견이 됩니다.

그런데 황해도에서 '대방태수 장무이'라는 명문전이 적힌 '전실묘'가 발견이 되니

이곳을 과거 진번군의 대방현이자 훗날 설치되는 대방군의 자리로 보게 되는 겁니다.



2) 그 다음은소명현(昭明)입니다.

황해남도 신천군 청산리에는 '청산리토성'이라고 이름붙여진 토성이 있습니다.

성벽의 둘레가 약 1.8km에 달하지만 지금은 서쪽, 남쪽, 북쪽 성벽 일부만 남았습니다.

토성 내부에서는 화분형 토기, 기와, 벽돌이 출토되었으며

토성 부근에서는 세형 동검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투성 주변에는 목곽묘, 전실묘가 분포되어 있습니다.

인근의 신천군 북부면 서호리에서 '태강사년이월소명왕장조(太康四年二月昭明王長造)'라는

명문전이 출토된 것을 보아 이곳을 진번군의 '소명현'으로 비정합니다.

'소명'이라는 글자가 분명히 보이니까요.


3) 다음은 장잠현(長岑)입니다.

장잠현은 위에 소개한 현들과 달리 아직 구체적으로 비정할 수 있는'토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황해도 신천군 남부면 봉황리에 있는 전실묘 1기에서

'수장잠장왕경(守長岑長王卿)'라고 새겨진 명문전이 출토가 되어

이 일대에 진번군의 '장잠현'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잠장'이라는 글자가 분명히 보이니까요.



4) 다음은 함자현(含資)입니다.

함자현도 아직 구체적으로 비정할 수 있는 '토성'은 존재하지 않으나

황해도 안악군 안악읍 유성리에서

'일민함자왕군묘(逸民含資王君墓)'라는 명문전이 출토가 되어

이 일대에 진번군의 '함자현'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함자'라는 글자가 분명히 보이니까요.



4. 임둔군 관련 고고학 자료


임둔군은 설치 당시 속현으로 15개 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5개 현의 명칭이 모두 전해지지 않고

'군치'가 동이현(東縣)이라는 것과

기원전 82년 폐치가 되면서 임둔군의 속현들이 모두 현도군에 이전되다는 것,

그런데 기원전 75년 현도군이 만주로 이전하면서

동이현(東)·불이현(不而)·잠대현(蠶台)·화려현(華麗)

·야두미현(邪頭味)·전막현(前莫)·부조현(夫租)의 7현이

낙랑군에 이전된다는것이 전해집니다(한서, 무릉서)


이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유물이 발견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평양 낙랑구역 정백동 2호분이라는 고조선 재지세력의 귀틀묘가 1961년 발견되었는데요.

그곳에서'부조장인'이라는 인장과 '고상현인(高常賢印)'이라는 인장이 함께 발견되고

'영시삼년(永始三年, 기원전 14년)'이라고 적힌 일산대가 발견이 되어

고조선 재지세력에 해당하는 고상현이라는 사람이 임둔군의 '부조현령'을 역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래 현을 다스리는 현령은 중앙에서 직접 임명해서 보내는 게 원칙이고

재지세력을 임명하지는 않는데(일명 회피제),

낙랑군은 중국의 '변군'이어서 이러한 원칙이 칼 같이 지켜지지는 않고,

재지세력을 현령으로 임명했다는 증거로 쓰이는 자료입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서울 사람이 부산시장을 하면서 쓰던 '부산시장인'이라는 도장을

서울에 있는 자기 무덤에 가지고 간 게 바로 저 유물인데요.

낙랑군 조선현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부조현'의 현령으로 임명되어 쓰던 도장을

조선현에 있는 자기 무덤에 가지고 간 게 바로 저 유물입니다.



4. 나오며


이렇듯 한반도에는 낙랑군과 관련된 유물들이 계속 발견이 됩니다.

위에서 보신 평양의 낙랑구역에는 무덤 3천기가 있는데요.

아직 제대로 발굴을 제대로 시작조차 안 했습니다.

이곳을 발굴하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자료들이 나올 거라 기대를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자료는 아마 인터넷에서 보긴 힘드셨을 겁니다.

제가 과거에 '부흥'이란 곳에 소개를 하긴 했는데 널리 퍼지진 않은 것 같더라구요.

고고학 자료는 상당히 강력한 자료입니다.

팸코는 긴 글을 싫어하신다고 해서 최대한 짧게 쓰려고 했으나,

그래도 최소한의 자료는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 글이 길어졌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한울리카 올림



- 출처-


오영찬, 낙랑군 연구, 사계절

동북아역사재단, 낙랑 문화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낙랑군 호구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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