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당회요 기사와 882년 정변설을 중심으로 본 발해왕 대위해의 재위년도 ...[6]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33회 작성일 24-04-20 07:54

본문


이번 글은, 전에 썼던 발해의 882년 정변설


https://www.fmkorea.com/6807940225



에 대한 보충설명으로서 쓴 글입니다.


발해의 왕계가 882년 정변으로 인해, 대야발게의 대현석에서 대조영방계의 대위해로 넘어갔다는

설을 제가 전에 882년 정변설과 몇몇 글에서 했었습니다.


그래서 882년에 정변이 일어나 대야발계의 왕계와 3성6부제의 정치체제가 뒤집어지고, 대위해가 대조영 방계로

추측되는 왕조를 열고, 3성6부제 중 선조성, 특히 그 중에서도 일개 기관인 문적원이 중요 국사 처리기관으로 격상된

것을 제가 이야기 했었습니다.


물론 882년 정변설이 현재 유력한 설이긴 하지만, 아직 확증을 완전히 못하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글로 어느정도 보충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글의 취지를 짧게 말해보자면, 발해왕 대위해는 통설로는 현재 895~906/907 정도로 재위기간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재위기간은 882년 정변설과 맞지 않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변설을 좀 더 보충해 줄 수 있는 자료로서,


895년에 당에서 대위해에게 조서를 보내서 관직을 추가해 준 사료를 가지고 와서, 대위해의 즉위년도가 895년이 아니다.

라는 주장을 하는 글입니다. 이것이 사실일 경우, 882년 정변설은 더 확고해지게 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qkfgodhkdrPqh.jpg 당회요 기사와 882년 정변설을 중심으로 본 발해왕 대위해의 재위년도 오류 가능성



이것이 현재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발해의 왕 계보도입니다.


882년 정변설이 반영되지 않은 계보도입니다.

오늘의 글이 사실이라면, 대위해는 저 글에서 재위년도와 계보 위치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번에 다뤄볼 문제는, 발해의 제 14대(?) 왕으로 알려져 있는 대위해(大瑋)입니다.

왜 ?표를 쳤냐면,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사람이 진짜 14대 왕인지, 아니면 기록이 누락된

왕이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위해도 사실 1940년까지 그 존재가 알려져 있지 않다가, 당회요에서

찾아낸 기록으로 왕이라는 것을 알아낸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중 대현석, 대위해, 대인선의 재위 년도는 전에 말씀드린 882년 정변설로 인해 부정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현석의 경우에는 요즘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882년 대정변설 때문에 재위기간이 871~882년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대위해의 경우 기존 재위기간으로 알려져 있는 저 기간에서 대현석의 재위기간 후반부를

먹어서 882~894 or 905 or 906으로 추정하기도 하고, 혹은대현석~대인선 사이에 기록이 말살되거나 누락된 왕이

있을 가능성도 보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제일 논란이 되는 인물은, 그나마 재위의 시작부분이 언제인지는 알수 있는

대현석, 재위의 끝부분이 언제인지 확실하며 타국 기록들을 통해 생각보다 중반부 이후의 기록이 꽤 남은 대인선을 뺀 대위해입니다.

기록 없기로 유명한데로는 TOP에 속하는 왕으로서, 유추할 자료조차 많지 않아서 아예 답이 없는 수준입니다. 직접 다룬 기록이라고는 『당회요』 에 있는 한가지 기록뿐인데요, 오늘 다룰 내용 역시 이 단 1가지의 단서에 맞춰서 다룰 내용입니다.




『당회요』 57권 中


乾寧二年十月. 賜渤海王大瑋書. 翰林稱加官合是中書撰書意. 諮報中書.


-건녕 2년(895) 10월에 발해왕 대위해에게 칙서를 내렸다. 한림(翰林,한림원)에서 (이 일로 )관직을 더해 주도록 하는 것을

헤아렸는데(따져 보았는데,)중서성의 뜻에 맞는지 중서성에 물어 보았다.



참고로 한림원은 뭐하는 곳인가 하면,



한림원(翰林院)은당나라때 처음 생긴 이후, 황실과 나라의 실록 및 문화·예술 전승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국정에 대해 논의했던 기관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학사를한림학사(翰林學士)라 부른다.


라고 합니다.



이게 대위해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세계에서 유일한 사료입니다.



그럼, 저는 이 사료가지고 어떤 것을 얘기하고 싶으냐. 하고 묻는 분들이 당연히 있을 겁니다.

저는 이 사료를 가지고,




대위해의 즉위년도는 894~895년이 될 수 없다




라는 것을 말하려고 합니다. 우선 그 이유를 간략하게 목차로 말하고, 세부설명 해보겠습니다.






1.보통 당에서 발해왕의 작위를 더해 줄때는 왕의 즉위시가 아니라 왕이 재위 중에 무언가 공을 세웠을 때나,당에게 좋은 일을 했을 때이다.

2.대위해가 894~895년에야 왕이 되었다면 897년에 쟁장사건을 일으킬 수가 없다.


3.대현석이 894년 or 895년까지 정상적으로 재위하다 죽고 대위해가 아무일 없이 왕위를 이었다고 가정하면,

882년부터 역사상에 보이는 발해의 돌변은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1번의 경우, 지금까지 발해왕에게 당나라에서 내려준 작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중 붉은색으로 표시된 관직은 즉위 당시에 받은 관직이며, 푸른색으로 표시된 관직은

즉위 이후에 기존 관직을 고쳐 받거나 즉위 이후에 더해서 받은 관직입니다.



1.고왕 대조영


-좌효위원외대장군(구당서, 신당서)

-발해군왕(구당서, 신당서)

-홀한주도독(구당서,신당서)


셋다 713년.



2.무왕 대무예(전부 구당서 기준)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


셋다 719년



3.문왕 대흠무(특별히 체크해놓지 않는 이상 구당서 기록)


-좌효위대장군 737년


-발해군왕 737년->발해국왕 762년


-홀한주도독 737년


-특진태자첨사->태자빈객(당회요) 742~756년 사이. 확실한 년도표기 없음.


-사공, 태위 766년~779년 대종 시기에 받음. 년도표기 없음.


-개원중습부위군왕


-좌금오대장군(좌효위대장군과 같은 직위라는 설과, 다른 직위라는 설이 있습니다.)


-검교태위(신당서) 762년




4.강왕 대숭린


발해군왕 795년->발해국왕(구당서, 당회요) 798년


좌효위대장군(책부원구) 795년


홀한주도독(책부원구) 795년


은청광록대부 798년->금자광록대부 805년(구당서, 당회요)


검교사도(구당서 본기) 805년


검교사공(구당서) 798년


검교태위(구당서) 806년





5.정왕 대원유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 발해국왕(구당서) 즉위당시인 809년




6.희왕 대언의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 발해국왕(구당서) 즉위당시인 813년



7.선왕 대인수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 발해국왕(구당서) 818년


금자광록대부(구당서)


검교사공(구당서) 둘다 820년




8.?왕 대이진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 발해국왕(구당서) 즉위당시인 831년




9.?왕 대건황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 발해국왕(구당서본기) 즉위당시인 858년




10.?왕 대위해


관직을 수여받았고 추가로 받았으나 무엇인지 알 수 없음.895년





위 항목을 잘 살펴보시면 알겠지만, 당에서 발해왕에게 즉위시에 주는 칭호는, 동일한 패턴을 보입니다.

초기에는 좌효위대장군이 있었지만, 그 이후 그것은 사라지고, 은청광록대부 or 금자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 발해국왕이 고정적으로 나옵니다. (이 홀한주도독과 발해국왕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옵니다.

그이전에 문왕때까지 받던 발해군왕 역시 훗날 기록에서 보이는 발해국왕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리고 그 외의 잡스러운(?) 관직들은 왕의 즉위시가 아니라, 발해랑 친선 제스처가 있거나 발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거나(762년에 안록산의 난 이후 당시 지원요구를 거부했다는 고마움으로 발해군왕을 발해국왕으로

올려줌, 선왕의 경우 당에 잦은 조공을 하여 그 보답으로 금자광록대부 검교사공을 더해줌.),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주는 양상(당이 발해군왕직을 주자 다시 설명하여 발해국왕직을 받아낸 강왕의 경우.)을 보입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나온 대위해의 경우를 살펴보면, 발해왕에게 계속 관습처럼 주어진

은청광록대부 검교비서감 홀한주도독 발해국왕모든 발해왕이 제수받았던 관직세트인 만큼, 대위해 역시

기본적으로 제수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895년에 받은 정체 모를 관직 역시 당연히 그냥 공짜로 선심쓸 리는 없고, 당에서

이유가 있어서 준 관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직들은 전례들을 보면 즉위할 때 주는 관직이 아닌 걸로 봐서,


이 때 받은 관직은 대위해의 즉위로 인해 당에서 준 관직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더하여'준다 라는 문장에서 보았을때, 대위해는 당연히 이전 왕들처럼 이전에 당에서 준 관작이 더 있었음이 추정됩니다.

그리고 당에서 관작을 더해 줄 이유가 있어서 대위해에게 기존의 관작에 더해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됩니다.




어쨌든 생각을 해보면, 이 벼슬은 역대 발해왕에게 주는 작위의 패턴을 생각해보면, 즉위 당시에 주는 작위세트에

들어가 있지 않으며, '더했다(加)' 라는 말을 보면 과거에 다른 왕들도 처음 즉위시에 받은 작위 외에 다른 것을 받거나,

그 작위가 업그레이드 될 때 더했다. 라는 이 표현을 쓰는것이 나옵니다. 이것들을 구당서에서 보면..



『구당서』 발해말갈전 中


-14년(798년)에 은청광록대부 검교사공을 '더'해( 銀靑光祿大夫 檢校司公) 수여하고 발해국왕으로 봉했다


위와 동일(742~755)


-천보 연간에 누차 특진태자빈객을 더했다.( 特進太子詹事賓客)


-대력 연간(766~779)에 계속하여 사공,태위를 '더' 수여받았다.(拜 司空太尉)


여기서의 가배의 배(拜)자는 원래의 뜻이 아닌, 벼슬을 주다라는 의미입니다.



위와 동일(806년)


-원화 원년 10월에 검교태위를 '더'하였다.( 檢校太尉)



위와 동일(820년)


-대인수에게 금자광록대부 검교사공을 '더'했다.( 大仁秀 金紫光祿大夫 檢校司公)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작위를 더했다는 문장 역시, '기존에 재위하고 있던' 발해왕에게 작위를 더해준 것을 얘기한다고 판단합니다. 위에 예시로 든 문장들 역시 전부, 더할 가(加)가 나올 때는 어김없이 이러한 상황이었습니다. 다만, 이 문장의 경우, 당서에 직접 있던 문장이 아니라 당회요에 있던 문장이라서 조정에서 발해왕 대위해에게 작위를 더해주는 것을 중서성에 맞는지 여부를 물어보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이야기를 그대로 적은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 이전에 대위해의 기록이 없다가, 895년에 처음으로 역사에 대위해의 기록이 나오기 때문에 대위해의 즉위년도는

그 연락시간을 감안한 894 or 895년이다. 라는 의견이 현재 다수의견에 속하고 있지만, 저는 상술했듯이 이 때 받은 작위가

기존 발해왕들 즉위당시에 주던 작위가 아니고, '더해 주었다' 라는 말이 들어간 것처럼 이미 왕으로서 재위하고 있던

발해의 대위해 왕에게 당에서 추가해준 작위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 작위는 무엇이었을까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보통, 발해왕들이 재위를 좀 하다가 무언가 당에 고마운 일을 하거나 칭찬하는 의미에서 많이 주었던,

검교사공이나 검교태위, 검교비서감 셋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상상해 봅니다.




여담인데,


마찬가지로 역사에 906년에 처음으로 언급이 되는 말왕 대인선 역시 906년에 사서에 첫 등장하는 관련 사료가

작위 수여나 계승을 표시하는 사료가 아니라, 사신을 보내서 조공하는 사료이기 때문에, 이 경우에도 대인선의 재위 시작기간이 906년이 아닐 가능성 역시 충분히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2번을 살펴보겠습니다. 897년의 쟁장사건은 정황상 897년 7월에 터진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대위해가 894년 혹은 895년에 왕위를 이었다고 치면, 895년 10월에 당에서 왕의 작위를 더해줬다손 쳐도

적어도 소식이 오고가고, 논의하는 시간을 빼면, 대위해는 이 경우 적어도 895년 5월쯤에는 왕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897년 7월까지는 2년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보통 빅사이즈의 도발이나 숙청을 한다고 하면, 적합하게 자리를 이었을지라도 오른 직후에는 우선 주변부터 장악을 하고, 자신의 권력을 안정화 시킨 다음에 주로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백제 의자왕이 왕위에 오른 642년이 아닌, 왕권을 탄탄히 하고난 655년에 대숙청을 행한 것이 있으며, 스탈린의 대숙청 역시 스탈린이 권좌에 오르자마자 바로 행한 것이 아니라 오른 이후 꽤 시간이 걸린 이후에 행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 역시 블록버스터급 도발인 목함지뢰 매설사건은 통신매체와 국가장악이 빠를 수 밖에 없는 현대인데도 권좌에 오른지 4년이상 지난 2015년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살펴보면, 보통 국가급 스케일의 도발이나 숙청은 정권이 안정된 다음에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이 안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큰 도발이나 숙청을 했다가는 국내의 반발이나, 미처 장악하지 못한 세력의 이탈 혹은 통수치기의 염려와, 진짜로 큰일이 날 경우 아직 완전히 국정을 장악하지 못했기에 감당이 힘들다는 명백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897년의 쟁장사건이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는 것은 이 당시 당에 간 사신이 무려 신하도 아니고, 왕자인 대봉예라는 것을 보면 추측이 가능합니다. 사신은 자국의 의견을 대표하기 때문에, 사신이 지시 없이 함부로 나대는 것은 당연히 자국에 손해가 됩니다. 철판 깔고 대놓고 물을 먹이는 이런 행위는 고대 시대라면 충분히 도발로 비춰지고도 남는 행위이며, 별 쓰잘데기 없는 이유로 전쟁이 난 사례가 꽤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발해의 의도가 당을 도발하는 것 까지는 목적이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신라를 명백하게 저격한 것은 확실합니다. 실제로 신라는 엄청나게 강경한 표현까지 쓰면서 노발대발 했습니다. 신라와 당이 비실거리는 상황만 아니었으면 심하면 전쟁이나 외교 항의가 들어올만한 사이즈였습니다.




'쟁장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https://www.fmkorea.com/6810052709



이 글에서 나온 '사불허북국거상표'를 보면 당시 신라가 얼마나 열받아 미쳐 날뛰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정도의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사건을, 사신으로 간 왕자가 자기 독단으로 저질렀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전쟁이 나지 않더라도 최소한 상대국의 거센 항의가 있거나, 그로 인한 불이익이 있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이게 진짜 대봉예 본인 독단으로 저지른 일이라면, 대봉예는 정신이 나간 것이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읽은 발해가 자국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자국의 국뽕을 고취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일환으로 백성들에게 사이다를 주기 위해 고의로 기획한 것이라면 얼추 맞아 들어갑니다. 성공하면 서열이 바뀌니까 신라에게는 완전히 굴욕이고, 거부받더라도 지금 보듯이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대에는 소식의 전함과 국가 장악력이 현재보다 훨씬 느렸으며, 적어도 몇 년 이상은 걸리는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왕위 승계는 받았을지라도, 겨우 2년으로 넓은 발해땅과 발해의 조정을 모두 확고하게 장악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게다가 대건황 말기~대현석 초기부터 적어도 대위해가 정권을 탈취하기까지 맛이 간 모습을 보였던 발해의 정세 역시 한몫 하고 있기 때문에, 평상시보다 정권을 장악하고 인정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오래 걸렸을 것입니다.


따라서 대위해는 895년 당시에 이미 왕에 오른지 꽤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고 추측합니다.





3번의 경우에는 대현석에서 대위해로 조용히 별일없이 왕위가 계승되었다면, 별 내분도 없는데 뜬금없이 바뀌는

조정의 서열변화(정당성의 몰락), 통치기구 변화(선조성,그 중에서도 특히 문적원이 나라의 중심 통치기구로 변함)도 없었을 것이고, 당연히 물갈이도 없었을 것이고, 이후 보이는 발해의 비정상적인 정치체제와 비 상식적인 외교결례 역시 나올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 설명에 대해서는, 글을 너무 길어지게 하지 않기 위하여



발해사 최대의 미스터리, 882년 정변설

-https://www.fmkorea.com/6807940225



이 글과,



'쟁장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https://www.fmkorea.com/6810052709


'등재서열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https://www.fmkorea.com/6812375697



이 두개의 글을 추가하여 부가설명을 하는 쪽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서, 1,2,3번의 설명을 종합해 보았을때, 결론을 말씀 드리자면,


저는 발해의 왕 대위해는 무언가의 작위를 더해 받았던 895년에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895년 그 이전에(882년으로 추정) 이미 왕위에 올라 있었으며, 895년 당시 추가된 작위는 즉위로 인해 받은 작위가 아니라,

즉위 이후에 당에 무언가 도운이 될 일을 하였기 때문에 작위를 받을 일이 있어서 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대위해의 재위기간은 882~?가 될 여지가

충분해 보이며, 894 or 5년 즉위설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대인선 906년 즉위설을 채택할 시 882~906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위에 설명한대로 이 설이 맞다고 하면, 발해의 882년 정변설에도 어느정도 당위성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평소 생각하고 있던 것에 뼈와 살을 붙인 것이고, 기록 자체가 부실하여 나름 추출해낸생각에 해석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썼습니다.


이 글에서 주장한 바가 맞을지 틀릴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제가 주장하는 이 글은 논의를 충분히 해 봐야 하는 설의 단계이므로,

이 글의 내용을 무조건적, 무 비판적으로 맹신하시는것은 추천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발해사의 의문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제가 나름대로 연구한 설이라고. 거기까지만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지금까지 쓴 글들



발해멸망전 관련


발해멸망전 고찰 1편. 멸망의 전조

-https://www.fmkorea.com/6837781243


발해멸망전 고찰 2편. 925년 이전의 발해 정치상황

-https://www.fmkorea.com/6840383814


발해멸망전 고찰 3편. 공백의 5년(913~918)

-https://www.fmkorea.com/6841829328


발해멸망전 고찰 4편. 918~924년까지 발해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상편)

-https://www.fmkorea.com/6844051571


발해멸망전 고찰 4편 (하편)

-https://www.fmkorea.com/6844149065


발해멸망전 고찰 5편

-https://www.fmkorea.com/6846820595


발해멸망전 고찰 6편 - 925년 반란설 상

-https://www.fmkorea.com/6849396028


발해멸망정 고찰 6편 - 925년 반란설 하

-https://www.fmkorea.com/6850618504


발해멸망전 고찰 7편 - 마지막 순간(상)

-https://www.fmkorea.com/6862001225


발해 멸망의 의문점 고찰 상

-https://www.fmkorea.com/6865875091


발해멸망전 고찰 7편 - 마지막 순간(중)

https://www.fmkorea.com/6866011369


발해멸망전 고찰 7편 - (하)

-https://www.fmkorea.com/6867818441


발해 멸망전 고찰 8편 - 상

-https://www.fmkorea.com/6885806282




발해멸망전을 제외한 다른 글들



5경 15부 62주에 대한 오류 가능성 검토

-https://www.fmkorea.com/6797762364


발해 국호는 발해가 맞습니다

-https://www.fmkorea.com/6801049872


무왕과 대문예의 형제싸움으로 인한 나비효과

-https://www.fmkorea.com/6804185836


발해사 최대의 미스터리, 882년 정변설

-https://www.fmkorea.com/6807940225


'886년 사건'의 진실에 대하여

-https://www.fmkorea.com/6809313438


'쟁장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https://www.fmkorea.com/6810052709


'등재서열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https://www.fmkorea.com/6812375697


전설과 설화로 살펴본, 발해 문왕 시기의 어두운 면

-https://www.fmkorea.com/6814511926


발해 멸망의 시발점, 폐왕 대원의의 정변 (1)

-https://www.fmkorea.com/index.php?mid=mystery&category=15037454&document_srl=6817289827


대원의 정변 2편

-https://www.fmkorea.com/index.php?document_srl=6817562512&s_comment_srl=6817568874#comment_6817568874


문왕과 강왕의 관계에 대한 미스터리

-https://www.fmkorea.com/6817851720


폐왕이 문왕의 가족을 몰살시켰을 가능성에 대해.

-https://www.fmkorea.com/6817911871


대원의 정변 3편

-https://www.fmkorea.com/6819337509


대원의 정변 4편

-https://www.fmkorea.com/6820973328


대원의 정변 5편

-https://www.fmkorea.com/6821034193


발해의 군제

-https://www.fmkorea.com/6822795205


발해 선왕(상편)

-https://www.fmkorea.com/6824049857


발해 선왕(하편)

-https://www.fmkorea.com/6824625532


대이진의 찬탈 가능성에 대한 글

-https://www.fmkorea.com/6826837680


선왕과 대건황의 공통점

-https://www.fmkorea.com/6832473378


경박호와 모란강 전설로 본 대건황-대현석 시기의 불안

-https://www.fmkorea.com/6833752945


여러분이 발해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12가지

-https://www.fmkorea.com/6892905999


발해에서는 과연 어떤 것이 났을까? 1편

-https://www.fmkorea.com/6894662330


발해에서는 어떤 것들이 났을까? 2편

-https://www.fmkorea.com/6895694013


발해에서는 어떤 것들이 났을까? 3편

-https://www.fmkorea.com/6903735052

발해에서는 어떤 것들이 났을까? 4편

-https://www.fmkorea.com/6907296365


발해땅이 추워서 농사가 안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https://www.fmkorea.com/6914123453


사료로 알아보는 발해의 고구려 계승의식

발해사신 수난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664,127건 1 페이지
커뮤니티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75155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0 03:04
19289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0 03:01
18439 연예인
쿠로
4 02:23
26360 연예인
쿠로
11 02:13
18505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6 02:11
40554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6 02:03
95592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4 02:00
34980 연예인
쿠로
4 01:58
79292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9 01:57
33478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0 01:56
44576 연예인
쿠로
3 01:55
58630 연예인
푸히헤헤햏ㅎ
6 01:54
95604 연예인
쿠로
2 01:53
24820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4 01:52
53800 연예인
고기먹는스님
3 01:50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