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여기서 제가 카틸리나의 난을 진압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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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히헤헤햏ㅎ 댓글 0건 조회 65회 작성일 24-03-2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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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jpg "여기서 제가 카틸리나의 난을 진압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제가 기원전 63년 집정관이었을 때..."


"카틸리나의 난" 당시, 카틸리나 도당의 2인자 렌툴루스를 비롯한 다섯 명의 반란음모 주동자들을 체포한 키케로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반란의 싹을 뽑겠다며 구금 상태였던 이 음모자들을 재판 없이 즉결처형했다.

카이사르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아무리 큰 죄의 혐의를 받더라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로마 시민의 기본권을 부정한

이 조치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무리수였지만, 원로원이 그 유명한 "원로원 최종권고"

- 즉, 공화정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일종의 초법적 긴급조치를 선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키케로는 과감하게 - 그리고 가혹하게 - 행동했다.

본격적인 쿠데타를 일으킬 힘을 잃은 카틸리나는 반란군 잔당들과 함께 도주하다가, 키케로의 동료 집정관

안토니우스 히브리다가 이끄는 로마 정부군에게 추격당해 전멸당했다.



이 때의 무리한 처형집행은 나중에 가서는 두고두고 키케로의 발목을 잡을 오점이 되지만,

적어도 당시에는 그에게 크나큰 명성을 안겨 주었다.

카틸리나 도당의 처형을 집행한 키케로가 토론의 광장을 거쳐 집으로 귀가할 때, 민중은 등불과 횃불을

대낮같이 밝히고서 "로마의 수호자"에게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로마 정부의 고관들은 키케로를 둘러싸고 함께 걸으며 그의 귀가를 배웅했으니, 마치 개선식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소 카토의 제안으로, 키케로는 심지어 국부國父 - 파테르 파트리아이Pater Ptriae 라는 더없이 명예로운 공식 칭호까지 받았다.








800px-De_Gaulle-OWI.jpg "여기서 제가 카틸리나의 난을 진압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요. 제가 기원전 63년 집정관이었을 때..."


그러나 집정관직에서 퇴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키케로는 딱히 더 악행을 저지른 게 없었는데도

곧 많은 이들에게 미움을 사고 말았다.

평생 칭찬과 아첨에 더없이 약했던, 때려죽인대도 구제불능의 나르시스트였던 키케로는

온 로마에서 쏟아지는 무수한 악수의 요청에 너무나 들뜬 나머지

원로원이든 민회든 법정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가 카틸리나 도당의 반역을 진압했던 이야기를

뜬금없이 장황하게 자랑해대, 모두가 키케로의 연설에 "운명처럼 따라다니는" 자기 자랑에 짜증을 내게 만들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책과 글을 통해서도 자화자찬을 도무지 멈추질 않았는데

로마사의 권위자 필립 마타작 교수는 "고대의 역사가들이 하나같이 키케로의 시를 저평가했던 걸 생각하면,

자화자찬 일색이었던 그의 시들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한 건 그를 위해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비꼬기도 했다.





- 신복룡 역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中 "키케로"편,

필립 마타작 저 "로마 공화정"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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