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신라가 백제 통수 친 게 맞을까?[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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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84회 작성일 24-03-26 17:02본문
흔히 진흥왕이 성왕 배신 때리고 모가지 딴 걸로 알고 있는데 이와는 다른 기록이 있음.
왜냐하면 기록에는 한강 하류를 공격했다고 나오지 않기 때문임.
신라의 한강 하류 기사는 삼국사기와 일본서기가 있는데
삼국사기에서는
'取百濟東北鄙(백제의 동북 지역을 취했다)'
일본서기 흠명기에서는
是歲 百濟棄漢城與平壤 新羅因此入居漢城 今新羅之牛頭方·尼彌方也
이 해(552년) 백제가 한성과 평양을버렸다.이로 말미암아 신라가 한성에 들어가 살았으니, 현재 신라의 우두방, 니미방이다.
라고 나와서 의문이 있음.
그리고 성왕의 목을 벨 때도 신라 장군 고도(도도)(일본서기에는 말먹이주는 노예로 나옴司馬奴)에게 천한 것에게 목이 잘릴 수 없다고 하지만 맹세한 것을 어기는 자는 노奴의 손에 죽는다고 성왕을 배신자로 지명하고 있음.
일본서기는 백제의 사서를 일본에게 유리하게 왜곡했다고 보여지는데 백제,일본 관점 역사서에도 성왕이 배신한 것처럼 나오니 오히려 백제가 뭔가를 한 것 일 수도 있을 것 같음.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왕인 명농(明,성왕)이 가량(加良)과 함께 와서관산성(管山城)을 공격하였다. (중략)
신주(新州) 군주인김무력(金武力 김유신의 조부)이 주(州)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하였는데, 비장(裨將)인 삼년산군(三年山郡)의 고간(高干) 도도(都刀)가 급히 쳐서 백제왕을 죽였다
일본서기 흠명기엔 더 자세하게 나옴.
신라는 명왕(明王, 성왕)이 직접 왔음을 듣고 나라 안의 모든 군사를 내어 길을 끊고 격파하였다. 이 때 신라에서 좌지촌(佐知村)의 사마노(飼馬奴) 고도(苦都)【다른 이름은 谷智이다】(중략)
얼마 후 고도가 명왕을 사로잡아 두 번 절하고 "왕의 머리를 베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명왕이 "왕의 머리를 노(奴)의 손에 줄 수 없다"고 하니, 고도가 "우리나라의 법에는 맹세한 것을 어기면 비록 국왕이라 하더라도 노(奴)의 손에 죽습니다"라 하였다.【다른 책에는 "명왕이 호상(胡床, 의자)에 걸터 앉아 차고 있던 칼을 곡지(谷知)에게 풀어주어 베게 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결론은 나도 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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