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재즈를 가장 재즈답게 담아낸 레이블, 블루 노트[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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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411회 작성일 24-02-21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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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재즈를 가장 재즈답게 담아낸 레이블, 블루 노트

글 - 김광현 님




2024년은 재즈 레이블 블루노트 창립 85주년이 되는 해다.


음악을 음반보다 음원과 스트리밍으로 듣는 21세기에


재즈 레이블이 음악팬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의문이지만


블루노트는 재즈와 동의어로 쓰이는 매우 중요한 레이블이다.


그래서 재즈를 막 듣기 시작하는 초심자나


마니아 모두에게 추천하는 레이블이다.


20여 년 전부터 진행된 음반사의 인수합병으로


레이블의 오리지널리티가 희미해진 지 오래지만


다른 장르보다 재즈 레이블은 그 틈새에서


고유의 가치를 최대한 유지하고 있다.


특히 모던 재즈의 보고(寶庫)인 블루노트는 85년이라는 세월 동안


몇 번의 위기를 극복하며 재즈의 주요 레이블로


시대를 이끌고 주요작을 선보이고 있다.








10년 전인2014년은


블루노트가 EMI 뮤직에서 유니버설 뮤직 그룹으로 합병된 후


앨범 발매가 이루어진 첫해였다.


이미 블루노트는 1980년대부터 5년 주기로 다양한 편집 앨범,


리마스터반 재발매, RVG 에디션 등을 선보여 왔는데


85주년에는 어떤 기획들을 준비할지 궁금해진다.


재즈를 처음 듣는 사람들에는 다소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는


블루노트 음악이지만 어떤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


고전을 빼놓을 수 없듯 재즈 팬들에게 블루노트는


반드시 들어야 하고 반드시 소장해야 하는 재즈의 고전이다.






image.png 재즈를 가장 재즈답게 담아낸 레이블, 블루 노트


새로운 역사, 블루노트의 시작

블루노트는 알프레드 라이언(Alfred Lion, 1908~1987)으로 시작된다.


독일 베를린 출신 유대인으로 미술과 건축 관련된 일을 하던


부친의 뒤를 이으려 했던 평범한 소년이었으나,


미국에 이민을 가게 되면서 새로운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1938년 겨울, 1223일 뉴욕 맨해튼 카네기 홀에서


존 해먼드가 기획한 영가에서 스윙까지’(From Spiritual To Swing)라는


전례 없는 콘서트를 목도한다.


카운트 베이시, 헬렌 흄즈, 조 터너 등 스윙 시대 거장들을


한자리에 모은 행사로 독일에서 건너온 청년에게


또 한 번의 문화적 충격을 준다.


열혈 재즈 팬이었던 알프레드 라이언은


이제 단순히관객이기를 거부하고 공연에서


‘Jumping Blues’를 연주한 피아니스트 미드 럭스 루이스와


앨버트 애먼스에게 음반 제작을 제안하고 이를 성사시킨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2주 후인 193916일 금요일 오후,


소년 알프레드 라이언을 사로잡았던


열정의 부기우기(Boogie Woogie, 초기 재즈의 피아노 연주 스타일)가 연주되었고,


이 녹음은 블루노트의 위대한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가 됐다.





image.png 재즈를 가장 재즈답게 담아낸 레이블, 블루 노트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이 둘의 피아노 연주는


인기를 얻어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 번째 녹음은 프랭키 뉴튼, 테디 번, 앨버트 애먼스 등이 참여한


포트 오브 할렘 재즈멘’(Port Of Harlem Jazzman) 세션으로


193947일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두 달 후에는


[Port Of Harlem Seven]이란 앨범을 녹음하는데


이때 시드니 베세의 명연이자 블루노트 레이블이


성장할 수 있게 하는 명연 ‘Summertime’이 탄생한다.


이때 알프레드 라이언은 조력자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깨닫고


블루노트 레이블에 빠져서는 안 될 인물


프랜시스 울프(Francis Wolff, 1907~1971)와 의기투합한다.


알프레드 라이언과는 베를린 시절부터 재즈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던


죽마고우로 첫 녹음이 있던 1938년부터 유명을 달리하는 1971년까지


사진, 디자인, 그리고 프로듀서로 블루노트의 한 축을 담당한다.













Art Blakey & Clifford Brown A Night At Birdland - Quicksilver



모던 재즈의 증언자,

그리고 블루노트 콜렉션

블루노트는 부기우기 녹음을 시작으로


1940년대엔 비밥의 한복판에서 전설들을 기록해 나갔다.


1950년대에는 비밥이 화음을 단순화하고


그루브를 가미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나가는 것을 감지하고 발을 맞추었다.


섭외, 녹음, 디자인, 홍보 등 모든 면에서 다른 레이블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완벽주의를 추구했다.


모던 재즈의 정수 하드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


블루노트는 재즈의 증언자답게 하드밥의 걸작들 쏟아냈다.


가장 상징적인 녹음은 1954221일 재즈 클럽 버드랜드에서


루 도널드슨(알토 색소폰), 클리포드 브라운(트럼펫), 호레이스 실버(피아노),


컬리 러셀(베이스), 아트 블래키(드럼)가 가진 라이브로,


이 밴드는 이후 재즈 사관학교라 불리는 재즈 메신저스로 이어진다.


특히 당시 버드랜드에서 사회를 맡았던 피 위 마켓의


카랑카랑한 오프닝 멘트는 그 어떤 악기 연주보다


진한 그루브를 담고 있기도 하다.


피 위 마켓의 멘트는 40년 후 애시드 재즈의 열풍을 몰고 오는


어스쓰리의 ‘Cantaloop (Flip Fantasia)’에 샘플링되기도 한다.






image.png 재즈를 가장 재즈답게 담아낸 레이블, 블루 노트

젊은 날의 호레이스 실버


비록 당시 블루노트 음반들의 상업적 가치는


미비한 수준이었지만 레이블의 설립자 알프레드 라이언은


낙담하지 않고 재능 있는 연주자를 발굴하고


레이블의 음악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덕분에 블루노트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는


신예 행크 모블리, 리 모건, 도널드 버드, 소니 클락, 케니 버렐,


폴 챔버스 등이블루노트에서 앨범을 발표할 수 있었다.


1957년 블루노트는 사무실을 웨스트 63번가 47번지로 옮기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는다.


그곳에는밥 와인스톡(Bob Weinstock,1928~2006)


운영하는 재즈 레이블 프레스티지(Prestige Records)가 있었는데,


그 덕에 두 레이블 사이에 연주자들의 교류가 잦아


스타일이 유사한 앨범이 동시에 출반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블루노트와 프레스티지 간 선의의 경쟁은 1950년대 후반,


본격적인 스테레오 시대를 맞아 선명한 재즈 사운드로 만개한다.


재즈 팬들에게는 이후 10년간이 가장 소중한 시기이기도 하다.
















재즈 마니아들은 블루노트에서 나온 앨범(연주)을 좋아하고,


그 음반을 수집한다. 1990년대 이후 리마스터 재발매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앞서 말한 대로 2014년부터는


블루노트 로고와 유니버설뮤직 로고가 나란히 찍힌 앨범이 출시되고 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블루노트 앨범은 사랑받고 있는데


수집할 때는 일련번호(BLP)를 보고 수집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명반들이 집중된 1500시리즈와 4000시리즈가 주요 수집대상이다.


1500시리즈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Volume 1](1501)을 시작으로


99(1553번은 없음)이고, 4000시리즈는 소니 롤린스의


[Newk's Time](4001)을 시작으로 총 100장이 있다.


재즈 팬이라면, 그리고 블루노트 팬이라면 199개의 타이틀을 모으는 것이


1차 관문일 것이다. 참고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스테레오 앨범에는 일련번호 앞에 ‘8’자를 더한


BST 넘버로 표기되어 있다.










image.png 재즈를 가장 재즈답게 담아낸 레이블, 블루 노트

image.png 재즈를 가장 재즈답게 담아낸 레이블, 블루 노트

블루노트의 위기, 그리고 재도약

보사노바의 유행과 로큰롤의 공세에 좌초해 있던


1960년대 재즈계에 블루노트는 소울 재즈를 선보였다.


호레이스 실버의 [Song For My Father]


리 모건의 [The Sidewinder] 같은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앨범이1963년에 발표됐다.


해먼드 B3 오르간 하나로 소울 재즈의 대표선수가 되는


지미 스미스의 출렁이는 그루브는 1960년대 재즈사에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젊은 청중들은 밥 딜런, 비틀스, 지미 헨드릭스 음악에 빠져


재즈를 잊은 지 오래였고, 거기에버드(찰리 파커, 1955년 사망) 이후


재즈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는 존 콜트레인의 이른 사망(42, 1967)으로


재즈는 중심축이 흔들리는 충격을 받게 된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일렉트릭 퓨전 재즈로 재빠르게 선회했고,


모던 재즈의 매너리즘을 타계하고자 했던


에릭 돌피, 오넷 콜맨, 세실 테일러, 앨버트 아일러, 앤드류 힐 등은


치열한 프리 재즈 도모했다. 이렇듯 1960년대 재즈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마냥 모든 곳에서


일촉즉발의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허비 행콕의 데뷔 앨범 - Takin'Off



블루노트는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담아냈고,


열린 자세로 재즈의 조 헨더슨, 도널드 버드, 허비 행콕,


웨인 쇼터, 칙 코리아의 성공적인 데뷔 또한 주선했다.


그러나 1964년 영국 청년 4(비틀스)의 미국 침공 이후


재즈계는 전반적으로 움츠러들었고 블루노트는


1960년대 중반부터 눈에 띄게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설상가상으로 1965년에 리버티 레코드에 블루노트가 매각됐다.


은퇴를 결심했던 알프레드 라이언은 1967년에 사임하고 만다.


알프레드 라이언을 중심으로 블루노트 사단이 간직해온


탁월한 혜안과 재즈(레이블)의 위기는 별개의 문제였다.


이 난관을 헤치며 프랜시스 울프가 블루노트에 남아 이끌어갔지만


1971년에 세상을 떠나 블루노트의 화려한 전성기가 일단락되고 만다.










image.png 재즈를 가장 재즈답게 담아낸 레이블, 블루 노트


새롭게 블루노트를 맡은 조지 버틀러(George Butler, 1931~2008)


그동안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시대 흐름에 맞게 퓨전 색을 더했다.


도널드 버드와 바비 험프리의 앨범을 제작한


래리 미젤과 폰스 미젤 형제,


그리고 얼 클루와 노엘 포인터의 앨범을 제작한


데이브 그루신과 래리 로젠 같은 프로듀서와 함께했다.


그러나 음반업계의 불황은 이런 블루노트의


대중적 노선마저 집어삼켰고, 1981년에 블루노트는 제작 중단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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