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중세 초(5~8세기) 서유럽의 몇 가지 특징[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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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307회 작성일 24-02-21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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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png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중세 초(5~8세기) 서유럽의 몇 가지 특징
(대충 쓴 글이라 음슴체임.. 양해 바랄게)

로마 후기와 중세 초를 가르는 여러 가지 특징 중에서 개인적으로 큰 특징은 정부임. 물론 둘 다 현대 사회의 정부랑 비교할 건 아님. 어디까지나 당대 기준인데.. 거기서 당대 로마 제국 정부가 수행하던 업무와 능력과 여러 게르만 왕국 정부가 하는 걸 비교하면 굉장히 큰 차이가 남.


물론, 게르만 왕국들은 로마인을 학살하지 않고 지배했음. 그리고 로마인 유력자와 협력하고 로마인 행정 체계를 바탕으로 세금을 걷었음. 지방 정부 시스템에 크게 손을 대지 않았고, 지방 정부 수반(백작, 주교)를 유력자들 사이에서 선출하는 조율자 역할도 맡았음. 즉, 게르만 왕국들은 대체로 로마인 지방 정부를 고대로 흡수했던거임. 자기들이 할 줄 모르거나 미숙한 업무는 예전부터 해오던 지방 향리, 관리들에게 맡긴거고.

다만, 로마 제국처럼 거대하고 효율적인 예산을 운영할 능력은 없었음. 기본적으로 왕국들은 이베리아, 갈리아, 이탈리아 등 지역 단위로 쪼개졌음. 물론 이 지역들도 솔직히 작은 규모는 아님. 하지만 제국이 다스려온 것에 비하면 너무 작은 거임. 즉, 제국 정부 규모의 부를 축적할 기반 자체가 없던거지.


거기에 게르만족은 거의 대부분 중앙 권력이 그렇게 강하지 못 했음. 정복의 기반이 되는 군대는 대체로 귀족 연합군이었고, 새로운 권력 기반으로 로마인 유력자들이 포함되었지만, '중앙'이라 부를 수 있는 '왕실'의 권력 기반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음.물론 왕실은 왕국 내에서 가장 많은 토지와 자산을 가진 존재지만, 마치 주식회사에서 5~10%의 주식을 가진 주주들 사이에서 11% 언저리의 주식을 가진 최대 대주주 느낌? 결국 89%의 귀족과 유력자를 컨트롤 못하면 안되는 시스템이었던거임. 결국, 정부와 왕실은 작은 기반에서 효율적인 수취조차 할 능력이 없었던거야.


사실 이런 시스템에서도 자원의 생산량만 많으면 비효율적인 수집 방식으로도 부유한 예산을 구축할 수 있음. 부유하면 귀족과 자치 정부에게서 조금씩만 받아와도 국가적으로는 엄청난 부가 쌓일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로마 후기 시절부터 이어진 소빙하기와 사회적 혼란*은 분명히 부의 근간이 되는 농업 생산을 서서히 줄여갔음. 여기에 잦은 내전, 사회적 폭력성은 게르만족의 학살이 없었을 뿐이지 경제적 성장을 저해했을 가능성이 높음.게다가 프랑크 왕국의 경우, 정부의 계승 모토가 분할 상속이었어. 그래서 왕자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분열했고 각 정부는 주도권을 두고 내전을 자주 벌였는데, 이런 소모는 경제적 악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상당하지..


* 여기서 사회적 혼란은 사회가 대체로 폭력적이고 상무적 사회로 변모하며 사적 제재, 분쟁이 늘어남을 의미. 다만 무질서는 아님.


그렇기에, 제국이 했던 것처럼 막대한 예산을 바탕으로 식량을 사드려 빈민을 구제하고, 상비군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공업 수요를 조성해 지역간 교류를 이끌어내는 '정부에 의한 투자'가 많이 감소함.


물론 그 기능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님.


여전히 로마인이 운영하는 시정부가 살아있었고 왕국은 지역화 되며 작아졌을 뿐 정부를 유지하기 위한 물자 수요를 충당하고자 지역적인 생산을 이끌어낸 건 사실임. 예를 들어, 6~7세기까지 서지중해에서는 '로마시'를 중심으로 교역망이 살아있었음. 물론 7세기 말엽에 이르면 거의 소멸하는 수준에 이르지만 지역적인 수운이 계속 남아있었던거임.


여기보다 더 활성화 된 건 라인강과 북해 무역이었음. 대체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부의 규모가 감소했지만 네우스트라시아와 라인강 일대는 그렇지 않았음. 애초에 규모가 좀 작은 것도 있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풍요로운 토지와 그것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요가 발생하면서 교역과 거래가 활성화 된거지. 엄청 큰 규모는 아니지만, 제국 시절보다 증가했다는 건 고무적이었음.

1111.png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중세 초(5~8세기) 서유럽의 몇 가지 특징

하지만 로마 제국이 보여주던 막대한 물량에 미칠 수가 없었어. 지역적 규모로 정부 크기가 줄어든 걸 감안해도 말이야. 앞서 이야기 했듯이 정부가 부의 성장을 주도하지 않고, 사회가 안정적이지 못한게 어느정도 발목을 잡은 감이 있어. 거기에 여전히 농업이 마냥 좋은 환경에 있던 건 아니니까.


여기서 주목할 건, 중세 초 장거리 교역의 감소, 특히나 서지중해 교역량의 감소는 대체로 도기나 옷감 같은 생필품 교역량의 감소였어. 말했듯이, 군과 빈민을 먹여살리고 입히고 하려면 생필품이 필수였으니까. 이 수요가 줄어들었으니 당연히 이 분야의 생산량도 서서히 감소한거지.


사실, 사치품 무역은 귀족/왕족의 수요가 있어서 어느정도 살아남았어. 예를 들어, 가장 경제적으로 단순하고 규모가 작았던 앵글로색슨 사회에서 동로마제 은식기가 발견되곤 했단 말이야. 7세기 초엽에 말이지.


하지만 도기라던지 옷감이라던지 제국 시절 교역량의 핵심을 차지하던 품목들은 적어도 서지중해에서는 그 물류량이 확연하게 줄어들었음.까 싶으면, 결국 말했듯이 제국 정부가 빈민을 구제하고 군단을 유지하기 위해 수요를 발생시키고 관세를 메기며 해군과 수송선단을 통해 무역로를 관리하던게 사라지고 지역화 된 왕국 정부는 그런 역할에서 소극적이었기 때문인거 같아.


그래도 중세 초가 암흑시대라는 명칭에 부합할 만큼 쇠퇴한 흔적은 전혀 없어. 프랑크든 서고트든 대부분의 왕국에서는 문서로 행정과 정치를 기록했고, 각종 경제적/정치적/문화적 활동이 이어지며 고대와 중세를 잇는 역할을 했거든.


하지만, 그런 과장된 쇠퇴를 걷어내더라도, 분명히 제국 정부가 소멸하고 왕국 정부가 지역화 되면서 국제적인 교류를 통해 발전/유지하던 경제 연쇄고리는 사라졌어. 그래서중세 초 서유럽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제국 시절보다 경제 구조가 단순해졌고 규모는 작아졌지.


그래도 지역과 부문에 따라 차이는 있긴 하다만,원폭을 맞은 것 마냥 확 줄어든게 아니라 서서히 줄어들었음. 이건 로마 제국 말기부터 이어진 현상이었으니까.


이후, 이 지역화된 경제는 조용히 그들의 환경에 맞춰 변화했음. 특히 라인강과 북해에서 이런 변화가 두드러졌지.그리고 그 기반들은 9세기 이후 카롤링거 르네상스와 10~11세기 중세 성기 경제적 번영의 기반이 되는 토대가 돼.

여기까지 요약하면,


01. 서유럽에는 거대하고 유능한 제국 정부가 사라지고, 수많은 신생 중소 정부들이 난립함.


02. 작은 정부는 제국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지 못 했고, 시대적 환경까지 겹치며 지역간 교역이 서서히 줄어듬.


03. 부유한 북프랑스-라인강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에서 결과적으로 제국 시절보다 귀족들의 부가 줄어듬.


1111 (6).png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중세 초(5~8세기) 서유럽의 몇 가지 특징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재밌는 사실이 벌어지는데, 귀족의 부와 권력이 감소하면서 발생한 현상이 농촌 자치의 확대였단거야.

이게 뭐냐, 귀족들의 부가 줄어들자 농민들을 착취할 힘이 줄어든거지. 이건 지역과 시대를 두고 차이는 어느정도 있긴 해도 전 유럽적인 현상이었음.


여기에 로마 제국 시절에 귀족들은 대토지 소유자로 거듭나면서 집약된 토지를 소유하지 않고 지방 여기저기 흩어진 상태, 즉-파편화된 형태로 소유했어. 이런 소유 방식은 중세 초에도 이어졌는데, 시대적 흐름으로 힘이 줄어든지주들은 자신이 머물지 못하는 토지에서까지 소작농을 억압하고 착취할 능력이 부족했진거야.


심지어는 그리 부유하지 않은 지주는 농민들(자영농부터 소작농까지 다양한 이들)이랑 함께 뒤섞여 살아야 하기도 했지. 이러면 소지주가 소작인을 함부로 착취하다가는.. 맞아죽겠지?

덕분에 많은 지역에서는 좀 더 나은 지대와 환경에서 소작농들이 생활할 수 있었고 나아가서 자영농이나 소지주들이 농촌 행정에 참여하여 발언하기도 했고 나아가서는 건축 같은 공공 업무에 참여하기도 했지. 원래 로마 제국 시절에 이런 일은 지역 엘리트들이 하던 거였는데 말이야.


1111 (4).png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중세 초(5~8세기) 서유럽의 몇 가지 특징

물론 자치도가 늘어나고, 지대 압박이 줄어들었다 해서 아주 행복한 사회였던 건 아니야.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이라 했던 것처럼, 복잡한 사회적 권력 관계를 통해 서열 정리는 확실히 되긴 했어.풀어주긴 했어도 아주 개길 수 있던 건 아니란거야. 소작농, 반소작농, 자영농, 소지주 등 재산과 명예 등을 바탕으로 사회적 계층 구분은 확실하게 된거지.


거기에 여전히 평민이 귀족으로 거듭나는 건 여전히 엄청 어려웠고, 몇 세대를 걸쳐 실력과 행운이 있어야 가능할까 말까였어. 말했듯이, 농촌 자치를 풀어준거지 위로 가는 문을 열어준 건 아니니까.


그래도 이 시대가 상대적으로 계층 이동이 유연했다고도 보는 거 같더라. 왜냐면 사회적 신분의 차이는 존재할 수 있어도 법제적인 귀족의 명명은 아직 모호했단 말이지. 자영농이면 이론상 매우 자유로운 존재란 말이야? 그들이 국왕의 총애만 받고 확실하게 지원만 받으면 귀족으로 거듭나는 건 시간 문제였지. 잘 일어나지 않는 희귀한 케이스라 그렇지..


무튼 요약하면,


04. 귀족층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농민들의 자치가 증대됨.


물론 다들 가난한 느낌은 있지만 말이야.


아, 그리고 이 이야기는 사실 조금 과장과 비약이 있을 수 있어. 댓글로 다루긴 했지만, 지역간의 차이가 좀 있거든. 전유럽적인 특징을 설명하긴 했지만, 그런 부분들도 상당히 중요해.


그리고 브리튼은 여기서 예외야. 기회가 되면 브리튼도 따로 다뤄볼께.


----


출처


Christopher Wickham, The Inheritance of Rome: A History of Europe from 400 to 1000, 2009.

F.A.A. Koreman,The public administration of the Merovingian kingdoms in the sixth centur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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