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발해, 그 이후 - 발해 정부 붕괴 직후의 상황[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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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92회 작성일 24-04-3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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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을 읽기 전에, 아래의 제 글 링크들 중, 발해멸망전을 먼저 읽고 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발해잔존세력에 대한 글은 발해멸망전을 읽지 않으면 이해가 상당히 힘듭니다.





결론과 요약도 있으니, 읽기 힘들거나 이해가 안 가시면 그것을 보셔도 됩니다.





926년 1월, 발해는 거란의 야율아보기의 홀한성 직공으로 인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발해의 말왕 대인선은 자신의 친족들(정황상 대위해계 대씨왕족, 즉 대조영 방계.) 대다수와 함께 거란 땅으로

끌려가게 되었으며, 발해 중앙정부는 붕괴하였고, 거란은 목표인 발해의 멸망을 이룩한 다음 점령한 땅인 부여부와 용천부 지역에 자신들의 괴뢰국인 동란국을 세운 다음 돌아갔습니다.




발해의 각 부 세력들과 발해왕제의 세력은 거란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발해 정부의 무너짐을 막을 수는 없었고, 대 거란 항쟁은 926년 여름을 기점으로 끝나고, 거란 역시 거란 땅으로 돌아가고 거란 황제 야율아보기가 그 도중 사망하는 바람에 차남이던 대원수 야율요골이 황제가 되어 요 태종이 됩니다.




우리는 여기까지의 과정을 보통 발해의 멸망이라고 칭하며, 이후 거란에서 세운 괴뢰국인 동란국이 세워진 것과, 발해부흥운동이 이어지는 것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한민족의 만주지역 점유가 끝난 시기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발해의 멸망과 함께 한민족의 만주땅 영유가 끝나고 발해의 땅이 모두 거란에게 먹힌 것으로 아는 분들도 역시 많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후의 사서를 살펴보면, 926년에 분명 멸망했다고 언급이 되는 발해는, 마치 이 때 멸망하지 않았다는 듯, 이후로도 계속 살아 있다는 듯이 계속 언급이 되면서 모습을 바꾸어 가면서까지 좀비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데요, 이들 때문에 분명 멸망했다고 언급이 되는 발해가 이후의 역사에서 계속 언급이 되면서, 발해사 이후의 발해부흥운동/발해후계국들의 역사가 미스터리에 빠져버린게 아닐까 합니다.





발해잔존세력들을 살펴보면, 주류에 해당하는 국가들, 즉 국가의 틀을 갖추고 정상적으로 운영된 나라들이 있습니다. 발해를 제일 먼저 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후발해, 그리고 그 다음이 교과서에서도 등장하여 우리에게도 익숙한 정안국. 마지막으로 정안국과 꽤 많은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올야국입니다.


제가 이번 파트에서 다룰 내용은 저번 글에 밝혔듯이, 이 세개의 국가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간헐적으로, 단발적으로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나온 나라들인 흥료국, 고욕국, 대발해국은 주된 언급으로 다루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발해의 이름을 걸고 일어난 요나라 지방들의 반란, 혹은 항쟁'에 해당하므로 이 글에서 언급한 '발해의 후계세력'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예외로, 연파의 경우에는 정안국과 연합하거나 정안국에 합류한 심증이 존재하기 문에 이들 중 연파만은 다룰 예정입니다.






제가 전에 쓴 발해왕제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발해의 중앙정부의 멸망(926년 1월) 이후, 몇개월동안

발해의 지방세력들은 붕괴한 중앙정부를 대신하여 연락을 서로 취해서 모이고 만나서 발해왕제의 지휘하에 거란에 대항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의 항쟁과, 잔존한 발해군 주력병력의 전투들은 거란에게 있어서 발해고토를 점거하는데 매우 큰 차질을 주었으며, 여기서 발이 묶임에 따라 거란군은 더이상 발해의 땅을 차지할 수 없었으며, 발해 중앙정부가 살아 있었을 때 허망하게 무너진 발해는 정작 중앙정부가 무너지고 난 이후에 거란과 무섭게 싸우기 시작합니다.



여러 부에서 모여서 거란군을 공격하고, 정황상 발해 멸망 직전에 압록부와 장령부로 파견나가 있던 발해군이 되돌아와 거란군과 무섭게 항쟁을 시작하며, 발해왕제가 이끈 발해의 주력군 대군이 거란이 점령한 부여성을 포위공격까지 하는 등 발해군의 항쟁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왕제의 부여부 공격은 끝내 부여부를 수복하지는 못한 대로 끝났으며, 이후 거란의 반격으로 인해 장령부가 함락됨으로 우선 거란과 발해의 전쟁은 발해가 요충지인 부여부와 수도를 함락당하고, 발해 중앙정부를 붕괴시킴으로서 끝났습니다.



하지만 승자인 거란 역시 더 이상 발해땅을 먹거나, 발해를 완전히 멸망시키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거란이 점거한 것으로 언급되는 지역은 잘 해봐야 수도인 홀한성을 비롯한 용천부, 그리고 부여부로 한정이 되어 파악되기 때문입니다.



거란은 이외의 발해 지역을 점령하지 못했으며, 성종대와 그 이후 흥종대가 되서야 자신들이 황룡부라고 호칭을 바꾼 부여 지역, 그리고 요동 지역만을 점령했을 뿐, 발해땅의 대다수 지역은 간수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발해 후계국가들은 멀쩡하게 잘 활동하고 있었으며, 거란은 이들을 자주 공격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발해는 중앙정부와 요동, 부여부 지역만 날아갔을 뿐 여전히 후계세력인 후발해가 존재하며 계속 중국에 사신을 보내고 있었으며, 거란은 후발해가 존속하는 시기동안 이들을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후발해는 주적인 거란의 공격에 타격을 입고 멸망한 것이 아닌, 동족인 열씨의 정변으로 인해 그 국체가 정안국으로 교체되었다는게 현재 제일 신빙성이 있는 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는, 물론 이 시기에 중국에 신경을 더 많이 썼어야 하며, 장자였던 야율돌욕(야율배)이 어머니의 음모로 차자였던 대원수 야율요골에게 제위계승을 빼앗겨 혼란이 일어난 것, 그리고 동단국왕으로 구 발해 용천부 지역에 있던 야율돌욕을 견제해야 했던 것이 그 원인 중 크게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평가를 해 보자면, 926년의 영혼의 한타를 발휘하여 거란이 발해를 공격한 것은,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적이자 거슬리는 상대였던 발해를 결정타를 크게 먹이고 요동,부여,용천부를 빼앗아 점거하고, 발해의 중앙정부를 붕괴시켜 발해에게 매우 큰 타격을 주고, 발해국이라는 존재 자체를 지우고 발해국 세력이 힘을 모으지 못하게 만든 데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발해의 땅 중 점거한 곳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발해 세력 자체를 없애지도 못 했으며, 정작 거란 본국에는 이득될 것이 적었으며, 오히려 신경 쓸 것만 더 많아져 버렸습니다.



926년 후반기 기준으로 거란에게는 여전히 다수 세력을 온존한 상태로 거란에게 칼을 갈고 있는 후발해, 그리고 거란 황제인 야율요골의 형이자, 제위를 어처구니 없이 빼앗겨 버린 까닭에 언제든 뒤통수를 칠 지 모르는 야율돌욕의 동단국, 그리고 이제 발해의 속박에서 사실상 풀려나 버린 여진(구 흑수말갈),말갈 세력(구 철리부, 회원부 중심의 철리말갈, 월희말갈 등)이 거슬리는 존재들로 인식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금방 삭제되고 철폐되어버린 동단국을 제외하면, 결국 장장 200년 정도 동안이나 거란의 뒤통수를 긁어댔고, 결국 이 상태에서 계속 이어진 여진 세력이 세운 금나라에 거란이 멸망해 버립니다. 또한 이들은 거란에게 만만치 않은 반항세력으로 떠오른 고려를 거란이 마음놓고 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일등공신이었기 때문에 고려가 회복,성장할 기회를 만들어 주어 이후 거란에게 고려가 골치아픈 상대로 대두되는 밑바탕을 깔아 주기까지 했습니다.




이 사태가 벌어진 이유가 무엇이느냐 설명을 해 보자면,




우선 거란은 발해를 완전히 이기고 압도할 능력도, 기량도, 준비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눈앞의 골치아픈 주적인 발해를 없애버리고, 가능한 한 흡수해야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거란의 발해 급습과 발해

중앙정부의 파멸은 거란의 의도라기보다, 우연과 상황이 겹쳐서 만들어 낸 천운에 불과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거란은 발해를 멸망시킬 역량도 없었으며, 정복하고 흡수하고 다스릴 능력 역시 없었습니다.


거란과 발해는 오랜 원수였으며, 오랜 전쟁을 해온 사이였습니다. 거란과 발해의 전쟁이 거의 수십년을 끌어 왔음에도 거란이 발해를 빠르게 멸망시키지 못한 이유는, 발해의 국력과 군사력 역시 만만치 않다는 증거입니다. 926년의 거란의 발해 공격도, 발해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집어 삼키려는 것이 목적이 아닌, 발해 공격의 교두보로 요충지인 부여부를 점령해서 경영한 다음, 부여를 기반으로 발해를 더욱 압박하고 공격에 나서려고 했던 것이 태조본기와 야율배 항목에 드러납니다.




『요사』 종실전 야율배 항목 中


-천현 원년(926)에 발해정벌에 따랐으며, 부여성을 공략했다. 주상이 호구를 단속하려 하자 야율배가 간하기를, "이제 땅을 차지하고 백성을 단속하려 든다면 백성들이 반드시 불안해 할 것입니다. 만일 파죽지세로 곧 홀한성까지 이른다면 반드시 공략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태조가 그의 말을 따랐다.




여기서 태조 야율아보기가 부여성에 진을 치고 이곳 주민들의 호구를 조사한다는 것은, 부여를 차지한 다음에 거란의 땅으로 삼고, 이곳을 경영하여 발해 공격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거란의 입장에서 만만치 않은 상대인 발해를 섣부르게 공격하기보다는, 차근차근 하나둘씩 빼앗으면서 적의 심장부로

가는 길을 닦아서 압박을 하는 것이 정석적인 공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발해가 정상적인 상황이었을 때 해당하는 말이었으며, 926년 1월 초 당시의 발해는 925년에 일어난 반란 내지 쿠데타로 인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으며, 발해의 주력군은 거란의 술책에 말려 부여부가 아닌 남쪽의 장령부와 압록부로 나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야율돌욕이 간언을 하여, 태조는 부여를 경영하고 알박기를 한 다음 발해를 천천히 압박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버리고, 발해의 현 상황을 야율돌욕을 통해 알게 되어, 홀한성까지 발해의 방위병력이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홀한성으로 직공을 한 것입니다. 그 다음 포위를 하였으며, 왕인 대인선을 사로잡고 중앙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거란은 이 전쟁에서 발해를 단기간에 멸망시킨다는 생각은 없었으며, 부여를 공략한 다음,

그곳을 토대삼아 발해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이 1차 목표였을 것입니다.(물론 발해의 최전선 요충지인 부여를 함락시킨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이긴 합니다.) 다만, 거란 입장에서는 주적이자 힘든 적이었던 발해가 이렇게 허무하게 한방에무너진다고 처음부터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발해 중앙정부 붕괴 자체가 우연에 행운, 천운이 겹쳐서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아직 발해를 완전히 병탄할 만한 역량이 없던 거란 입장에서는 발해의 땅도 많이 먹지 못하고 발해의 남은 지역이 후발해로 집결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입니다. 거기다가 여기서 상술했듯이, 눈엣가시가 되어버린 황제의 형이 이끄는 동단국도 언제 반역을 일으킬 지 모르는 존재가 되어 버렸으며, 목줄이 풀린 여진족 세력들 역시 마냥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거란은 발해 잔존세력들에게서 잘 버텨내고 방어를 해내는 데에는 성공했으며, 용천부와 요동, 부여부를 영토로 편입시키는 데는 성공하지만,(그런데 그나마의 용천부도 훗날 동단국 세력을 없애버리고 철폐하면서 스스로 뱉어 버립니다. 결국 거란이 영유하는데 성공한 발해땅은 요동과 부여부, 장령부 일부가 전부입니다.) 발해세력들이 발해 왕제를 비롯한 잔존 세력들에게 집결하는 것은 전혀 막을 역량이 없었으며, 마침 요나라 역시 요태종 이후로 외/내부의 안좋아진 상황도 겹쳤는데다가, 세종과 목종, 경종 시기에는 요나라 역시 꽤나 흔들리는 일이 많았던지라, 요 태종~성종대 초까지도 요나라는 그들에게 큰 공격을 많이 가할 수가 없던 것입니다.(많이 가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지, 공격 자체를 못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발해왕제와 대광현이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발해 잔존세력들이 발해국을 계속 천명하면서 중국에 사신을 보냈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다룬 중국 사서들이 발해가 멸망하지 않고, 그저 부여부만 빼앗긴 것이다. 라고 인식을 주로 하게 된 원인이 되었습니다.

사료를 보신 적 있는 많은 분들이 분명 926년에 발해가 멸망했는데, 이후 930년대까지 중국사서에 나오는 '발해'의 뜻을 뭔가? 하고 궁금해하신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구오대사』 37권 中


-11월 무오일에 청주가 등주의 장계를 받아, 거란이 앞서 발해국을 공격하였으며, 야율아보기가 죽은 뒤에 비록 물러가기는 했으나, 아직도 병마를 발해의 부여성에 남겨 놓았고, 지금은 발해왕의 아우가 병마를 거느리고 와서 부여성 안의 거란을 포위공격하고 있다고 아뢰었다.



『신오대사』 72권 사이부록 中


-야율아보기는 발해를 공격해 부여성을 탈취해서 동단국으로 삼고, 장자인 인황왕 야율돌욕을 동단왕으로 삼았다.



『책부원구』 995권 中


-명종 천성 원년(926) 11월, 청주의 곽언위가 아뢰기를, 등주의 장계를 받았는데, 거란이 먼저 여러 부락을 징발하여 발해국을 공격했으며, 야율아보기가 죽자 비록 물러가기 시작했으나, 아직 병마가 발해의 부여성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 발해국왕의 아우가 부의 군사를 거느리고 부여성 안의 거란을 포위공격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오대회요』 30권 中


-천성 원년(926) 9월에 발해국 부여성을 쳐서 함락시키고, 그 장자 야율돌욕에게 명하여 그 나라를 닥스리게 하고 이름을 동단왕이라 했다.



『무경총요』 전집 16권 中


-거란 야율아보기의 병력이 융성하여 많은 동북 제번국이 그에 신속했다. 발해와 땅이 인접해 있어 병탄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나라 부여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켜 그 큰아들 야율돌욕을 동단왕으로 세우고 군사를 거느리고 지키게 하였다.



『문헌통고』 326권 中


-거란은 발해와 땅이 서로 붙어 있기에 늘 병탄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해에 여러 번부를 거느리고 발해국의 부여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부여성을 동단부라고 고치고 자신의 아들 야율돌욕에게 명해서 군사를 거느리고 지키도록 명했다. 얼마 되지 않아 야율아보기가 죽자 그는(발해왕) 군사를 거느리고 아우에게 부여성을 치라고 명했는데, 이기지 못하고 돌아갔다. 4년과 장흥 2,3,4년, 청태 2,3년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송사』 491권 발해국 항목 中(송회요 293권도 동일한 내용.)


-야율아보기가 죽자 '발해왕'이 다시 부여를 쳤지만 이기지 못하였다.




이 여러 중국 사서들을 보면, 아무래도 제삼자의 입장에서 쓰여져 있기 때문에 완전히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발해라는 국체는 멸망하지 않고, 발해가 926년의 부여를 거란에게 빼앗겼다. 그리고 그 부여 지역을 바탕으로 거란이 동단국을 세웠으며, 발해왕제 or 발해왕이 그곳을 쳤지만 실패했다. 라는 내용으로 전부 귀결됩니다. 그리고 비교적 저 사료 중에 제일 최근에 쓰인 송사의 내용으로 보면, '발해왕'이 부여를 쳤다고 나와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단순히 중국측의 정보 부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각각 다른 시대의 사료들이 뒷받침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발해왕제가 무사히 발해의 구국 지역으로 퇴각하여 왕이 되어 발해국이 계속 이어짐을 천명하고, 그리고 그 이전 시대와 같이 중국과 연락하고 조공을 바쳤기 때문에, 중국의 국가들은 발해가 거란과 싸워서 져서 땅을 좀 빼앗겼구나. 정도로만 인식했지, 수도가 함락되고 정부가 붕괴된 상황인 것은 알 수가 없었던 것이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발해가 멸망했다고 쓰지 않고, 이후로도 계속 후발해가 조공을 해 왔기에 발해가 계속 이어져 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는 이 당시에 부여를 쳤다고 여겨지는 '발해왕제'가 이후 발해의 왕이 되어 후발해 시기에 발해를 다스린 것이 합쳐져, 이 당시에 발해왕이 부여를 쳤다는 내용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마찬가지로 발해국지장편을 쓴 김육불 선생, 국내의 한규철 교수님, '요동행부지' 에서도 발해정부의 파괴 이후 발해가 중국에 사신을 보내고 계속 '발해국'으로 행세하는 데에는 발해왕제가 왕에 올라서 후발해를 계속 이끈 것이 그 이유라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발해 왕제는 발해 중앙정부가 파괴되고 대인선이 끌려간 이후 발해왕제가 발해국의 세력을 다시 모아 왕으로 즉위하고 계속 중국에 사신을 보내었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에는 발해가 멸망하지 않고, 발해왕도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 것입니다.


이는 마치 북송과 남송의 관계, 명과 남명의 관계와 비슷하며, 후발해 역시 발해 중앙정부의 파괴 이후 세력을 모아 나라의 기틀을 유지하고 계속 발해국으로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후발해라는 명칭보다는 발해의 역사를 정안국이 세워지는 것으로 파악되는 934년 정도까지로 연장을 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발해국, 발해 정부를 계속 유지하고 있던 이 후발해 시기도 발해사로 인정을 받을 수 있으며, 발해왕의 계보는 대인선이 아니라 발해왕제까지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따라서 이게 완전히 규명되면 발해의 역사를 698~926이 아니라, 698~934로 설정해도 별 문제가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것에 대한 것은 계속 차차 써 나가 보겠습니다.



이후의 조공 기록들은 935년까지 이어지는데요, 935년의 조공기록은 '발해'라고는 되어 있지만, 온 사람이 이후로 정안국 왕위를 차지했던 열씨 일족인 '열주도(열주의)' 인 것, 그리고 934년에 발해의 태자라고 알려진 대광현이 고려로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망명해 온 것, 또한 934년 말에 대인선 시대부터 관료를 해 온 것으로 추정되는 대진림이 고려로 귀부한 것을 보면 늦어도 934년에 정변이나 반란, 쿠데타가 일어나 왕계가 뒤집히고, 대씨가 몰락하고 열씨가 왕이 되어 정안국으로 나라 간판을 갈아 치운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가 발해의 대씨왕가의 마지막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합,요약해보면,


926년의 거란의 침공은 발해의 정부를 무너뜨리고 일부 영토를 빼앗아 가는데는 성공했지만,

거란은 이후 발해의 남은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물러났으며, 발해땅에는 발해왕제가 왕이 되어 계속 발해를 이어 나갔으며, 이 발해는 934년에 일어난 것으로 파악되는 정변으로 인해 열씨가 주인으로 바뀌고, 정안국으로 이어져 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발해의 멸망이 926년이 아니라 934년, 그리고 정안국은 934-935년부터 시작된다는 쪽으로 현재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다음 편은 후발해 시기의 행동, 그리고 후발해에서 어떻게 정안국으로 이어졌을까 하는 추측을 분석해서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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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에서는 과연 어떤 것이 났을까? 1편

-https://www.fmkorea.com/6894662330


발해에서는 어떤 것들이 났을까? 2편

-https://www.fmkorea.com/6895694013


발해에서는 어떤 것들이 났을까? 3편

-https://www.fmkorea.com/6903735052

발해에서는 어떤 것들이 났을까? 4편

-https://www.fmkorea.com/6907296365


발해땅이 추워서 농사가 안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https://www.fmkorea.com/6914123453


사료로 알아보는 발해의 고구려 계승의식

발해사신 수난기

대위해의 재위년도 오류 가능성

발해 인구를 소수로 잡는 의견에 대한 반박

-https://www.fmkorea.com/697169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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