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발해 그 이후 - 정안국의 몰락과 연파의 재등장 (986~99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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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73회 작성일 24-05-08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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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 독자 연구를 담은 글이지만, 이 주장과 내용이 무조건 절대 진리이다, 정설이다.

라고 주장하는 글은 아닙니다. 제 주장일 뿐입니다. 그것을 염두하고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글인, '정안국 파멸의 카운트다운'



https://www.fmkorea.com/6996251522




에 이은 글입니다.





지난 글까지의 상황을 우선 말해보자면, 981년에서 985년 사이, 송은 연파와 정안국과 연락을 하면서, 그 둘이

요를 치는 데 있어서 첨병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랬으며, 정안국과 연파는 송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송과 발해잔존세력들은 손발이 도무지 맞지 않았으며, 이들의 지속되는 연락은 요에게 탄로가 났는지, 요는 984년에 다시 한번 정안국을 공격하여 송과 연계를 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결국 984년에 한번 정안국을 공격한 요는 아예 정안국을 끝장내버려야겠다고 생각 했는지, 985년 말에 정안국의 지도와 정보를 공개적으로 황제에게 바쳤으며, 이어서 대규모의 요군이 986년 정월 정안국을 대대적으로 침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혹은 알고 있던 정안국의 멸망시기인 986년이 등장하게 됩니다.





『요사』 11권 성종 항목 中


-통화 4년(986) 봄 정월 갑술일에 토하에서 물고기 잡는 것을 구경하였다. 임아 야율모로고와 창덕군절도사 소달람이 동쪽을 정벌하고 잡은 포로를 바치니 조서를 내려 칭찬하였다. 병자일에 추밀사 야율사진과 임아 소근덕 등이 여진을 토벌하고 잡은 포로 10만여명과 말 20여만 필, 그리고 여러 물품들을 바쳤다.기묘일에 황태후를 조현하였다. 밀린 송사를 판결하였다. 임오일에 추밀사 야율사진, 임아 소근덕, 야율모로고, 절도사 소달람, 통군사 실라, 시중 야율말지, 해왕부감군 적렬 등이 안길 등과 함께 여진을 이기고 돌아왔다.근시 니리길을 보내 조서를내려 그 공을 높이 치하하고 손을 잡고 격려하며 술과 과일을 내려 노고를 위로하라. 라고 하였다. 갑오일에 장박에 행차하였다.




참고로 요사의 986년 기록은 기록이 부실하다고 혹평받는 요사 치고는 상당히 상세합니다. 다른 년도들은 대충 넘어가거나 짧게 요약하는 조로 끝나는 년다고 많지만, 이상하게 986년은 기록이 매우 상세하게 남은지라, 이 년도 간에 일어난 일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전년인 985년 말, 요 황제인 성종은 장수들로부터 지도와 정보를 전달받고 정안국의 대대적인 공격을 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편 참조)986년 정월부터 상당한 규모의 거란군이 정안국을 침공했다는 것을 위의 사료에 적혀있는, 참전한 요의 장수들의 목록만으로도 지금까지 정안국과 투탁임을 벌인 레벨이 아니라, 송과 제대로 한 판 겨룰 때와 비슷한 규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원정으로 인해 발생한 포로만 10여만명에 얻은 말만 20여만필이라는 것을 보면, 정안국과 정안국과 한패거리인 여진을 제대로 격파하고 전과를 올려 돌아온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고 정안국이 이 공격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이후 정안국의 세력이 확실히 줄어든 것이 보이며, 기록도 거의 절멸하고, 이후로 독자적인 움직임을 하지 못 할 정도까지 전락해 버린 것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정안국이 마지막으로 송에 사신을 보낸 991년에서 머지 않은 시간 내에 여진 세력 일부와 합쳐서 올야국으로 변신 했거나, 정안국 잔존세력을 아직 건재한 연파의 세력과 합쳐서 만들어진 것이 올야국이 아닐까 추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986년의 사건이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는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송사에 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송사』 487권 외국열전 中 고려 항목


-옹희 3년에(986)...(중략) 지난해 겨울 끝에 여진이 급하게 목계를 보내 와서 알리기를, 거란이 군대를 일으켜 여진의 경계를 침입했다고 하며, 저희가 알지 못할 것을 걱정해 마땅히 미리 알고 준비하라 했습니다. 저희와 여진이 비록 이웃나라가 되어 길이 아즉히 멀어도, 저들의 진위를 잘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탐욕하고 거짓되어 믿을 수 없습니다. 그 후에 또 사람을 보내 이르기를, 거란의 병기가 이미 매하를 건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를 거짓으로 의심하면서도 구원할 겨를 이 없었습니다.


얼마 후 거란이 구름처럼 모여 여진을 크게 공격하여 죽이거나 사로잡은 포로가 매우 많았으며, 나머지 무리들이 싸움에 져서 흩어져 도망치자 거란이 뒤를 쫓아 사로잡았는데, 저희의 서북쪽인 덕창, 덕성, 위화, 광화 경계까지 이르러(참고로 이 네 부분은 모두 북한의 압록강 유역에 있는 지역들이며, 현재도 덕창은 북한의 평북지역 지구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위화는 우리가 아는 그 위화도가 맞습니다.)이들을 사로잡아 돌아갔습니다. 이 때 거란 기병 한명이 덕미하 북쪽에서 큰 소리로 우리에게, 나는 거란의 기병인데, 여진이 우리의 변방을 구략하는 것을 일상으로 삼았다. 지금 복수를 이미 끝냈으니 군사를 정리해서 돌아가겠다. 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비록 군대가 물러갔다고 들었지만, 여전히 예측하지 못한 일을 우려해서 거란을 피해 온 여진의 병사 2천명에게 식량을 주고 돌려 보냈습니다.(후략) 거란은 요해의 바깥에 살고 있으며 여진과 발해는 원래 정착해 살지 않는데 저희가 어떤 경로로 거란과 내통을 했겠습니까? 갑자기 참소를 당하니 울분이 가슴에 가득 찹니다. 해와 달은 밝으니 분명히 살펴주시기 바랍니다.(후략)




참고로 이 사료는 송사 외국전 고려전에 있는 사료로서, 송에 입조한 여진 사신이 고려가 거란과 내통하여 자신들을 공격해서 자신들이 많은 피해를 보았다고 일러 바쳐서, 송에서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진상조사를 하는 도중에 고려측에서 마침 송에 조공하러 도착한 고려 사신에게 물어보는 과정에서 일어난 대화입니다.


참고로 이 사료의 사건 결과는, 여진이 고려에게 유감을 가지고 송에게 과대포장+뻥튀기를 해서 고려가 거란과 내통했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고, 고려 사신 한수령은 이것을 믿고 고려를 족쳐야 하나? 하고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있는 송태종에게 매우 당황하며 자신들의 일을 설명한 대목입니다. 이 사료로 알 수 있는 정보는,




1.여진은 986년의 정안국 정벌 때 거란에게 정안국과 함께 공격당했다.


2.고려는 여진을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3.고려는 여진이(정안국과 함께) 공격당하는 것을 보았지만, 여진(+정안국)에 대한 반감이 있기 때문에 그냥 구경만 하고 도와주지 않았다.


4.거란은 압록강 하구 가까이까지 달아난 여진군을 추격하여 몽땅 잡아갈 정도로 여진 소탕에 열을 올렸다.


5.여진은 바로 옆집에 살면서 자신들을 하나도 도와주지 않은 고려에게 반감을 가지고 송에 사신을 보낼 때 고려를 모함하였다.


6.이 사건 이후 고려는 자신들에게 매우 큰 당혹감을 안겨준 여진(+정안국)에게 역시 반감을 품고, 이후 등장하는 발해 잔존세력과 여진이 망하던 두들겨 맞던 방조하게 되는 데 이 사건이 일조했을 가능성이 있다.


7.여진과 '발해'가 정착해 살지 않는다는 말을 보았을 때, 그리고 굳이 여진이 송태종에게 여진과 '발해'를 같이 언급하여 이야기한 것을 보았을 때, 발해 잔존세력, 즉 연파의 세력 역시 여기저기 이동하는 반유목민 같은 삶을 살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두 세력은 상당히 친밀하게 세트메뉴인양 지냈다.




이렇게입니다.




어쨌거나, 이 986년의 거란의 정안,여진 공격은 정안국 본체와, 정안국과 협력하고 있던 생여진 세력에게 상당한 타격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되었고, 실제로도 그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세력을 어떻게든 온존하고 보강하여 금을 세운 여진과 다르게 정안국은 여기서 완전히 작살이 나서 회복 불능 상황이 되어 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요나라가 여진보다 정안국을 더 위협으로 여기고, 정안국을 공격하는 데 더 여력을 집중한 결과로 보입니다.



이 이전까지는 발해 잔존세력은 요에서도 송에서도 '발해'라고 불리우는 연파의 세력과 정안국이 서로 협력하면서 공존하였으며, 연파는 반란을 일으켜 도망온 이후에 정안국의 도움을 받아서 여진과 발해 유민 세력을 흡수하여 세력을 불려나간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안국과 연파의 '발해'. 이 두가지의 세력은 서로 돕고 사는 공생관계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저는 전편에서도 설명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986년의 침공 끝에 정안국은 회복불능, 재기불능 상태가 되어 버리고, 이 986년 원정에서 피해를 본 것이 드러나지 않는, 연파가 이끄는 '발해'세력이 주력이 되서 정안국의 잔존세력과 연합 내지 흡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둘이 합친 합작품이 올야국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침 연파의 근거지가 올야성이기도 하고, 연파는 반란을 일으킨 반란자 출신인만큼 처자식이나 가족을 등지고 혼자서 반란을 일으켜 달아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리고 연파가 관리했던 세력을 정황상 후계자가 없는 연파의 연합자로써, 달아나서 합세한 정안국의 오씨 세력이 물려받았다. 라고 가정을 해 보면, 정안국이 왕창 깨진 이후로도 발해잔존세력이 꽤 유지된 것과, 이후 정안국 기록은 사라졌으나 발해 기록은 남아 있는 것. 이것들을 참고, 고려 해 보아서, 저는 개인적으로 바로 위에서도 말했듯이 연파의 세력이 이 때 쫓겨온 정안국 잔존세력과 합쳐진 다음에 정안국 오씨세력이 훗날 연파의 세력을 물려받은 것이 올야국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 이야기는 뒤에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편, 한국의 교과서와 한국 학계에서는 한동안 이 986년의 사건을 가지고, 정안국의 멸망 년도라고 본 시선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과거에는 그리 알고 있었고, 교과서에도 정안국을 986년까지 존속한 것으로 써 놓은 것도 많으며, 어린이용 학습만화에서도 그렇게 서술한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오류가 있는 것이, 정안국은 986년에 회복이 불가능한 치명타를 맞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986년의 공격으로 완전히 망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정안국이 986년에 망한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아서 알릴 필요가 있어서 저도 언급을 한 것입니다.




실제로 정안국은 그 해 8월에도 잔존세력으로 추측되는 세력이 요나라와 교전을 한 기록이 보입니다.




위의 사료와 동일(요사 11권, 성종 항목 中)



(8월) 임술일에 야율사진의 부 장교들이 먼저 여진을 물리치고, 뒤에 송나라를 이겼으므로 공에 따라 상을 더해 주었다.




하지만 이 정안국의 잔당들과의 교전은 당연히 요의 승리로 끝나고, 정안국은 확실히 요사에서 이제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정안국 세력을 확실하게 손봐준 요나라는, 후방의 위협이 되던 정안국에게 크게 한 방 먹여주었다는 안정감 때문인지, 마음놓고 송나라와 싸우기 시작했고, 송나라는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다가 986년에 요나라를 쳐서 꽤 전과를 올리지만, 이번에도 작정하고 나선 요나라에게 참패하게 됩니다. 그것으로 정안국과 송나라의 암걸리는 동행은 986년을 끝으로 두 국가 간의 정상적인 연락이 단절되고, 송나라 측에서도 더이상 발해 잔존세력과 연계를 하는 것을 시도하지 않게 됨으로써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끊어져 버리고 맙니다.



이로서 정안국은 송나라와의 관계가 사실상 단절되고 맙니다.



물론, 그 이후인 989년에 송에서 다시 요나라가 점거한 유주와 삭주를 공격하려는 시도를 할 때, '발해'가 언급되는 일 역시 있으며, 989년과 991년에 정안국의 왕자 대원이 송나라에 표를 보낸 일을 보면 정안국과 그 잔존세력은 어떻게든 송과 통교하여 거란을 막아내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송사의 다음 기록들을 보면, 발해잔존세력과 송은 서로 근본부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는 낌새가 느껴집니다.




『송사』 491권 외국전 정안국 항목 中


-단공 2년(989)에 정안국의 왕자가 여진의 사신에게 부탁하여 말, 수리깃털, 우는 화살을 보내왔다.


-순화 2년(991)에 그 왕자 태원이 여진의 사신에 부탁하여 표를 올렸다. 그 이후로는 다시는 오지 않았다.




『송사』 264권 열전 송기 항목 中


-단공 2년(989)에 장차 유주와 계주를 토벌하고자 군신에게 조서를 내려 각기 변방의 일을 말하라 하였다. 기가 상소하여 말하길..(중략) 발해의 군대와 영토는 해장보다 성대하고 비록 힘껏 거란을 섬기고 있지만 거란이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후략)





우선 위의 두 사료는, 989년과 991년에 정안국의 왕자인 태원이 직접 송에 공물과 표를 보냅니다.


그런데 989년에 공물이랍시고 보낸 항목을 보면, 말에 깃털에 화살(...)입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된 공물을 보낼 수 있었던 것과 다르게 지금은 완전히 탈탈 털렸는지, 제대로 된 공물을 보낼 능력도 없어진 것이 눈에 보입니다. 991년에도 정안국 왕자 태원이 여진의 사신에 부탁하여 표를 올렸습니다.




이것을 잠시 훑어보면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분명 국서를 보내고 공물을 보냈는데, 보낸 주체가 왕이 아니라 왕자라는 것을 우선 주목해야 합니다. 약 10년 전에 오현명이 보냈을 때에도, 그 이전에 열만화가 공물을 보냈을 때도 정안국은 왕의 명의로 보내고 받았지, 왕자가 주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위의 986년의 요나라의 정안국,여진 공격과 바로 위의 이 두개의 사료를 접목시켜서 판단해 본 결과, 986년의 요나라의 침공으로 인해 정안국이 대패하고 그 국왕인 오현명 역시 전사 혹은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붙잡혀갔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오현명이 전사 내지 사망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뒤에 있는 송사의 송기 열전 항목에서 나오는 '거란이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원한'과 연결이 됩니다.



참고로 송은 끝까지 정안국과 '발해'를 구별하는데, 정안국의 언급이 최후로 나오는 991년에도 송은 '발해'라는 표현을 다른 사료에서 사용합니다. 전편에서 얘기해듯이 저는 요와 송에서 '발해'라고 칭한 이 세력을 연파의 세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파가 975년에 반란을 일으키고 정안국의 땅으로 달아난 다음, 정안국 덕분에 살아나고, 도움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연파가 정안국과 협조를 하거나 (자신을 살려주고 도와준)정안국을 자신의 상위로 모셨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발해'라고 송에서 칭하고 있던, 연파의 세력을 가리키면서 연파가 자신의 임금(오현명)을 죽이고 나라를 멸망시켰기에 원한을 품고 있다고 한 말은 이것을 뜻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사료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986년의 거란 침입으로 정안국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그 왕인 오현명이 전사 내지 사망했을 정도의 타격을 입었으며, 그 피해복구가 되지 않은 채로 후계가 정해지지 않은 까닭에 왕자인 태원이 정안국의 잔존세력의 정국을 991년~992년까지 임시로 주도한 이후, 송과 연락도 끊어지고 더 이상 송에게 기대할 것도 없다고 판단한 후 그나마 의지할 수 있고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세력인 연파와 세력을 합쳤다면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왜 992년을 굳이 꼽았는가? 에 대한 해답은 아래의 사료 때문입니다. 그리고, 송기가 저렇게 상소문을 올렸는데도 불구하고 송 조정은 결국 발해를 돕거나 챙기는 것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고, 발해와의 친교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위 사료에서 '발해'의 군대와 영토가 타국들보다 성대하다고 말하고 있는 대목에서 나오는 '발해'는, 989년이 된 이 시점에서 이미 반쯤 망해버린 정안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송과 거란이 발해라고 동시에 불렀던 세력인 연파 세력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 시기의 발해잔존세력은 정안국 아니면 연파 밖에 없는데, 이 시점에서 멀쩡한 발해잔존세력은 연파 외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저는 연파가 986년에 요의 공격을 피해간 이유도, 연파가 긁어모은 세력이 생각외로 큰지라 요나라에서 실패 가능성을 점쳐서 굳이 건드리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따라서 연파는 정안국에게 몸을 의탁한 이후, 정안국의 도움으로 세력을 복구하고, 정안국이 거란의 침입을 받아서 비실비실해진 사이에 세력을 기르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연파는 그것을 입증하듯이, 995년에 20년만에 다시 요나라를 선제공격 합니다. 그것은 다음 편에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사』 본기 13권 성종 中


-통화 10년(992) 2월, 임신일에 올야가 와서 조공하였다.



이 기록이 요사에 나온 올야의 첫 기록입니다. 하지만 올야 정권을 주도했을 것으로 짐작된 연파의 세력은 정작 992년 훨씬 이전인 975년부터 건재했습니다. 이 시기에 연파의 세력을 칭할 때 요사에서는 '발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992년 이후로는 연파의 세력에 올야라는 단어가 추가된 낌새가 보입니다.(물론 연파가 건재할 시점에서는 발해 표현도 가끔 나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기에 요와 송이 발해잔존세력을 부르는 명칭이 조금 달라집니다. 송은 그 이전까지 정안국 호칭을 불러주다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발해잔존세력을 칭하는 말이 '발해'로 완전히 바뀝니다. 이후 송나라 사서에 정안국이라는 단어는 영영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요나라는 그 이전까지는 발해잔존세력을 칭할 때 여진 호칭을 섞어서 혼용하였으며, 연파 세력을 뜻할 때는 자국에 있던 발해인인 연파를 의식해서인지 연파를 지칭할 때에만 '발해'라는 단어를 썼는데, 연파 개인이 아닌 발해 잔존세력을 뜻할 때는 '올야'라는 단어로 서서히 옮겨가게 됩니다. 그리고 '여진'이라는 단어는 이 시기부터 진짜로 여진족에게만 주로 쓰여지게 점점 바뀌는 성향을 보입니다.



『송사』 264권 열전 中 송기 항목


-단공 2년(989)에 장차 유주와 계주를 토벌하고자 군신에게 조서를 내려 각기 변방의 일을 말하게 하였다. 기가 상소하여 이르기를,(중략)발해의 군대와 영토는 해장보다 성대하고 비록 힘껏 거란을 섬기고 있지만, 모두 거란이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중략)아울러 해와 습, 발해를 얻어 외신으로 삼는 것이 곧 사이를 막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요사』 13권 성종 항목 中


-계사일에 여진에서 송나라 사람이 바다를 건너 본국에 뇌물을 바친 것과, 올야가 반기를 든 사실을 알려 왔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따라서 현재 언급하는 정안국 몰락 이후의 시점에서는,



송은 연파+정안국 잔존 세력을 '발해'라고 불렀으며, 절대 올야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요는 연파+정안국 잔존 세력을 '올야'라고 불렀으며, 연파 본인을 지칭할 때에만 발해라는 단어를 쓴 외에는

발해 단어를 절대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례는, 정안국 잔존세력이 의탁해 오면서 연파의 세력 범위와 세력 구성원들이 변하고 늘어나게 됨에 따라서 명칭이 변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정안국 잔존세력이 올야에 있는 연파에게 합류한 시기는 991년에서 992년 사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점을 기점으로 송과 요 양국의 발해잔존세력에 대한 호칭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종합해 보면, 986년의 요나라의 대대적인 정안국 침공 이후에 정안국은 거의 몰락하는 신세가 되었으며,

송과의 연계 역시 불가능한 처지에 놓여서 자신들이 과거에 도와주고 살려주었던 연파에게 가서 세력을 합치거나

의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연파는 975년에 반란을 일으키고 달아난 이후, 송사에 언급이 될 정도로 세력을 야금야금 키워 온 것으로 보이며, 986년의 요나라의 정안국 공격때도 손해를 전혀 보지 않은 것으로 정황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연파는, 열심히 키워온 세력을 과시라도 하듯이, 혹은 요에게 다시 본때를 보여줄 마음이었는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994년 12월에 병력을 총동원하여, 20년만에 발해군의 깃발을 다시 걸고 앞장세워 요나라에 반기를 다시 듭니다.

그리고 연파가 이끈 '발해군'은 요의 복속국이자 속령인 철려(구 철리말갈, 발해의 철리부)를 맹렬하게 공격하였으며, 철려에서는

발해군의 맹공을 받고 요나라에 급히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에 요 조정은 정안국을 쓸어버린 이후 마음 놓고 있다가, 20년만에 다시 나타난 연파의 발해군에게 놀라 다시 대응을 부랴부랴 시작합니다.




그리고 연파는 20년이상 열심히 세력을 모으고 군사를 모으고 노력한 것이 헛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요나라에 다시 한번 큰 충격과 센세이션을 안겨주게 됩니다. 이 내용부터는 다음 편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질문과 함께 이야기할 점은 댓글로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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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국과 백두산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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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0~981년 사이 정안국의 미스터리

-https://www.fmkorea.com/6990420603


정안국 파멸의 카운트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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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멸망전을 제외한 다른 글들



5경 15부 62주에 대한 오류 가능성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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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국호는 발해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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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과 대문예의 형제싸움으로 인한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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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6년 사건'의 진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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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과 설화로 살펴본, 발해 문왕 시기의 어두운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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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멸망의 시발점, 폐왕 대원의의 정변 (1)

-https://www.fmkorea.com/index.php?mid=mystery&category=15037454&document_srl=6817289827


대원의 정변 2편

-https://www.fmkorea.com/index.php?document_srl=6817562512&s_comment_srl=6817568874#comment_6817568874


문왕과 강왕의 관계에 대한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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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왕이 문왕의 가족을 몰살시켰을 가능성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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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의 정변 3편

-https://www.fmkorea.com/6819337509


대원의 정변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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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의 정변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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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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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선왕(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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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이진의 찬탈 가능성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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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왕과 대건황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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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박호와 모란강 전설로 본 대건황-대현석 시기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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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발해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12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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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에서는 과연 어떤 것이 났을까?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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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에서는 어떤 것들이 났을까?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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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에서는 어떤 것들이 났을까?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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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땅이 추워서 농사가 안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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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알아보는 발해의 고구려 계승의식

발해사신 수난기

대위해의 재위년도 오류 가능성

발해 인구를 소수로 잡는 의견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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