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국군정보사령부의 백색테러 흑역사, 오홍근 테러사건[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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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93회 작성일 24-03-15 22:22본문
1988년, 당시 중앙일보의 자매지인 중앙경제신문의 사회부장이었던 오홍근 기자는 <월간중앙> 1988년 4월호부터 '오홍근이 본 사회'라는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입법, 사법, 행정 등 3부를 강타한 태풍은 한마디로 군사문화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데서 빚어진 비극이다... 육군소장 출신 전국구 의원이 바로 그 군사문화의 필요성을 역설해 주목을 끌었다. "항간에서 '군대문화를 퇴지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오늘 같은 결과를 볼 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흥분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군사문화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향한 절규였을까(...)
최근 사회 이곳저곳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상당 부분은 민주화가 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요, 군사문화가 청산되지 않았거나 군사문화가 씨뿌려놓은 반목과 불신 속에서 연유하는 것들이다.... 지난날 군사문화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서는 합리적 대화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호소가 절규로 바뀌고, 각목과 화염병과 습격이 등장했다... 반목과 불신이 쌓였다"
그러자 신문사에는 항의 및 협박이 쏟아졌다.
"그렇게밖에 (기사를) 못 쓰겠어.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이 나라를 지킨 게 누군데..."
"우국충정으로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사람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아시오. 후방에서 밤낮으로 주지육림에서 놀면서 펜대와 주둥아리를 까불면 그때는 시민이 교육시킬 것이오."
심지어는 오홍근 기자의 주소와 신원을 묻는 전화마저 걸려오는 등, 오홍근 기자에 대한 협박의 수위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1988년 8월 6일 새벽, 강남구 청담동 삼익아파트의 경비원 이명식씨는 동료 경비원으로부터 수상한 차량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당 차량을 확인한다.
처음 보는 차량 안에 두 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고,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본 그는 돌아와 근무일지에 차량 번호와 차종을 기록해 두었다.
차량번호는 서울 1 라 3406, 차종은 포니 2였다.
그날 아침, 삼익아파트에서 출근하던 오홍근 기자를 두 명의 괴한이 미행하였다.
그들은 오홍근 기자를 불러세워 '대공에서 나왔으니 함께 가야겠다'며 그를 붙잡았고, 오홍근 기자가 신분증을 요구하자 회칼로 오홍근 기자의 왼쪽 허벅지를 찌르고 도주하였다.
오홍근 기자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깊이 3cm, 길이 30cm의 자상을 입고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사고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한 오홍근 기자의 모습)
사고 직후 경찰은 오홍근 기자의 기사에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기획한 범죄로 규정하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앞서 언급했던 이명식 경비원의 증언을 토대로 서울 1 라 3406 포니 2 차량에 대한 추적에 나섰고, 추적 결과 해당 차량이 육군 정보사령부 소속임이 밝혀졌다.
이에 경찰은 정보사령부에 차량 조회를 요청했으나, 정보사령부는 해당 차량이 정보사 소속은 맞으나해당 시간에 운행한 적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수사가 난항에 빠지고 있던 8월 23일, 신원 미상의 인물이 중앙일보로 한 통의 전화를 한다.
제보자는 정보사 소속 4명의 신원을 제보하며, 이 4명의 사건 당일 행적이 불분명하다고 제보하였다.
이 제보는 국방부에도 전달되었고, 수사는 급진전되었다.
이에 육군범죄수사단은 정보사 소속 박철수 소령, 김웅집 하사, 이우일 하사, 남정성 하사 등 4인을 오홍근 기자에 대한 테러 혐의로 체포하였고, 당일 그들로부터 범행을 자백받았다.
경찰과 국방부는 계속된 수사 끝에 해당 4인이 오홍근 기자의 칼럼을 보고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가 군의 병폐 문화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내용에 격분,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에 저지른 단독 범행이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수사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여론은 축소 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들끓었다.
우선 사건 현장에 추가로 3~4명의 인원이 더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심지어는 장성급 인원도 해당 사건에 개입되어 있다는 의혹이 일었다.
정치권에서는 평화민주당이 이 사건을 파는데 적극적이었으며, 국정조사권 발동을 시사하며 국방부를 압박하였다.
이에 국방부는 추가적인 조사에 착수하였으며, 이내 이규홍 준장, 권기대 준장, 안선호 대위를 추가로 입건하였다.
국방부가 파악한 사건의 전모는 다음과 같았다.
- 오홍근 기자의 1988년 8월호 칼럼을 읽은 이규홍 준장이 분개하여 부하인 박철수 소령에게 오홍근 기자에 대한 테러를 사주
- 박철수 소령, 부하인 안선호 대위, 김웅집 하사, 이우일 하사, 남정성 하사를 동원해 사전 답사까지 하며 범행을 준비
- 안선호 대위, 김웅집 하사, 이우일 하사, 남정성 하사는 전술한 서울 1 라 3406 차량을, 박철수 소령은 서울 1 거 6873차량을 이용해 현장에 합류, 오홍근 기자를 테러
- 이규홍 준장, 범행 이틀 후 사령부 참모장 권기대 준장에게 범행 사실을 보고, 권기대 중장은 용의 차량으로 지목된 서울 1 라 3406 차량의 운행기록 변조를 지시, 증거인멸 시도
- 육군정보사령관 이진백 소장, 이규홍 준장과 권기대 준장에게 범행 5일 후 범행 사실을 보고받았으나 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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