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재미로 알아보는 카타나 내구도의 진실[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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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90회 작성일 24-03-02 20:48본문
밑에 3줄 요약 존재
그리고 사무라이하면 생각나는게 카타나 (일본도) 인데
사실 카타나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동서양 막론하고 가장 흔하게 보이는 논쟁이 바로 내구도 문제임
한 쪽은 "아니 카타나 내구도 병신 맞다니까?" 라고 주장을 하고
"응 그건 아니야, 카타나 스고이하면서 빨아준 기록 있어" 라고 다른 한 쪽이 주장함
이 논쟁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한 줄로 요약되는데
아니 이게 뭔 개소리야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일본도의 역사를 생각해봐야 함
일본도는 크게 상고도 / 고도 / 신도 / 신신도 / 현대도로 나눔
상고도는 우리가 "와! 카타나!" 하면 생각나는 위와 같은 형태의 모습이 아니라 이런 류의 논쟁에선 논외
현대도 같은 경우는 메이지 유신 당시 폐도령 선포 후에 만들어진 일본도를 총칭하는데, 사실상 이때부터는 공예품으로 다뤄졌기 때문에 논외임
내구도로 얘기되는건 보통 고도 / 신도 (에도 막부) / 신신도임
고도 (987~1599년) 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카타나의 형상이 나타난 시기임
그리고 카타나가 좋은 칼이라고 얘기할 때, 칭하는 칼은 거의 예외 없이 모두 고도 시기의 카타나임
뭐 특별한 공법이 있었던건가? 라고 물어볼 수도 있는데, 없음
뒤질래? 라고 할 수도 있는데, 진짜 별 특별한 거 없었음. 일본만의 특별한 기술을 써서 개쩌는 일본도를 만들었습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면, 중국이랑 한국이 병신도 아니고 다 비슷하게 쓰던 기술이라고 대가리를 깨주면 된다.
단, 이런 방식으로 만들면 느리고 품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강재를 해외에서 어느정도 수입 (or 밀수입)하는 걸로 충족했음
게다가 전국 시대를 맞이하면서 이걸 뛰어넘을 정도로 강재의 수요가 폭증 했는데
전국 시대의 폭증한 왜구들이 중국, 한국, 남만등을 털면서 강재 수요를 충족시켜줬다.
한 마디로, 이때의 카타나는 중점을 뒀던 부분이 달랐던거지 그냥 동시대에 금속 문명권에서 보이던 검들과 큰 차이가 없고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때라는거. 이 당시 중국과 한국은 모두 일본도를 고평가 했음.
왜냐면, 중국이나 한국은 평화로웠던 시기에 얘네는 전쟁하면서 쌓인 장인들의 숙련도 + 전쟁을 치루면서 실전 경험을 어마무시하게 쌓고 살아남은 병사들의 높은 기량이 결합되면서 높은 평가를 받은거
뭐 전국 시대에 칼 여러 개 들고 다닌 걸로 보아 내구도가 쓰레기다라면서 까는 주장은 그럼 동시대의 서양에서 주무장 부무장 여러개 들고 다니던 애들은 수수깡으로 만든 무기를 들고 다녀서 그런거냐 라고 말하면서 대가리를 깨면 된다.
그리고 이제 에도 막부가 집권하면서 부터 만들어진 일본도를 신도 (1600 ~ 1763년) 라고 하는데
전국 시대가 끝나고 카타나는 주력 무기에서 탈락하고, 사용하는 공법도 바뀌고 쇄국도 펼쳐서 강재를 수입할 길이 막히자 급속도로 나락을 가기 시작함
양산화를 위해서 높은 화력을 쓰는 조선식 가마를 썼는데, 그만큼 단단해졌지만 인성이 없어서 깨지기 쉬운 주철(무쇠)가 되었고
유약을 바르는 단계가 추가되면서 오히려 불순물을 추가하는 꼴이 되어 접쇠를 할수록 품질이 더 나락을 감
게다가 전쟁에선 점차 멀어지던 시기다 보니까 실전성을 띈 칼이라기 보다는 예술품의 성격이 강해지기 시작함.
당연히 내구도는 나락을 갔고
신신도는 에도 말기에 고도로의 회귀를 외치면서 등장했는데
무기로서의 기능이 일시적으로나마 부활했으나 품질은 그렇게 나아진 편은 아니다.
한 마디로 카타나는 개쩐다 - 고도 / 카타나는 병신이다 - 신도, 신신도 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3줄 요약
1) 카타나의 논쟁 중 대표적인 건 내구도
2) 단, 내구도는 카타나가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다르다.
3) 좋은 카타나는 고도, 나쁜 카타나는 신도, 신신도 시기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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