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로마 역사상 자식이 가장 많았던 할아범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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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165회 작성일 24-03-0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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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5_220605.jpg 로마 역사상 자식이 가장 많았던 할아범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完)


시리즈 일?람


한니발, 처음으로 진정한 적수를 만나다 - "그 틀딱", 독재관 파비우스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 1편

로마의 사나이에게 "용기"란 무엇인가?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2)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 2편

로마의 사나이에게 "명예"란 무엇인가?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3)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 3편

시련, 로마의 가장 어두운 날들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 4편

로마에서 당한 포위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5)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5편

억까는 한니발만 당하는 게 아니다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6)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6편

로마사에 길이 빛나는 순간, 게로니움 전투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7)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7편

파비우스옹 시리즈 외?전 - "로마는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외전

"로마는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다"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8)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8편






칸나이 전투 수습 이후 ~ 서거까지 사이에 파비우스옹의 활약상 및 주요 사건들은,

미갤에 롬붕이가 쓴 글과 다른 분이 쓰신 훌륭한 글들이 있으므로 링크로 정리함



적국의 찐빠로도 억까를 당했던, 지구작가가 버린 남자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오타킬리우스 집정관직 압수



가짜광기)다짜고짜 적 수도 공격함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한니발의 로마 진군



제 2차 타렌툼 공방전


팩?트 체?크)정말로 제2의 한니발이 없어서 한니발이 패배했을까?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

"한니발은 태어나서 세 번 울었다. 그 중 첫번째는..."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

외?전, 뇌피셜 다소 함유) 파비우스옹이 한니발에게 역티배깅을 시전하다?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

의외로 유머감각까지도 있었던 "그 로마틀딱"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



파비우스는 왜 스키피오의 아프리카 원정 계획을 못미더워했나?


파비우스 옹이 스키피오를 미워한 정확한 이유가 뭘까요? - 미스터리/공포 - 에펨코리아 (fmkorea.com)








800px-Paolo_Uccello_044.jpg 로마 역사상 자식이 가장 많았던 할아범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完)


[그는 실로 막시무스(Maximus위대한)란 이름을 쓸 자격이 있는 사나이였다.]


-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죽음에 대해 기록하며 남긴 평









08.jpg 로마 역사상 자식이 가장 많았던 할아범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完)

016bdbba51a422b4d4c24a15d8455e05.w480.jpg 로마 역사상 자식이 가장 많았던 할아범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完)


기원전 203년, 알렉산더 대왕 이래 가장 위대한 명장, 한니발 바르카의 전쟁은 끝났다 - 이탈리아에서는 말이다.

15년 전 2차 포에니 전쟁의 첫 전투였던 티키누스 전투에서, 하마터면 한니발군에게 집정관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죽을 뻔했던

소년 기사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정확히는 자마 전투에서 승리한 뒤 얻은 칭호지만)가, 이제는 청년장군이 되어

바르카 형제들의 실질적인 고향인 카르타고령 스페인을 정복했을 뿐더러

칸나이 이후 로마가 가장 암울한 국난에 처했을 때, 무적의 한니발에게 맞서 끝내 조국을 지켜낸 원로 명장들 -

파비우스 막시무스와 풀비우스 플라쿠스 같은 이들이, 오래 전 1차 포에니 전쟁 때 레굴루스의 아프리카 원정군이

전멸해버렸던 악몽을 떠올리고서 강력히 제기했던 우려조차 멋지게 뒤집어 보이며

아프리카에 상륙해 연전연승, "스키피오가 문 앞까지 왔다!"는 공포에 질린 카르타고 본국이

이탈리아 반도의 "장화 발가락 끝", 브루티움에서 끈덕지게 버티고 있던 한니발에게 긴급 귀국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1280px-Hirohito_visit_to_the_Yasukuni_Shrine_in_1934.jpg 로마 역사상 자식이 가장 많았던 할아범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完)


몇 년 전, 지원군을 이끌고 그와 합류하기 위해 과감히 알프스를 넘어왔다가

메타우루스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동생 하스드루발의 수급을 로마군이 던져온 광경을 보았던 그 날

한니발은 사랑하는 동생과, 이 전쟁에서 승리할 최후의 기회를 둘 다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립무원의 이탈리아 반도 끄트머리에서 강철의 의지로 버텨온 것은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원정군을 이끌고 있는 하루하루, 한 해 한 해가 그 자체로

그가 아홉 살 때 떠난 지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사랑하는 조국 카르타고를 직접 공격하지 못하도록

로마의 주력군을 이탈리아 본토에 묶어두는 시간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전히 지칠 줄 모르고 몇 남지 않은 현지 동맹도시들을 보호하며 휘하 장병들을 보살펴왔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 닥쳐올 운명의 날을 예견하여, 배를 가능한 한 준비하고

휘하 직속 정예 병력들을 항구에 집결시켜놓는 등 차근차근 그날에 대비하고 있었다.



카르타고 본국에서 원정군을 모두 태울 만큼 충분한 배를 보내오지 않아, 한니발은 또다시 잔인한 선택을 강요당했다.

청년일 때 알프스를 넘어와, 이제는 한니발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나이를 먹어

무수한 전투로 몸에 흉터가 수두룩하고 머리도 희끗희끗해졌지만

여전히 그들의 장군에게 절대적으로 헌신하는 노병들 - 1만 5천 명의 정예병들만 배에 태우고

자기들도 데려가달라고 애원하는 현지 동맹병들은, 배에 매달리지 못하도록 화살을 쏘면서까지 떼어내

복수심에 불타는 로마의 손아귀에 떨어지도록 내버려두고 가야 했던 것이다.

전술적으로는 더 큰 타격은, 3천 필의 군마들까지 이탈리아 현지에 고스란히 버리고 갈 수밖에 없어

로마 원정군을 상대로 극히 불리한 싸움을 강요당하게 되었다는 것이었고, 이는 결국 자마에서 재앙을 당하는 화근이 되었다.









20190518_163022.jpg 로마 역사상 자식이 가장 많았던 할아범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完)


그렇게 한니발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땅을 처음 밟은 지 무려 15년이 지난 기원전 203년,

수평선 너머로 이탈리아 남부의 산맥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갑판에서 바라보았다.

그는 아홉 살 때 카르타고를 떠나 스페인으로 갔고, 청년일 때 이탈리아로 진군했으며,

이제는 40대 중반이 되어, 지난 15년 간 무수한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사실상의 패장이 되어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해져가는 고국을 향해 돌아가는 중이었다.








20200605_220605.jpg 로마 역사상 자식이 가장 많았던 할아범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完)


한니발이 이탈리아를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말할 것도 없겠지만 온 로마가 열광했고

신전이란 신전마다 감사 기도를 올리며 제물이나 봉헌물을 바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러나 정작 로마의 그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한니발에게 맞서 조국을 지켜온 이 -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살아서 전쟁의 끝을, 로마의 궁극적 승리를 볼 수 없었다.

병을 앓고 있었던 그는(뇌피셜이지만, 아들이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것에 심적 충격이 컸었을 듯하다)

한니발이 이탈리아를 떠난 지 불과 한 달 뒤

마치 내 할 일은 이제 다 했다는 듯, 자기 집의 침대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정확히 몇 세에 숨을 거두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고대 기록에서 유추한 현대 역사가들의 추정으로는

"최소" 70대 이상, 최대 80대까지도 육박했을, 고대인치고는 정말 엄청난 장수였다.





08.jpg 로마 역사상 자식이 가장 많았던 할아범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完)


한편 한니발은 로마 해군의 방해를 피해 카르타고보다 훨씬 남쪽에 있는 하드루메툼에 상륙했다.

무려 35년만에 돌아온 영웅에게 페니키아의 주신, 바알-함몬이 내린 운명은 너무나 가혹했다.

알프스를 넘을 때부터 칸나이의 대승까지 형과 든든히 함께했고, 그 후 하스드루발과 함께 스페인을 지키러 가 고군분투했던

둘째 동생 마고마저, 전투에서 입었던 부상이 악화되어 죽고 말았다는 비보가 전해졌던 것이다.

크나큰 슬픔 속에서도 좌절 따윈 모르는 사나이 한니발은, 죽은 동생 마고의 잔존병력들과

카르타고가 허겁지겁 고용한 용병들로 병력을 보충 및 재편성,

곧 닥쳐올 로마의 청년 영웅과의 마지막 결전에 대비중이었다.



순 미붕이의 뇌피셜이지만, 고대의 교통 통신 수준을 생각해볼 때

로마의 "그 늙은이"가 이제야, 자기가 이탈리아를 떠난 지 겨우 한 달 만에 죽었다는 소식을 한니발이 접하게 된 건

아마 이때쯤이었을 것이다.

실로 생애 최대의 숙적 - 칸나이 전투 때 일개 대대장이었던 아프리카누스와는, 아직 한 번도 대결해 본 적이 없었다 - 의 부고에

한니발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아쉽게도 역사에 전혀 전해지지 않지만

좆문가호소인 롬붕이조차도 한 가지만은 감히 단언할 수 있다.

마르켈루스, 플라미니우스, 파울루스 등, 용감히 싸우다 명예롭게 쓰러진 로마 적장들에게 늘 예를 갖춰 장례를 치뤄준 한니발이라면

'그 빌어먹게 지긋지긋한 늙은이 이제야 뒤졌느냐'고 환호했을 리는 만무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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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100% 뇌피셜에 불과하지만, 파비우스옹의 부고를 듣고 한니발이 보인 반응은 아마

'아니 진짜...이 망할 영감, 정말로 그 동안 나 때문에 엘리시움(낙원)에 못 가고

그 나이 먹도록 이승에서 억지로 버티고 있었던 거요...?' 라는 허탈한 미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만 불멸의 명장 한니발에게, 파비우스 막시무스란 사나이는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 있는 한 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다시 또 먼 훗날, 망명객 신세가 된 이제는 노년의 한니발이

파비우스와 마르켈루스, 그 두 라이벌들과의 싸움을 회상하며 이렇게 치를 떨었다는 것이다.

파비우스와의 대결은 사소한 실수도 봐주지 않는 엄한 스승님께 배우는 기분이었고,

마르켈루스와의 대결은 어떻게든 죽여버리겠다고 달려드는 불구대천의 원수와 싸우는 기분이었다고.









20200601_231423.jpg 로마 역사상 자식이 가장 많았던 할아범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完)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장례는 의외로 국장이 아닌 가문장으로서 거행되어,
로마 정부 차원에서 국고로 장례식 비용을 지원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조국의 아버지Pater Ptriae라는 칭호가 원로원에서 공식적으로 고인에게 부여되거나 하지도 않았다.
다만 집정관이나 원로원의 명 같은 건 없었음에도, 팔라티노 언덕의 호화저택에 사는 백발 성성한 원로원 의원과 귀부인들로부터
수부라(서민촌)에 신혼살림을 꾸린 젊고 가난한 부부에 이르기까지, 온 로마의 성인남녀 시민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화폐 중, 가장 액수가 적은 동전 한 닢씩을 파비우스 가문에 기부했다.

사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늙은이 저승가는 길에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티배깅으로밖에 안 보이겠지만
시리즈를 함께 읽어준 미붕이들은 절대 그럴리 만무하다는 걸 모두 알 것이다.
가장 액수가 적은 동전을 낸 것은, 생전의 파비우스옹이 은혜를 돈으로 갚길 원했을 리가 전혀 없을 뿐더러
로마 시민들이 파비우스에게 입은 은혜를 굳이 돈으로 환산하려 들었다가는, 전재산을 바쳐도 모자랄 판이었기 때문이었고
- 한 세기 반 뒤, 로마 역사상 제일의 대부호 크라수스조차도, 제 목숨과 나라만은 그 전재산으로도 살 수 없었지 않았던가? -








20200703_211242.jpg 로마 역사상 자식이 가장 많았던 할아범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完)


그럼에도 굳이 기부금을 내는 것은, 공식 칭호의 존재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를 조국의 아버지Pater Ptriae로 여긴 시민들이
아버지께서 가시는 마지막 길에, 아들딸들로서 상징적으로나마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려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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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수십 명이었던 머머리는, 로마의 운명을 바꾸었고,







20200518_210519.jpg 로마 역사상 자식이 가장 많았던 할아범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完)


애비가 넷이었던 애송이는, 로마를 제국으로 만들었지만...







800px-Paolo_Uccello_044.jpg 로마 역사상 자식이 가장 많았던 할아범 - "그 틀딱", 파비우스 막시무스 (完)


자식이 수십만이었던 할아범은, 로마를 멸망으로부터 구했다.



(完)




시리즈를 쓰면서 참고한 출처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이종인 역 "리비우스 로마사" 제 3권,

필립 프리먼 저 "한니발 : 로마의 가장 위대한 적수",

한종수 저 "페니키아· 카르타고 이야기",

오스프리 세계의 전쟁 시리즈 "칸나이 BC216 :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로마군을 격멸하다",

프리츠 하이켈하임 저 "하이켈하임 로마사",

그 외 미갤 "메텔루스스키피오" 님 글들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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