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발해의 인구가 적다고 검증없이 말하는 의견에 대한 반박[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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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73회 작성일 24-04-2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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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얼마 전에 올렸던 글입니다.


오류가 좀 있기도 해서 고쳤으며, 좋지 않은 반복성, 알못 댓글과 순환논리 댓글이 너무 심해져서,


조금 손보고 삭제하고 재업했습니다.





우선 이 글을 설명하기 전에, 꼭,



https://www.fmkorea.com/6929314380



이 글을 보셨으면 합니다. 위 글은, 사료를 무시하고 자신의 뇌피셜과 잘못된 근거를 가지고, 그것이 맞다고 우기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글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변수, 전란, 전쟁, 황폐와, 기후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현대 인구를 기준으로 과거인구를 추산하는 어처구니 없는 오류를 저지르던지,


정확하지 않은, 작성자마저 오류를 인정한 '경제학'데이터 프로그램으로 과거 인구를 추산한다던지,


막연하게 중국 동북땅(만주)은 춥고 척박했으니 인구가 적을 것이다.ㅠ


조선시대 인구를 대입해서 발해 인구를 구한다던지, 청나라 초기 인구를 대입한다던지,


그외 자신만의 생각으로 기존학계의 연구를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사료비판, 사료불신에 빠져서 사료는 무조건

못 믿는다고 자신이 옳다고 한다던지 하는 등등의 댓글, 의견이 많아져서 첨부했습니다.






오늘 이야기할 거리는, 발해의 인구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만큼 진짜 적었는지,

제가 아는 선에서 한번 살펴보는 것입니다.


현재 많은 분들이 중국 동북 땅은 척박했기 때문에, 발해땅은 곡식이 날 수 없으며, 그로인해 인구부양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발해인구는 해봐야 50~100만이 한계이다. 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 가끔씩 보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여러 전공자들도, 저도 반박을 한 바가 있습니다. 발해땅에서 곡식이 잘 났다는 사료와 기후학 통계자료,

고고학으로 발굴한 발해의 발전한 농기구들로 인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이후의 조선 인구, 그리고 후금 인구, 간혹 신라 인구를 가지고 와서 발해 인구를 굳이 소수일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에 대한 글을 작성했습니다.




가끔 발해의 인구에 대해 이야기할때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항상 발해 시대가 아닌, 훨씬 훗날의 금 시대와 후금, 청 시대를

가지고 와서 이야기하는 분이 많습니다.



중원을 석권하지 못한 상태의 후금 인구도 80~100만남짓인데

그 이전인 발해 시대에 인구가 더 많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 보면, 발해 인구가 왜 발흥 당시의 건주여진 인구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지는 명백하게 나옵니다.


발해는 고구려인에 그 당시 흑수부를 제외한 나머지 말갈을 모두 차지했었습니다. 그리고 흑수부 역시 발해에게

여러번 먹혔다 이탈했다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흑수부 역시 일부는 발해의 휘하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금국지의 항목 중 하나를 가져와 보았습니다.




『대금국지』 中

-여진은 말갈의 후예이다. 그 나라는 원위, 제, 주나라 때에는 물길로 불렀고, 수나라에 이르러 말갈로 불렀다. 그 나라는 장안에서 동북으로 6천 리이고 동쪽은 바닷가이다. 나뉘어져서 수십 부가 되었다. 흑수와 백산부 등이 있다. 뒤에 거란의 침공을 받아 부족이 흩어졌다. 혼동강의 위쪽에 사는 사람들의 처음 이름이 여진이니 곧 옛 흑수부이다.



이 사료를 보면,여진의 시초는 흑수부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진에서 또 갈라져 나온 일파가 누르하치의

건주여진, 만주족입니다.


즉, 후금의 인구가 왜 적을 수밖에 없냐면, 말갈 전체 중에 하나의 부인 흑수부가 여진이 되었으며, 그 여진이 훗날 발해인과

일부 타종족을 합쳐 흥기한 다음 중원을 먹는데는 성공했지만, 몽골에게 완전히 분해되고 고토로 겨우 달아나거나 고토에 남았던

여진족들만 명맥을 이은 다음이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서 인구가 완전히 박살이 난 것입니다.


게다가 이 주장을 하는 분들은,

중국 동북땅이 정말 좋으면 왜 발해보다 훨씬 뒤의 나라인 후금 인구가 저거밖에 안돼냐? 후금 인구가 적은 것은 중국 동북 땅이 인구부양이 안되는 곳이라 그렇다. 라고 억측을 합니다. 발해 인구 중에 일부였던 말갈족, 그리고 그 말갈 중에서도 일부였던 흑수말갈에서

퍼져 나갔으며, 그나마도 늘어난 금 시대 이후에는 몽골침입으로 인해 완전히 한번 박살났던 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게다가발해의 인구는 고구려인+흑수를 포함한 전 말갈이기 때문에,당연히 흑수 하나에서 시작되어 거기서 또 여러번 갈라진 갈래인 누르하치 휘하의 건주여진(훗날 만주족)과 비교를 하면 당연히 그 인구수가 차이날 수밖에 없습니다.



발해 시대와 후금 시대는 거의 7백년이 차이 나는데 과거 국가인 발해의 인구가 후금보다 더 많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라고 의문을 표하신 것 같습니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YES입니다.




요즘 인터넷 곳곳에서, 카페,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 발해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인터넷에서 발해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주장하는 사람들의 특징으로는 주로



1.발해는 우리 역사 아니다


2.발해는 말갈의 나라다


3.발해는 인구가 적다.(혹은 고구려인은 소수고 말갈인이 다수다)


4.발해는 만주사다(or 발해는 발해의 역사이지 그 어느 역사도 아니다)


5.발해는 별거 아닌 국가였다




등등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는 굳이 집어서 거론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특정되어들 있으니 말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니면 이상하게도 이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은 대체 무슨 이유로 발해의 인구가 적다고 하시는 지는 알지 못하지만,공통점으로는, 어느 글을 보아도 어느 곳을 보아도



누구도 사료를 가져와서 이야기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이죠.




제가 이 문제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발해 인구의 입증, 혹은발해 인구는 이만큼 많다. 라는 내용이 아니라,

발해 인구가 그들이 함부로 이야기하는 만큼 절대 적은 수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발해 전체인구를 현재 추론할 수는 없지만 다행히 이 주제는 대략 입증이 가능합니다.



발해 인구는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제각각 다 다릅니다. 3~400만 이상의 다수설이 나오기도 하고,

50만 정도의 극단적인 소수설이 나오기도 합니다. 사실 발해의 전신인 고구려도 인구수가 100~300만설에서 400~700만설까지엿장수 맘대로 오락가락하는 판국이니 거기서 이어진 발해는 더 답이 없는 미궁으로 꼬이게 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따라서 발해에 대한 인구논란, 인구에 대한 논의는 그 전신인 고구려와 함께 항상 있어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발해의 인구가 상당히 적었다. 라는 주장이 근거없이 퍼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터무니없이 적은 인구수를 제시하기도 하는 경우가 상당수 보입니다. 여기에서도 간간히 보이고요.

하지만 정작 그들 중에 발해의 인구가 적다는 정확한 근거는 아무도 가져오지 못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발해의 인구를 제대로 나타내는 사료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사실 발해의 인구가 많았다, 적었다라는 논박 자체가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분들이나

사료를 잘못 읽거나, 맹신하는 분들이 발해의 인구는 적었다. 라고 꾸준히 이야기를 하시고, 여기에서도

그런 분들이 보이며, 다른 역사 커뮤니티는 말할 필요도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발해 인구가 적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대체 뭘 근거로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상당수는 기준도 없이 막연하게 적었다. 라고 이야기하는

판국이라, 어디서부터 짚어야 할 지도 모를 정도인 주장도 많습니다.


그래서 발해의 인구가 얼마나 되느냐, 많았는가, 이 두개 말고,적었는가? 그렇지 않는가? 를한번 어떻게든 간단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역사학은 항상 모두가 말하고 있듯이, 다른 엉뚱한 요소들이 아닌,사료와 사료 검증을 우선시하고 사료로서 입증하는학문입니다.

현재 발해의 인구에 대해서는 고구려보다도 그 답이 더 없어서 그나마의 기준치라도 존재하는 고구려와 달리

아예 감을 잡을 단서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거기다가 최근까지 발해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상식처럼 생각했던 그것, 말갈다수설을 아직도 밀고 있는 분들이나,

발해를 한국사가 아니라 말갈, 중국의 역사로 우기시는 분들도 보이는 판국입니다.

저 역시 발해사를 연구한다고는 하지만발해의 인구가 정확히 몇인지는 모릅니다.자료 자체가 없는 논제를

추론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몇몇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발해 인구는 상당히 적었다.'

이 이야기는 카운터가 될 만한 자료가 있기에 제가 아는대로 대답해 보려 합니다.



우선 그 적은 인구가 도대체 몇명인지 확실하게 전부 알 수가 없기에,

발해 인구가 적었다는 의견에서 제가 본 30만~100만설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는데, 이 글은 발해의 인구가 많다, 혹은 발해의 인구는 그래서 얼마이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글이 아니고, 인터넷에서 많이 떠돌아다니는, 발해 인구는 적다. 에 대한 대답임만을 다시 말씀드립니다.





※항상 발해 인구가 적었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그 전조인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고구려의 수도권인 평양, 평남은

황폐화가 되었으며, 황해도는 신라에게 완전히 먹혀 버렸으니, 남은 고구려인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러니 발해의 인구

역시 적지 않겠는가? 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고구려 인구를 멸망 직후의 69만호로 맞추면 대략 350~400만으로 비정이 된다고들 하는데(이것도 완벽한 것도 아닙니다.)여기서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신라와 당으로의 일부 인구유출이 된다 해도 그 유출 수는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 짚어 보겠습니다.




첫번째. 고구려의 인구가 신라와 당으로 유출된 것은 맞지만 그 수는 고구려 전체 인구 중 소수이다.



-우선 이 주장을 하시는 분들은하나같이, 고구려의 인구 많은 지역이 평남 지역과 황해도 지역만 있는 줄 알고 계십니다.


물론 이 두 지역 역시 고구려의 인구 많던 지역은 맞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뭐냐면,이 두지역만 고구려의 인구 많은 지역이

아니었단 말입니다.고구려의 인구 많은 지역은 이 두곳 말고도, 졸본-국내성이 있는 압록강 중류 지역, 그리고 요동지역,

부여고지 지역, 옥저고지 지역, 송화강 유역의 속말말갈들이 많이 살던 구국지역, 두만강 유역의 책성 지역이 있습니다.


물론평남과 황해도 지역이 인구가 많긴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고구려 인구 전체 비율로 따져 보았을 때,

저 인구들이 한 군데에만 모여 살 리는 없으며, 통로 넘어간 황해도 인구는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으로 끌려간 인구의

상당수는 대조영을 따라 고토로 돌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외로 인구 유출은 많지 않다는 것이(당연히 있긴 있었고, 수십만 규모의 인구 유출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구려 전체 인구 대비로 봐서 다수라고 할 정도의 수는 아니었다. 이 얘기입니다.) 한규철 교수님이 이와 같은 주장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고구려의 인구가 약간 빠져는 나갔지만, 거기에 다시 돌아온 인구에 말갈제부들의 인구를 전부 합쳐서 발해의 인구 자체가 엄청 적다고 할 정도까진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보장왕, 대조영을 따라 돌아온 인구들



-분명히 당으로 수십만대가 끌려간 것은 사실입니다. 이 역시 고대에서 수십만이 적은 인구는 아닙니다. 더러는 고구려 인구의 거의 대다수를 당이 끌고 갔다고 하는데,그 의견은 말도 되지 않을 뿐더러 반박이 되는 사료가 명백하게 존재합니다.고구려 인구를 대충 400만으로 설정을 해 두었을때, 고대에 400만이나 되는 인구를 한꺼번에 잡아갈 수 있을 리도 없고, 당이 고구려를 멸망시켰을 당시 고구려의 땅 다수는 당에게 짓밟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요동도 아직 전부가 날아가지 않은 상태였고, 국내성 지역도 항복만 했지 완전히 당에 흡수된 것은 아니었으며, 옥저지역, 책성 지역, 송화강-목단강 유역은 당의 발길이 닿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의 인구를 전부 당이 이 잡듯이 훑어서 물리적으로 데려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저항이라도 할 시에는 더 힘듭니다. 그리고, 고구려 인구를 싹 잡아가서 고구려 고토가 별 문제가 없고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당이 굳이 요동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할 이유도 없고, 거기 고구려의 전 대막리지였던 남생과 전왕인 보장왕을 데려다 놓을 이유도 없습니다. 왜 요동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냐면, 고구려 고토에 남아있는 고구려인을 감시하고 달래고, 대비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결국 당이 데려간 고구려의 인구는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데,문제는 이들 역시 상당수가 대조영과 같이 고구려 고토로 귀환하게 되고, 그 수는 40만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신오대사』 74권 사이부록 中


-무후가 장수를 보내 걸사비우를 죽였다. 걸걸중상 또한 병으로 죽고 그 아들 조영이 왕위에 올라 걸사비우를 따르던 백성을 아우르니 그 수가 40만명이었다.



『오대회요』 30권 中


-걸걸중상이 죽고 그 아들 대조영이 왕위를 계승하고 걸사비우의 무리를 합하니 그 군사와 호구가 40여만이나 되었으며 읍루의 옛땅을 차지하고 웅거했다.





따라서 고구려 인구의 직접적인 큰 유출은 신라로 편입된 황해도 인구 일부 뿐만으로 한정되는 것이고, 발해는 당에서 도망쳐 온

고구려 유민들, 그리고 고구려의 고토에 남아 있던 유민들과 잔존 고구려 세력들을 끌어모아서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사료에 발해의 호수가 10만이고 병사가 수만명 뿐이라고 나온다?



사서를 어설프게 읽거나, 아니면 남에게 주워 듣는 분, 혹은 교차검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탐구를 해 보지 않으신 분들이

이 주장을 진짜로 알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최근까지도 수용소라 불리우는 모 커뮤니티에서 이 기록을 가지고 발해인구가

작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례가 있었는데요,


우선 저 사료의 내용이 사실이냐? 라고 물으면 반은 사실이다. 라고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아니. 반은 사실이라는게 무슨

소리야? 라고 궁금해 하실테죠.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위의 내용이 담겨 있는 다음 두 개의 사료에 나오는 내용은 모두 고왕 대조영 당시의 기록입니다. 왜 고왕 대조영 당시 기록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이 기록들은 전부 고왕 대조영의 내용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구당서』 발해말갈 中


-조영은 용맹이 뛰어나고 군사운용을 잘 하였다. 말갈의 백성과 고구려의 남은 백성들이 점차 그에게 모여들었다.

(책부원구 956권에도 똑같은 내용 존재.)


-편입된 호가 10여만이고 정병이 수만명이다.




『신당서』 발해전 中


-발해의 땅은 사방 5천리나 되고 호수는 10여만호이며 군사는 수만이었다. 부여, 옥저, 변한, 조선과 바다 북쪽 여러 나라들의 땅을 모두 차지했다.(자치통감 210권 동일)





이 두개의 사료는 모두 고왕 대조영 시대에 대해 쓴 내용에 나옵니다. 위에서 발해의 인구가 적다고 사료를 들어 주장하시는 분들이 쓰는 그 사료와 일치합니다. 하지만 이 주장을 하는 분들은 두 가지를 간과하고 계신데요.



첫 번째로, 구당서를 보면 그냥 발해 전체 인구가 10만호라고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고왕 대조영 때 발해로 편입된 호수만 10여만이라는 뜻입니다.대다수의 사서에서도 그낭 호수가 아니라, '편호'라고 명백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신당서의 기록과 구당서 기록을 보면, 발해가 극초기부터 매우 빠른 속도로 커진 이유가 나옵니다. 고왕 대조영이 나라를 세운 이후 아직까지 남아있던 고구려 유민세력들과 유민들이 합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구당서의 서술은 책부원구 외에도 오대사, 요동행부지 등에도 나오기 문에 신빙성이 상당히 있다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로,초대 왕인 고왕 대조영 때의 사료이기 때문에, 발해 전체 시대를 이야기할 사료료 적합한 것이 아니라 이 말입니다.위의 구당서에 서술한 것이 틀렸다 쳐도, 이 내용은 대조영을 설명하면서 나오는 내용이기에, 대조영 당시의 발해 호수가 10여만에 군사가 수만이라는 뜻이 되지, 발해 전체 시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게 됩니다.



한마디로 저 사료는 고왕 대조영 시기 사료입니다...대체 왜 고왕 시기의 사료를 가지고 발해 전성기, 전체시대 인구라고 얘기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4.사료에 대략적으로 나오는 땅의 넓이와 군사의 수



『요사』 지리지 中


-해북을 병탄하여 땅이 사방 5천리나 되고 병사가 수십만이었다.


-태조가 동쪽으로 발해를 병합하고 성읍을 103개를 얻었다.




『요사』 병위지 中


-천현 원년(926)에 발해국을 멸하였다. 땅이 사방 5천 리, 군사가 수십만, 5경 15부 62주였다. 그 무리를 다 차지하니

거란이 더욱 커졌다.




『요사』 소아고지전 中


-혼자서 기병 5백을 거느리고 노상군 3만명을 패배시켰다.


-적들의 유기 7천명이 압록부로부터 원조하러 오는 것을 만났는데 기세가 대단했다.





-요사에는 발해의 강성함과 크기, 병력의 대략의 수 정도가 나옵니다. 발해와 사이가 좋지 않던 거란의 기록이라서

신빙성이 가는 지 의문도 들지 모르지만,발해와 원수지간이던 거란 입장에서 절대 발해를 좋게 쓸 이유가 없다는 것과,

이러한 대단한 발해를 우리가 이기고 멸망시켰다. 라는 식으로, 그러한 발해를 이기고 멸망시킨 우리는 대단하다. 라는 듯한 시선의 서술이 주를 이룹니다. 특히, 발해의 강성함과 오만, 자만을 이야기하면서 비꼬고 조롱하는 투로 서술하고, 자업자득이다, 그래서 망한거다. 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지므로, 원수인 거란조차 그렇게 썼다는 데에서 발해의 강성함은 인증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가설명을 해보자면, 첫번째, 요사 지리지에 나온 기록인 땅 5천리에 군사 수십만과 성읍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땅이 그만큼 넓으니 성읍도 많고, 군사 수도 많은 것입니다. 또한 두 번째 기록은 우리도 항상 교과서를 보면서 듣는 항목인

5경 15부 62주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인구가 적은 나라에서 이렇게 세세하게 부주현을 나누어 만들 필요도 없거니와, 그 고대에 인구대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의 넓은 영토가 가능했을 리가 없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항목들과 이 항목을 합쳐 말하면,고구려의 인구 수백만이 한순간에 증발했을 리도 없고, 거기에 흑수를 제외한(혹은 흑수는 일부만 포함된)말갈제부 전체가 인구로 편입되었으니 절대 발해 인구는 적은 수는 아닐 것이라는 주장이 제 주장입니다. 게다가 발해의 부들 중에 말갈 지역에 있는 부들인 동평부, 회원부, 철리부, 솔빈부, 안변부 등은 말갈 자체가 하나의 부가 되어 흡수된 케이스입니다.



세번째의 요사 소아고지전 기록은 제가 쓴 글들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발해멸망전 때의 일입니다. 부여성이 함락되고 용천부로 진격하던 거란의 선봉 소아고지가 노상이 이끄는 발해군 3만을 패배시킨 일인데요, 이 당시의 발해는 제가 쓴 발해멸망전 파트에서 보았듯이, 나라 전체가 거란의 성공적인 공격과 뒤이은 반란, 이탈로 말이 아닌 꼴이었고, 주력군들은 거란의 공격이 염려되는 장령부와 압록부에 대다수가 나가 있었기 때문에 말 그래도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발해군 전체로 치면 소수에 불과했을 겁니다. 실제로 이 당시 발해 주력군은 장령부와 압록부에 집중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그 수는 적어도 15~20만 이상이 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움직인, 부여를 완전포위한 발해왕제의 대병력과 8월까지 줄기차게 싸운 발해군을 대입하면 발해군 총병력은 적어도 3~40만은 된다는 추정도 존재합니다.(라고는 하는데, 여기는 추정의 영역이므로 확답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아고지전에 체크해 둔기병 7천명이 원조하러 왔다는 사료를 보면, 기병은 그 군제 특성상 혼자서 절대 움직일 수 없는 병력입니다. 기병은 강력하고 빠르지만, 기병만 있으면 궁병이나 창병들에게 당하기도 쉽고, 점령전이나 장기전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보병이 항상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고대에서 기병은 곧 현대의 탱크 같은 강력한 주력 무기인데, 이 기병이 한개 주둔군에서 7천명이 나왔다는 것도 대단할 뿐더러, 함께 움직이는 보병이 그 몇 배에서 열 배 이상이라고 생각하면 이 7천명의 기병과 함께 움직인 보병은 적어도 5만에서 7만 이상이라는 것이 예측 가능합니다.


그리고 나라 전체의 주력군이 죄다 빠진 지금, 수도인 홀한성에서 부여부로 이동한 노상의 병력 3만은 근왕병력이거나, 국내의 마지막 소수 남은 병력일 가능성이 있는데, 이 소수 동원병력이 3만입니다. 동시대 후삼국들에게는 3만도 매우 큰 병력인데, 발해는주력군 다 내보내고 수도에 남은 병력만 3만이 넘는다는 뜻입니다. 병력수는 곧 인구수 추측과도 직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한 병력만으로도 발해의 인구가 50만~100만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당대의 아시아 최강국인 거란(요나라)이 20여년동안이나 최선을 다해 싸워서 겨우 멸망시킨 나라라는 점



『요사』 28권, 천조본기 2권 中


-동경은 옛 발해땅이다. 태조가 20여년간이나 힘써 싸워 얻은 것이다.(거란국지 역시 동일)



『요동행부지』 中


-오대시기에 거란이 발해와 수십 년 동안 피 흘리며 싸워 마침내 그 나라를 멸망시켰다.





-발해사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까닭이 사실 큽니다. 제가 쓴 발해멸망전 글에도 나와 있지만, 대중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발해는 9세기 이후로 쇠퇴하다가 거란에게 밀려서 금방 멸망해 버렸다. 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발해의 멸망 내용입니다. 하지만 정작 발해를 멸망시킨 주범인 거란의 기록과, 그 이후의 기록들, 금과 청의 기록에서는 발해와 거란의 전쟁은 이십여년간 지속되었고, 거란 역시 많은 피를 흘리고 고생하면서 발해를 겨우 멸망시켰다는 내용이 저렇게 나옵니다. 훗날에 청 시절에 사료를 마구잡이로 긁어모아 놓은 자료집인 만주원류고에서도, 더 훗날 발해에 대해 연구하여 발해국지를 쓴 김육불도, 발해 연구의 최고봉인 중국 연변대의 방학봉 교수님도 그쪽 견해를 따르고 있습니다.


과연, 발해가 인구도 별로 없는 속 빈 강정같은 나라였다면, 아시아 최강국중 하나였으며, 수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던 거란이 이십여년이나 피 흘려 싸워서 겨우 이겼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6.도독과 절도사의 운영, 군제의 방대함과 복잡함



『구당서』 본기 中


-발해가 좌우신책군과 좌우3군, 120사를 두었다고 하면서 그림을 그려 바쳤다.



『발해국지』 13권 제 2 직관고 中


-『당지』에 대도독부, 중도독부, 하도독부에 모두 도독 한 사람을 두어 여러 주의 병마, 갑계, 성황, 진수, 양름을 관장하게

하고, 부의 일을 총판하는 것이 그 직분이다.



위와 동일


-절도사는 군대를 관장했는데 여러 부의 요충지에 두었으며 민사도 총괄했다. 삼가 생각건데 『요사』 본기에 "태조 천현 원년 2월 안변, 막힐, 정리 및 여러 도의 절도와 자사가 내조했다."라고 하였다. 이는 발해에 절도사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당지』에 절도사는 군대와 토벌을 관장하는 것이 그 직분이다. 라고 하였다.




발해의 군제

-https://www.fmkorea.com/6822795205


-제가 과거에 쓴 이 글에도 나와있듯이, 발해의 군제는 당을 본따 온 제도에 발해 자체적인 제도를 조금 섞어 놓았습니다.

그 내용은 저 글에 있으므로 여기서는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 저리 복잡하고 방대한 군제를 유지나 할 수 있는지, 유지할 필요나 있는지는 여러분의 생각에 맡기겠습니다.


또한, 발해의 전국 각지 부들을 자사와 도독, 절도사가 다스리게 하였고, 이는 이들이 다스리는 발해의 주민들과 발해군의

규모가 꽤 컸음을 알려주는 증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7.수도들을 비롯한 5경과 도시들의 거대함




『금사상교』 3권 영고탑 항목 中


-영공대(영고탑)서남쪽 60리 되는 곳, 사령 고개에서 동쪽 10여리 지접에 옛 성이 있다. 토착인들이 전하기를 동경도에서 멀리 바라보면 성 위에 늘 변화무쌍한 구름서린 기운을 보게 되는데, 누대나 궁궐과 같다. 가까이 가보면 숲이 있는데, 1만 호의 인가들이 한 데 모여있는 것 같다.(후략)



해당 기록은 상경용천부, 즉 홀한성과 그 근처에 대한 기록입니다. 성이 함락되고 쓰이지 않게 된 이후 쓰여진 기록이지만 당시의 홀한성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당서』 북적전 참조, 『발해국지』 12권 제 1 지리고 中


-다시 생각건데, 『요지』에 용원부에는 궁전이 있고 돌로 성을 쌓았으며 둘레가 20리나 된다. 하고 했다. 곧, 발해가 이 부를

5경 가운데 하나로 삼았었다. 또 일찍이 이 부를 수도로 삼았었음인지 정말로 규모가 대단하다.



동경용원부의 주도이자 발해 과거 수도 중 하나인 팔련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요사』 지리지 참조, 『발해국지』 12권 제 1 지리고 中


-『요지』에 돌을 쌓아 성을 만들었는데 그 둘레가 9리(3.53km)이다.(중략) 여기가 남경남해부의 소재지가 아닐까 한다.




남경남해부의 북청성에 대한 언급입니다.



위와 동일


-성 높이는 2장, 둘레는 20리이다.


서경압록부의 서경에 해당하는 신안성(임강진성)의 언급입니다.




『당서』 지리지 참조, 위와 동일.


-성의 둘레가 6리나 되고 동서로 두 문이 있다. 작은 성인 자성이 안에 있는데 둘레가 4리나 되고 성 가까이 사방 10여리쯤 되는 곳에 모두 작은 성들이 있어 규모가 퍽 크고 넓다.


중경현덕부의 중경에 해당하는 서고성의 언급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도성과 주요 5경들 모두 상당히 규모가 크고 거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거대함과 도성의 크기들을 보았을 , 발해의 인구가 50만정도로 그리 적다면 도시와 성곽이 저렇게 크고 민가가 많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따라서 이 자료들 역시, 발해의 인구가 상당히 적었다는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생각외로 글이 길어진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 생각을 간단히만 해봐도,



1.고구려의 인구는 신라로 빠져나간 황해도, 공중분해된 평안남도 지역의 주민들을 면 대다수가 고토에 머물러 있었다.


2.그나마도 당으로 간 인구 중 상당수는 대조영을 따라 다시 돌아왔다. 이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극초기에 구국지역에 도착하여 세력을 펴나가던 대조영의 휘하세력이 40만이라고 한 것을 보면 적은 수는 절대 아니다.


3.거기서 나라 운영을 하면서 늘려나간 인구와 흑수 제외 말갈의 인구들까지 합쳐지면 발해의 인구가 총 얼마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절대로 발해 인구가 그 당시 기준으로 적다고 말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이 정도가 핵심이 되겠습니다. (사실 이 마지막 1 2 3번이 이번 글에서 하고싶은 말입니다.)



사료출처는 각 항목에 직접 달아 놨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제 생각을 이야기한 것이라, 참조 논문은 없습니다.

또한, 질문이나 각종 사항은 댓글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쓴 글들



발해멸망전 관련


발해멸망전 고찰 1편. 멸망의 전조

-https://www.fmkorea.com/6837781243


발해멸망전 고찰 2편. 925년 이전의 발해 정치상황

-https://www.fmkorea.com/6840383814


발해멸망전 고찰 3편. 공백의 5년(913~918)

-https://www.fmkorea.com/6841829328


발해멸망전 고찰 4편. 918~924년까지 발해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상편)

-https://www.fmkorea.com/6844051571


발해멸망전 고찰 4편 (하편)

-https://www.fmkorea.com/6844149065


발해멸망전 고찰 5편

-https://www.fmkorea.com/6846820595


발해멸망전 고찰 6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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