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 아르헨티나엔 왜 흑인 국대 없음?[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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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53회 작성일 24-03-1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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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f973612e54143324d831c69d94d0321.jpg ???: 아르헨티나엔 왜 흑인 국대 없음?

이게 뭔 머리가 꽃밭인 소리냐 같으시죠? 하지만 아메리카의 어느 곳을 봐도 흑인이 없는 동네는 없습니다. 옆나라 브라질만 보더라도 흑인 비율을 10%정도가 있습니다.혼혈까지 하면 더 많겠죠.

그렇다면 아르헨티나가 유난히 흑인이 없는 이유가 있겠죠?
마침 펨코에 원글 번역본이 있으니 한번 보시죠.



이번 2022 월드컵에서의 아르헨티나의 성공을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이 여러 팬들 사이에서 흔히 나타났다. 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은 많은 흑인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아르헨티나의 축구 국가대표팀은 브라질 같은 다른 남아메리카 국가들과는 극명히 대조적으로, 흑인 대표 선수들의 비율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런 분석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14년, 분석가들은 월드컵 결승전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 적어도 한 명 이상의 흑인 선수가 있던 반면 아르헨티나는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는 농담을 던졌다. 2010년 아르헨티나 정부의 인구 조사 통계에서는 흑인의 수가 국가의 1%에도 훨 못 미치는 149,493명으로 나타났다. 아르헨티나가 정말로 백인 국가임을 확인시켜준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거의 20만 명의 아프리카 노예들이 아르헨티나가 식민지였던 기간 동안 라 플라타 강 기슭에 상륙했었고, 18세기 말엽에는 인구의 3분의 1 가량이 흑인이었다. 이는 아르헨티나를 백인 국가로 생각하는 것은 부정확할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자기 정체화 의 중심에 있는 “흑인 말살”의 긴 역사가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아르헨티나인들에게는 흑인 아르헨티나인들의 부재를 “설명”해주는 것으로 알려진 신화가 있다. 이 중 아마도 첫 번째이자 가장 유명한 신화는 흑인들이 19세기 내내 있었던 전쟁에서 “총알받이”로 사용되어 어마어마한 사망자를 내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1810~1819) 동안, 노예들은 스페인 군대에 맞서기 위해 5년의 복무 이후 자유를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징병되었다.



그러나 역사학자 조지 리드 앤드류스가 주장한 대로, 많은 이들이 전장에서 죽기보다는 그냥 버려지거나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1829년의 점호에서는 아프리카계 아르헨티나인 제4척후병부대에서 31명의 전사자와 802명의 탈영자가 발생햇음을 보여준다. 이들 중 일부는 훨씬 북쪽의 페루 리마로 재배치되었다. 일부가 죽거나 탈영한 동안, 다른 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아르헨티나의 가장 유명한 도시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인구조사 통계에서는, 1778년에서 1836년까지 아프리카 혈통의 인구는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 드러났다.



다른 신화로는 19세기 전쟁이 야기한 흑인 남성의 높은 사망률로 인해 아르헨티나의 흑인 여성들이 유럽계 남성들과 가정을 꾸릴 수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흑인의 “실종”이 일어났다는 것이 있다. 몇 세대 이상 걸친 인종 간 혼합이 신체적으로 더 밝고 하얀 피부의 인구들을 만들면서 피해를 준 것으로 생각된다. 이 이야기에서 흑인 여성들은 그들의 삶의 모든 면에 명령받은 강압적인 체제의 일부 피해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 최근의 연구들은 일부 아르헨티나의 흑인 여성들이 그들 스스로나 자식들을 위해 백인들에게 제공되는 혜택들을 얻기 위해 백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통하는 결정을 결연히 내렸다는 것을 밝혔다. 베르나벨라 안토니아 비야몬테와 같은 몇몇 흑인 여성들은 다양한 법적 정책의 이점을 이용하여 노예로 태어났으나 자유롭게, 그리고 백인 여성으로 인지된 채로 사망했다.


아르헨티나 문화 내 흑인 대표성의 부족에 관한 다른 신화는 질병, 그 중 1871년의 황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부는 많은 흑인 아르헨티나인들이 그들의 빈곤으로 인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극심한 감염지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했고 질병에 굴복했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 또한 황열병으로 인한 흑인 사망자 수가 다른 인구에 비해 높은 비율로 나타나지 않아 거짓으로 밝혀졌다.


아르헨티나의 흑인 “실종”에 대한 이러한 신화들은 아르헨티나의 가장 오래 지속되는 역사적 유산들 중 일부를 모호하게 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노예와 그들의 후손에서 이민자들까지 여러 세기 동안 수많은 흑인들의 고향이었다. 카보베르데인들 19세기의 포르투갈 여권을 갖고 아르헨티나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1930~40년대에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선원과 항만 근로자로의 취업을 위해 아르헨티나로 들어왔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1868~1874 재임)와 같은 백인 아르헨티나인들의 리더들은 근대성을 백인성(Whiteness)과 동일시하였기 때문에 흑인(Blackness)성을 지우는 다른 서사를 만들었다. 사르미엔토는 아르헨티나의 “후진성”과 사르미엔토가 여긴 “문명화”의 필요성을 서술하는 <파쿤도: 문명과 야만>(1845년 저)이라는 책을 지었다. 그는 국가의 비전을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유산보다는 유럽의 유산과 더 강하게 공유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아르헨티나는 1853년 국가의 대부분 지역에서, 그리고 1861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노예제를 폐지했다. 노예제의 역사를 뒤로 한 아르헨티나의 리더들은 유럽을 문명과 진보의 요람으로 보면서 근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독일, 프랑스, 영국의 반열에 합류하기 위해선 흑인 인구를 신체적, 문화적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믿었다.


여러모로, 이것은 아르헨티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백인화 과정은 브라질, 우루과이, 쿠바와 같은 라틴 아메리카 도처에서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 경우 아르헨티나의 유일한 차이점은, 이들은 백인 국가로써의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850년대, “통치하는 것은 인구다”라는 말로 알려진 정치 철학자이자 외교관 후나 바티스타 알베르디는 백인 이민을 장려하였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후스토 호세 데 우르퀴자(1854~1860 재임)는 알베르디의 아이디어를 지지했고 이를 국가의 첫 헌법에 적용했다. 수정 헌법 25조에서는 “연방정부는 유럽 이민을 촉진해야 한다”고 명시되였다.


사실 사르미엔토 대통령은 19세기 말엽 “20년 뒤에는 흑인들을 보기 위해 브라질로 여행해야 할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그는 흑인 아르헨티나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으나 국가는 그들을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지형은 곧 변화했다. 1860~1914년 사이 4백만의 유럽 이민자들이 정부의 부름에 답하여 이민을 왔고, 이 조항은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조항에도 남아 있다.


유럽인들의 대량 이민 이전의 아르헨티나의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에 대해서는, 그들이 더 애매해진 민족, 인종적 범주를 “통과”하거나 머무를 수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전략적으로 백인으로 정체화되었다.


이러한 분류는 크리요오(주로 스페인인 혹은 아메리카 원주민 조상과 연관된 이전의 이민자들), 모로초(탄 색의 사람들), 파르도(갈색 피부)와 트리게뇨(위트(밀)색)를 포함했다. 이러한 꼬리표들은 그들을 궁극적으로는 “기타”로 묘사했지만, 그들은 또한 국가가 이를 명령한 시기 그들을 흑인으로부터 분리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국가에서 흑인성을 지우려는 역사와 그 잔재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의 흑인 인구는 남아있으며 더 많은 아프리카계 혈통이 이주해 오고 있다.


오늘날, 만이천 명에서 만오천 명의 카보베르데에서 온 이민자들과 이들의 후손들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역에서 살고 있다. 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유럽이 이민 장벽을 높이면서 서부 아프리카인들이 아르헨티나로 대거 이민해 오기 시작했다. 인구 통계는 아르헨티나가 2001년에는 1,900명의 아프리카 출생 국적자들을 수용했지만, 2010년에는 거의 두 배를 수용했다. 지난 10년 간, 브라질, 쿠바, 우루과이와 같은 다른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아프리카계의 후손들 또한 경제적 기회를 찾아 아르헨티나로 들어오는 경우가 증가하였다.


이러한 역사는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마도 아프리카인 후손들 혹은 흑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포함하지 않지만, 또한 “백인 팀” 역시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아르헨티나는 근대적인 백인 국가로 보이려는 시도를 통해 인종적 분류를 붕괴시켰지만, 모로초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존재는 흑인과 토착민 말살의 역사에 빚을 지고 있다. 모로초(morocho)라는 악의 없는 꼬리표는 오늘날 아르헨티나에서 쓰이고 있다. “탄 피부”의 사람들을 일컫는 이 단어는 백인이 아닌 사람들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아마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유명한 모로초는 80~90년대 두각을 나타낸 축구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일 것이다. 그가 2020년 11월 세상을 떠났을 때, 아르헨티나는 3일 간의 애도 기간을 가졌다. 이 백인이 아닌 전설은 아이러니하게도 “백인 국가”와 아르헨티나 축구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날 팀의 다양한 선수들은 아르헨티나에서 모로초로 묘사될 수 있다. 이러한 역사를 이해한다면 흔히 많은 사람들이 관련시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아르헨티나를 볼 수 있다. 또한 많은 국가 지도자들이 근대 국가로써 여긴 방향인, 흑인성을 말살하고 최소화하려던 혼신의 노력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글의 제목만 보고 pc라고 욕하는 사람도 나쁘지만 제일 나쁜 놈은 알고도 제목만으로 욕하는 놈인데

트위터에 리트윗한 놈이 바로 그렇습니다.

la libertad avanza는 아르헨 우익 정당인데 아마도 제목만 읽는 놈들 선동하려고 저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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