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ㅅㅍ) 강감찬과 강민첨은 사실 개경으로 가지 않았다[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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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138회 작성일 24-03-04 11:54본문
흥화진(興化鎭)에 이르러 기병 1만 2천 명을 뽑아 산골짜기에 매복시킨 후, 동아줄로 소가죽을 꿰어 성 동쪽의 큰 냇물을 막고 기다렸다. 적이 다가오자 막아 놓았던 물줄기를 터뜨리고 복병을 돌격시켜 크게 패배시켰다. 소배압이 군사를 이끌고 바로 개경으로 진격하자 강민첨은 자주(慈州)의 내구산(來口山)까지 쫓아가서 다시 크게 패배시켰다. 또 시랑(侍郞) 조원(趙元)은 마탄(馬灘)에서 재차 공격하여 1만 명 넘게 목을 베었다.
이듬해 정월 거란군이 개경 가까이 진군해 오자, 강감찬은 병마판관(兵馬判官) 김종현(金宗鉉)으로 하여금 병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급히 개경으로 들어가 수비하게 했고, 동북면병마사(東北面兵馬使)도 군사 3천 3백 명을 원군으로 보냈다. 이에 거란이 군사를 돌려 연주(漣州)·위주(渭州)에 이르자 강감찬 등이 기습하여 5백 명 넘게 목을 베었다. 2월에 거란군이 귀주(龜州)를 통과하자 강감찬 등이 동쪽 교외에서 요격했는데, 양군(兩軍)이 막상막하로 승패를 결정짓지 못했다.
개경으로 간 군대는 김종현의 1만 기병 + 동북면의 원군임.
그리고 귀주대첩에서 김종현의 1만 중갑기병이 거란군 뒤에서 나타난 이유가 개경으로 갔다가 거란군이 철군하니까 다시 북상해서 귀주로 간거임. 길을 잃었는지 어쨌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나타난 그 타이밍이 절묘했던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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