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발해 멸망 이후 대씨들이 사료에 거의 보이지 않는 이유 - 上[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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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59회 작성일 24-04-2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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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생각해 볼 내용은 제목과 같은, '발해의 왕족이었던 대씨들이 왜 정작 발해부흥운동, 발해 후계국에서는

많이 찾아볼 수 없는가?' 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내용은, 이 다음 제가 설명할 발해잔존세력으로 넘어가기 전에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할 부분입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고구려도 그렇고, 백제도 그렇고 망한 나라들의 잔존세력이 나라의 부흥을 꾀하거나 저항할 때는

망한 해당 국가의 왕족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우리 역사를 보았을 때에도, 백제부흥운동은 왕족인 풍왕과 방계왕족이라고 하는 복신이 이끌었으며,

고구려 부흥운동 역시 보장왕의 아들 안승이 참여했습니다. 신라 역시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가 고려에 반발하는 의미에서 금강산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사를 예로 들었을 때는, 몇 개만 예로 들어 보면, 요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는 황족인 야율대석이 서쪽으로 달아나

서요를 세웠으며, 북송이 멸망한 이후 북송의 황자였던 조구가 강남으로이동하여 남송을 세웠으며, 남송이 이후에 사실상 멸망한 이후에는 남송의 황족이 계속 제위를 이어받아 가면서 싸움을 지속하였습니다. 명나라는 멸망 이후 남명 정권에 역시 황족이 참여하여 저항하였으며, 이상한 경우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청나라 멸망 이후 황제였던 푸이는 한 술 더 떠서 직접 만주국 수립에 참여하여 어떻게든 할 수 있는 행동은 다 시도합니다.



서양의 경우에는 몇 가지만 예로 들어 보자면, 비잔틴이 멸망한 이후에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통치하면서 명맥을 이어나간 콘스탄티노스 11세의 두 형제인 토마스와 데메트리오스를 들 수 있겠으며, 이외에도 서양에는 없어진 왕조의


후손들이 이후로 현재까지 계속 왕위계승권을 주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합스부르크 왕가라던지, 로마노프 왕가라던지, 프랑스 부르봉 왕가라던지, 호엔촐레른 왕가라던지, 사보이아 왕가라던지, 보나파르트 왕가라던지 말이죠.




왜 망한 다음에 왕족(황족)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이나 잔존세력의 저항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바로, 왕족의 특수성과 상징성 때문입니다. 왕족은 그 나라의 로열 패밀리 집단으로서, 그 나라의 적법한

군주가 될 자격이 있는 자들로서, 동양이나 서양이나 나라의 존속과 계승을 위해 그렇게나 따져댔던 정당성과 계승성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이들은 나라 안에서 서열로 치면 모든 족속들보다 훨씬 위에 있으며, 그로 인해 귀하게 여겨지며 대접받는 이들입니다. 칭기즈칸의 황금씨족이 그러했듯이, 과거 로마 시절의 아우구스투스의 혈족이 그러했듯이, 현재도 합스부르크 가문이 명사로 대접받고 있듯이 말입니다.


더군다나 현대 이전에는 귀한 피를 가진 왕족이 나서는 것이 당연히 어디서 굴러들어 왔는지 모를 인간이나, 일개 귀족이 나서는 것보다 더욱 더 강한 영향과 효과를 주었을 것임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거나 유명무실하게 되면그 나라의 왕족이나 황족이 반드시 들고 일어나거나, 왕족이나 황족을 옹립하여 정권을 새로 세우는 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정통성과 적법성이 없는 자들이 왕위에 무턱대고 오르면 어떤 꼴이 나는지는 과거 중국 한나라 시절의 왕망이 매우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의 일인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1세의 경우에도 그 이전 독재자인 프랑코가 자신이 오르지 않고 자신의 후계로 삼아 왕위에 오르게 한 케이스이며, 현재 캄보디아 역시 실권은 몽땅 총리인 훈 센이 쥐고 있지만, 왕인 노로돔 시아모니는 실권은 없을지언정 건들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 외 군주국의 왕족들은 해당 국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 하던지, 국가기관의 얼굴마담이 되기도 합니다. 영국의 윌리엄, 해리 왕자라던지, 일본의 황태제와 공주들 역시 그러한 '공무'를 도맡아 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왜 발해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냐면, 발해는 왕조의 존속기간동안 타 국가들과 비교해서 유례없을 정도로 대씨왕족들의 활동과 관직진출, 사신파견이 눈에 띄게 매우 많은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왕족과 방계왕족의 정계 진출과 활동을 병적으로 금지하던 나라들도 존재했고, 아예 위험성을 고려하여 숙청해버리던 나라도 있었는데, 발해는 오히려 건국 이후부터 대씨 왕족들을 아주 많이 써먹었으며, 정계에도 많이 대씨들이 진출해 있었으며, 심지어 군사 부분에까지 진출해 있던 것이 엿보입니다.

고왕에서 말왕까지 발해의 대씨왕족들은 매우 많이 해외에 사신 혹은 교역임무를 맡고 나갔으며, 이는 다른 왕조 국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매우 특이한 일입니다.


당장 897년부터 말왕 대인선의 시기인 926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많은 대씨왕족들이 나옵니다.



897년 - 왕자 대봉예가 당에 하정사로 파견


907년 - 왕자 대소순을 양(후량)에 보내 물산을 바침


908년 - 전중소령 최예광을 후량에 보내 조공.


909년 - 대성악을 보내 후량에 조공


912년 - 왕자 대광찬을 후량에 보내 조공


924년 - 왕자 대우모를 후당에 보내 조공


925년 - 왕의 조카 대원겸을 후당에 보내 조공


925년 - 화부소경 배구를 보내 후당에 조공


926년 - 대진림을 후당에 보내 조공




그래서 이 왕족,황족들은 그 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상당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나라가 위급하거나 나라가 망했을 때에 직접 나서거나, 얼굴마담 내지 꼭두각시로서 나서는 일이 많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발해에서는 그러한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발해가 전혀 짧지는 않은 228년이나 지속되었으며,(한국사로 쳤을 때는 짧아 보이지만, 전 세계, 특히 중국에 대입하면

228년이라는 기간은 상당히 긴 기간입니다.) 그 이후 대씨들이 사서에 줄기차게 많이 보이는 것 치고는 발해 멸망 이후에 발해부흥운동과 발해 후계국에서 대씨는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는 것이이번 글의 취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https://www.fmkorea.com/6885806282


https://www.fmkorea.com/6965885593



우선 926년에 발해가 멸망한 이후, 발해의 각 부들은 항쟁을 하다가 전부 각개격파되고, 발해의 고토는

거란의 휘하에 들어간 지역들과, 동단국(동란국)을 제외하고는 전부 무주공산이 되어버리서나 후발해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저는 후발해가 높은 가능성으로 정치적 문제와 왕계의 교체, 반란으로 인해 정안국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봅니다. 우선 발해 멸망 이후에 '발해'의 이름을 걸고 중국에 나간 사신들은 대다수가 이 후발해의 소속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사서에서는 발해와 후발해를 전혀 구분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잠시 반짝했던 흥료국이나 대발해국 같은 반란세력을 제외해보고, 체제와 기록이 제대로 존속했던 발해의 후계국 세력을 찾아보면,

후발해, 정안국, 오사국(올야국)


이 세가지가 주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그 외 있던 연파국, 흥료국, 대발해국은 그때그때 반짝 하고 나왔다가 사라진 반란세력들이기 때문에 제외하고, 위의 세 나라 중 비교적 전반기에 등장했으며 그나마 조금 더 알려진 후발해와 정안국이 발해 부흥운동, 발해 후계국의 주 세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오사국은 논란이 존재하며, 그에 대해서도 언급하겠습니다.)




사서를 살펴보면 분명 발해가 926년에 멸망했지만, 이후로도 계속 발해국의 사신은 중국에 도착합니다. 저는 이 발해 이후에 발해의 사신으로서 중국에 간 이들을 후발해 정권의 사신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에 제가 링크해 놓은 글에서 설명 하고, 『아방강역고』에서 정약용 선생이 말했듯이, 926년에 발해가 멸망한 다음, 발해왕제나 대광현을 비롯한 왕족, 혹은 귀족세력들이 발해의 후계국을 만들고 유지하면서 중국에 보낸 사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왜 동단의 사신이 될 수 없냐 하면, 동단의 사신은 사료에서 동단이라고 적혀 있고 발해와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아무 배경지식 없이 보면, 926년에 망한 발해가 멸망 이후로도 계속 좀비가 되어서 중국에 사신을 보내고 연락을 하는 황당한 사태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주체는 확실하게 동단이 아니며, 발해 중앙정부는 망했기 때문에 발해의 후속정권, 즉 현재 후발해라고 불리우는 그들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정안국도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정안국 역시 사서에 정안국이라고 제대로 이름이 나오며, 정안국이 정식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발해 멸망 직후에서 시간이 좀 지난 970년대부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발해 멸망 이후 나오는 '발해'는 발해국이 아니라, 후발해국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는데, 이 '발해부흥운동'들에는 이상하게 발해의 왕성인 대씨가 거의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불과 발해가 멸망하기 전, 마지막 왕인 대인선 시대에 해외에 사신으로 가던 사람들의 대다수가 대씨 왕족이었던 것과, 역대 발해왕들이 대씨들을 사신으로 매우 많이 써먹어서 대씨들이 많이 정치참여 했던 것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특히 마지막 왕인 대인선 대의 기록을 보면, 사신으로 나가는 이들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씨밖에 없는 한국사 사상 최고의 진기록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세월이 지났다고 그 많던 대씨들은 발해후계국에 거의 보이지 않게 되어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멸망 이후에 존재하는 기록들을 살펴보면서 등장하는 성씨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극초반에 도망나온 인물들 역시 제외합니다.(이름이 나오지 않은 사신은 제외하겠습니다.)




『신오대사』 6권 中


-(926년)7월 경신일에 발해사신 대소좌가 왔다.


-2년(931년) 12월 신미일에 '발해'의 사신 문성각이 왔다.




『책부원구』 972권 中


-4년(929년) 5월에 발해가 고정사를 사신으로 보내 입조하여 방물을 바쳤다.


-폐제 청태 2년(935년) 11월에 발해가 열주의(열주도)를 사신으로 보내 입조하여 방물을 바쳤다.




『책부원구』 976권 中


-명종 천성 4년(929년) 7월 을유일에 전에 입조하였던 발해국 사신 고정사를 태자세마로 삼았다.



『오대회요』 30권 中


-4년(929년) 7월에 앞서 입조한 사신 성문각(문성각)을 조산대부 우신무군장사 주사우록사 시대리평사로, 고보의를 조사랑 우효위장사로 삼고, 아울러 금자를 하사했다.




살펴보면 제가 말한대로 대씨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926년에 나온 대소좌 역시 발해멸망 이전에 출발한 것인지, 아니면 대광현과 발해왕제가 있던 후발해에서 중국으로 갔는지 완전히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발해부흥운동기에는 극초반에 후당에 사신으로 간 대소좌를 제외하고는 대씨가 없습니다. 그 이유를 간단히 우선 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발해 멸망 당시에 수도에 있던 직계왕족들은 거의가 대인선과 함께 거란으로 잡혀가서 대접받으면서 살았다.


※일부 대씨들은 진작에 고려로 달아났으며, 부흥운동의 실패로 인해 고려로 향한 대씨도 존재한다.


※대소현과 같이 거란에게 굴복하여 동단국,거란 본국(요)에서 출사한 대씨들도 존재한다.





이 이유들을, 다음편인 하편에 써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쓴 글들



발해멸망전 관련


발해멸망전 고찰 1편. 멸망의 전조

-https://www.fmkorea.com/6837781243


발해멸망전 고찰 2편. 925년 이전의 발해 정치상황

-https://www.fmkorea.com/6840383814


발해멸망전 고찰 3편. 공백의 5년(913~918)

-https://www.fmkorea.com/6841829328


발해멸망전 고찰 4편. 918~924년까지 발해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상편)

-https://www.fmkorea.com/6844051571


발해멸망전 고찰 4편 (하편)

-https://www.fmkorea.com/6844149065


발해멸망전 고찰 5편

-https://www.fmkorea.com/6846820595


발해멸망전 고찰 6편 - 925년 반란설 상

-https://www.fmkorea.com/6849396028


발해멸망정 고찰 6편 - 925년 반란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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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멸망전 고찰 7편 - 마지막 순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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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멸망의 의문점 고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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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멸망전 고찰 7편 - 마지막 순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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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멸망전 고찰 7편 - (하)

-https://www.fmkorea.com/6867818441


발해 멸망전 고찰 8편 -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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