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후삼국 통일 전쟁) 한국사 사상 최고의 기동전, 서라벌 강습과 공산전투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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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히헤헤햏ㅎ 댓글 0건 조회 67회 작성일 24-03-15 02:26본문
1. 배경
927년 1월~8월 간 여라연합은 고려 개국 후
처음으로 공수를 전환해 후백제와 왕봉규에 대공세를 퍼부어
강주의 왕봉규 세력을 멸하고 대백제 포위망을 형성함.
견훤은 여라연합한테 일방적으로 쳐맞으면서도
경거망동하지 않고 냉정하게 정세를 살핌.
이 판도는 견훤에게 추풍령을 공략하라고 부추기는
여라연합의 아름다운 공세 작전의 성과였지만
견훤은 추풍령이 아닌, 고려의 경상도 진입로인
문경을 침공하고자 했고 직접 출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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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과정
견훤은 직접 친위부대 갑사를 이끌고
문경의 근품성을 공격하여 함락하고 불태움.
견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근품성을 통해 포위망을 돌파한 후
엄청난 기동력으로 낙동강을 따라 쭉 남하함.
지도는 919년이라 신경 쓸거 없고
대구에서 경주까지 고속도로 열린 것만 보면 됨
왕건과 경애왕은 견훤이 그대로 남진하여
대야성과 강주를 공략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견훤은 대구에서 급격히 말머리를 돌려
순식간에 영천까지 점령함.
그리고 참고로 견훤의 이 기동은
오늘날의 상주영천고속도로와 상당히 일치함
견훤이 수도 경주를 항해 개빠르게 돌진하니
신라 왕실은 패닉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음.
그래서 경애왕은 영천이 함락된 직후,
곧장 연식을 고려에 보내 SOS 침.
그렇다면 견훤의 닥돌엔 문제점이 없었을까. 당연히 아님.
1. 보급을 받지 못함.
심지어 중장기병 부대라 말도 먹여야하는데
보급을 받지 못해 포위라도 당하는 순간 모랄빵각
2. 원군을 지원받을 수 없고 퇴로도 없기에
전투에서 패배하면 걍 그대로 전멸.
3. 왕이 정예군을 이끌고 닥돌했기에 속이 부실함.
신라가 탱킹하는 동안 고려가 빈집털이하면 좆망
그럼 반대로 신중하고 계산적인 성격의 견훤이
왜 이렇게 갑자기 급발진을 한걸까.
1. 후백제 창업 슬로건이 신라 타도
2. 친고려 스탠스의 경상도 호족들에게 힘 과시
3. 신라에게 고려와의 연합 경고 겸 차단
4. 왕건이 구원하러 개성에서 그 먼 곳까지 오면 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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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유들로 견훤은 급발진 땡긴거임.
암튼 신라로부터 원군 요청을 받은 왕건은
곧장 경북 영주에 주둔하던 강공훤과 휘하 손행, 연주에게
기보병 1만을 이끌고 진군하도록 함.
영천에서 잠시 머무르던 견훤은
고려군이 원군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자 경주에 입성함.
견훤은 경애왕을 자결케한 후 경순왕을 옹립했으며
신라의 왕족, 신하, 백성, 군인, 장인, 병장기, 보물 등을 가져감
또한 신라 왕궁에서 약탈과 학살극을 벌임.
이로써 전국 각지의 반란들을 진압하고
태봉의 공격들을 막아내고
견훤의 동진을 20여년 간 격퇴하고
불과 10개월 전, 아예 백제를 선제공격하여 성들까지 빼앗은
찬란한 천년 왕국 신라는 국가 기능을 상실하고
후백제의 괴뢰국으로 전락함.
여기서 이상한 점 하나.
견훤이 경주에서 설칠 동안 진작에 출정한 고려군은 뭐함?
왕건은 철저한 마키아벨리스트이자 뛰어난 정치가임.
그래서 견훤이 벌써 영천까지 진격했다고 하자
왕건은 이렇게 짱구를 굴림.
어차피 통일하려면 신라는 망해야 되고
인자한 심성이 장점이며 친신라 정책을 펴는 나한테는
신라 짓밟은 견훤을 내가 잡는게 최고의 시나리오네?
이렇게 계산 끝낸 왕건은 강공훤군을 천천히 진군시키며
지는 개성에서 정예기병 5천을 이끌며
신숭겸, 김락, 호의, 전이갑, 전의갑, 전락, 김철을
휘하에 두어 공산으로 출발하고
가는 길에 악당 견훤을 지가 처리하겠다고 광고하면서 감.
황보능장을 위시한 인근 호족 병력도 진군시킴.
견훤은 서라벌에서 며칠간 머물며
개도른 기동으로 지친 체력을 보충하고
병사들에게 약탈을 허용하여 사기 올리고 회군 시작함.
이렇게 견훤과 왕건의 공산 전투 준비 과정은 다 끝남.
후삼국 통일 전쟁) 백제를 포위하라, 정해년 공세.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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