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술두광, 아니 술라의 제1차 로마 진군에 로마 병사들이 순순히 따랐던 이?유[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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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히헤헤햏ㅎ 댓글 0건 조회 201회 작성일 24-02-2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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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술두광, 아니 술라의 제1차 로마 진군에 로마 병사들이 순순히 따랐던 이?유

가끔 역사 이야기좀 쓰다 보면 보고 듣는 대중 입장에서는 미친 소리 같은 소리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대부분 이런 경우는 현재 학계의 연구 결과에 대중의 인식이 따라가지 못해서, 이 글을 읽어주실 여러분들의 평소 상식과 괴리되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다.


개돼지 드립의 그 나XX씨나 정몽주니어 같은 이상한 헛소리를 하려는게 아니다.


신기술이 나와도 상용화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지 않는가? 같은 이치다.



하물며 제약이나 과학 기술은 빨리 상용화를 하면 그만큼 우리 인생이 윤택해지고 회사들도 이윤을 창출하니까 대중들에게 상용화를 빨리 할 동기가 있겠지만

역사학자들이 술라가 어쩌고 카이사르가 어쩌고 해봤자 그게 우리 인류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주겠는가?

그래서 학계 안의 논의가 여러분들 앞으로 나가는 속도가 늦다.


그래서 대중이 무지해서 학계의 이론과 대중의 인식에 괴리가 생기는게 아니라, 단지 지식의 '보급'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늦을 뿐이다.


대중 이야기가 나와서 사족좀 더 붙이자면, 역사학자들도 여러분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다른 공부를 해서 사회에서 변호사, 약사, 프로게이머, 건설 인부, 군인, 경찰 같은 이런저런 직업할 시간에 자신들의 업으로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일 뿐이다.

즉 역사학 한정으로는 역사학자들이 학계고 여러분이 대중이 되겠지만, 다른 주제라면(예: 천문학, 의학 등) 역사학자들도 대중의 대열에 들어갈 것이다.



하여간 갑자기 왜 시작부터 뜬구름 잡는 말을 하냐 하면, 이 글을 봐줄 여러분들께 하나 부탁을 하고 싶어서다.


곧 늘어놓을 이야기가 엄청난 개소리 같아도 백스페이스 박지 말고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하는 부탁.




2.jpg 술두광, 아니 술라의 제1차 로마 진군에 로마 병사들이 순순히 따랐던 이?유

오늘의 주인공, 술두광, 아니 술라기원전 88년 집정관으로 선출됐을 당시의 이야기다.


당시 로마는 동맹시 전쟁(요즘 머학에서는 동맹국 전쟁으로 주로 부르지만 편의상 동맹시 전쟁으로 표기)이 끝난 상황이었는데

마침 동방에서 폰토스 왕국의 왕 명장판독기 미트리다테스 6세가 로마에 대항한 전쟁을 일으킨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동방에 로마군을 보내야 했던 상황인데, 이 원정에 욕심을 낸 수많은 후보들이 집정관에 입후보를 한 상황이었는데,

그 중 유력 후보는 술라, 마리우스, 폼페이우스 루푸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보(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아버지)였다.


결국 집정관 선거는 동맹시 전쟁 당시 큰 공을 세운 술라가 루푸스와 손을 잡고 두 사람이 당선이 됐고,

추첨을 통해 루푸스의 임지는 본국, 술라의 임지는 미트리다테스가 칼을 갈고 있을 소아시아로 결정됐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3.jpg 술두광, 아니 술라의 제1차 로마 진군에 로마 병사들이 순순히 따랐던 이?유



위에서 언급한 동맹시 전쟁은 결국 로마가 술라의 활약에 힘입어 무력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했으나,

결국 동맹시들의 요구조건이었던 "동맹 시민들에게 로마 시민권 지급"을 통해 끝을 맺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로마인들이 많았다지만 쪽수로는 동맹 시민>넘사벽>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기존 로마 시민들은 동맹 시민들이 로마 정국의 주도권을 쥐리라고 우려했고,

이 때문에 동맹 시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지급하는 문제는 호민관이 살해당할 정도로 로마에서 뜨거운 감자였고,

결국 동맹시 전쟁까지 벌어지고서야 끝을 맺...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번에는 동맹시 시민들을 선거구에 얼마나 배정해주느냐의 문제가 로마 정계의 화두가 되었는데,

술라를 비롯한 원로원파와 상당수 구 시민들은 로마의 35개 선거구 중 8개에만 배정할 것을 요구했으나, 동맹 시민들과 민중파들은 모든 35개 선거구에 이들을 골고루 나눠 넣을 것을 요구했다.


만약 보수파 의견대로 된다면 새로 로마 시민이 된 동맹 시민들이 표를 내봤자 8개 선거구 정도를 좌지우지하는 걸로 그치지만, 35개 선거구 안대로 하자면 새 로마 시민들이 로마 정국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사실민중파와 원로원파, 그러니까 옵티마테스와 포풀라레스의 정의도 요즘은 변화가 좀 있는데 이것까지 다루기엔 지면이 페르마해서 안되고 나중에 다른 글로 뵙도록 하겠다.


하여간 그 상황에서 반대파의 거두인 술라와 루푸스가 집정관이 됐으니 끝....일 리가 없었고,

호민관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루푸스가 35개 선거구안을 고집하면서 문제가 계속됐다.





5.jpg 술두광, 아니 술라의 제1차 로마 진군에 로마 병사들이 순순히 따랐던 이?유



호민관 술피키우스는 위에서 언급한, 시민권법 추진하다가 암살당한 호민관 드루수스의 친구로 그 역시 민중파의 거두였다.


그러나 한때는 원로원에서도 차세대 로마 엘리트로 촉망받았던 인재였고, 상대적으로 온건한 개혁가였다.

소싯적에 술피키우스의 연설을 매일같이 보러 갔다던 키케로의 평을 빌리자면


"그는 단언컨대 내가 봤었던 연설가들 중에서 가장 위엄있고, 또한 비극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컸으나 감미롭고, 몸짓은 우아하며, 그는 매우 말이 많았으나 장황하거나 산만하지 않았다."


했으니 정말 말빨은 죽여줬나보다.


키케로는 그랬던 그가 호민관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강경한 민중파 인사가 된 이유로

"대중들이 불어넣은 바람이 고귀하고 훌륭한 자리에 있었던 그를 저 멀리 밀어냈다"고 하며 R-국개론을 시전했으나 현재 추정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사실 술피키우스는 아라우시오 참패의 원흉인 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 재판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던 호민관의 거부권을 무시하고 강제로 끌어낸 전직 호민관 노르바누스를 '호민관의 거부권과 신체 불가침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고발했으나

당시의 스타 변호사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오라토르

"고발인이 내세운 증인이 너무 피고에게 적대적이라 믿을 수가 없다"

는 말인지 막걸리인지 알 수 없는 지록위마식 궤변으로 증인 채택을 거부하여 재판이 흐지부지된 적이 있었다.


신체 불가침권과 거부권이 다 있는 호민관이 저런 짓을 당하고도 처벌을 안 받는 상황에서 나라가 온건하게 개혁이 될 수 있을거라고 믿을 수 있었을까?




4.webp.ren.jpg 술두광, 아니 술라의 제1차 로마 진군에 로마 병사들이 순순히 따랐던 이?유


하여간 이런 이유로 인해 강경 민중파로 변신한 술피키우스는 민중들의 영웅 마리우스와 결탁한다.


마리우스는 내심 호민관 사투르니누스 끔살 사태 이후 떡락한 지지자들을 다시 결집하여 계속 민중의 영웅으로 남고 싶어했고,

그래서 실추된 그의 디그티나스를 회복하기 위해 미트리다테스 전쟁에 나서기 위한 집정관 선거에 도전했으나 술라와 루푸스에게 밀려서 낙선당한 바 있었다.


그래서 그는 술피키우스와 야합을 했는데, 마리우스가 지지자들을 동원하여 술피키우스가 원하는 법안(새 로마 시민들을 35개 선거구에 골고루 할당)이 민회에서 통과될 수 있게 협조해주는 대신

술피키우스는 술라의 집정관 권한을 빼앗아 마리우스에게 넘겨서 마리우스가 술라 대신 미트리다테스 원정을 나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6.jpg 술두광, 아니 술라의 제1차 로마 진군에 로마 병사들이 순순히 따랐던 이?유


하여간 이런 야합을 마친 민중파는 원로원에게 술라에게서 집정관 권한을 빼앗아 마리우스에게 줄 것을 요구했으나,

선거로 뽑힌 집정관의 권한을 압수한다는건 로마 역사에 거의 없었던 폭거였기 때문에 당연히 원로원은 거부했다.


그러자 민중파는 로마에서 2000년 후에 있을 매콤불맛 유럽식 시위 문화의 프리퀄을 보여줬고,

집정관 술라는 집정관의 권한인 불길한 징조 드립을 치며 모든 상업 행위를 마비시키는 걸로 맞섰으나 결국 시위대에 압도당하여 맞아죽기 직전 마리우스의 집으로 도망가서

집정관 권한도 미트리다테스 전쟁 지휘권도 다 주겠다! 살려만다오스!를 통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미트리다테스 전쟁에 동원될 군단이 편성되어 있던 도시, 놀라로 도망간 술라가 놀라에 있었던 군단을 장악하고 제1차 로마 진군을 벌여서 로마를 장악하는 쿠데타를 벌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7.jpg 술두광, 아니 술라의 제1차 로마 진군에 로마 병사들이 순순히 따랐던 이?유



자, 원래는 여기서 놀라에 있었던 군단이 로마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수도 로마를 공격하는 쿠데타에 순순히 동원된 로마 군단병들의 동기를


마리우스의 개혁으로 인해 진척된 사병화 때문에 동맹시 전쟁을 함께한 로마 군단이 술라의 사병화가 됐던 것.


이라고 했었다.


그 주장의 대표가 위 짤방의 테오도어 몸젠이었고.


문제는 그 마리우스의 개혁 메타가 돈벌러 미국간지 꽤 됐다는 것이다. 왜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 메타가 옛 말이 됐는지는 밑 링크를 참조.

(https://www.fmkorea.com/6223114013)


로마군의 사병화를 부추겼다는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 메타가 사라졌는데, 어떻게 술라의 로마 진군의 원인이 로마군의 사병화가 될 수 있겠는가?


모든 의문은 여기서 출발해.



8.webp.ren.jpg 술두광, 아니 술라의 제1차 로마 진군에 로마 병사들이 순순히 따랐던 이?유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보면 술라의 로마군이 로마 진군하면서 만난 법무관들의 파스케스를 뚝스딱스하는 모습들이 나옴.


그런데 이거, 로마 시민들이 정부 상대로 폭동 일으킬 때의 전통임. 임페리움을 부여 받은 법무관이나 집정관 같은 고관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퍼포먼스거든.


물론 반군이 중앙정부의 권위를 인정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만, 이런 소소한 퍼포먼스도 잊지 않고 일일이 할 만큼 군단병들이 로마 중앙 정부에 빡이 돌아있을 일이 있었다는 것이지.


왜냐고? 그야 유권자들인 자신들이 뽑은 술라의 권한을 수도의 민중파들이 박탈하고 멋대로 마리우스에게 줬으니까.


요즘으로 치면 미국에서 대통령 뽑았더니 폭도들이 의회를 습격해서 대통령 권한 압수하고 일개 민간인에게 준 정도의 폭거임.




게다가 미트리다테스 전쟁에 동원된 군단병들 중 상당수가 동맹시 전쟁 경험이 있었던 이들이라 동맹 시민이었던 새 시민들을 고까운 눈으로 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애초에 그래서 한때 법무관 선거도 한번 낙선했을 만큼 민중에게 별로 인기도 없었던 술라가 전쟁 영웅 후광+시민권 문제로 당선될 수 있었던거임.

군단병들을 비롯한 상당수 구 시민들은 한때 적이었던 신 시민들이 입맛대로 정국을 주무르길 원하지 않았으니까.




9.webp.ren.jpg 술두광, 아니 술라의 제1차 로마 진군에 로마 병사들이 순순히 따랐던 이?유

술라의 로마 진군 당시의 연설은 남아있지 않으나 카이사르 또한 루비콘 강을 건널 때 연설을 했는데


이때도 원로원의 조치가 부당하고 호민관의 권한을 짓밟은 로마 원로원의 폭거를 규탄하는 식의 연설을 했음.


비록 카이사르의 군단의 케이스는 8년간이나 갈리아 전쟁하면서 서로 골족 황금 삥뜯던 전우관계라 술라와 마리우스 시대와는 달리

정말로 사병화가 어느 정도 되어있었다고 보는게 맞으나


그래도 무조건 사병화에만 기대지 않고 원로원의 적법성을 공격하는 주요 논리로 원로원의 호민관 권한 침해와 원로원 최종 권고의 부당성을 지목했음.


군단병들이야 사병화가 크게 진척되어있었다고 쳐도 아무리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의 영웅이고, 수도 로마를 제외한 이탈리아인들이 원로원을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지만

단순히 사병화의 논리에만 의존했으면 이탈리아의 거의 대부분의 도시들, 나중에는 일부 속주 도시들까지 반란군 신분이었던 카이사르군에게 이랏샤이마세하는 일은 불가능했다고 봐야됨.



술라의 연설은 남아있지 않고, 술라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도 로마를 무력으로 짓밟는 최초의 사례라

카이사르만큼의 공감대를 사는데 당연히 실패해서 장교들도 상당수 빤스런치고 수도 로마에서도 카이사르와는 달리 저항에 부딪쳤으나,

적어도 술라의 병사들은 사병화 같은 이유가 아니라도 술라를 따라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고 봐야됨.



9.png 술두광, 아니 술라의 제1차 로마 진군에 로마 병사들이 순순히 따랐던 이?유


물론 내가 애써서 설명한건 술라의 병사들이 술라의 쿠데타에 동참한 이유는 사병화가 아니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논리지,

절대 술라의 쿠데타 행위 자체를 실드치는건 아님.


애초에 자기 권한 빼앗겼다고 군대 이끌고 와서 수도를 무력으로 뒤엎는게 말이 되겠냐. 그냥 술두광이지.


다만 로마 중앙정부에서 술라의 권한을 압수한 행위가 로마 공화정의 주요 관직인 집정관직을 무력화하는 폭거였고, 유권자였던 로마군이 이에 분개할 이유는 충분했다는거임.


그리고 원래라면 그런 병사들의 분노를 다스려야 할 장군이 하필 정상적인 로마 장군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가 로마를 개혁해야 한다는, 과대망상적인 신념에 불타던 술라였기에 제1차 로마 진군 같은 일이 벌어질 수가 있었던 거라는 말이지.





네 줄 요약



1. 마리우스 사병화 메타는 미국갔어요.


2. 따라서 기존에는 술라의 로마 진군에 군단병들이 따랐던 근거가 사병화였는데, 이 사병화를 이유로 댈 수가 없게 됐음.


3. 그래서 요즘은 로마 중앙정부의 집정관직 권한 압수로 유권자들인(그리고 아마도 시민권 문제로 술라를 찍었을) 군단병들 자극+상당수가 구 시민이었던 로마 원정군은 선거구 문제에서 민중파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음을 이유로 봄.


4. 그리고 이 병사들의 분노에 불을 지핀게 자기가 독재해서 로마 공화정을 회복하겠다는, 자가당착적인 신념을 가진 술라여서 벌어진 일.






사료 출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저/이다희 역)


로마사 공화국의 시민과 민생정치 (허승일 저)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 (메리 비어드 저/김지혜 역)


Consular appeals to the army in 88 and 87 (로버트 모스타인 마르크스)

(https://www.classics.ucsb.edu/wp-content/uploads/2020/09/2011-Consular-Appeals-to-the-Army.pdf)


https://www.fmkorea.com/6223114013 (제가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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