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발해 멸망전 고찰 (7) - 최후의 순간 上[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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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41회 작성일 24-03-2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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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인 6편에서는 925년 연간에 있었을 것으로 강하게 추정되는 반란이 과연 일어났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925년에 있던 반란은 안그래도 야율요골에게 결정타를 맞고 핀치에 몰린 발해에게 있어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치명타였습니다. 발해의 남은 주력군들과 정예군들이 정황상 장령부와 압록부로 배치되고, 발해의 현재 구멍이 되어버린 압록부를 방위하기 위하여 주변 부들(부여부,용천부,남해부,현덕부 등)의 병력들 역시 차출되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틈을 타서 반란 내지 반정부 쿠데타가 최소 1번 이상 일어 났으며, 이 사건은 안그래도 거란과의 파워게임에서 힘겨운 상태로 몰려가고 있던 발해의 국가 상태와 더불어 정규군의 운영상태에 치명적인 인적 손실과 전술/전략적 손실을 초래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것이 발해 멸망 원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글은 저번 편의 반란 정황의 그 다음을 이야기하는 글입니다.

귀찮은 분들은 결말만 보셔도 무방합니다.




『요사』 제 2권, 태조본기 하 中


-유독 발해는 대대로 원수로서 아직 설욕을 못했으니 편안히 있을 수가 있겠는가. 하고 군사를 일으켜

발해왕 대인선을 정벌하러 친히 출정했다. 황후, 황태자-대원수 야율요골이 모두 따라나섰다.

윤 12월 임진일에 목엽산에서 제사를 지냈다. 임인일에 오산에서 청우와 백마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냈다.

기유일에 살갈산에 머물며 사귀전을 행하였다. 정사일에 상령에 머물다가 밤에 부여부를 포위하였다.



925년 12월, 야율아보기는 드디어 발해 친정을 발표하고, 발해를 멸망시키기 위한 침공 준비를 서두릅니다. 황제가 직접 나선 대규모의 거란군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21년에 동국대에서 발표한 논문에는 그 수를 약 17만~25만 정도로 추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정성껏 지내고, 사귀전을 행하였습니다. 참고로 사귀전이 무엇이냐면, 거란군이 출정할때 행했던 의식으로, 사형수를 끌고 와 기둥에 묶어놓고 화살을 쏘아 죽이는 의식이었습니다. 이 때 쏘는 화살을 귀신의 화살이라고 했기 때문에 사귀전이라고 부른 것이라 합니다. 이정도로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간절하게 바란다는 것은,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 역시 이 공격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8일 뒤, 거란군은 부여부를 밤에 포위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전년인 925년의 반란(반정부쿠데타)의 여파를 추측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생각을 해보면, 지금 야율아보기가 공격하는 부여부 자체가 딱히 거란의 침공이나 발해 내부의 반란 상황에서 피해를 본 정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남부 부분의 압록부가 피해를 입었을 뿐이지, 부여부가 피해를 입었다는 정황이 없는 이 때, 황제가 직접 이끄는 거란군 주력군이 작년에 야율요골이 열심히 뚫어놓은 압록부가 아닌 기존의 굳건한 방어라인인 부여부를 굳이 공격한 이유가 뭘까요?


저는 이 질문의 해답을, 장령-압록부로의 발해 주력군의 이동으로 인해 부여부에서도 병력을 차출하여 보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재 발해군의주력군은 남부인 장령부~압록부에 주둔해 있으며, 이로 인해 부여부의 방위병력이 평소보다는 부족해졌다는 것을 거란에서 눈치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환란을 겪더라도, 발해에서 부여부의 병력을 절대 빼지 않고 평시와 같이 유지만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거란은 강력한 방어선인 부여부를 굳이 공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부여부를 공격했다는 것은, 거란은 현재 발해 내부의 상황과 병력이동을 상당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혹은 처음부터 발해군의 주력을 압록-장령으로 빼 놓고 그 사이에 부여부를 노리는 것이 거란의 의도였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실제 역사라고 자신있게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이 두 가지 모두 방어선에서 방어를 하고 있는 발해의 방어를 뚫어내는 데에 있어서는 실로 대단한 책략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925년의 공격과 야율아보기의 부여부급습이 서로 연계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란의 노림수는 아주 정확하게 적중합니다. 정황상 장령/압록부로 병력을 차출해서 보낸 것으로 보이는 부여부는 당연히 병력의 감소로 인해 방어능력이 떨어졌을 것이고, 순식간에 밀어닥친 거란의 대군 앞에 버티지 못하고 3일만에 함락되고 맙니다.



위와 동일


-천현 원년 봄 정월 기미일에 흰 기운이 태양을 꿰뚫었다. 경신일에 부여성을 무너뜨리고 지키던 장수들을 죽였다.



이 사료와 바로 위의 사료를 보면, 부여부가 발해 최고의 요충지이자 정예군을 두어 수비했다는 사료와 다르게, 부여성이 완전히 거란에게 함락된 데까지는 겨우 3일이 걸립니다. 그리고 흰 기운이 태양을 꿰뚫었다는 이야기는, 정황상 거란보다 동쪽에 있는(태양은 동쪽에서 뜨므로)발해에게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를 입혔다. 라는 설명을 함과 같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치명타는 부여성의 함락을 의미하고, 바로 다음날인 경신일에 부여성을 무너뜨리고 장수들을 죽였다는 것은, 부여성의 발해군을 경신일에 완전히 제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부여성 함락 직후에 요사 종실전에 있는 야율배의 열전에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요사』 종실전 中


-천현 원년에 발해정벌에 따랐으며 부여성을 공략했다. 주상(요 태조 야율아보기)이 호구를 단속하려 하자 야율배가 간하기를, "이제 방금 땅을 차지하고서 백성을 단속하려 든다면 백성들이 반드시 불안해 할 것입니다. 만일 파죽지세로 곧 홀한성까지 이른다면 반드시 공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했다. 태조가 그 말을 따랐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선 태조 야율아보기가 발해를 노리고 쳐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그 이전까지 발해에게 패퇴한 적이 꽤 있으며, 실패를 겪었기 때문에 발해의 허를 잘 찔러서 부여성을 함락시켰지만, 혹시 모를 발해군의 움직임과, 발해쯤 되는 나라가 간단히 당할 리 없다는 마음이 있었는지 부여성을 점령하고 호구조사를 명합니다. 하지만 발해와의 전쟁에 나가봤으며, 야율아보기 부재시에 수도를 주로 맡고 야율아보기가 없는 곳의 전쟁을 원격지휘한 야율배(야율돌욕)는 바로 발해의 수도인 홀한성으로 직공할 것을 간언합니다.



여기서 호구조사를 명했다는 것은, 야율아보기는 정성껏 제사를 드리고 거란의 성스러운 의식인 사귀전까지 행하면서 왔기 때문에, 발해를 순식간에 끝장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하기에 차지한 부여성에 틀어앉아서 호구조사를 하고, 부여성을 비롯한 부여부를 거란의 영토로 편입시키고 알박기를 한 다음에 점차 나아가는, 흔히 생각하는 정복전쟁을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그리고 이 사실은 제가 누누이 얘기했듯이, 발해가 절대 거란에게 만만한 나라가 아님을 입증하는 예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이후 야율배에게 발해의 속사정을 들은 야율아보기는 야율배의 말을 따랐으며, 그 뒤에 소아고지와 척은안단(야율안단)에게 선봉을 맡겨서 홀한성으로 직공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홀한성 직공과, 그 과정에 나오는 발해 노상의 3만명과의 교전, 그 정황은



https://www.fmkorea.com/6859630208



제가 이 글에 제대로 써 놨으니, 이 글을 보고 오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이 부분 설명은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요사 태조본기에 따르면 노상이 패한 그날 밤, / 소아고지전에 따르면 노상이 패하고 난 다음 거란군이 진군하여

거란군은 발해의 수도권인 용천부(홀한주)를 뚫고 홀한성을 포위해 버립니다.



『요사』 2권 태조 야율아보기 中


-황태자(야율배를 의미), 대원수 야율요골, 남부재상 야율소, 북원이리근 사날적, 남원이리근 야율질리가 이날 밤 홀한성을 포위하였다.


이미 용천부와 홀한성에서 최소한의 경비병력만 남기고 보낸 3만이 제 몫도 못하고, 부여부에 합류하지도 못하고 격파된 것을 알고 홀한성에서는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합니다. 모든 계획은 실패했고, 부여부가 뚫리고 거란의 대군이(위의 사료를 보시면 황제, 황후, 황태자, 대원수, 재상, 모든 이리근들이 왔습니다. 이는 곧 거란이 동원한 병력이 대규모라는 것을 의미합니다.)수도를 포위해 버린 것입니다.


압록부와 장령부의 주력군들과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을 테고, 지방군들이 오려면 아직 한참 멀었기 때문에 대인선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이 때 홀한성의 발해 정부는 주전파와 항복파로 나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훗날 930년에 일본에 동단국의 사신으로서 간 배구와 일본 정부(천황)의 대화에서 나옵니다.




『속본조통감』 6권 中


-(전략)"짐이 듣건대 발해는 거란에 대대로 원수의 나라인데 지금 너희가 두 마음을 품어 조진모초 꼴로 남의 신하가 되었으니 어찌 하루아침에 이같이 된단 말인가?"


배구 등이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장계를 바쳐 말하기를, "신 등이 참을 어기고 거짓을 행해 선과 다투고 악에 순동하여 선주(대인선)를 조탄에서 구하지 않고 외람되게 신주(동단왕 야율배)에게 전쟁 속에서 아첨했습니다." 하고 하였다.(후략)




이것을 보면 거란이 홀한성을 포위했을 당시, 홀한성 내부에서도 항전을 포기하고 거란에 항복할 것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황상 이들은 발해 정부에게 반란을 일으켰다 제압당한 정당성-중대성 세력일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들은 모든 시도가 제압된 다음 발해가 멸망에 몰린 지금, 항전이 아닌 항복 쪽으로 주장을 하고 주전에 반대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거란에 항복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거나 빠져나가 항복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필이면 발해 멸망 이후 간판만 바뀐 동단국을 주도하는 정부 부처는 '중대성'이었던 것을 보면(발해국지장편, 요사 참조) 매우 의미심장하기도 합니다. 결국 결사항전의 의견이 결렬되고 모두의 뜻이 모아지지 않자 대인선 역시 항전의지를 잃고, 결사항전 및 시간끌기도 힘들어진 상황이라 답이 없어져서 결국 포기하고 항복을 선택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서 배구가 한 말을 보면, 대인선은 끝까지 싸우려 했으나, 신하들 중 따르지 않고 항복을 주장한 이들이 꽤 있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홀한성이 포위된 병인일로부터 대인선이 항복을 청한 기사일까지는 3일, 그리고 나와서 항복한 신미일까지는 5일이 걸립니다. 이 5일 동안 대인선은 결사항전을 부르짖고 싸우려 했으나 따르지 않고 항복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어서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월 14일 신미일, 대인선은 결국 성을 나와 거란에게 항복하고 맙니다. 거란이 거병한 지 채 한달도 안된 시점, 부여성을 공격하고부터도 20일도 안된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요사』 제 2권 태조본기 中


-기사일에 대인선이 항복을 청하였다. 경오일에 홀한성 남쪽에 군사를 주둔시켰다. 신미일에 대인선이 흰 옷을 입고 새끼줄로 양을 끌며 요속 300여명을 거느리고 성을 나와 항복하였다. 황제가 예우하여 그를 석방했다.



이로서 발해는 공식적으로는 멸망했지만, 이것이 그렇다고 완전한 끝은 아니었습니다.






이번 편 요약



1.925년의 반란/쿠데타로 인해 발해군은 상당수 피해를 입었으며, 그나마 남은 병력인 용천부에 주둔한 발해 근왕군은 추가적인 반란의 위험때문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였다.


2.거란의 야율아보기가 친정을 발표하고 부여성으로 쳐들어오자, 병력이 빠져서 약화된 부여부에서는 중앙정부에 지원요청을 했으며, 대인선은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3만을 제일 신뢰하는 노상에게 주어서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거란군을 막도록 지시하였다.


3.동시에 발해 정부는 지방군들에게 소집령을 내려 거란을 대비하려 하였을 것이다.


4.하지만 부여성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떨어져 버렸으며, 부여성으로 빠르게 향하던 노상 역시 중간에 거란군에게 대패하고 포로로 잡히고 만다. 이로서 거란군이 내륙으로 뚫고 들어오기 전에, 용천부의 병력을 부여부로 증원하여 부여성에서 거란군을 막는다는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고, 거란군은 매우 빠른 속도로 홀한성을 포위해 버렸다.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합동하여 대항하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결국 할 것도 없고 버틸 수도 없는 상황에서 대인선은 항복을 선택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쓴 글들



발해멸망전 고찰 1편. 멸망의 전조

-https://www.fmkorea.com/6837781243


발해멸망전 고찰 2편. 925년 이전의 발해 정치상황

-https://www.fmkorea.com/6840383814


발해멸망전 고찰 3편. 공백의 5년(913~918)

-https://www.fmkorea.com/6841829328


발해멸망전 고찰 4편. 918~924년까지 발해는 과연 무엇을 했을까?(상편)

-https://www.fmkorea.com/6844051571


발해멸망전 고찰 4편 (하편)

-https://www.fmkorea.com/6844149065


발해멸망전 고찰 5편

-https://www.fmkorea.com/6846820595


발해멸망전 고찰 6편 - 925년 반란설 상

-https://www.fmkorea.com/6849396028


발해멸망정 고찰 6편 - 925년 반란설 하

-https://www.fmkorea.com/6850618504



발해멸망전을 제외한 다른 글들



5경 15부 62주에 대한 오류 가능성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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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서열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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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의 정변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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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선왕(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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