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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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표유신01 댓글 0건 조회 833,366,987회 작성일 20-05-0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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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

생각해보면 이상한 애였다. 고개를 엎드려 옆으로 돌리면 짝인 너의 얼굴은 내 눈에 선명히 들어온다. 말랐고, 하얗고, 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애였다. 그럼에도 난 너가 좋았다. 너는 내 얘기를 들어주니까. 내 얘기를 들어도 입을 꾹 닫고 아무한테도 얘기 하지 않으니까. 내 모든 치부를. 백현아. 나 김도현 때문에 죽을 것 같아. 죽고 싶어. 라고 나는 항상 네게 말했다. 나는 김도현을 짝사랑했고, 그런 김도현과 내 친구는 연애중이었다. 차라리 모를걸. 그런 나를 보는 변백현은 추위에 몸을 떨면서도 갖가지 말을 해줬다. •••어차피 걔넨 헤어져. 힘들어 하지마. 그 가냘픈 위로 덕분에 나는 하루 하루 연명했다.

거의 이불같은 두께의 담요에 얼굴과 몸을 파묻고 꿈쩍하지 않았다. 너는 그런 날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애벌레같이 그게 뭐하는거야, 병신 여주야. 나는 배시시 웃었다. 미술 과제가 뭐 이딴 거야. 나는 투덜대며 빈 앞 좌석을 발로 차댔다. 내가 종이를 망치고 있는걸 본 변백현이 내 손에서 종이를 뺏어들었다. 이리 내놔. 가느다란 손가락이 바삐 움직이는게 예뻤다. 빨갛게 튼 볼도 나와 닮아서 안심이 되었다. 흰 피부와 안 어울리게 발목까지 내려온 다크써클도 그랬다. 너 또 밤새 게임했지?

"이틀 째 잠 안 잤는데."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등신아."
"뭐 어때."

변백현은 눈을 비비며 내 종이를 마저 접었다. 그러다 마지못해 곁눈질하며 말했다. 내 거 너가 한거라고 하고 내. 너는 싫은 티도 안내고 뼈 밖에 보이지 않는 팔로 내 등을 떠몄다. 존나 고맙다, 등신 백현아. 나 역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변백현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둘 다 수학시간엔 엎드려자고, 내가 못하는 모든 것은 네가 대신 해줬다. 물론 너가 못하는 것들은 내가. 하지만 내가 할 일은 없었다. 사실 너가 못하는 건 딱히 없었으니까. 다 귀찮아하고 무기력하다는 거만 빼면. 너는 아이큐가 다른 천재라서. 그것만 빼면 너는 나와 너무도 닮아서, 그래서 나는 너를 좋아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비운하고 유치하고 끝이 훤히 보이는 연애사를 계속 들어주는건 너 뿐이었다. 나는 힘들 때만 너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넌 그런 말을 한걸까? 널 찾지 않으면 내가 힘들지 않은 거란걸 알아서.


내 휴대폰 비밀번호가 0506이라고 하자 조금 놀라며 묻던 변백현. 그게 내가 본 가장 너의 생기돋는 모습이었다. 김도현 생일이야. 라고 하는 순간 식으며 내 생일도 5월 6일인데... 라고 하던 네 모습도 뒤이어 그려졌다. 그 후로 난 네 생일을 절대 까먹을 수 없게 됐다. 삼일 뒤 내 생일, 그 생일에 김도현의 축하를 받지 못했을 때면 나는 변백현의 축하를 받았으니까. 그 마저도 사라지게 됐지만.

"백현아..."
"김여주!"
"나 너무 힘들어, 백현아..."

소복히 내리던 눈 속에서, 너와 눈을 구분할 수도 없었던 온 세상이 하얬던 날. 나는 네게 안겨 펑펑 울었지만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도현과 내 친구 모두를 잃게 되자 내게 남은건 너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 그것도 몰랐다. 네가 내게 왜 그렇게 헌신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로. 너는 분명 나를 처음 만난 몇 년 전에야 나를 좋아했고 지금은 그저 친구일 뿐이니까. 너는 친구라기엔 너무 많은 것을 해주고 있었는데. 네가 그 날 눈 속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 영원히 모를 거다. 우산을 툭 떨어뜨리며 날 더 세게 안은 그 때의 너를. 머리 좋은, 게임에만 빠져사는 변백현의 본 모습 같았던 날.


그래도 너,  어떻게 그 날 말할 수가 있을까. 이제 김도현을 다 잊을 거라며 졸업식에도 내 옆 자리를 지켜준 너에게 신신당부를 했던 그 날. 그 다음 날 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어떻게 넌 거기서, 병신 김여주. 넌 김도현이지, 난 너 좋아했는데. 처음 봤을 때부터 쭉. 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지. 넌 덤덤했다. 미련도 없어보였다. 나는 말문이 막혀 네게 외국에 가서 거기 있는 게임을 다 깨고 오라고 말하려던 목소리를 꺼낼 수가 없었다. 내게 무언 말을 하고 내 학사모를 똑바로 씌어주고 간 너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난 네 생일에도 김도현만, 내 생일에도 김도현만 찾았는데. 너무 미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네가 왜 내 얘기를 들어주고 았어야 했을까. 앓고, 울고, 떼쓰던 나를.

우린 너무 똑같아서 그런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시차로 너는 낮, 나는 밤을 살고 있는 것부터. 나는 5월 6일이 되고 네게 문자를 보냈다. 생일 축하해. 잘 지내야 돼. 너는 몇 분 만에 답장을 줬다. 응. 너도 잘 지내. 생각해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달랐다. 나는 너처럼 나같은 누군가에게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 말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나는 창을 닫아버렸다. 떠나기 전 내게 했던 꼭 김도현도 나도 잊고 행복해지라던 네 말을 지켜야 됐으니까. 그래도 나는 네 생일은 영원히 기억할거야. 나는 잘 지내라는 네 말에 남은 인생 전부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네가 조금 그리운 것만 빼면.





(+ 안녕하세요! 오늘 백현이 생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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