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조선 멸망 후 황가는 어떻게 살았을까?[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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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쿠로 댓글 0건 조회 84회 작성일 24-05-17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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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형, 조선 제26대 국왕, 대한제국 초대 황제)

image.png 조선 멸망 후 황가는 어떻게 살았을까?

일단 고종은 대한제국 멸망 전에도 수차례 망명을 시도했으며, 경술국치 이후에도 1918년 우당 이회영을 중심으로 베이징에 망명을 시도했으나, 고종 자신이 계획 시행 직전인 1919년 1월 21일 급사하고 만다. 향년 66세. 정식 사인은 뇌출혈이었으나 독살설이 퍼지며 3.1 운동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순종(이척, 조선 제27대 국왕, 대한제국 제2대 황제)

image.png 조선 멸망 후 황가는 어떻게 살았을까?

경술국치 이후 일본 황족 바로 아래인 이왕 작위를 받았고, 쇼토쿠큐(창덕궁) 이왕 이란 칭호를 받았다. 창덕궁에 머물며 당구를 취미 삼았으나 몸이 악화되며 그조차 못하게 되었고, 1926년 4월 25일 창덕궁에서 사망했다. 향년 52세.


순정효황후(윤증순, 순종의 황후)

image.png 조선 멸망 후 황가는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사 마지막 왕비 순정효황후는 계속 남편 순종과 함께 창덕궁 대조전에서 지내다 1926년 순종이 사망하자 '나라도 잃고 남편도 잃었으니 단청 입힌 집에 머무를 수 없다'는 고집과 함께 임금이 거주하는 대조전에 영친왕 부부가 머물면서 거처하도록 하기 위해서 낙선재(수강재)로 거처를 옮겼다. 이 동안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인들과 같이 한글 소설을 모아 읽었는데, 6.25 전쟁 당시 많이 소실되었음에도 아직 89종 2000여 책이 남아 있다.


해방이 되었지만 조선 왕가에 적대적이던 이 대통령(일단 강경한 공화주의자였고 만민공동회 당시 자신을 체포한 것이 고종이었으며, 그의 외교적 안목을 한심하다고 비판한데다 한반도 유일의 지도자는 자신이라는 프라이드 때문으로 보인다.)에 의해 별 대접은 받지 못했고 6.25 전쟁이 벌어졌을 때 창덕궁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인민군이 들이닥쳐 방을 뒤지다가 '누가 임금의 부인이냐, 당신들은 뭐하는 사람들이냐'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자 상궁들은 '마마께서는 여기 안 계신다, 우리는 잡일하는 일꾼이다'라고 둘러댔지만 그 가운데 정좌한 채 흐트러짐 없이 앉아 있는 사람이 황후라는 사실을 인민군이 눈치채자 김명길, 박창복, 성옥염 세 상궁이 황후를 감싸고 '병환이 나서 꼼짝도 못하신다'며 애걸복걸해 일단 화를 면했다.


그러나 인민군들이 계속 창덕궁에서 버티자 상궁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병환 치료를 핑계로 탈출, 운현궁으로 피난해 9.28 수복까지 그곳에서 숨어 지냈다. 이후 중공군이 내려오자 이번에는 미군 비행기 편으로 부산으로 피난, 양성봉 경남지사의 관사로 갔다가 누를 끼치기 싫다며 동래포교당(현 법륜사)으로 옮겼고, 오래지 않아 구포의 한 주택으로 이동해 휴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일반 서민처럼 살았다.


전후 다시 창덕궁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이 대통령이 창덕궁은 국가 유산이라는 이유로 거부하여 기업인 백낙승(예술가 백남준의 아버지)의 소유인 정릉 인수재에서 쭉 지내다 4.19 혁명 후 오재경 신임 구황실재산사무총국 사무국장에 의해 창덕궁 낙선재를 전면 수리해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이때 정권을 잡은 박통에 의해 해외의 가족들이 모두 귀국해 동서 이방자 여사와 시누이 덕혜옹주와 같이 기거했다. 그러나 그렇게 아끼던 시동생 영친왕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의식불명인지라 입국하자마자 병원으로 가서 죽을 때까지 만날 수 없었다.


image.png 조선 멸망 후 황가는 어떻게 살았을까?

1966년 2월 3일 창덕궁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71세, 그녀의 장례식은 대한민국 최초의 국장으로 치뤄졌다.


영친왕(이은, 황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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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최후의 황태자 영친왕은 1907년 일본으로 끌려가 방계 황족 가문의 마사코 여왕(이방자)와 결혼했다. 의외로 반쯤 인질이었지만 메이지 덴노와 사이는 괜찮았으며 다음 덴노인 다이쇼 덴노와도 친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계속해서 일본에 붙들려 있었기에 아버지 고종도, 어머니 순헌왕귀비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고 일시적으로나마 귀국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복형 순종이 죽은 이후였다.


관동 대학살 당시 영친왕도 혹시 모를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집을 버리고 궁내성 제 2대기실 앞에 쳐진 텐트 속에서 1주일 동안 피신해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방자 여사의 말에 의하면 조선인 학살 소식을 들은 영친왕은 슬픔과 분노로 목소리를 떨고 있었으며 1주일 내내 눈물을 글썽이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또한 1917년에 일본육군사관학교를 29기로 졸업하고 소위로 군생활을 시작, 1923년엔 일본 육군대학을 35기로 졸업하고 육군참모본부에 배속된다. 1935년에는 대좌로 진급했으며, 이후 1938년 육군 소장, 1940년에는 육군 중장에까지 올랐다.

1928년 근위보병 제2연대 휘하의 대대장, 1935년 우쓰노미야 보병 제59연대 연대장과 1941년 제 51사단 사단장을 역임한 뒤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육군 중장으로서 육군 제1항공군 사령관을 역임했다. 이 일본 육군 제1항공군은 1942년 4월 13일 창설된 부대로서 주로 본토방공(미국의 일본 본토 폭격에 대응하기 위한 임무)을 책임지는 아주 중요한 부대였다. 사령관은 일본육군 중장, 사령관을 보좌하는 참모장은 일본육군 소장이 보임되었다. 부대 창설 이후 1945년 종전시까지 총 4명의 사령관이 있었는데, 다른 3명은 재임 기간이 길어봤자 1년도 안될 정도로 짧았지만 제3대 사령관인 영친왕은 거의 2년 가까이 사령관 자리에 있으면서 재임기간이 가장 길었다.


1945년 일본이 패전하자 일본에서 살던 조선인은 공식적으로 국적이 없는 무국적의 재일 한국인이 되었다. 이후 1947년 연합군사령부의 조치로 이왕직이 사라지고 평민으로 격하되었다. 1946년에는 UP통신 기자에게 당시 조선의 정세 및 장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꽤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조선의 외교적인 입장에 대해서는, "조선은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무력에 의한 독립 존속은 매우 어려우며, 아시아 대륙과 붙어있어 일본보다도 공산주의가 침투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공산당을 용납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한 "삼팔선은 독립에 장애가 되므로 빨리 제거해야 한다." 면서, 과도기에 대해서는 "일종의 국제관리기관을 설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밖에도 "조선의 민주화를 위한 기본 조건은 학교에서 조선어를 쓰는 것이나 일본어, 영어, 중국어 교육도 인정해야 한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되 유교를 국교로 존치시켜야 한다." 등 앞으로 들어설 국가의 비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의견을 밝혔다.


1945년 광복 직후와 1948년에 두 차례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요청을 했다. 하지만 전자 땐 미군정이, 후자 땐 이 대통령이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이승만 정부는 영친왕이나 순정효황후 윤씨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이우에 대해 조금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애초에 그를 비롯한 모든 공화주의자들이 영친왕의 복귀를 경계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광복 후 한일 양국에 미군정이 들어서고 이 대통령이 재일 미군정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했다가 영친왕을 우연히 만났는데 영친왕이 넌지시 자신의 영구 귀국을 논의해보려 했으나, 그는 영친왕을 외면하며 "오든 가든 마음대로 하시구려."라며 약간 무시하는 것처럼 홀대했다고 한다. 영친왕은 나중에 이 일화를 기록하며, "대단히 실망스러운 날이었다"고 표현했다.

귀국을 거부한 표면적인 이유는, 영친왕이 일본 황족으로 살아간 것이 일본 국적을 취득한 것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즉, '영친왕은 일본인이 되었다'고 법률을 해석하여 그의 귀국을 거부한 것. 물론 일본 정부에서는 호적을 기준으로 영친왕 부부를 재일 한국인으로 보았으므로 부부가 모두 무국적 신분이 되었다. 단순히 이 대통령 뿐만 아니라 의열단 출신의 박건웅이 "동경의 이왕은 민족 반역자인데 왜 광복 후 자살하지 않았느냐."라고 발언하는 등 친일파라고 증오하는 이들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안 그래도 부족한 재산을 사기를 당해 대부분 날리며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했다고 알려져 있다.


1961년 미국에 있던 아들 이구를 보고 오다 뇌졸중이 재발해 실어증이 도졌고, 이후 정권을 잡은 박 대통령에 의해 한국 국적을 다시 회복하고 1963년 무려 56년만에 귀국했으나, 이땐 이미 혼수상태였다고 한다. 게다가 정부가 준 병원비까지 아들 이구가 횡령해 300만원 가까이 병원비가 밀리는 등 가난하게 생활하다 1970년 5월 1일 사망했다. 향년 72세.


여담으로 현 왕위 요구자 이원이 영친왕의 9남 이갑의 아들이며 1남 이구 사후 그의 양자가 되었다. 정작 이원 본인은 왕정 복고에 부정적이지만.


의친왕(이강,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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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아들 의친왕은 1911년 비밀리에 손병희와 만나 국권 회복에 대해 논의했고, 1915년 고종을 비밀리에 북경으로 망명시키려다 적발당한 보안회 사건에도 연루되었다.


때문에 일제의 감시 대상이었으나 당시 조선 왕족의 특권인 여행의 자유로 전국을 유랑하며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고 손병희와 함께 3.1 운동에 대해 몰래 화합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설되자 황족으로서의 특권도 버리고 상해로 망명을 시도했다. 그러나 망명 시도가 실패하여 그는 가택 연금되었다가 1930년 강제로 공족 작위와 전재산을 장남 이건(이쪽은 일본에 적극 협조했다.)에게 이전당하고 일본으로 연행되어 수년간 일본에 살다 큰딸 이영의 결혼식을 핑계로 돌아와 독립때까지 눌러 앉는다.


때문에 황가 구성원 중 순정효황후와 함께 유이하게 6.25전쟁을 겪었는데, 주변에서 도움이 많았던 순정효황후와 달리 피죽도 제대로 못 먹으며 굶주린데다 1.4후퇴 당시 70대의 노구로 부산까지 피난가며 건강을 심하게 해쳤다. 게다가 전후 돌아왔을 땐 거처 사동궁도 이리저리 다 팔려 있던지라 종로 안국동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고, 1955년 8월 16일 병사했다. 향년 78세.


큰아들 모모야마 켄이치(이건)은 아버지와 달리 독립 후 귀국하지 않고 일본인이 되어 단팥죽을 파는 등 생계를 이어가다 1990년 사망했으며, 작은아들 이우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군생활을 하다 1945년 히로시마 제2총군 교육 장교로 발령 받아 가족들을 두고 히로시마에서 근무하던 중 원자폭탄에 피폭, 8월 7일 사망했다. 의친왕은 일본에 협조적인 큰아들보다 일본에 적대감을 가지던 작은아들을 더 총애했다고 전해진다.


덕혜옹주

image.png 조선 멸망 후 황가는 어떻게 살았을까?

1925년 13세의 나이로 일본에 강제 유학을 가 황족과 화족의 영애들이 다니는 학교인 여자가쿠슈인에 편입학 되었다. 여기서도 상당히 높은 대우를 받았지만, 독살을 두려워해 보온병에 담긴 물만 마시는 등 정신적인 문제를 보였다.


1929년 5월 30일, 어머니 귀인 양씨가 유방암으로 사망하며 처음으로 몽유병과 조현병증세를 보였고, 점점 조헌병 증세가 심해지며 가쿠슈인을 끝마치지 못했다. 1931년 대마도 번주 출신 소 다케유키 백작과 결혼해 딸 마사에(정혜)를 낳았으며 남편 소 다케유키와의 사이는 괜찮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녀의 조현병은 계속 악화되었고, 전후 신적강하로 집안의 재산도 줄자 1955년 다케유키, 이방자, 영친왕의 합의 끝에 이혼한다. 딸 정혜 역시 1956년 갑자기 실종되었고, 반세기 가까지 지나서야 시신이 발견되었다.


참고로 긴 시간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이혼 전에는 다케유키가, 이혼 후에는 영친왕이 매달 1만 엔에 달하는 병원비를 지불했다고 한다.


이후 1962년 귀국했지만 정신병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계속 창덕궁에서 조용히 살다 1989년 4월 21일 사망했다. 향년 76세.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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