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발해, 그 이후 - 발해잔존세력 최후의 국가, 올야국(下)[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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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91회 작성일 24-05-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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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올야국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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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글까지는 올야가 요와 대적한 다음에, 결국 수장이었던 연파의 죽음으로 촉발된 혼란과 동기부여를 잃고

요에 항복하여 내부하는 곳까지 다루었습니다. 이제 남은 내용이 얼마 되지 않은 관계로 이 글은 여기서 끝이 보입니다.


요나라 입장에서는 송과 한판승부를 겨루어도 모자랄 판국에 계속 뒤통수를 쑤셔대는 올야 세력이 자발적으로 달려와서 항복하고 칭신하자 상당히 반겨주는 반응을 보입니다. 아무래도 적이 많은 것보다는 아군이 많은 것이 좋으니 말입니다. 심지어 과거의 대적이었던 올야가 나라가 궁핍해서 조공을 좀 줄여달라는 부탁도 시원하게 한방에 들어 줍니다.



그리고 올야는 요에 고개를 숙이면서 요의 복속국으로서 안전하게 살아갈 길을 얻은 것처럼 보였으며,


안전을 확보한 데에 대한 감사인지, 올야의 오소경은 999년에 요에 찾아가 황제를 뵈고 내부합니다.

여기서 뜬금없이 얼마 전까지 오소도가 올야의 왕/내지 대표였는데, 갑자기 오소도의 기록이 사라지고 오소경으로 넘어가버린 점이 눈에 띕니다. 이 사태를 보고 판단할 때,




오소도가 죽어서 오소경이 지도자가 된 것이다.


혹은


오소도는 죽지 않았고, 그냥 아들(?)인 오소경만 내부시킨 것이다.





둘 중 하나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판단하기로는, 오소도는 998년 연간에서 999년 초 중에 사망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이유를 말해보자면, 우선 오소도와 오소경의 나이를 알 수는 없지만, 바로 뒤에 나오는 사료인 성종본기의 5편에서 나오는 사료들이 존재합니다.



『요사』 14권 성종 5편 中


-통화 20년(1003), 여름 4월 무진일에 올야, 발해, 오리미, 월리독, 월리길 등 5부에서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



라는 사료가 존재합니다. 요에 복속하여 요의 하나의 부가 된 올야를 나타내는 사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같은 편에, 바로 내년인 1004년에 일어나는 일이 적혀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에 나오는 발해라는 이름의 부는, 요에서 만든, 과거에 자신들이 잡아온 발해인이나 요에 복속된 발해인들을 모아서 만든 부로 추정됩니다.




위와 동일.


-(1004년 9월), 여진에서 사신을 보내 사로잡은 오소경의 처자식을 바쳤다.




여기서 여진이 사로잡은 오소경의 처자식을 요에 바쳤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1.오소경이 올야의 왕(대표자)이었다는 증거


2.주변 세력들이 올야에 절대 호의적이 아니었다는 것.




이렇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과거에 올야의 전신 중 하나이던 정안국과 어울리다가 많은 피해를

입어서 올야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여진이 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전에도, 전편에도 나왔지만, 여진은 정안국 시절까지는 발해 잔존세력과 함께하다가 정안국의 해체 이후로는 발해 잔존세력에 적대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상술했듯이 정안국의 해체 이후로 더이상 발해잔존세력과 함께하는 것은 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혹은 여진 세력 역시 발해잔존세력과 함께하는 동안 상당한 피해를 입었으므로, 그것 때문에 원망과 분노가 생겨서 그랬을 가능성 역시 보입니다.




또한, 아무리 올야가 약해졌어도 하나의 부를 이룰 정도의 세력인데, 여진이 뜬금없이 쳐들어와서 대표자의 아내와 자식들을 적군이 잡아갈 정도라는 것은, 올야의 약체화가 이미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저번 글에서 오소도가 요에 내부하려 할 , 올야의 다른 지도자인 무주 역시 요에 항복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에 연파가 힘을 기를 때에는 요에 대한 복수와 요에 적대적인 정책을 계속 폈지만, 갑자기 뜬금없이 굴러들어온

오씨 일가가 지도자를 차지하더니 요에 항복을 결정해버리자, 그에 대한 반발과 자포자기들이 있었음이 암시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짧은 2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대표자가 바뀌었다는 것은, 요에 칭신하는 이러한 태도 때문에 올야의 세력이 완전히 와해되거나 급속히 약화된 것을 의미한다고도 생각합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요를 선제공격하고 대규모의 요군을 물먹일 정도로 강했던 올야는, 강한 리더인 연파의 죽음 이후 완전히 조각나고 있다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결국 요나라의 침입은 이제 없어졌지만, 동시에 함께 요나라에 복속하고 있던, 발해국 시절부터 발해세력에 원한을 가지고 있던 세력들이 올야를 노리기 시작합니다.





『요사』 15권 성종본기 6편 中


-개태 원년(1012) 8월 초하루 병신일에 철려의 나사 등이 올야인 100여호를 호송하여 빈주에 이르렀으므로, 실과 비단을 하사하였다.




『고려사절요』 제 3권 현종 9년 中


-현종 9년(1018) 봄 정월, 정안국 사람 골수가 도망쳐왔다.




『요사』 16권 성종본기 7편 中


-태평 2년(1022) 5월 을해일에 참지정사 석용중이 훙서했다. 경진일에 철려에서 사신을 보내 올야 16호를 바쳤다.




예전의 숙적이었던 철려는 이제 대놓고, 약화된 올야를 마구 공격하여 괴롭혔습니다. 발해와 철려의 악연도 참 긴데요, 실제로 올야의 수장인 오소경의 처자식까지 잡혀갈 정도로 올야를 철저하게 공격합니다.


과거 발해국 시절부터, 발해국에게 강제로 병탄되어 짓밟히고 어쩔 수 없이 발해와 합쳐 살았던 과거부터 철려는 발해에게 상당한 원한을 품고 있었을 겁니다. 이후 발해가 문왕 사후의 혼란기가 되자 철려는 발해에서 이탈하지만, 결국 강왕 이후에 나라를 회복한 발해에게 짓밟혀 발해 멸망까지 다시 발해에 복속하게 됩니다.



발해 멸망 이후에 철려는 재빨리 요나라 쪽으로 줄을 선 다음, 발해의 후계국인 정안국을 줄기차게 괴롭혔고, 정안국은 연파와 합류하게 되자 철려를 공격하고 복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올야가 또 약해지자 이제 철려는 대놓고 올야를 탈탈 털었으며, 그 결과물인지, 1000년대 초중반 이후부터 요사와 고려사, 고려사절요 기록에는 '발해인'들의 귀부가 상당히 길게 행렬을 이루어 옵니다. 그리고 이 행렬은 1000년대 후반에 잠시 멈추다가, 1100년대 초반에 또 시작됩니다. 그 행렬을 나타낸 사료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 매우 길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 1000년대 이후에 생긴 몇몇 반란, 특히 1029~30년에 일어난 대연림의 난으로 인해 요나라에서 발해인들을 더 통제하고 더 가혹하게 다루게 되면서 개인 자격의 탈출들이 많아진 것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해당 부분은 현재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과는 좀 다른 파트이므로(이 때 고려로 향한발해인들은 상당수가 요의 동경부, 황룡부 지방에 살던 사람으로 추측됩니다. 물론 저 위의 골수처럼 발해잔존세력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을 일일이 검증하기가 힘듭니다. 다행히 요에서 도망쳐나온 이들은 요의 관직과 직함을 가지고 왔으므로 구분이 쉽습니다.)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중에 한번 글을 마련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의 주된 포커싱은 고려가 아닙니다.




아마 요는 자신들에게 극심하게 저항해오다 항복한 발해잔존세력인 올야에게, 항복은 받아주고 대우는 해 주되,

그동안 발해잔존세력에게 이리저리 치였거나, 한을 품고 있어나, 분노와 복수를 부르짖는 이들의 의사는 딱히 막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너희끼리 알아서 해라. 그렇게 방치 및 방임을 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올야를 치는 철려나 여진을 전혀 말리지 않고, 위의 사료처럼 오히려 상을 주거나 좋아하는 모습을 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요의 입장을 들어보자면, 요 역시 요에 복속하기 전에 요를 많이 골탕먹였으며, 복속국인 여진과 철려가 올야에게 이를 갈고 있으므로, 이들의 (묵인하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며, 올야가 이들에게 두들겨 맞고 약해지면 요 입장에서 나쁜 것도 아닌지라 요는 여진과 철려가 열심히 올야를 두들겨 패는 것을 방조 내지 묵인, 더 나아가 장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올야가 멸망하거나 하진 않는 것으로 보니, 철려도 여진도 적당히만 분풀이만 하고 그만두지 않았을까 합니다. 엄연히 올야는 금이 발흥한 1100년대 초반까지 유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후, 올야는 1100년대까지 기록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록에 없던 올야는 갑자기 금의 아골타가 흥기한 이후, 요나라가 금에게 처절하게 멸망의 길을 걸을 때인

1114년에 다시 나타납니다.




『요사』 27권 천조제 1편 中


-천경 4년(1114) 12월, 함주, 빈주, 상주, 철려, 올야가 모두 반기를 들고 여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것이 올야가 역사에 나온 마지막 사료입니다.



또한 올야의 수장 추골실이 동년 11월에 아골타에게 항복했다는 기사가 금사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올야는 금이 일어나자 요에 희망이 없는 것을 판단하고 재빨리 항복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발해국 시절부터 올야와 사이가 좋지 않던 철려 역시 나란히 금에 함께 항복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1000년대 초반의 올야의 수장이 오씨가문의 오소경이었는데, 여기서는 또 수장이 추골실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올야의 수장이 다른 성씨로 바뀐건지, 아니면 올야 자체가 분열되어 강력한 구심점 없이 여러 연합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원래부터 올야와 많은 연이 있지 않고 올야에 많은 지분이 없던 오씨 가문은 올야의 지배를 오래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보입니다.



그리고 요가 격파되고 멸망하고, 금이 세워진 이후에는, 금에서 활동하는 발해인은 요의 중심부에서 활동하던 발해인들로 상당수가 채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애시당초 요에 흡수되지 않은 발해 세력(포로모타부, 올야 등)은 금에 그냥저냥 합류하거나, 고려로 달아나서 고려인이 되어 완전히 그 명맥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금에서 활동한 발해인들 역시 금이 맹안모극에서 발해인을 제외하고, 산동 등 중원으로 발해인을 강제이주 시키는 등 발해인의 정체성을 없애는 시도를 한 끝에, 금 멸망과 함께 박살이 나고, 원에서 활동한 발해인들, 그리고 워말명초까지 나오는 발해인도 간혹 있지만, 발해인이라는 큰 갈래는 중국의 거대한 종족 용광로 안에서 그대로 흡수되어버리고 맙니다. 이로 인해 발해국 멸망 이후 발해의 계보는 올야국을 마지막으로 끊어져 버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정안국과 올야국 까지는 한국사에 넣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지만, 올야국에 가서는 여진과 상당히 많이 융화가 된 탓이라 그런지 꽤 애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다음편부터는 포로모타부에 대해 다루고, 포로모타부가 끝나면 금, 원, 명대의 발해인 기록을 소개하거나, 아니면 도로 제 주력인 발해로 돌아가서 못다한 연구를 할까 생각중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잠깐 말하자면, 저는 포로모타부를, 발해 붕괴 이후에 자력갱생하던 발해세력의 파편이 말갈족(여진족)과 합쳐져서 생성된 세력으로 생각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본편에서 하겠지만, 저는 포로모타부를 개인적으로, 올야와 함께 발해의 마지막 파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포로모타부와 발해의 연관성, 의혹, 개인 생각 등을 밝힐 예정이고, 더불어 여진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고 짚어보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편은 여진족에 관해 간략한 개인의견을 말하고, 포로모타부의 기록과 특성, 발해와의 연관성을 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올야가 기록이 얼마 없어서 그런지 올야에 대한 글이 상당히 날림으로 끝나는 기분이 듭니다. 그 면에 있어서

상당히 죄송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미숙해서 그런지 좋은 연구를 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사료가 없어도 너무 없다보니 연구에 난항도 꽤 있었고, 그것보다 더 심한 것은, 요사와 고려사에 계속 나오는,

분별없는 '여진'이라는 단어가 연구자들을 정말 많이 괴롭힙니다. 이 단어 안에 엄청나게 많은 종족들이 들어있고,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표현이다 보니 구분의 필요성이 있는데도 구분이 잘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뒤이어 다룰 포로모타부 역시 흥미로운 점이 많으니 잘 보아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궁금한 점은 댓글로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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