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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우, 1926년 6월 20일 전라남도 목포 출생
전 코리아타임즈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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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라남도 목포 출신으로 목포북교보통학교 (현 목포북교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서울교동보통학교 (현 서울교동초)로 전학 후 졸업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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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고등보통학교 (현 경기고등학교)에 수석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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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도호쿠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에 입학했다가 일본군에 징병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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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조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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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최병우는 미군정청 외무처 도쿄 공관의 섭외담당으로 근무하게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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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주일대한민국대표부 (현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의 서기관으로 봉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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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주일대표부를 떠난 최병우는 당시 한국은행 조사부장이던 장기영을 만나
한국은행 도쿄지점 개설에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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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52년 3월, 장기영은 한국은행 부총재를 사임하고 조선일보의 사장이 되자 외신부장으로 최병우를 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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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최병우는 이미 1951년 부산으로 귀국해 종군기자 활동을 했으며, 조선일보는 기자로서 첫 직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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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장기영이 한국일보를 창간하자 그도 한국일보 초대 외신부장으로 이직했으며,
1955년에는 편집부 부국장으로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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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엔 영어판, 《코리아 타임즈》 편집국장으로 발탁되었다. (상당히 높은 직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나가서 취재하는걸 선호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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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9월, 최병우는 포격전이 벌어지는 중화민국 진먼섬으로 출국했으며, 이는
그의 마지막 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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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9월 11일, 진먼 섬에 상륙했으나 교통사고를 당해 타이베이로 돌아가야 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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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년 9월 26일, 병원에서 퇴원한 그는 장기영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본인 야스다 기자, 중화민국 현지 기자 4명, 중화민국군 5명과 함께 진먼 섬으로 향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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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40분경 파도로 인해 상륙정이 멈추자 장교의 명령으로 바다에 뛰어들었으며
최병우 기자는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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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 국군은 바로 수색을 시작했으나 중공군의 포격으로 인해 수색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결국 수색은 중단되었고 모교인 경기중학교에서 위령제를 거행했다.
故 최병우 기자, 당신의 참된 언론인 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