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북한 여군 포로들이 북한으로 송환되면서 벌인 추태.jpg[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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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115회 작성일 24-04-03 00:13본문
남한측에선 이들에게 양복과 시계를 입히고 기타 선물들을 들려 돌려보냈으나, 군사분계선을 넘자마자 선물을 집어던지고 옷과 시계를 전부 벗어 내팽개치고 팬티 차림으로 만세를 외치며 돌아감.
1953. 8. 6. 북으로 돌아가는 인민군(여) 포로들이 열차의 창문을 깨뜨리곤 인공기와 반미 플래카드를 내걸고 구호를 부르짖고 있다.
...(중략)
보안수용소 북쪽은 직선 거리 약 50미터 되는 언덕 위에 여성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약 150명이 수용되어 있는데 90%가 북한 송환을 지망하기에 우익 청년들은 그들을 '빨강 계집년'이라 부르고 좌익은 '애국 여성'이라고 불렀다.
몇 명의 유부녀 외에 대부분이 20대 초의 처녀들로서 동작은 활발하고 말씨는 쨍쨍하게 울렸다. 먹고 할 일이 없으니 얼굴빛이 하얗고 복장도 인민군 여성 이상으로 단정하고 깨끗했다.
그것뿐이라면 별로 거슬리는 것이 없겠는데 수시로 목청을 높여 공산군 노래, 적기가를 불러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신경이 곤두서곤 했다. 보안수용소에는 장비(張飛)처럼 생긴 반공 애국청년이 있어 매일 석양쯤 되면 그와 여자들 사이에 일대 선전전이 벌어지곤 했다. 빨강 여성들은 대꾸하기 어려울 때는 적기가, 혁명가로 응수한다.
훗날 판문점에서 포로가 교환될 때 수백 명의 빨강 여성들은 열차가 판문점에 도착하자마자 모든 들창을 깨고 차내 장식품을 부수고 앉았던 의자커버는 면도칼로 찢고 그 위에 걸터앉아 오줌을 쌌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하차하기 직전에는 모두 엉덩이를 드러내고 중간 복도에 대변을 배설했다. 3년간 암퇘지처럼 파먹고 남긴 것이 그것뿐이다.
내가 겪은 조선전쟁, 주영복 지음, 고려원, 1990년, 326~327쪽
주영복 씨는 한국전이 끝난 뒤 제3국을 선택한 반공포로 76인 중 최연장자이다. MBC가 6.25특집 다큐멘터리로 방송한 '76인의 포로들'의 주인공들과 함께 방한한 그는 54년 2월 인천항을 떠나 인도에 2년간 머문 뒤 미국으로 옮겨 정착, 그동안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전쟁의 상흔을 떨어버리려는 노력의 하나로 '내가 겪은 조선전쟁'이란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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