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오늘은 '제주 4.3사건' 76주기 입니다.[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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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기먹는스님 댓글 0건 조회 176회 작성일 24-04-03 08:35본문
제주 4.3 사건이란?
-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개정 2007. 1.24>
1.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내용: 나무위키 '제주 4.3사건' 개요 中
(사망자 수는 단일 사건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가 한국전쟁 다음으로 많다.)
유골 발굴 작업
정방폭포
1년전 2023년에는
제주 4.3사건을 공산폭동이라고
주장하는분들도 존재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반발하는 교수도 있었는데
남로당이 아니라고?
한홍구 저 교수의 발언도 잘못 된게
경찰의 도민 탄압과 극우단체들의 폭력행위를 핑계삼아서
자신들이 권력을 쟁취하고자 선동과 무장봉기를 통해
대안 없이 일을 크게 벌리면서도 이후 상황이 악화되자
'등산(입산)'하면 혁명적, 부등산은 비겁 행위'라며 제주도민들에게 입산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이들과 북한이 연결되면서 제주도민들에 대한 탄압은 더욱 강해진 반면,
남로당 지도부 6인(김달삼, 강규찬, 안세훈, 고진희, 문등용, 이정숙)은
도민들이 죽어가는 와중에 해주에서 열린 인민대표자대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구실로 떠나 버렸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남은 무장대 역시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인 주민들을 상대로 약탈과 학살을 일삼았고
남로당의 행위는 내란에 해당되며,
이념적 색채가 옅었던 도민들의 평화적인 권리요구 시위를
미군정 전복을 겨냥한 무장봉기로 뒤바꿔 놓으면서
결국 대규모 유혈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니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당시 기회를 이용한남로당의 빌미 제공,
그 빌미를 이용해
섬 인구의 10%를 도륙한
미군정과 우익 단체의 잔혹행위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저 한홍구 교수가 누구냐면
김일성을 미화하던 분입니다
"섬, 4월 바람은 당신의 뼈 속으로 스며드는 게 아니라
당신의 뼈 속에서 시작되는 것"
2023년 제주 4.3사건' 75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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